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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춘마곡(春麻谷)이 궁금하여 / 철승산

          ▲ 철승산 (410.7m) - 충남 공주시 사곡면

 

                ▶ 춤다리 ~ 남가섭암 ~ 철승산(깃대봉?) ~ 물란이고개 ~ 활인봉 ~ 샘골 고개 ~

                    나발봉(416.9m) ~ 마곡사 ~ 마곡사 주차장 (약 4 시간 소요)

                ▶ 2009. 4. 9 (목)

 

- 본격적인 들머리 - 

고개 바로 너머에 '남가섭암'이 있다. 춤다리에서 이 곳까지 약 1 km 쯤 되는데

승용차는 몰라도 버스는 노폭이 좁아서 올라올 수 없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남가섭암'

 

 

 - 철승산 정상 -  (깃대봉 정상?) 

영진 5만 지도상에는 분명 철승산으로 표기되어 있건만, 어쩐 일인지 몰라도

인터넷에 떠 도는 개념도를 보면 모조리 깃대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 물란이 고개 -

이 고개 아래쪽에 '마곡온천'이 있는데 현재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있는 모양.

 

'활인봉' 이라는 글자 말고는 그 어디에도 '철승산'이라는 표식이 없건만

안내산악회의 개념도를 보면 이 곳을 철승산 정상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 나발봉'쪽에서 바라본 '활인봉'

 

 마곡사 내림길

 

- 태화산 마곡사(泰華山 麻谷寺) -

 

절의 이름에 관한 두가지 설. 하나는 자장율사가 절을 짓고 설법을 했는데

사람들이 '삼'(麻)처럼 모여들어 마곡이라 했다는 설과,

둘째는 신라 무선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 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차원에서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고.

 

 

 

 마곡사 대웅보전  - 보물 제801호 -

외관상으론 2층 형태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있다.

 

 대웅보전의 삼존불

 

 대웅보전 아래에 자리한 대광명전의 지붕 라인

 

 

 대광명전 내부.

부석사 무량수전 처럼 불상이 측면에 모셔져 있다.

 

 

 

 측면 외벽의 벽화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년(명종 2)에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160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료 인용-

 

 

백범 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일인 장교를 살해하고

숨어들었던 곳이 바로 이 곳 마곡사였다.

해방 후, 마곡사를 다시 찾은 선생께서 은거 기념으로  심어 놓았다는 향나무.

 

 

현재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대광보전(보물 제802호)·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국사당·대향각·흥성루·해탈문·천왕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밖에 중요문화재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보물 제270호),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동제은입사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자료인용 -

 

 

마곡사 5층석탑  - 보물 제799호 -

고려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이라고. 

 

 탑신에 새겨진 부조

 

 

 예로부터 십승지로 알려진 마곡사.

북쪽으로는 태화산, 동쪽으론 무성산, 서쪽으론 철승산 등이 감싸는 지세다.

 

 

 세조(世祖:1417∼1468)가 잠시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일화가 전해지는데

생육신의 하나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이 이곳에 은거하였으니

그를 만나고자 행차한 길이었다.

그러나 김시습은 세조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곡사를 떠났으며

 세조는 ‘김시습이 나를 버리고 떠났으니 연을 타고 갈 수 없다’ 하여

소를타고 떠났다 한다.

지금도 이곳에는 세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세조의 친필인 영산전의 판액과 세조가 올때 타고 온 세조대왕연(世祖大王輦)이 그것이다.

- 자료 인용 -

 

 

 명부전 - 문화재자료 제64호 -

 

 

 

아직도 짙은 매향이...

 

 영산전 - 보물 제800호 -

 

내부에는 7기의 여래불과 천불이 모셔져 있다.

 

 

 매월당의 환영을 보는 듯...!

 

 매화와  벚꽃이 동시에 피어나고 있는 마곡사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를 굳이 떠 올리지 않더라도

지금 쯤 이면,

마곡사를 휘감아 도는 희지천 위에 벚꽃이 흐드러지고 있지 않을까...?

 

이런 판국에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철승산' , 거기에다 '마곡사'를 날머리 삼는다는

안내 산악회가 있어 주저없이 따라 나섰다.

 

공주시 사곡면(寺谷面). 

 춤다리를 건너자 마자 차에서 내려 포장도로를 따라 '가섭암'을 향 하는데

발바닥에 불이 난다.

산꾼에게 포장도로는 '쥐약' 그 자체.

 

능선을 따라 산길로 접어 드니 그제서야 발바닥의 뜨거움이 좀 가신다.

등로에 내 걸린 각종 표지기들을 보아하니 

제법 많은 이 들이 다녀 간 듯.

 

지난 가을의 낙엽이 아직도 수북한 길을 따라

최대한 여유롭게 걸으며 주위를 살펴보니,

그저 모든게 평이한 동네 뒷산 수준.

 

나발봉을 지나, 간간히 피어난 진달래와 연한 분홍빛 산벚꽃을

감상하며 하산길로 접어든다.

 

태극을 그리며 마곡사를 휘감아 도는 희지천(마곡천)으로 내려와

마곡사를 둘러보고 산문을 나서는데

4월 춘마곡의  왕벚꽃이 가히 환장 수준으로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