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 마을 /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
2011. 5. 4
근자에 재 조성된 이용욱 가옥 앞 연지
이용욱(李容郁) 가옥
-중요민속자료 제150호-
1835년(조선 헌종 1년) 이진만이 지은 집으로 강골마을 중앙에 위치한다.
내당(內堂)인 안채는 사랑채, 출입문과 연결된 문간채, 곡간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과 안채는 원래 초가였으나 이진만의 손자 이방희가 기와를 얹은것이며
솟을대문도 원래 3칸이던 것을 이방희의 손자 이진래가 5칸으로 개축하였다고 한다.
행랑채와 중간문채, 사당과 연못을 갖춘 명실공히 사대부가의 전형이라 하겠다.
송구스럽게도 금년 춘추 여든되시는 조명엽 할머니께서 가이드를 자청하셨다.
울창한 대숲을 배경으로한 일자형 안채
담장 아래 피어난 모란 행렬
안채와 나란히 선 사랑채와 마당의 우물
부귀의 표상 모란
장독대
사랑채에 내걸린 당호와 주련
안채 오른편 높다란 쪽마루가 인상적이다.
이용욱 가옥 담장 밖에 있는 공동 우물
담장 한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다.
우물가에 모여든 동네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통로.
초가에 얹게될 이엉 낟가리
이식래 가옥(李湜來) 가옥
-중요민속자료 제160호-
마당에 아무런 정원수가 없음에도 집 뒷편의 울창한 숲 덕분에 아늑한 느낌이다.
상량문의 기록으로 1891년에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초가 안채는 부엌, 큰방, 대청, 작은방이 '-'자로 배치되는 전형적 남도방식의 4칸이었는데
아랫쪽에 한 칸을 더 달아 5칸 집이 되었다.
안채 서쪽에 담을 쌓아 뒤꼍의 휴식공간을 보호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주택 공간 구성에서 가장 오래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사랑채 역시 4칸 으로 대청이 한 쪽으로 배치되는 이른바 남도식 평면 구성을 보여준다.
이채로운 형태의 지붕을 얹은 장독대 출입문
장독대 내부
오늘의 가이드를 자청하신 조명엽 할머니 댁.
아드님 되시는 이정민씨는 강골마을의 원형질 보전을 위해 동분서주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
종래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제도권까지 진출, 현 민노당 소속 전남도의회 의원으로 활동중이다.
문간채에서 안채'까지 이어진 노둣돌
보성 출신의 정객 고 이중재 의원이 바로 이 집 출신.
대법원장을 지낸바 있는 이용훈씨도 이곳 강골마을이 고향이라고.
사랑채 앞에 영산홍과 철쭉이 각각 한 그루씩 서 있는 모습이다.
위 영산홍이 선 공간에서 열렸다는 "두 그루 철쭉제" 팜플릿의 표지.
장독대
조명엽 할머니께서 차와 함께 강골마을의 특산품 엿을 내 오셨다.
수원댁으로 통 한다는 조 할머니댁 대청 내부에 걸린 편액
조 할머니 댁 뒷편에서 만난 무성한 머위밭
열화정(悅話亭)
-중요민속자료 제162호-
1845년(조선 헌종 11년) 이진만이 후손 양성을 위해 세운 정자로
연못과 정자 그리고 울창한 숲과의 조화로움이 가히 빼어난 풍광이라 하겠다.
실제로 강골마을 전체를 놓고 보면 원림 가운데 주거지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형국이다.
열화정 출입문
누마루에 올라
정자 내부
정자 뒷편의 동백단
열화정에서 내려오는 길
이금재(李錦載) 가옥
-중요민속자료 제157호-
1900년을 전후하여 지어진 집으로 광채는 19세기에, 나머지 건물은 20세기 초반에 지었다.
'ㄷ'자 모양의 안채는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날개가 덧붙여졌다.
작은방은 사랑 형태로 사용되었으며, 측면에서 드나들도록 한것은
삼남지방에선 자주 보기 어려운 형식이다. 맞은편의 광채는 안채의 조망을 고려하여
낮고 야트막하게 지었다. 뒤뜰과 사랑방 동쪽의 후원, 굴쭉의 모습은 아담한 주택과 잘 어울린다.
/가옥에 대한 것은 조명옥 할머니의 해설과 안내판의 내용 참조/
아치실 댁
이 댁 역시 일자형 구조다.
바깥채와 사랑채
예전에 쓰던 그릇을 한데 모아 놓았다.
집 뒷편에 자리한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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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의 광주이씨 집성촌은 조선 말에 지어진 남도 주택문화의 원형질이
비교적 고스란히 잘 보존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퓨전을 들먹이며 전통을 덧칠하는 여타의 마을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강골마을.
바닷가 마을이면서도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풍부한 물까지 솟으니
마을을 이루는 조건으로는 최고의 지세라 할 수 있겠다.
집집마다 많은 양의 곡식을 저장할 수 있도록 지어진 곡간의 크기를 보면
득량만 방조제의 완공에 따라 엄청나게 늘어난 곡물의 양과 부를 가늠할 수 있겠다.
물경 1460ha의 농지가 새로 생겨났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내 눈에 비친 강골마을 최고의 감상포인트는 '마을길'과 '마을샘'이라 하겠다.
여러 형태의 가옥에다 구불대는 골목, 울창한 대숲, 다양한 수목 감상에 이르기까지
그저 모두가 정겹지 않은게 하나도 없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여기저기 옛집들이 복원되는 모습이었는데 한가지 옥에 티랄까!
아름다운 '열화정 풍경'을 깨뜨리는 흰색 조립식 양옥 한 채가 영 마음을 불편케 하고 있었다.
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을 비롯, 몇 몇 집들에 사람이 떠나고 마치 영화 셋트 처럼
휑하게 비어놓은채 자물쇠가 걸려 있는 것도 맘에 걸리는 대목.
그나마 지켜온 지금의 이런 모습과 전통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개발이라는 명분과 수익창출이라는 미명아래 뭔가 일을 벌이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강골마을의 품위는 끝이나고 말게 분명하기에 말이다.
마을 공동샘의 물이 자연스럽게 넘쳐 흐드던 것을 막아버린 것이나
연못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석축의 재질이나 형태 등도
심미안을 지닌 시공의 예라고 보기엔 많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반목과 질시, 시기와 암투로
조용하던 시골이 난장판으로 변하는 것을 그간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남도 주거문화의 원형질이 현존하는 마을로선 보성 득량의 강골마을이 거의 유일하다는 사실.
당연히 이곳 저곳에서 이러 저런 형태의 부추김 따위가 마을 주민들에게 쇄도할 게 분명.
이럴 때 일수록
주민들 모두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강골마을의 원형질을 지켜내겠다는 긴 안목의 혜안에다 지혜로운 사고까지를 덧붙여 준다면
나로선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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