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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화엄능파(華嚴陵波) /선암사 영산홍/

화엄능파(華嚴陵波)     

               선암사(仙巖寺) 영산홍(映山紅)

                      

                                                                                                                                      2011. 5. 4

 

三印塘

-시도기념물 46-

삼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삼법인을 뜻하는 형  타원형의 알 모양이다.

 

 

 

삼층 석탑 두 개가 나란히 대웅전 구역

 

 

 

대웅전 뒷편 불조전 마당끝에 선 자산홍

 

 

 

 

 

 

 

선암사 경내에서 가장 큰 수형의 자산홍이다.

 

 

 

자산홍 곁에서 바라본 불조전 영산홍

 

 

 

불조전 영산홍 사이로 바라본 자산홍

 

 

 

 

 

 

 

조사전 영산홍

 

 

 

 

 

 

 

무우전 영산홍

 

 

 

운수암 느티나무 속에 좌정한 지장보살 부처상

 

 

 

운수암 영산홍과 고산철쭉

 

 

 

선암사 북 승탑(順天 仙巖寺 北 僧塔)

-보물  제1184호-

 

칠전선원 뒷편 차밭에서 윗쪽으로 약 150m 올라간 지점 선조암(禪助庵) 터에서 약간 우측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단부(基壇部)인 지대석(地臺石)과 하대석(下臺石), 그리고 중석, 상대석(上臺石)을 갖추었고,

다음 탑신부(塔身部)와 옥개석(屋蓋石), 상륜부(相輪部)를 모두 갖춘 완전(完全)한 작품(作品)이다.

맨밑에 팔각지대석(八角地臺石)에 하대석(下臺石) 주록(周綠)에는

장흥보림사(長興寶林寺)의 보조선사창성탑(普照禪師彰聖塔)에서와 같이 달팽이같은 운문(雲紋)을 장식했다.

 중대석(中臺石)은 짧으면서 중앙에 배가 블룩하게 나와 고 형(鼓 形)이며 팔면(八面)에는 엷은 안상(眼象)을 새겼다.

그위로 중석(中石)과 연결하여 일석(一石)으로 상대석(上臺石)을 올렸는바 통식(通式)인 팔엽앙연(八葉仰蓮)을 나타내고

그 중앙(中央)에 화형(花形)을 시문(施紋)하여 일단(一段)의 팔각주록(八角周綠)과 괴임대를 표현,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는 상면까지 연결되고 있다.

탑신(塔身)도 역시 팔각이며 각면에는 전후(前後)에 문호형(門戶形), 중앙에 열쇠를 표현하고

다른 사면(四面)에는 신장상(神將像)을 모각하였으나 그 수법이 매우 형식화 되었다.

옥개석(屋蓋石)은 팔각으로 기왓골이 없이 편평하고 낙수면(落水面)은 호형을 이루면서 우동(隅棟)에 뚜렷한 텃치를 가했다.

그리고 추녀끝의 귀꽃은 뾰족하게 돌출시켜 놓았으며 하면(下面)으로는 별조식(別彫飾)이 없이 가벼운 곡선(曲線)으로 처리하였다.

상륜부(相輪部)는 상륜(相輪)받침과 보륜(寶輪), 보개(寶蓋), 보주(寶珠)가 모두 갖추어져 유실부재(部材)가 하나도 없다.

이 부도(浮屠)는 옥개석(屋蓋石) 일부의 귀꽃이 균열이 가 약간 손상이 있을 뿐 각 부재(部材)가 완전한 상태로서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의 전형(典型)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따라서 같은 경내(境內)에 있는 무우전부도(無憂殿浮屠) 및 대각암부도(大覺庵浮屠)와 함께 동시대(同時代)인

고려전반기(高麗前半期)에 속하면서도 가장 빠른 시기(時期)인 10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선암사 성보박물관 유물 해설 참조-

 

 

 

 

칠전선원 4단 다조(茶槽)

 

800년 이상된 차밭에서 흘러 내린 물이 4기의 돌확을 지나도록 이어놓은 것으로,

고고하게 흐를수 있도록  배치한 다조(茶槽)의 자연스러운 형태가 일품이다.
상탕은 청수(淸水)라 이름하며 차를 달여 부처님께 올리는 청정수로 쓰인다.
두 번째 다조에 담기는 물은 스님네들의 음용수로 사용된다,
세번째의 다조는 하탕이라 부르며, 세면을 한다거나 빨래의 용도로 쓰인다.
네번째는 허드레탕으로, 다비(양말)을 빨거나 해우소를 다녀온 후 손을 씻는물로 사용된다.
4단의 다조는 각각 제작년도가 다르며 상탕은 재차 제작된것으로 약 70~80년 전 것으로 추정.
 칠전선원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스님네들의 전용 공간이기도 하다.

