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0
消除濁氣 兒養淑氣
흐린 기운을 쓸어 버리고 맑은 기운을 어린 아기 기르듯 하라.
- 동경대전 歎 道儒心急 중에서 -
장성 남창골 산책
겨울 속, 봄 같은 날...
噫 如斯之忖度兮 由其然而看之則
아! 이같이 헤아림이여. 그 그러함을 미루어 보면
其然如其然 探不然而思之則 不然于不然
기연은 기연이나 그렇지 않음을 찾아서 생각하면 불연은 불연이라.
- 동경대전 不然其然 중에서 -
장성입암산성 남문 長城笠巖山城 南門
(사적 제384호.)
지정면적 1,308,429㎡, 총길이 약 15㎞, 높이 3m.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산세가 험준하여 옛날부터 전략요새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 성은 고려 시대 몽고군이 이 곳 전라도에까지 쳐들어오자 1256년(고종 43) 3월에 송군비(宋君斐)가
이 성을 지키면서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1409년(태종 9)에 수축하고 장성현감 이귀(李貴)가
1593년(선조 26)에, 역시 현감인 이유형(李惟馨)이 1653년(효종 4)에 성의 폭을 넓히고 낮은 곳을 높이 쌓았다.
한편, 정유재란 때에 이 곳 성의 별장인 윤진(尹軫)이 왜적과 싸우다 순직하기도 하였다.
성의 축성법은 협축(夾築 :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등을 쌓음)으로
성벽 내외가 수직에 가까우며, 넓은 계곡과 산세를 이용한 포곡식(包谷式)이다.
이곳 입암산성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공주 우금치에서 패한
녹두장군 전봉준(全捧準 1855~1895)과 그 일행이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1894년 11월 29일 잠시 머문 곳이다.
당시의 입암산성은 별장 이춘선(李春善 1845~1896)이 지키고 있었는데 전봉준 일행을 체포하지 않고
오히려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날 백양사 청류암에서 다시 하룻밤을 지낸 전봉준 일행에게 기별을 보내
관군의 추격을 피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순창 피노리로 피신한 전봉준 일행은 재기를
노렸으나 동지의 밀고로 결국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후 다음해 3월 처형되었다.
※ 입암산성의 별장 이춘선의 졸 연도를 미루어 볼 때
그도 아마 전봉준 일행과 관련되어 처형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Bizet
Romance sans paroles
침묵의 로망스
Julia Severus, piano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까지 이곳 입암산성 내에는
'갱정유도회' 도인들이 살고 있었다.
별장
윤진 순의비(尹軫殉義碑)
오던 길을 되짚어...
투명한 날의 오후.
일포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모처럼 남창골 입암산성 일대 산책에 나선 것.
청량한 물소리,
맑고 서늘한 공기에 잠시 폐부를 노출시켰을 뿐인데
오감이 열림과 동시에 즉각 이루어지는 자연과의 교감.
을미년...!
내 영혼의 본향 산과 자연 앞에
이제 다시 경건함으로 다가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