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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탐매

'09 탐매(探梅) 두 번째 여정 - 첫째날 -

 

          ● '09 탐매(探梅) 두 번여정- 첫째날 -

 

               ▶ 노산매(蘆山梅)  ~ 원정매(元正梅) ~ 정당매(政堂梅) ~ 남명매(南冥梅)

               ▶ 경남 산청군 일대

               ▶ 2009. 2. 25 (수)


 

도천서원(道川書院)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237호)

우리나라에 최초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을 배향한 서원.

고려 말 목화씨를 붓대롱 속에 숨겨 들어와 최초로 재배한 시배지가 이 곳 산청 땅.

문익점이 목화를 들여오기 이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민초들은 거의가 삼베 홑겹이나

갈포를 걸치고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문익점의 공로야 말로 엄청난 것 이었을 터.

 

노산매(蘆山梅)

후손들이 문익점을 기리기 위해 심었다는 수령 약 150년 매화인데 너무 엉성해 보인다.

내용을 알아본 즉, 과거, 사진상에 보이는 오른쪽으로 당당한 수세의 가지가 있었는데

정체모를 어떤자가 관리인이 자리를 비운사이 그만 배어내 버렸다고.

그리하여 지금의 빈약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는데,

참으로 안타까울 뿐....

 

 

부풀어 오르는 노산매

활짝 피어난 모습도 물론 좋겠지만 터지기 직전의 이 긴장감.

부풀대로 부푼 꽃망울,

모름지기 탐매 최고의 경계는 바로 이 순간이 분명.

 

남사마을 돌담길

유달리 높다란 담장, 엄청스런 고가, 대한민국 고매 최대의 경연장.

 

 이사재 (경남문화재자료 제328호)

조선 전기 임꺽정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우고 대사헌과 호조참판 등을 지낸

 송월당(松月堂) 박호원(1527 ~ ?)의 재실로  남사천 건너 언덕위에 위치.

 

보존해야할 아름다운 곳으로 선정된 남사마을의 돌담길 

 

아름드리 향나무와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고가

 

 회화나무 두 그루가 춤을추는  이씨 고가로 들어서는 담장길

 

670여년의 화려한 용틀임에 종지부를 찍고 생을 마감한 '원정매'

 

남사마을 하씨고가의 원정매(元正梅)

 

고려 말 원정공 하즙선생이 심은 후로

물경 670여년 국내 최장수 매화의 기록을 남기고간 원정매.

바로 곁에는 원정매의 2세목 쯤 되어 보이는 홍매가 자라나고 있다.

 

 

- 원정공 매화시 -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670여년 동안 하씨고가의 역사를 지켜봤을 원정매

 

 비록 생은 마감했지만

지금의 이 모습만이라도 길이 보존되었으면...

 

원정매 뿌리 위에서 자라나고 있는 홍매

부디 천년의 세월을 이어가 '원정매'의 얘길 증언해 주었으면 좋겠다.

 

남사마을의 사양정사(泗陽精舍) 매화

 

 집을 지키는 노파로 부터 들은 얘기.

여러 그루의 고매가 있었지만딱 한그루의 고매를 제외하곤

모두 차례로  고사하고 말았다고

 

 사양정사에 피어나는 백매

 

 사양정사 난간 곁에 선 고매의 품격

 

 사양정사를 지키는 친절한 할머니가 그리워

다음으로 예정된  3월의 탐매 여정엔 반드시 이 집에 묵어갈 작정.

 

 단속사지(斷俗寺地) 쌍탑(보물 제72, 73호)

 

불상 숫자만 물경 오백개,

절을 한 바퀴 돌고나면 신고있던 짚신이 다 헤질 정도로 커다란 절이었다는 단속사.

모조리 불타버렸다는 폐사지에엔 쌍탑만이 입을 굳게 다물고 서 있다.

 왕년 대웅전 앞마당이었음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민가 뒤쪽으로 돌아가면

저 유명한 단속사 '정당매'를 만날 수 있다.

 

이 쌍탑 앞쪽엔 준수한 홍매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그 진가를 모르는 듯 홍매에 대한 대접이 형편없었다.

못자리 흙으로 쓸 요량인듯한 황토 한 무더기를 홍매 아래 잔뜩 쏟아 놓았다.

 

 단속사지 쌍탑 앞, 은은한 색감의 홍매

 

정당매(政堂梅)

고려말의 강회백과 회중 형제가 이곳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고 전해온다.

강회백의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겸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하여

후손들과 승려들이 '정당매'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수령이 630 여년에 이른다는 '정당매'.

왼편에 보이는 비각 뒤쪽으론 정당매의 후세목으로 보이는 여러그루의 매화가 자라고 있다.

