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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탐매

'09 탐매(探梅) 두 번째 여정 - 둘째날 -

          ● '09 탐매(探梅) 두 번여정-째날 -

 

               ▶ 도산梅 / 안동(陶山書院) ~ 길상梅 / 청도(湖骨嶺土山房)

               ▶ 2009. 2. 26 (목)

 

 

 

동해

 

 

 

파도가 밀려드는 울산의 정자 바닷가

 

 

 

 동해의 아침 바다를 배경으로 선 두 남자

 

 

 

바싹 말라버린 도산서원 앞 안동호 전경

 

 

 

시사단(詩社壇) 지방 유형문화재 33호

 

안동댐이 들어서기 전 까지만해도 울창한 솔숲과 함께 시원스런 백사장이 펼쳐지던 곳.

지난 1976년 유서깊은 시사단이 수몰되려하자 높다란 축대를 쌓아올려 그 위로

 옮겨놓은 것이다. 정조는 퇴계의 학덕과 그의 유업을 기리기위해 '도산별과'를 신설,

 별과(別科)를 치르게 했는데, 얼마나 응시자가 많았으면 서원이 비좁아 과장(科場)을

강변으로 옮겨 시제(詩題)를 소나무에 걸었다고. 답안지 제출자가 무려 3,632명이나

되었다니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급제에 목숨을 거는 건 마찬가지였던 모양.

 

 

 

서원 바깥마당의 왕버들이 추어대는, 이른바 도산무(陶山舞) ? !

 

 

 

서원 담장 바깥쪽의  도산梅

 

 

 

퇴계의 연인 두향이 선물했다는 이른바 오리지널 '퇴계梅'는

'광명실' 앞에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1986년 죽어버렸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자면 '퇴계매'의 오리지널리티는

이미 소멸되어버린 셈.

 

 

 

서원내 약 15 그루의 매화가 식재되어있다고.

 

 

 

지금의 도산서원 매화는 지난 1970년 서원 보수공사 때 심어진 것들이라고.

 

 

 

지금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의 나이는 약 60년 정도.

 

 

 

전교당(보물 210호)

 

 

 

전교당에 내 걸린 석봉 한호의 서체

 

 

 

도산서원 맨 뒤쪽에 위치한 상덕사 부 정문 (보물 제 211호)

 

 

 

전교당 내부에서

 

 

 

동 서재

 

 

 

어린이들에게 서원의 내력을 열심히 들려주시는 선생님.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자니 흐뭇한 생각이 절로 절로...

 

 

 

서원의 기숙사 격인 '농운정사'

 

'시습재'와 '관란헌'으로 이어지는 공(工)자 형태의 이 건물은

퇴계가 직접 설계하고

감수까지 맡았다는 내용이 기록에 남아있다.

 

 

 

서원을 빠져나오면서  퇴계의 시 한 수를 떠올려 본다.

 

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

 

 

 

경북 청도 소재 길상원(호골영토산방)의 길상梅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난 길상원의 '겹백매'

 

 

 

길상원의 박복규 선생님과 세심원의 청담

 

 

 

한옥과 전통 건축에대한 강의 참석

 

 

 

중요무형문화재 제 74호 대목장 최기영 선생의 열강

 

 

 

강의에 참석한 인사들과의 교분

 

 

 

길상원에서의 다담

 

 

 

찻잔에 띄운 길상매

 

 

 

이튿날 새벽 길상원 하경

 

 


 

 

 산청에서의 탐매여정을 마치고 달려간 곳은 동해안의 울산.

울산의 류재원 선생님과 박현수 선생님 두 분의 지인과 합류하여 가까운 포항으로 이동,

동해 푸른물에서 건져낸 싱싱한 회를 앞에 놓고 댓바람에 쐬주 몇 병을 비워낸 후,

다시 울산으로 돌아와 소천 선생님 일행과 합류하여 정담을 나눈다.

 정자 바닷가 숙소에 들어 또 다시 아르꼬르 수 병을 쓰러뜨린 연 후에야

 비로소 파도소리를 초대하여 자장가로 삼게되는데...

 

이튿날 새벽,

행여나 하고 동해를 지켜보지만 해를 먹기엔 애시당초 글렀다.

미적거리다가 해수사우나에 들러 몸뚱이를 뎁히고 나와 가자미찌개로 아침을 해결하고.

울산을 출발, 경주를 거쳐 안동의 도산梅를 찾아  달려간다.

 

구불대는 안동호반길을 따라 들어선 '도산서원'

위도상 다소 위쪽이어서 인지 아직은 단 한송이도 터진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개화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덤덤한 심정으로 매대(梅垈)를 하나씩 섭렵해 나간다.

 

이곳 저곳 어딜가나 이런 저런 보통의 매화는 차고도 넘친다.

허나.모름지기 탐매객이 찾아헤메는 매화의 내력은 아래와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의미부여에다  스토리텔링이 가능할 수 있는 매화여야 하고.

 고유명사가 붙어있어야 하고, 수명이 오래된 매화여야 하며.

 달이 걸리는 매화여야 하고, 고매함이 가득한 매화여야 하며.

