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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장흥(長興) 회진(會津) 기행

장흥長興 회진會津 기행

 

2014. 12. 7 ~ 8

 

장흥 '회진수로'에서 바라본 천관산(天冠山)

 

 

 

 

 

회진항에는 허름한 하늘이 있다

 

- 김 영남 -

 

내가

회진항의 허름한 다방을 좋아하는건

잡아당기면 갈매기 우는 소리가 나는

낡은 의자에 않아 있으면

허름한 바다와 하늘이 보이기때문입니다

 

허름한 바다와 허름한 하늘이 존재하는 공간

그곳에는 언제나 오징어가

이웃 순이의 팬티처럼 펄럭이는 빨랫줄이 있습니다

그리고 검은 통치마를 입은 어머니가 바닷가로 걸어나가고 있고

 

그바닷가 하늘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완장을 차고 만화가게 앞으로 나타나는게 보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회진항의 허름한 다방을 좋아하는건

아직도 난로위 주전자 뚜껑 소리같은 사투리가 있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도 외상으로 남기는 목포 아저씨

그 백구두 소리가 날아가는 하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노력항

 

 

 

소설가 한승원 생가

 

 

 

 

고향의 역사적 현실과 숙명에 천착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남해 바닷가의 풍경을 토착어가 살아있는 작품으로 표현함으로써 삶에 대한 토속성과 한(恨)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1954년 장흥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선배 송기숙과 교지 〈억불〉을 창간하였고 수필을 발표하는 등 문학에 열중했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김동리에게 배웠다. 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하였고, 1968년 〈대한일보〉에 〈목선 木船〉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까치노을〉·〈폐촌〉·〈포구의 달〉·〈해변의 길손〉 등 대표작들은 고향인 남해 바닷가를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에게 남해 바닷가는 반복과 되풀이를 통해 한국근대사가 압축된 곳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억압과 해소를 표출하는 원형상징적인 공간이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바다와 마찬가지로, 운명에 구속된 채 그에 맞서는 과정에서 비극을 구현함으로써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운명과 대면하는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그가 구사하는 토속적인 언어는 삶의 구체적인 감각과 섬세함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최근 그는 '생명력'을 주제로, 인간 중심주의적 문명에 대한 반성과 극복에 관심을 쏟고 있다.  

주요작품에 〈다산〉·〈불의 딸〉·〈포구〉·〈아제아제바라아제〉·〈아버지와 아들〉·〈해일〉·〈시인의 잠〉·〈동학제〉·〈아버지를 위하여〉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한승원 중단편전집〉(전7권)을 발간하였다. 소설 외에도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별〉·〈우주 색칠하기〉와 시집 〈열애일기〉·〈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달 긷는 집〉, 산문집 〈차 한 잔의 깨달음〉 등이 있다. 이외에 글쓰기 교육을 위한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등이 있다.

 

 /백과사전에서 발췌/

 

 

 

옹달샘 뚜껑을 열어보니 영롱한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죽마지우와 함께한 회진기행.

 

 

 

 

소설가의 생가가 있는 마을 어느집 시멘트 문설주에 적힌 '家萬事成'

 

 

 

선배님 두 분을 초대하여 쫄깃한 농어회를,

2차는 굴찜으로...

 

 

 

다음 날 아침

상큼한 공기와 함께한 회진항 해맞이

 

 

 

 

 

 

 

 

 

 

 

 

 

 

 

  

 

 

 

 

 

  하늘을 가득 메운 가마우지 떼거리 비행

 

 

 

회진항(Hoejin Fishing Port)은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에 있는 어항이다.

 

   회진면은 신라 경덕왕때 보성군 의령현이었으며, 고려초에 영암에 소속되었다가 인종때 장흥으로 개칭 '부'로 승격,

정주 관산으로 불리다가 조선 고종때 장흥군으로 칭하게 되었다. 회진은 조선시대에 회령포라 불렸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도 매우 깊은 인연을 가진 곳으로 충무공은 백의종군을 명받고 임지로 가던 도중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아 전선 12척을 인수받고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은

    발판이 되는 곳이 바로 회령포, 회진항이다.

