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포럼·강좌·워크숍

축령산 이야기 마당 제1탄

    ● 축령산 이야기 마당  -제1탄-    

     

      ■ 주제 : 논어(論語)의 시각으로 본 시대상

 

     ◆ 강사 - 소천 박영호 선생

     ◆ 장소 - 축령산 휴림(休林)

     ◆ 일시 - 2009. 1. 17 (토)

  

 

 

 

             [이사람] 툇마루 은은하니 마음 절로 익네


             축령산 편백숲 ‘두메문화’ 일구는 변동해씨

한겨레 안관옥 기자


» 변동해(54·사진)


                통나무집 ‘휴림’ 6동을 문화전파 기지로

               “세파에 찌든 마음, 별·달 보며 털어내길”


               “나무와 바람을 벗하며 ‘느림의 문화’를 체험하는 무대를 꾸미려고요.”

               15일 전국 최대 규모의 편백숲이 울창한 전남 장성군 축령산 자락. 이 산의 ‘향토 학예사’로 불리는 변동해(54·사진)씨는

               엿새 동안 내린 눈이 수북하게 쌓인 하얀 산정을 향해 걸으며 두메에도 자꾸 문화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공무원이던 2000년 외딴 두메에 문화의 향기가 흘러넘쳐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편백 280만 그루가 우거진 해발 621m 축령산 기슭에 ‘만인의 별장’ 세심원을 열고 대안에 목마른 문화인과 예술인을 불러들여

               전시·공연·토론으로 낮밤을 지새웠다. 전국에서 찾아온 수만명이 무료 숙식과 문화 보시(?)를 받고 행복하게 돌아갔다.

               2005년에는 영화 <태백산맥>, <내 마음의 풍금> 촬영지였던 아랫동네 금곡마을에 숲속 미술관을 열어 지역 예술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자연에 깃들어 사니 자꾸 통이 커져요. 하지만 축령산에 뜨는 달과 별을 혼자만 보기는 너무 아까웠어요.

              이곳에서 사흘만 자연의 순환을 지켜보면 세파에 찌들어 생긴 마음속의 명현현상을 털어낼 수 있는데….”

              10년 남짓 입소문이 나면서 세심원 방문객이 넘쳐나자 그는 지난해 11월 고창의 소금과 장성의 곡물이 넘나들던 축령산

              들독재에 편백과 황토 통나무집 6동을 지었다. 숲에 깃들어 자신을 돌아보는 집이라는 뜻으로 ‘휴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990㎡ 터에 건평 230㎡인 휴림은 두메문화의 지속적인 전파 기지로 키우고자 최소한의 유지비만 받고 있다.

              “이제 소주병과 삼겹살을 갖고 숲을 찾아 드는 ‘놀자판’은 사라져야 해요. 그런 바람으로 광활한 편백 숲과 폭넓은 인적 자산을

              밑천삼아 산상의 문화 무대를 구상했지요. 편백향이 은은한 툇마루에 앉아 유장한 산마루도 굽어보고,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으니 10년 동안 숙성시킨 구상들을 펼쳐보려고요.”


             그는 곧바로 행복발전소와 협약을 맺고, 느림의 소중함을 체험하거나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반추하려는 이들한테 ‘휴림’을 쉼터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어 다달이 축령산 이야기 마당을 열어 두메문화를 산 아래로 전파하기로 했다. 첫 마당은 17일 저녁 7시

             경주의 한학자 박영호씨가 이끄는 ‘논어의 시각으로 본 시대상’으로 열린다. 축령산의 다른 기슭에 있는 ‘휴휴산방’의 주인인

             동양철학자 조용헌씨, 숲과문화연구회의 전영우 국민대 교수 등도 건강·생명·자연·예술 등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는 대화 마당이 정착되면 축령산의 생명숲과 인문적인 바람을 결합한 사회적 기업 설립을 추진할 예정이다. 30년 이상 이력이

             붙은 전통 야생차·술·장 등을 직접 재현해서 전수하는 ‘전라도 토종 대학’을 세우겠다는 청사진도 가다듬고 있다.


             장성/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이상은 2009년 1월 17일 자 한겨레 신문에 실렸던 내용이다.


 

 

 과연 어떤 이야기 마당이 펼쳐질 것인가...?

 

'휴림'의 주제이자 의미

 

경향 각지에서 모여든 40여 분의  인사

그리고 저녁 식사

 

소박한 밥상

 

 

먼저, 임종복 선생의 가야금 병창 연주 한 마당 

 

 

 

"축령산 이야기 마당 "

그 첫 번째  강사로 초빙된 소천 박영호 선생의 열강 시작 .

 

오늘의 이야기 마당에 초빙된 인사 여러분

 

이른바 '강호동양학'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소천 박영호 선생에 대한 소개는

조선일보에 실렸던 [조용헌 살롱] 강호유학기(江湖遊學記)로 대신 하련다.

 


 

                                 '천년고도'(千年古都)인 경주에는 구석구석마다 볼 만한 명물(名物)이 많다.

                            명물이 많으면 명인(名人)도 많은 법이다.

                            명인이란 누구인가?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이다.

                            이야기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산전수전 고생을 많이 해봐야 이야기가 축적된다.

                                 

                            소천(小泉·61) 선생은 경주의 명인이자 이야기꾼이다. 그와 만났다 하면 3박4일이다.

