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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탐매

신묘탐매(辛卯探梅) - 13

 신묘탐매(辛卯探梅 제13편 최종회 

 

                  ● 매화우(梅花雨) 흩날릴 제...                                                                                                                                                                  2011. 4. 17

내소사 백매(來蘇寺 白梅)

 

 

 

 

 

마치 석가 세존의 설산 고행을 연상케 하는 듯,고졸할 맛이 일품인 홑 백매로 봉래루(蓬來樓) 우측에 서 있다.약 150여년 안팎의 수령으로, 비쩍 마른 형상에 성글게 피어나는 백매의 자태.그야말로 탐매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개체라 하겠다.

 

 

 

범종각을 배경으로...

 

 

활짝 피어난 벚꽃과 나란히 선 내소사  홍매(來蘇寺 紅梅)

 

 

 

공양 중에서도 꽃 공양이 으뜸이라 했던가? 비록 고매는 아니지만, 불전에 바쳐지는 의미있는 만첩홍매라 하겠다.

 

 

 

 

 

 

 

 

대웅전 추녀를 배경으로...

 

 

화사하게 피어난 경내의 벚꽃

 

 

 

 

 

내소사 산수유

 

 

서호자매(西湖紫梅)

 

수령 150년으로

중국 서호에서 들여온 경로가 확실하게 고증되어 있는 만첩분홍매이다.

원래 앞에 보이는 건물 뒷편에 있던 것을 작년 이 자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줄기와 가지가 몽땅 잘려 나갔다.한 쪽 가지는 이미 고사 해 버렸고 전반적으로 심한 몸살을 겪는 중이다.

 

('서호자매'의 자세한 내력은 "경인탐매" 편을 참조바람)

 

작년 봄 까지만 해도 이처럼 왕성한 수세에다

온 동네를 진동시킬 정도로 짙은 매향을 뿜어 냈었다.

 

'서호자매 '작년 모습

 

세심매(洗心梅)

 

 

 

 

능가산 개암사(楞伽山開巖寺)

 

 

개암매(開巖梅)

 

 

 

 200년 수령의 분홍겹꽃으로 개암사 앞 마당에 대웅전과 울금바위를 배경으로 서 있다,개암사는 이매창의 사후,  편린으로 떠돌던 매창의 詩를 편찬한 곳일 만큼,부안을 배경으로 활동했던 매창과는 각별한 인연이 서린 곳이다.마치 거문고 가락에 춤을 추는 이매창의 춤사위가 저절로 떠올려 질 만큼, 줄기의 비틀림이 예사롭지 않은 매화라 하겠다.

 

 

 

 

 

개암매는 이미 거의 꽃을 거두는 중.

 

 

개암매를 볼 때마다 항상 배수 문제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비록 거의 끝물 수준이지만 그래도 한줄기 매향은 맡을 수 있었기에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백산(白山)사방 100리 허에 거침없는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산이다.

 

 

백산성(白山城) - 사적 409호 -비록 해발 47.4m의 나즈막한 동산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산봉우리와 남방으로 뻩은 대지를 감은 겹성으로 상성, 중성, 외성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과시대별로 여러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봐서 특정 목적을 위한 집단 취락지로 밝혀졌다고.거기에다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로서의 역사성까지 더해져 주목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백산성과 백제 부흥운동

 

660년 삼국통일전쟁 시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이 함락되고 유장 복신과 승려 도침이 주류성(周留城:우금산성)을 근거지로 하여, 백제유민들과 함께 부흥군을 일으키고 일본에 있던 왕자풍을 옹립하는데, 백산성은 백제부흥군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 나당 연합군과 백강구 전투(663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이 전투에서 패한 백제는 주류성마저 함락당하고 3년에 걸친백제 부흥 운동도 실패로 끝나며 유민들은 일봉으로 망명길을 떠나고 만 것이다.

 

 

백산성에서 조망한 동진강과 김제 평야

 

 

피향정(披香亭)- 보물 제289호 -

 

통일신라 헌안왕(재위 857∼861) 때 최치원이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고증된 바 없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이 다시 짓고 현종 때 현감 박숭고가 건물을 넓혔으며,

지금 크기로는 숙종 42년(1716) 현감 유근(柳近)이 넓혀 세웠다고 한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부분적으로 고쳤는데 단청은 1974년에 다시 칠한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은 새 부리가 빠져나온 것처럼 꾸민 형태간결한 구조다.

건물 4면이 모두 뚫려 있어 사방을 바라볼 수 있고 난간은 짧은 기둥을 조각하여 주변을 촘촘히 둘렀다.