 

 정당매의 꽃망울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

 

440여년 수령의 남명매

 

 '산천재' 서까래 아래쪽 흙벽에 그려진 벽화

 

 '경작도'인 듯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남명매

 

 

웅혼한 지리산 자락과 유장한 덕천강을 조망하는 곳에 들어선 '산천재'

 

모든것을 털어버린 배롱나무 한그루...

 담백한 선비로 기억되는 남명 조식선생의 올곧은 생애를 대변하는 듯

 

산천재 어귀에 피어나는 산수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야말로 느닷없이 졸지에 떠나버린 '09년 두 번째 탐매 여로.

물론 마음 속으론 언제고 마음내키면 떠나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날 동안의 탐매여행에 동반 편승하게 될 줄은 미처 짐작조차 못 했었다.

느려터진  애마에 편승, 산청으로 떠나는 차 안에서야 내놓는 청담선생의 말씀.

 

"한 며칠 탐매 여행을 다녀오십시다"

"~~~ ? ~~~ 예, 뭐라구요?  며칠씩이나요 ~~~~ ?

" 띠용 ~~~~ ^*^ *&^%$#@@@

 

청담선생 특유의 느긋한 심성 " 그까이꺼 뭐 대충 ~~~"이 빚어낸 참사(?).

이럴땐 선수를 뺏겼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칠 일이 아니라,

솔선수범 화끈하게 시간을 줘 버리는게

상책이라는 사실을 수차례 청담과의 동행에서 이미 진즉에 터득하고 있던 터.

 

"그래 달리는거야, 조선천지 최고의 꽃바람 속으로 ~~~~~"

 

도착한 곳은, 탐매꾼들이 손에 꼽아주는 古梅가 한 자리에 가장 많이 집합된

산청군 단성면.

첫 순서로 찾아간 곳은 문익점을 배향한 '도천서원'.

앵~~~?, 산청 삼매, 단성사매로 꼽아주기도 한다는 매화의 몰골(?)이 어찌 이럴수가...?

빈약하기 짝이없는 허약한 모습으로 서원 바깥 공간,

그것도 마당 귀퉁이에 초라한 모습.

한참을 서성이며 어이없어하고 있는판에 관리인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온다.

상황판단에 서툰 청담께서 하시는 말씀

 

"저~~~ 이게 노산매가 맞습니까?  햇가지 하나만 가져갑시다."

총알처럼  나오는 대답,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기실 우리의 청담선생 금번 탐매여행 최대의 목표는

영남땅에 자리는 명매(名梅)의 가지를 가져다가 호남땅의 매화에 접을 붙여

소위 영호남의 향기가 어우러지는 자손목(子孫木)을 키워내볼 속셈.

 '세심원'과 '휴림' 일대를 조선천지 최고의 명매림(名梅林)으로 조성,

그야말로 문기(文氣)가득한 매원(梅園)을 만들어 보겠다는

확고한 의지에 불타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스토리' 내지는 '의미부여'가 확실한 고매(古梅)만을 선택,

맹아(萌芽) 라고 부르는 일년생 햇가지 하나씩을 가져오는게 오늘의 목표. 

그러한 청담의 목표에 중대한 차질이오는 순간이다.

몇 번인가 더 사정을 했으나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거절의 말씀.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어떤 정신나간 자가 관리인이 외출한 사이에

지금 남아있는 것 보다 훨씬 커다랗던 모습의 옆쪽 가지 하나를 잘라버린 모양.

그런 판국이니 관리인께서 이 '노산매'의 꺾음을 허락할리가 ...!

 

미련없이 돌아서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자타가 인정하는 고매의 경연장

단성면 소재 '남사마을'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남사천 건너의 '이사재'를 가려고 다리를 건넌다.

헌데, 요즘 어딜가나 벌어지고 있는 천박함과 무지함의 대명사,

이른바 '하천정비'라는 명목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다 못해

아예 요절을 내 버리는 한심한 작태가

 이곳 남사천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시냇가 양 편으로 두터운 시멘트 방벽을 쳐올려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차단해 버리고

물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삶을 궤멸시켜버리는 하천정비.

이젠 제발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을까?.

 

본격적으로 시작된 남사마을 '고매순례'

헌데 어지간한 집 모두가 모조리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방문객의 출입을 거절하고 있는 형편. 담너머를 기웃거리거나

그나마 문이 열려있는 집 위주로 고매와 명매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 본다.

헌데 담이 어지간히 높아야 집안을 들여다볼게 아닌가?

 MBA 선수가 뛰어도 어림없을 정도의 담높이는, 양반네들이 말을타고

골목을 들어올 때, 이웃집 내부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나, 뭐라나....

 

어찌됐던 간에 대한민국 최고 수령에다 최고로 멋진 수세를 자랑한다는

 '원정매' 만큼은 꼭 보고가야만 '턈매여정'이었노라 말할 수 있을게 아닌가?

