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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아 ! 가을인가

                                                                                                                                                                                                                2011. 9. 7

 

꽃과 별

 

- 고 중 영 -

 

꽃도 넋이 있어 색색으로 피었다가

한 생을 마감하고 문닫은 자리

하늘은 비로소 개안(開眼)하고

길 열다.

 

길은 외길 하늘 길 그 길

그윽한 몸냄새로 닦아두었거니

이마에 송송 땀방울 돋으면

거침없이 벗고 목물할 때

아! 끝내 들켜버린 몸엣 것 부끄러워

어둘 녘 고샅길에 붙박혀 있겠다.

 

 

 

 

기다림 혹은 -

 

- 고 중 영 -

 

누구나 기다림 한 페이지 쯤은 갖고 있겠지

잊은 듯 덮어놓았던 책을  펼치다가

불현듯 찾아지는 그 페이지

생경한 문장같은 차츰 낯설어지다가

어느날 문득 가슴이 미어져

품에 꼭 안아보는 그런 사연 하나 쯤

누구나 그리움 한 페이지 쯤은 갖고 있겠지

잡힐 듯 만져질 듯 그렇게 선명하건만

손끝을 대면 포르릉 미끌어져 내리는 허무한 그것

 

그래서 사람들은 그리움을 기억 속에 가두고

기다림을 가슴 속에 숨기는 거겠지

사물의 배면(背面)에 숨어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에 끼워져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불확실하다가도

사무쳐 꺼내들면

언제나 가슴을 후비는 맹수의 발톱같은 그리움

혹은 기다림은

어쩌면 외로운 사람들이 평생을 앓아야 하는

지병일테지.

 

어제도 나는 무엇인가를 기다렸을테지

오늘 하루도 아니면 내일도 모레도

교정이 불가한 그 단어를 집어들고

그 성가신 것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병이 크게 도지면 숨이 멎겠지.

 

 

 

 

명상의 시간

 

- 고 중 영 -

 

 

꽃이라는 언어 한 토막을 집어 들고
기척 없는 공(空)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도 몰라야하는 다스림의 律을
어김없는 行으로 열어보게.

뿌리에서 오른 지혜가 높낮이를 다스리고
줄기에서 오른 인자로움이 겸손을 만들고
향기로 빚어낸 선함으로 저만치 부드럽고
잎사귀에 둔 티 없음이 어긋남을 밀어내고
색깔로 정한 정결이 경박함을 멀리 하고
뜻으로 닦은 표정이 맑음을 취하며
있음에서 취한 결실에 두려움이 없다할 때

기쁨으로 들끓고 참에서 감사하며
촉으로 그리움을 만질 수 있는 그대는
비로소 꽃으로서의 완성이니
그곳에는 그대와 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있음"이 있을 뿐이네.

 

 

 

 

 

失鄕

 

 

- 고중영 -

달무리에 우수가 어려
창문을 더듬는 가녀린 손.

바람이 부여잡고 흔드는 문풍지 안쪽
고운 우리 님은 목이 메어
장족 한 짝 잃어버린 가파치 마냥
목 메어 기척이 없고

저만치 밀어두고 온 인의산
가림토文字 연비를 뜬
그 바위 꽃 곁으로도
행선 전날의 저녁은 깊어

심청이 무명 적삼 섶
진홍으로 잘린 옷고름
아!
옷고름만 씹던 영산강 물석임을 건너

누군가 저만치 가는구나.
소지(燒紙)를 마친 자손이 되어
이 밤 그냥 가는구나.


註: 연비-몸의 비밀스런 부위에 情表로 새기는 文身.
소지: 제사에 사용한 지방(紙榜)을 사르는 절차.

 

 

 

 

 

꽃에 대한 단상

 

- 고 중 영 -

 

 

꽃은 피어나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말 여린 가슴에 묻고

긴긴 날 혼자 외로움 타다가

여인만큼 뼈아파지면

저렇게 깊어진 채

가던 길을 되돌아와

불현듯 우리 앞에 서는 것이다.

 

손끝만 파르르 떨다가 멈춘

아랑이거나 아사녀의 진혼제에서

살풀이 춤사위 틈틈이

은사실 섧게 엮은 說話를 꺼낸 소녀가

귀퉁이 낡은 사연 마지막 장 덮으며

한숨에 어리어 영혼까지 물들었다가-

 

꽃은 시드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왔던 길 돌아가는 것이다.

슬픔도 목숨인 양 수줍도록 아끼다가

왔던 길 되짚어

울음도 없이 그냥 가는 것이다.

 

 

 

 

달밤

 

- 이 호 우 -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날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바람의 귀

 

- 고 중 영 -

 

저 넓은 만경들판

가을밤이면 소란스러워지는 까닭-

낮에는 숨어있던 별들

엷은 옥색치마 바람으로 마실 나와

태어나는 일

태어나서 살아가는 일

살면서 어른스러워 지는 일

그렇게 살다가 쓰러지는 일

쓰러져 썩어가는 일

다시 살아지는 일

세상 이치를 언제 그렇게 다 꿰어 찼던지

입은 열었으되 

세상 깨울까봐 조심스러운 고요.

 

 

 

핑크 이질풀

 

 

그리움에 대한 보고서 2

 

- 고 중 영 -

 

그리움의 날개는 접히는 것이 아니라

꺾이는 것이다.

곱게 접어 가슴에 간직하고 싶어하지만

숨길수록 뾰족해져 가슴에 박혀들고

"모른다" 외면하고 달아나면

어느 새 인생의 전면으로 쫓아와

영악하게 웃고 서 있는 그리움은

그래서 지우개로도 지워지지 않는 요철문자다.

 

그리움의 뿌리에서는 늘 새순이 돋아난다.

느낌이라는 악령(惡靈)의 자양분을

탐람하게 빨아먹고 자라는 그리움은

만나는 순간부터 목숨이 다하는날 까지

그림자처럼 질기게 붙어다닌다.

늘 붙어다니는 그놈이 성가셔서 /인정해주자/ 하면

아침 저녁으로 심장을 후비고 형관을 물어뜯는다.

 

지나가 버린 청춘

지나가 버린 시절

헤어져버린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늘 외톨이고

/아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봐도

고개만 아플 뿐-

 

고로 그리움은 접으려해선 안된다.

그리움은 목숨처럼 꺾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 목숨과 더부러 모질게 꺾어야만 하는 것이다.

 

 

 

 

흰색 이질풀

 


희망 좀 빌립시다

 

- 고 중 영 -

 

어느 한 때 이민이 유행하던 이 땅에서

우리 말 우리 글이 죽도록 좋아서

가족들을 따라나서지 못하고 혼자 남아

살다보니 어언 70고령이 됐소

그 잘난 아들 딸 마누라님 이제 소식끊기고

혼자 남아 지키는 이 푸른하늘 밑에서

더 바래고 기다릴 건덕지 마자 접어버리고

이렇게 쓸쓸합니다.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던가?

뭐 대단한 철학이 아니더라도

얼마 안 있어 추석명절일 텐데

중뿔나게 더 외로워질 일이야 있겠나만

그 흔한 손전화 한통화 없는 매정한 이산가족

기다리기에도 뼈가 욱신거리는다가 그마자 그치고

채념하고 숨만 쉬고 있는 내 노년에게

스스로 미안하기 이를 데 없어 혼자 문득

/아무라도 좋으니 누구 내게

기다릴 희망 좀 빌려주시구려/

 

허허

허허

소리꾼 장사익씨의 허허바다라는 소리 제목이

재법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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