건물 안쪽 천장은 지붕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지만 천장 일부를 가리기 위해

건물 좌우 사이를 우물천장으로 꾸몄으며, 시가(詩歌)를 기록한 현판이 여러개 걸려 있다.

 

 

피향정 담장 안쪽을 보면 여러개의 비가 서 있는데

그 중 맨 왼편에 동학농민운동의 원초를 제공한 조병갑의 아버지

 태인 군수 조규순의 '영세불망비'가 서 있다.

 

조병갑이 자신의 아버지의 영세불망비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고부 농민들로부터 1천 량을 수탈하여 세웠다는 문제의 비.

 

역사를 고증하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차고 넘치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피향정에서 조망한 연지

 

 

피향정 연지원래는 더 넓은 면적의 연지였는데 지금의 규모로 축소되었다고.

 

 

여름이면 이 곳에서 연꽃 축제가 열린다.

 

 

태인에서 만난 추억속의 시골 극장 건물.

 

 

 

입장료가 50원 이었다면 그 때가 아마 70년대 초반 쯤...?

 

 

 

성황매(成隍梅)

 

 

태인면 성황산 자락 박주일씨 댁의 홑백매로 수령은 약 120여년 정도로 보인다.성황산이 매화를 따뜻하게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어서 개화 시기가 이른지라벌써 거의 모든 꽃이 져 버린 상태인데 왕성한 수세가 볼만 하다.

 

 

 수세가 왕성한 만큼 청아하고 화사한 맛이 일품인 매화다.

 

 

 

 

 

녹색 화반에 여섯장의 홑백매이다.

 

 

조금 떨어진 대밭가에 선 또 다른 백매

 

 

두 가지 형태의 매실이 열리는 청매로  수령은 약 80여년.

 

 

정읍 소재 "차생원'

 

 

탐매다담(探梅茶談)

 

 

귀로... 삼월 보름달에 그려 보는 월매도(月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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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해야 할 내소사 전나무 숲길엔 부연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마치 콩나물 시루와 같은 상춘객의 행렬과 발길 때문에...

 

부지런히 '내소사 백매'에게로 달려 갔으나 이미 끝물.허지만, 기름기를 좍 뺀 고졸한 수형의 자태를 보는 것 만으로도 흡족.

 

대웅전 앞 '홍매'엔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드는지적당한 구도 따윈 애시당초 포기 해야 할 판.

 

도망치 듯 내소사를 빠져 나와 부리나케 달려간 개암사. 연분홍 매창의 화신은 온데 간데 없고 '개암매'는 갈색으로 색조 화장 중. 

 

이 역시 예사롭지 않은 나무의 비틀림 감상 정도로 만족 해야 할 판.눈 내리던 지난 날, 화사한 자태를 꼭 보러 오겠노라 다짐 했건만...

 

태인 성황산 자락의 '성황매'한 술 더 뗘 성황백매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겨우 햇 가지에 달린 백매 몇 송이를 감상하는 것으로 감지덕지. 아랫 둥치에 버섯이 붙어 자라고, 딱따구리가 뚫어 놓은 구멍까지 몇 개 보인다.

 

불콰한 얼굴로 나타난  쥔장께서 하시는 말씀.

 

" 저 자두나무는 배어버릴까 생각 중이오"

 

매화나무 옆에 새하얀 꽃을 피우고 선 자두나무를 가르키며 하는 말이다. 굵게 열리는 자두를 까치가 쪼아대는 통에 당췌 따 먹기가 어렵다는 말씀.

 

말씀의 품새로 봐서 매화나무도 여차하면...?나무관세음, 매화나무타부우~~~ㄹ.

 

  사정상,

짧은 개화 시기를 놓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신묘년의 탐매 여정.

 

 

남은 매향의 흔적이라도 더듬어 본답시고 허겁지겁 부지런을 떨어 보았지만

떠나버린 시간 앞에서는 그야말로 족탈불급(足脫不及)이요, 뒷북 탐매에 불과.

 

흐드러진 벚꽃 속에 매화를 찾아 나서는 웃지못할 촌극은 난생 첨.

그나마 지각 탐매객을 암향(暗香)으로 화답 해 주신 매군(梅君) 앞에선 그저 황송할 뿐.

 

경황없는 가운데서도 '도암매'를 친견한 것은 나름대로 큰 수확.

아름다운 '도암분홍만첩매'의 자태를 볼 수 있었음은 너무도 큰 행복이었으니까!

 

신묘년의 매향을 추억하며 내년을 기약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