경남 거창 위천면 거창 신씨 집성촌 황산 마을 돌담길
황산마을이 본격적으로 신씨의 집성촌으로 자리잡은 것은
중종 35년(1540) 요수 신권(1501~1573)이 이곳에 은거하며 구연재를 세우고
후학들을 양성한 이후부터라고.
입지는 대체로 평탄하며 주택들은 햇빛을 잘 받는 남동향을 바라보도록 건축되었다.
대부분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건설되어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며,
마을 전체가 기와집으로 무리지어 있는 이유는 이른바 씨족 부농으로 소작 마을을 별도로 두었기 때문이라고.
약 1.2킬로미터에 이르는 돌담길은 2006년 대한민국 등록 문화재 제259호로 지정되었으며
'전국의 아름다운 돌담길 10선' 중 한 곳으로 뽑힌 바 있다고.
신씨고가는 전통 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건축 시기가 1927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격식의 해체와 실용성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안채의 경우 방을 늘리기 위해 대청을 좁혔으며 집 안에 화장실을 설치했다.
화장실은 돌계단으로 올라가도록 높이를 높여서 측면에서 변의 처리를 원활하게 하도록 만들었다.
건물 중에서도 안채 옆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전통 한옥의 격식에서 얼마나 벗어난 것인지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의 화장실은 집 밖에 두고 안채의 화장실은 집 안에 두더라도 안채 밖에 별도로 설치했다.
그런 면에서 신씨고가가 얼마나 시대적으로 앞서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안채를 둘러싼 부속 건물들도 크고 화려하게 치장했다. 안채의 중심을 이루는 사랑 마당에는
전통 한옥에서는 보기 드문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이곳에 작은 나무들을 심었는데
한옥의 기본과 배리되는 일이다. 또한 사랑채에 설치하던 누마루를 안채에도 설치해
실용성을 우선으로 했으며 난간의 형태 역시 파격적이다.
닭다리를 닮은 계자 다리는 띠쇠로 난간과 함께 보강했다.
뒷문을 나서자니,
멀리 현성산을 비롯 금원, 기백산 라인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덕유산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봐야겠다.
사랑채와 정원의 모습.
상당히 큰 개비자나무가 사선 형태로 자라난 모습이다.
선비의 집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회화나무가 길손을 맞는다.
- 신씨 고가 해설에 관한 부분은 대부분 넷상에 공개된 내용을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