허지만, 굳게 잠긴 대문은 요지부동이라.

 이리 저리 방법을 찾으며 근처를 서성이는데...

어디선가 콩타작이라도 하다 들어 오시는걸까?

할머니 한 분께서 쑥대머리를 하고 옆 집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이 보인다.

최대한의 공손한 표정과 발걸음으로 다가가 집안에 고매가 있는지 여쭙는데 ,

다 죽어나가고 한 그루도 남아있는게 없단다.

떡본김에 제사지낸다고, 말이 나온김에 여쭈어본다.

 

"저~~~ 할머니, 저 옆집 '원정매' 좀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작년에 죽어버렸어요, 그리고 집 주인이 서울에 살고 있어 문을 잠궈놓았어요"

그런데 가만보니, 할머니 집과 '원정매'가 있는 하씨댁과의 사이엔 감나무 밭이 있고

 할머니 집과 하씨댁 모두, 밭이 있는 쪽의 담장은 아주 낮은게 아닌가.

 

"할머니, 살짝 담을 넘어 감나무 밭을 지나 저 집 '원정매'에 다녀오면 안될까요?"

"저 집에서 우리집을 거쳐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걸 싫어해서...."

 

"함머니~~~이~~~잉~~~"

 

최대한 맹맹한 콧소리로 할머니 가슴을 무장해제 시키고 얼른 담을 넘어 달려간다.

아 ! 애닯고도 슬프도다 조선 최고의 고매 '원정매'의 주검이여............

칠백여년  세월을 이무기로 살아오다가 때가 왔음을 감지했단 말인가..?

마치 원정매가 승천하면서 불타버린 듯,

거대한 흑룡의 형상으로 남은 '원정매'의 잔해앞에 청담과 나 두 사람 모두 

공손한 마음으로 두손을 모아 부디 '원정매'가 천상에 올랐길 염원하고 있었다.

조선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하씨 집안의 마당에서 칠백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향기를 뿜어냈을 '원정매'

이땅에 태어나 우리네 감성을 근 칠백년간이나 무한 고양시켜준 공로를 기려

고사목으로 변한 이 '원정매'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을 수여할 줄 아는

 배포있고 센스있는 멋진 대한민국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단속사지에 자리한 '정당매' (政堂梅).

폐사지 앞쪽에 전엔 보지 못했던 제법 기품있는 색상의 '홍매' 한 그루가 시선을 끈다.

바싹 다가가 매향을 탐한 후 마을 뒤쪽에 자리한 '정당매'를 찾았는데,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정당매' 주위를 둘러친 쇠사슬이 영 시선을 불편케 한다.

 

"꼭  저런 방법밖에 없었을까...? "

 

'정당매'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시야에 번쩍이는

스테인레스 말뚝과쇠사슬이 얼마나 거북스럽고 불편한 존재라는 사실을

정녕 몰라서일까...?

결코 '정당매'의 가치 보존도 아니요,

또한 대책이 되어서도 안되는 저급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과연 나 혼자만의 불편함이요, 쓸데없는 시비조의 생각에 불과한 것일까...?

반면 '정당매'의 후손목 쯤으로 여겨지는 몇 그루 매화를 근처에 키우고 있던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건 여간 너무나도 현명한 처사요, 칭찬받아 마땅할 터수다.

 

오늘의 탐매여정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하여 내달려간 곳은

덕산재의 '남명매'(南冥梅)

유장한 덕천강을 앞에 놓고 칼같은 선비 정신으로

조선의 동량을 키워냈을 남명 조식선생'

올곧은 선비의 삶과 학문에만 진력했던 남명의 사상과 삶의 궤적은,

진창속에서 허우적대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그나마 버티게 해 주는복음이자,

커다란 종소리의 울림과 여운이리라.

그가 환갑줄에 들어서야 터를 잡았다는 산천재 마당엔

선비정신을 무한 함양 시켜줄 '남명매'가 고고하게 자리하여 

선비의 고매함을 상징하고 있다.

웅혼한 지리산자락을 옆구리에 끼고

산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청류에 붓을 씻으며 학문에 진력했을 남명.

 잔뜩 부풀어오른 '남명매'에 코를 갖다대고 선생의 향기를 떠올려 본다.

 

산천재 마루끝에 걸터앉아 서편으로 기우는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오늘의 탐매 일정은 끝을 맺고, 

다음 행선지 동해의 울산으로 '09 탐매여정을 이어가려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산천재의  주련에 내 걸린 남명의 詩가 탐매객의 발길을 내내 붙잡는다.

 

春山底處无芳草

只愛天王近帝居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喫猶餘

 

봄 산 어디엔들 아름다운 꽃 없겠는가

내가 여기다 집을 지은 까닭은 다만 하늘이 가까웁기에

빈 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고 살 것인가

은하가 십리려니 먹고도 남음이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