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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탐매

임진탐매(壬辰探梅) 제 11편

      임진탐매 壬辰探梅  제  11

 

 

                                                                                                                                2011. 4. 9

 

진도 운림산방

 

 

 

 

 

 

 

 

 

 

 

 

운림매(雲林梅)

 

1809(순조 9)~ 1892(고종 29).

조선 말기의 선비화가.

 

 

 

 

 

 

 

 

 

 

 

 

 

 

 

 

 

사당에 모셔진 허소치 영정

 

 

 

 

 

김정희 화파(金正喜畵派)의 한 사람으로 조선 말기의 화단에 남종화풍(南宗畵風)을 토착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화풍은 가전(家傳)되어 오늘날 호남화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癡)·노치(老癡)·석치(石癡). 허균(許筠)의 후예 가운데 진도에 정착한 허대(許垈)의 후손으로 어려서 해남의 윤선도(尹善道) 고택에서 윤두서(尹斗緖)의 작품을 방작(倣作)하면서 전통화풍을 익혔다. 1839년대흥사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소개로 김정희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수업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권기(書卷氣)와 문기(文氣)의 높은 화격(畵格)터득하게 되었으며, 김정희로부터 "소치 그림이 나보다 낫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가 지향했던 회화세계가 사의(寫意)표출에 중점을 둔 남종문인화였음은 원말4대가(元末四大家) 중의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의 호인 대치(大癡)를 따라 자신의 호를 '소치'라 한 것과, 중국 남종화의 시조인 왕유(王維)의 자를 본떠 이름을 '유'(維)라고 고친 것에서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산수·모란·사군자·괴석·연꽃·노송·파초 등 다방면의 소재를 능숙하고도 대담한 농묵(濃墨)을 구사하여 표현했는데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다. 그의 산수화는 김정희로부터 배운 중국 북송의 미불(米芾), 원말의 황공망과 예찬(倪瓚), 청나라 석도(石濤) 등의 화풍과 남종문인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이룩했다. 특히 시·서·화가 조화된 화면 구성이라든지 피마준(披麻皴)을 사용하면서도 중간중간에 가한 거칠면서도 짧은 터치는 그의 개성을 보여준다.김정희는 이러한 그의 그림에 대해 "화법이 심히 아름다우며, 우리 고유의 습성을 타파하여 압록강 이동(以東)에 그를 따를 자가 없다"라고 칭찬했다. 그는 신관호(申觀浩)·정학연(丁學淵)·민승호(閔升鎬)·김흥근(金興根)·정원용(鄭元容)·이하응(李昰應)·민영익(閔泳翊) 등과 같은 명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으며, 1846년 권돈인(權敦仁)의 집에 머물면서 헌종에게 그림을 바친 것이 계기가 되어 궁궐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1848년 헌종의 배려로 고부감시(古阜監試)를 거쳐 친임회시 무과에 급제해 벼슬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김정희가 죽은 1856년 고향 진도에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짓고 은거하면서 그림에 몰두했으며, 1867년에는 〈소치실록 小癡實錄>을 저술했다. 그의 화풍은 아들인 미산(米山) 허형(許瀅)과 손자인 남농(南農) 허건(許楗), 방계인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등으로 계승되어 호남지방의 서화전통을 이루었다.

 

그의 유작으로는 〈산수도첩 山水圖帖〉〈방예찬죽수계정도 倣倪瓚竹樹溪亭圖〉·〈방석도산수도 倣石濤山水圖〉·〈선면산수도 扇面山水圖〉·누각산수도 樓閣山水圖〉〈김정희초상〉 등이 전한다.

 

/백과사전에서 발췌한 내용/

 

 

 

 

 

 

사당매(祠堂梅)

 

 

 

 

 

 

 

 

 

 

 

산목련이 터지고 있었다.

 

 

 

 

 

운림미술관

 

 

 

 

 

 

 

 

 

 

 

세한도 목판화

 

 

 

 

 

 

 

 

 

 

 

 

 

황화소심

 

 

 

 

 

 

 

 

 

 

 

 

 

 

 

 

 

 

 

 

 

 

 

 

 

 

 

 

 

 

 

 

 

 

 

 

 

 

 

 

 

 

 

 

 

 

 

 

 

 

 

 

 

 

 

 

 

 

 

 

 

 

 

 

 

 

 

 

 

 

 

 

첨찰산 쌍계사

 

 법정선사께서 학창시절 이 절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하룻밤 유숙하고 떠나는 날,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해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눈물을 흘렸다는 절이다.

 

 

 

 

 

 

 

 

 

 

 

지금 쌍계사는 피빛 동백의 바다 

 

 

 

 

 

 

 

 

 

 

 

미술관 옆 살구꽃

 

 

 

 

 

 

 

 

 

 

 

 

사연 많은 일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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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달려 내려간 보배로운 섬 진도 운림산방.

하도 봄이 더디길래 조금 꾸물댔더니만 이미 매화가 생기를 잃은 모습.

 

아침 햇살아래 매점에서 사온 빵조각을 뜯으며 물끄러미 첨찰산을 바라본다.

짙푸른 쌍계사 상록수림에 대비되는  연녹색 물감이 풀려나가는 산방일대.

 

초의와 추사 허련과 남농 그리고 오늘날까지 굳세게 맥을 잇고 있는 허씨 가문의 화가들.

'일지매'가 겪은 사연만큼이나 역사적 부침이 많았던 조선의 문인화.

 

허소치의 목단화를 떠올리며 연못 주위를 거닐고 있는데,

왁자지껄, 한 떼거리가 몰려들어 운림산방 그 고요한 정적을 몰아내고 만다.

 

바로 옆 미술관으로 피신하자니 때마침 열리고 있는 "애란 애탐" 전시회.

한 점 한 점 뜯어 보지만 딱히 이내 마음을 사로잡을 무언가가 아쉽다.

 

잔뜩 욕심이 들어간 작품에서 예술에 앞서는 상업성만 물씬 풍긴다고나 할까?

진정한 예술의 정신이 쉬 읽혀지지 않아 다소  허전하더라는 말씀.

  다만, 미술관 옆 살구꽃만이 너무 미안할 정도로 정직한 화사함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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