시인묵객을 청 하는 매화여야 하고, 눈길이 매화에 머무는 순간,

한 줄기 매향만으로도, 매탐객을 혼미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수준의 매화여야 한다.

  

퇴계매(陶山梅)라.....

두향의 퇴계사랑에 대한 지극정성의 시효는 이미 지난 1986년에 소멸되어버렸다.

매화를 좋아하는 퇴계를 꼬시려(?) 두향이 선물했다는 매화는 죽어버렸기 땀시로...

 

귀신들의 로맨스까지야 우리가 알 바 없지만, 이런 추론은 어떨까?

이젠 두향이 퇴계의 정실이되어  치마폭에 퇴계를 확실히 가둬 놓았다는 징표로다가

매화를 고사시켜버렸는지도...

  

밤 퇴계와 낮 퇴계가 달랐다는 우스갯 소리를 어디선가 들은것도 같은데

혹 모르겠다. 지하의 퇴계선생께서 또 다른 로맨스를 엮어가고 계실지도...

 

18세 두향의 순정을 차지해버린 48세 퇴계의 작업 비법(?)은 과연 무었이었을까?

시,서,화는 물론 가야금에다 매화의 고매함까지를 섭렵했으리만치 다재다능했다는 '두향'

아홉달 동안의 불같은 로맨스가, 이승에서 퇴계와 나눈 사랑의 전부였다는데...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우니

 

어느덧 술이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퇴계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두향이 적어내렸다는 이 詩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이불속 송사는 막을 내렸을 것이 분명.

후로 퇴계가 세상을 뜨게될 때까지 두 사람은 단 한차례도 얼굴을 마주하지 못 했다고.

 

 

 두향이 보내준 난을 받아든 퇴계,

당신이 즐겨 마시는 우물물을 길어 두향에게 보냈다던가?.

두향은 이 물을 정한수로 삼았는데,

어느날 핏빛으로 변한 물색을 보고 지아비의 부음을 확신.

단양땅에서 도산서원까지 나흘을 걸려 당도, 먼 발치에서 삼배를 올리고 단양으로 귀환,

 남한강 푸른물에 몸을 던져 이승을 하직하게 되었다는데....

 

세상천지 이런 로맨스는 결코 흔한게 아니다.

시,서,화에다 음과 악 정도는 섭렵해야하고, 매향의 세계에 한 쪽 발이라도 걸쳐본

전력의 소유자라야만 , 인구에 회자되는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두향과 퇴계가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태극도설'이니 '사단칠정'이니 퇴계가 이룩해 놓았다는 골 아픈 내용보다는

인간미 물씬 풍기는 로멘스가 훨 재미있고 피와 살이되는 영양덩어리라는 생각에서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애기들을 짜집기 해 본 것이다.

 

해동국의 대 석학으로 추앙되는 퇴계선생이 남겼다는 마지막 말씀.

 

" 저 매화나무에 물 좀 주거라 "

 

매화,

매화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길래....

 

도산梅를 뒤로하고 달려 내려간 곳은 청도 소재 박복규 선생님의 서옥 '길상원' 

컬럼니스트 조용헌 선생이 이 곳을 방문하여

'호골영토산방'이라는 또 다른 당호를 짓고 그 내력을 신문 컬럼에 기고한 후, 

점차 영남지방 사랑방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중.

호남의 뼈(편백나무)와 영남의 흙으로 지어진 산방이라는 뜻인데,

아담하기 그지없고 나를 내려놓는 처소로서는

사족이 필요없을 정도로 기막힌 장소에 지어진 집이다.

 

 청도군청이 마련한 "전통건축의 흐름과 맛과 멋"이라는 긴 주제의 특강에도 참석.

중요무형문화재 제 74호 대목장 최기영 선생의

강의도 듵게되었다. 

 

백제재현단지의 왕궁 '중궁전'을 비롯, 

역시 백제재현단지의 '능사 5층 목탑' 등의 기념비적의 건물을 지어내고,

경주의 반월성 뒤쪽 냇가에 놓여졌던 '월정교' 까지도 복원 중이시라는 말씀끝에

조만간 '황룡사 9층 목탑'의 복원도 계획중이시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듣게 되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이 시대의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해도 결코 불가능한게

'황룡사 9층목탑'이라고 들어왔기에, 보충질문을 통해

'진짜 가능하냐'

거듭 묻는데도 자신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무형문화재' 칭호를 받은 대목장인데 절대 허투른 얘길 할 순 없을터.

너무나도 흥분되는 말씀을 듣고 감동,

기쁨에겨운 나머지 나홀로 외로운 박수를 쳐대고 말았다.

 

 최기영 대목장께서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해 내신다면...

지금 이 시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려온다.

 

오늘의 특강에 참석했던 인사들께서 속속 '호골영토산방.에 모여들어

'길상매'를 띄운 차를 마시며 밤 늦도록'매화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탐매여정에서 '황룡사 9층 목탑' 재현이 가능하다는

뜻하지 않은 귀한 말씀을 듣게 되어

흥분으로 내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09 탐매여정은 이런 저런 알찬 수확들로 넘쳐나는

기쁨 충만한 여정이었노라고 동네 방네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