 

 

 

 

4단 돌확으로로 구성된 다조(茶槽)를

자산홍 한 그루가 무심히 지키고 섰다.

 

 

 

 칠전선원(七殿禪院)

칠전은

석가모니 이 전에 출현했던 칠불(七佛)을 상징한다.

선암사 경내 맨 윗쪽 차밭 아래 7개의 건물로 구성된 공간으로,

사진은 출입문각 안 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칠전선원 담장 안 쪽 문각 좌우에 도열한 영산홍과 자산홍.

최소 600년 이상의 수령으로 판단되며 마치 화엄세계의 이상향을 보는 듯 하다.

 

 

 

칠전선원 영산홍

 

 

 

 

 

 

 

영산홍 사이로 바로본 응진당

 

 

 

칠전선원 자산홍

 

 

 

 

 

 

 

자산홍과 응진전

 

 

 

응진전 내부에서 바라본 영산홍(左)과 자산홍

 

 

 

자산홍과 담 너머 원통전

 

 

 

칠전선원 담장 밖 백매(白梅) 곁에서 바라본 자산홍

 

 

 

 

원통전 바깥 구역에 자리한 자산홍 두 그루

 

 

 

첨성각 앞에 자리한 겹도화

 

 

 

불조전과 조사전 사이로 바라본 영산홍과 자산홍

 

 

 

 

 

 

 

조사전 앞 영산홍

 

 

 

설선당과 적묵당 사이 연지 앞에 자리한  자산홍과 자산홍

 

 

 

겹벚꽃잎이 떠 있는 낙화의 바다에서 목하 공부 중

 

 

 

 

 

 

 

 

 

 

 

역시 좌우로 도열한 영산홍과 자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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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의 초파일이 눈 앞으로 다가온 조게산 선암사.

 화엄의 꽃대궐을 화려하게 수 놓은 영산홍과 자산홍의 물결.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능파(凌波)라 한다던가!

물결 위를 가볍게 걷는다는 능파(凌波)의 걸음으로 꽃바람 속의 파도를 헤치노라니

그곳은 영산자산(映山紫山)이 넘실대는 장엄하고도 화려한 화엄의 바다라.

 

불전에 바치는 공양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는 꽃 공양.

여러 꽃  중에서도 최고의 품격을 따지는 순위를 꼽을라 치면,

그건 물으나 마나 단연 영산홍 아닐까...?

 

흔하게 듣는 얘기 중의 한 가지.

 

 " 왜색 영산홍과 조선 오리지널 영산홍은 어떻게 다르죠? "

 

나는 결코 '식물 분류학상'으로 딱히 어떻다고 자신있게 내 놓을만한

식견과 배움을 갖추지 못 했다는 사실 부터 솔직히 밝힌다.

말 하자면 느낌 상으로 구별 할 뿐이라는 얘기다.

 

꽃송이가  숨막힐 정도로 바글대며 검붉게 피어나는 일본 원산의 영산홍에 비해

요란하지 않은 진홍색 색감과 다소 듬성거리는 정도의 차이라고나 해야할까!

 

보다 더 확실한 것은 전체적인 꽃의 기품에 있다 하겠다.

내가 가진 염량으로 더 이상은 딱히 어떻다 설명하기가 난감한 영역인지라,

그저 많은 개체를 접 해 보고 느껴보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대충 얼버무려야 겠다.

 

흔히 주위에 널려있는 일본 기리시마 계열의 꽃 들은,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어쩐지 눈만 피곤하고  괜시리 마음만 산란할 뿐이다.

 

자생 영산홍의 붉음에는 결코 눈을 피곤하게 하는 따위의 요란함은 찾아 볼 수 없다.

 따스한 붉은 색감이 가져다 주는 일종의 '안정된 붉음'이라는 표현은 어떨까...?

 

어떻든 이땅의 자생 오리지널 영산홍의 참 맛을 알고 나면,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 영산홍의 매력에 흠씬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강력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봄 날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 모두가 그러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영산홍은 어디에 서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감상 포인트.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선암사와 같은 유서깊은 사찰이나,

고가의 사랑채  주위에 서 있을 때 가장 품격이 높다고 해야겠다.

 

지난 육십년대 후반 처음 선암사의 찬란한 봄을 접수한 이래로

별 일이 없는 한, 나는 거의 빼놓지 않고 선암사 영산홍을 찾아왔었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조계산의 봄, 

찬란한 화엄의 능파(陵波)를 헤치며 

 난 여전히 그렇게 선암사 경내에 피어난 영산홍 앞에 내내 서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