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 25
영광 설매리 석조불두상(靈光雪梅里石造佛頭像)
염산으로 가는 큰 길에서 서북쪽으로
약 700여미터 계곡을 따라 오르는 미륵골에 위치한다.
영광군 대마면 복동마을에 소재한 커다란 회화나무.
민가 뒷편 울창한 대밭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정확한 수령은 모르겠지만 몇 아름이나 될만큼 커다란 회화나무가
왜 아직까지 보호수로 지정되어있지 않은지 이유가 궁금하다.
복동마을 앞 들녁을 지키는 배롱나무
아름다운 길로 정평이 나 있는 영광 백수해안도로와 칠산바다.
거북바위.
썰물 때 해안도로 아랫쪽으로 내려가면 저 거북바위를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저 앞 칠산바다에 떠 있는 섬들과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인데...
해안도로 산자락에 피어난 노랑상사화.
몰무데미 가는 길
- 백여 고 중 영 -
초분(草墳) 두어 개 쯤은 늘 서있을 것 같던-
가끔은 문쥐들 조차 잰걸음으로 건너던
눅진한 습지를 지나면
눈이 뿌옇게 먼 물뱀이
우둘투둘 두꺼비한테 잡아먹힌다는 둠벙 가
메뚜기 이마빡 같은 황토밭 다섯 이랑을
일곱 냥 일곱 푼에 사던 이듬 해
당창병이 든 아들놈을 데리고 소록도로 간
당숙네
홀로 남은 당숙모는
키가 하도 작아 별호가 /내좆지리/인데
해가 몇 차례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는 父子가 보고 싶다는 말 대신
“이 씨벌년의 팔자”
욕바가지를 입에 물곤 하던 것인데
때 맞춰 몰무데미 가시덤불을 쥐어뜯듯
절절히 쏟아붓던 비둘기들 울음소리는
“들숨에 서방죽고
날숨에 자식죽고" .
註: 몰무데미- 말 무덤. 문쥐-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니는 쥐떼.
* 나는 이래서 이 시를 썼다.
어려서 고향을 떠난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래 아랫집 살던 세 살 터울의 화순이도 아니고
맷등거리에 살던 판식이도 아니다.
대낮에도 지나가려면 왠지 머리카락이 쭈빗해지는 몰무데미 너머 깡깡마른 황토밭이랑을
쩍쩍 가르던 당숙모네 고구마 밭이었다.
그 고구마밭 귀퉁이에는 개모람 잎이 칙칙하게 뒤덮인 방죽이 하나 있었고
- 늘 가난에 시달리며 살다 가신 그분의 일생이 지금도 안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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