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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연암김씨종택(延安金氏宗宅)

연안김씨종택(延安金氏宗宅)

중요민속자료 제234호

 

- 전남 영광군 군남면 동간리 동편마을 - 

2011. 8. 25

 

                                                                                                                                                                      

 

 

 

16세기 중엽에 김영이 군수로 부임하는 숙부 김세공을 따라 영광에 온 이후

연안김씨 직강공파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상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 또는 학 형국이라고

일컬어지는 길지에 넓게 자리한 집이다.

 

 

 

 

연안김씨 종택은 조선후기 영광지역의 양반 가옥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지방 상류층의 주택 구조와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문위의 누각은 세 분의 효자를 기려

고종의 명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말을 내릴때 쓰이는 하마석도 보인다.

 

 

 

 

건물을 떠 받치는 기둥은 굽은 나무를 그대로 썼으며, 두 개의 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대문의 턱은 석재를 사용했으며, 오른편 대문의 턱은 곡선을 그리는 나무로 되어있다.

신분에 따라 왼편 대문은 지체 높은 양반, 오르편은 하인 전용 출입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처마 네 귀퉁이에 화려한 다포를 올리고도 모자라

그 가운데 각각 한 마리씩의 용두를 넣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사찰이나 궁궐을 제외하곤 절대 금기시되된 시절, 어떻게 용두를 넣을 수 있었을까?

 당시  연안김씨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효자각에 내걸린 글씨는 고종의 형 이재만이 썼다고 전해온다.

수막새 암막새 모두에 삼효(三孝)라는 글자까지 새겨 넣은것으로 보아

이 건물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대문을 열고 바라본 모습으로  안채로 이어지는 중문이 보인다.

 

 

사랑채

 

마당  오른편에 상당한 수령의 영산홍이 보이길래 자산홍은 없었느냐고 종부께 물었더니

본디 영산홍 옆에 자산홍도 있었는데 누군가가 거름을 주는 바람에 그만 죽고 말았다고.

 

 

 

 

노둣돌 대신 통나무 토막이 방문객을 중문으로 인도한다.

 

 

 

대문을 들어서 효자각을 왼편으로 감아돌면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왼편 석축위의 건물은 서당이고 오른편은 하인들이 거주하던 일자형 건물이다.

 

 

 

연향 가득한 홍련지

 

 

 

 

 

 

 

 

서당

 

 

 

서당 마루에서 바라본 왼편의 사랑채와 효자각

 

 

 

 

서당 툇마루

 

 

서당 앞마루

 

 

 

기둥에 걸린 주련의 초서가 인상적이다.

 

 

 

 

 

 

 

 

사랑채 대청마루

 

 

사랑채의 방 마다 내걸린 편액

 

 

 

 

 

 

 

 

 

중문에서 바라본 삼효문과 효자각

 

 

 

 

 

 

 

 

 

중문에서 바라본 안채

 

 

 

중문에 들어서 왼편으로 보면 제실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안채 왼편에 나 있는 문.

 

 

 

안채로 이어지는 쪽문.

 

 

 

제실

 

 

 

제실 뒷편의 풍경으로 잔디밭 끝 초가 건물의 용도를 알지 못한다.

건물 뒷면이 잔디밭 쪽으로 약간 들어와 있고 건물로 통하는 문도 없는 것으로 봐서

담장 바깥에 출입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른편이 제실 뒷면이고 왼편은 안채 뒷편으로 장독대가 있는 곳이다.

 

 

 

 

 

 

 

 

 

 

제실 출입문을 나서며

 

 

 

안채 쪽에서 사랑채 옆 부분으로 직접 들어 설 수 있는 방이다.

 

 

 

안채의 모습이다.

 

 

 

안채 앞쪽에 딸린 건물의 용처도 궁금한데 미처 물어 보질 못했다.

 

 

 

안채 오른쪽 옆면의 모습

 

 

 

 

 

 

일자 형태의 아래채 모습.

 

 

 

효자각의 보호를 위해 알루미늄 샷시에다 유리문을 달았다.

 

 

 

맨 오른편 자물쇠가 걸린 문을 열면 이층의 효자각으로 오를 수 있다.

 

 

 

큰 대문의 석재 문턱

 

 

 

 

 

 

효자각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효자각 내부

 

 

 

 15대 종손 김성호의 8, 9, 14대조의 효행을 기려 고종이 내린 정려문이다.

 

 

 

당초, 마을 안에 따로 지으려던 효자각을

문중회의를 거쳐 대문 위에 얹기로 했다는데 암튼 三孝子의 영광은 대단했던 모양.

 

 

 

효자각 상단 화려한 다포 사이로 내걸린 정려문.

각각 세 분의 효자 정려 중,  현재는 두 분에 관한 내용만 전해 온다는데...

 

첫 번째 분은 현 15대 종손의 9대조로 양자로 들어온 분이었는데,

부친이 작고하자, 출몰하는 호랑이를 물리쳐 가며 정성으로 삼년시묘를 한 결과

정려를 받게 되었고.

 

두 번째 분은 정확히 몇대조인지 확실치 않은데,

한 겨울 얼음장 밑의 잉어를 끌어내는 등

모친의 중병을 지극정성으로 구완한 효성이 널리 알려져 역시 정려를 받게 되었다고.

 

 

 

 

효자각의 유리문을 열고 내려다본  모습이다.

 

 

 

 한 눈에 들어오는 들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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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 부터 가보고 싶었던 영광 군남면의 연안김씨 종택.

2.000 여평의 대지에 자그만치 150 칸 규모의 건물.

 

듣던 대로 정말 대단한 위용은 물론이고,

 관리 역시 매우 깔끔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집 최대 압권은 출입문과 효자각을 결합시킨 독특한 형태의 건물.

조선조, 삼효자(三孝子)를 냈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안김씨 최대의 영광이었을 터.

 

그 엄청난 영광을 후세에 길이 전하자는 의미 플러스  집안의 위세까지를 과시하자는

일종의 양수겸장(兩手兼將)을 부르는 의지의 표현일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서당 옆의 홍련지가 뿜어내는 연향이 시쳇말로 예술이었다..

공부하기에 최적의 공간임을 금방 알 수 있겠다.

 

듣자하니 어떤 시인께서 이 大家를 관리하면서

민박형태로 운영중인 모양이던데 어디 출타라도 하셨는지 만나보질 못했다.

 

대신, 안채에 주거하시는 종손내외를 만나 인사를 나눈다.

친절하신 종부님의 안내를 받아 영광스럽게도 '효자각'까지도 올라 볼 수 있었다.

 

상당한 수령의 영산홍도 보이던데, 제데로된 자산홍 한 그루와 짝을 이룬다면

아마도 멋진 봄 날의 풍경을 예감해도 좋지않을까.?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 연암김씨 종택 고가의 정취는 어떤 그림일까?

종택을 돌아나오는 이내 발걸음은 벌써부터 설레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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