 

 

 

'회령진성'에 올라...

 

 

 

 

 

 

장흥회령진성(長興會寧鎭城)

 

회령진성(會寧鎭城)은 성종 21년(1490) 4월에 축조된 만호진성(萬戶鎭城)으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水軍鎭)이다. 회령진이 처음 설치된 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조선초에 설진됐음은『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회령포진은 전라좌도도만호진(全羅左道都萬戶鎭)인 여도 관하에 내예 돌산 축두 녹도 마두 달량 어란 등과 함께 만호가 배치되어 중선 4척 별선 4척군 472명 뱃사공 4명이 주둔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방어와 수색을 위하여 수군첨절제사나 수군만호들은 항상 병선을 이끌고 해상을 왕래하였고 병선이 머무르는 곳으로 지정된 포소를 영-진으로 삼고 있었으나 여기에는 군량과 군기를 쌓아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울러 병사가 없는 병선이 있어서 유사시 하번선군(下番船軍)이 집결하는 장소였으며 또 평상시에는 해상작전을 하는 병선의 기항지인 동시에 보급기지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군은 병선에 승선하여 해상에서 왜적을 막아야 하였다. 성종 9년(1478) 7월에는 어란과 달량 마도와 회령포 사이에 보를 설치하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여러 포구의 만호 첨사유진처(僉使留鎭處)에 대한 축성이 논의되는 것은 성종 15년(1484)10월의 일이다. 회령포진성은 마을의 뒷산을 이용 축성한 부정형 성으로 이 진성은 현재는 연륙되어 있는 덕도와 노력도 대마도 대-소대구도 등의 섬들이 외호(外護)하고 있다. 남아 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m이며 동벽은 깍아지른둣한 절벽 위에 축성하였으나 현재는 모두 훼철되었고 다만 윤중필씨댁 부근에서 동문지(東門址)의 유구만이 확인될 뿐이다. 북벽은 현 높이 2.3m˜2.5m 너비 1.5m˜2m로 150m길이의 돌로 쌓은 성과 220m 길이의 흙과 돌로 새로 쌓은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북벽에서는 석축성이 끝나는 이정우씨댁 담장부근에 너비2.2m 길이 122m정도이다. 남벽은 대부분 훼철되고 길이 40m 너비2˜4m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외 동헌터와 객사터 등이 남아 있다.

 

 

 

 

 

 

 

 

 

 

 

 

 

 

 

'회령진성'에서 내려다 본 '회진항' 일대.

 

 

 

'회령진성'에서 바라본 장흥 '천관산'

 

 

 

 

 

 

 

 

 

 

 

 

장흥 '억불산' 소경

 

 

 

구름고깔을 쓴 억불산과 왼편에 뾰죽 솟은 '며느리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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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들이닥친 죽마지우의 제안.

 

" 친구~~~ 장흥 회진항이나 다녀오세."

 

각설하고 군말없이 내려간 회진항.

갯내음 속에 싱싱한 횟감에다 쐬주 몇 병으로 대설(大雪)의 밤을 씻어내린 것.

 

이튿날 아침, 회진항 해맞이 끝자락.

  하늘을 가득메운 가마우지 떼거리 비행에 갑오년의 온갖 시름을 얹어본다.

 

느닷없는 남녘행을 제안한 친구에게 무슨 사연인지 끝까지 묻지 않았다.

아이들 키워 짝지워 보내고 어부인 눈치 살펴가며 덧없이 살아온 세월.

 

친구여~~~

  복장 터지는 사연이 어찌 하나 둘이겠는가?

 

지난 밤, 너덜너덜 헤진 가슴을 적시는데 적잖았던 쐬주 몇 병.

그저 큰 효험 있기를 바랄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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