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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탐매

'09 탐매(探梅) 네 번째 여정

          ● '09 탐매(探梅) 네여정

 

              ▶ 운조매(雲鳥梅) / 화엄흑매(華嚴黑梅) / 매천매(梅泉梅) /  독수매(獨守亭梅)

                    소쇄매(瀟灑梅)  / 식영매(息影梅) / 죽림매(竹林梅) / 독수매(獨守梅)  

 

              ▶ 2009. 3 . 3 (화)

 

구례 운조루(雲鳥樓)

 

금가락지가 떨어진 형국의 금환락지(金環落地), 

금거북이가 진흙에 묻혀 있는 형국의 금구몰니(金龜沒泥)

 오보교취(五寶交聚)의 형국이라는 또 하나의 명당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명당 발복 개론"(?) 제1장 1절에 나온다는 곳.

 

기가막힌 명당이라고 소문이 짜 한 운조루에 어디 괜찮은 매화 한 그루 없을라구...?

 

운조매(雲鳥梅)

이거 너무 빈약한거 아냐...?자세히 살피니

본래  매화의 몸통은 잘려나가고 그 뿌리에서 다시 커 올라왔다.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전형이라는 '운조루' 쌀뒤주

배고픈 자는 누구라도 "타인능해"라 적혀있는 저 네모난 구멍에서 쌀을 가져가게 했단다.

 

누마루 아래쪽엔 왕년 이 댁의 부를 상징하는 커다란 수레 바퀴가 들어있고

앞 쪽의 화단에는 상당한 수령의 '회양목'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운조루에 피어난 산수유

 

화엄흑매(華嚴黑梅)

화엄사 각황전 곁을 지키고 선 '화엄사 홍매'

얼마나 붉었으면 '흑매'라고까지 불리울까? 

그렇다고 개량 겹홍매의 붉은색을 떠올린다면 그건 오해다.

겹이 아닌 홑 매화로서, 그 붉음의 기품이 너무나도 핍진한 탓에 그런 별칭까지 생겨난 것.

 

 

장륙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조선 숙종 년간) 이를 기념하기위해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륙화(丈六花)라고도 불리운다고.

(꽃을 보려면  한 참을 기다려야 할 듯)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 35호)

 

 

연기조사가 어머니께 차를 올리는 형상

 

탑의 중심부를 떠 받치고 있는 연기조사 모친 상

 

매천사(梅泉梅) 전남 문화재자료 제 37호

소재지 : 전남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매천 황현(1855 ~ 1910)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

 

매천매(梅泉梅)

 

1910년 한일 합방의 비운을 통탄하며 4수의 절명시를 남기고 음독 자결.

고종 1년(1864) 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매천야록'을 남겼다.

 

梅泉이 남긴 절명詩

 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새나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오 ,  무궁화 우리나라 이미 망했구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 역사 회고하니 , 글자나 아는 사람 되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석전(石田)의 서체

 

 曾無支厦半椽功  只是成仁不是忠   止竟僅能進尹穀   當時愧不陳東

 

                                              큰 집을 지탱함에 서까래 반쪽의 공도 없었으니

 

                                                  다만 인을 이루려 함이지 충은 아니라네

 

                                               겨우 윤곡(尹穀)을 쫓는 데에 그쳤을 뿐이니

 

                                              당시의 진동(陳東)의 행동 실천 못함 부끄러워라

 


                         나라에 충성하려는 생각보다는 인간된 도리, 선비된 도리를 이루려는 인(仁)을 실현하려는 뜻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죽음에 대한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는  황매천.

 

구례군 산동면 당골마을 설경

 

당골마을 산수유

 

당골마을

 

당골梅

 

  

산수유 마을에서

 

 

 

 

 

곡성군 고달면 '취운정

 

 

죽림매(竹林梅)

 

죽림재(竹林齋)전라남도 기념물 제99호 : 전남 담양 고서면 분향리 338

창녕조씨 문중의 글방으로 사용하기위히 지은 수련장(修鍊場)으로 죽림(竹林) 조수문이 창건.

초창기 건물은 임란으로 소실되었고 인조 원년(1623)에 6대손인 삼청당 조부에 의해서 다시 세워졌다.

 

죽림매

 

죽림매

 

죽림매

 

길마가지

 

조씨매(曺氏梅) 담양 고서면 분향리

 

독수정 원림(獨守亭園林) 전라남도 기념물 제61호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연천리 산 91

고려 공민왕 때의 인물 전신민(全新民)이 세운 정자. 고려가 망한 후 두문동(杜門洞) 72현과 함께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낙향,  북방을 향해 독수정을 건립하고 송도를 향해 절을 올렸다고

  

독수정매(獨守亭梅)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드시 매화가...

 

 독수매

 

 

독수정원림 바로 위 전씨 집성촌의 독수古梅

 

독수고매

 

소쇄원

 

 

제월당

 

송우암의 서체

 

 

오곡문 담장가의 매화

 

계당매(溪堂梅) 전남 양 남면 지실마을

 

송강 정철의 종손이 살고있는 '계당' 과 300년이 훨씬 넘었다는 영산홍

 

식영정

 

 


 

탐매 여정에 소담스런 눈이 내렸다.  

문자 그대로 설중탐매도(雪中探梅圖)의 주인공이되어 달려간 곳은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운조루"

"길지중의 길지라 일컫는 운조루에  쓸만한 매화 한 그루 쯤은 있을테지..."

과거 여러차례 운조루를 방문했었는데도 매화에대한 기억이 도통 없다는 사실이 다소 켕기기는 하지만

설마, 설마를 앞세우고 도로 주위 산 들의 설경을 감상해 가며 운조루에 당도한다.

있기는 있었다, 헌데 지나간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붙잡고 간신히 명맥을 잇고있는 '운조梅'

"잘 살아다오..." 기도를 올려주고 대문을 빠져나와 화엄사로 이동.

 

화엄사 '흑매'를 보려면 아직 멀었다. 허지만 청담선생의 불같은 탐욕(?) 덕분에 달려온 터.

오죽하면 '흑매'로 불리울까...?

각황전 기둥에 기대어 서서, 아직은 미동의 기미도 없는 흑매에게 하염없는 시선을 보낸다.

각황전 안에 책상 하나를 놓고 앉아있던 보살님과  이런저런 흑매에 관한 애길  나누고나서

 효심 가득한 연기조사의 사연이 서린 '사사자석탑'에 올랐다가 계단을 내려와 산문을 빠져나온다.

 

산수유마을을 찾아가서 한 바퀴 돈 다음, 산동에서 곡성의 고달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타면서

3월 설경을 원없이 눈에 담고, 고속도로에 들어서 계산풍류의 산실로 이동, 담양 남면과

고서 일원의  멋진 수세를 자랑하는 고매들을  하나씩 차례로 섭렵을 해 나간다.

 

독수정원림의 준수한 고매를 비롯, 호남 5매로 널리 알려진 계당매, 소쇄원과 식영정을 거쳐

 죽림재의 고매에 이르기까지, 숨돌릴 틈도 없이  이어져간 오늘의 탐매여정.

비가 온다는 얘길 듣고, 차라리 눈이나 내려주었으면 했는데 진짜 눈이 내렸다.

 

다로(茶爐)를 든 동자(童子를 앞 세우고,

 나귀 등에 올라야 하는게  진정한 '설중탐매'의 모범답안 이런만

으르릉대는 자동차에 실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두 사람의 중 늙은이가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설중매향을 따라갔던 오늘의 탐매.

 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다운 최고의 '매탐(梅探)블루스' 한 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