                            그의 이야기보따리는 강호유학(江湖遊學)에서 장만한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안이 전부 몰락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교문을 나서는데

                            5학년 담임선생의 마지막 말이 귀에 쟁쟁하였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놓지 않으면 공부가 된다".



                            영등포역 앞의 중국집에서 자장면 배달도 해보았고,

                            이발학원에 들어가 하루에 수백 명의 노숙자들 머리 감기는 일도 해 보았다.

                            19세 때에는 충남 대천 앞바다의 섬을 떠돌다가

                            대천 시장에서 고무줄 장사에 재미를 붙였다.

                            강원도와 경상도의 5일장을 돌아다녔다.

                            저녁에는 주막에서 장꾼들과 어울려 술 먹고 화투를 치며 온갖 세상이야기를 들었다.

 

                            이처럼 떠도는 와중에서도 유명한 선생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무조건 찾아가서

                            큰절을 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저는 무엇을 여쭤봐야 될지도 모르는 처지입니다. 세상사는 데 필요한 말씀을 해 주십시오."

 

                           20대 후반에는 서울의 변만리 선생에게 역술을 배웠다.

                           대구에서는 당시 '살아 있는 두보' 소리를 듣던 삼필재(三必齋) 선생을 만나

                           한시(漢詩)를 배웠다.

                           한문에 문리(文理)가 터졌다. 이때 접한 두보(杜甫)의 시 가운데,

                           3가지 이별을 읊은 '삼별시'(三別詩)가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난리에 이리저리 떠돌면서 겪은 두보의 고생과 슬픔이

                           소천 자신의 신세와 비슷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후로 주역의 대가였던 아산(亞山) 선생을 만났다.

                           아산은 야산(也山)의 제자인 김병호(金炳浩)를 말한다.

                           건괘에 나오는 '운행우시(雲行雨施)하야 품물(品物)이 유형(流形)하나니라'

                           대목에서 주역의 묘미를 느꼈다.

                               

                           불국사의 월산(月山) 스님 문하에는 유발제자(有髮弟子)로서

                          14년을 출입하며 공(空)을 배웠다.

 

                                

                          소천 선생의 강호유학기를 듣다 보면 '고생이 곧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목포환경연합 고문 서한태 박사님

 

축령산 포럼의 좌장 송문재 선생님

 

 

 

 

송화 장은정 선생의 기원무

 

 

 

 

 

 

 

 

 

 

 

 

 

 

소프라노 감상

 

가야금 병창

 

휴림의 쥔장 청담과 무용가이신 송화 선생께서 펼치는

흥겨운  2人舞 한 마당

 

교직에 계신  선생님께서도 가야금 병창을 비롯

남도 소리 한 마당을 펼쳐 주십니다.

 

송하 선생의 또 다른 무용 한 마당

 

 

혼신을 다 한

 

절정의 끝...

 

 

 


 

 

축령산의 세심원과 휴림을 방문하는 이 들에게

밤 하늘의 별과 달을 감상하라고 서슴없이 채근하는 사내.

 

그리하여 마침내는...

 

축령산 깊고 푸른 밤 하늘에 펼쳐진 뭇 별 들을 뭉텅이로 따내어 바리 바리 안겨주고

잃어 버렸던 그 들의 감성 지수까지를 일백 퍼센트 완벽하게 되살려 내 준 다음

흐믓한 미소를  결코 숨기지 못 하는 사내.

 

축령산 자락의  낭만산인이자, 

40자 휴대폰용  투박한 시어로 끊임없는 감동을 선물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돈키호테.

세심원의 머슴에다, 휴림의 쥔장을 자처한 청담 변동해.

 

이미 진즉에 멸종 되어버린 작금의 인문학과 문화와 낭만까지를 복원 시켜 보겠노라

고군분투에다 동분서주까지 하여 나온 결과물이 바로 "축령산 이야기 마당 (제1탄)"이다.

 

이야기 마당의 첫 번빼 강사로 초청된 이는,

경주에 거주하시는 한학자요,철학자이자 사상가요,재야학파의 거두. 

이른바 강호동양학의 대가라 일컫는 소천 박영호 선생.

 

"논어의 시각으로 본 시대상" 이라는 주제를 들고 오늘의 이야기 마당에 서신다. 

자자한 그의 명성은 이미 진즉부터 들어왔던 터,

설레는 가슴으로 귀를 열어 본다.

 

동 서양의 인문학 전부는 물론,

 문화 예술 전반에 관한 해박함으로 좌중을 이 끌어가는선생의 공력은

 어느 한 군데 막힘이 없는 통달의 경지였는지라,

나 같은 범부 수준으로 선생의 말씀 모두를 소화 하려 든 다는 것은 

애시당초 부터 버거움 그 자체.

허지만 단 몇 말씀이라도 새겨야겠기에 눈을 부릅뜨고 선생의 입을 주시 해 본다.

 

이 시대 인문학의 부재에 대한 통탄으로 부터 출발.

괴롭다, 서럽다, 고독, 무능, 삶의 위축, 죽음의 공포에 이르는 여섯가지 원초적 문제에 대한

 이해를 설파하시면서 진정한 행복의 실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었는데

벌써부터 모두다 소천 선생의 정신세계로 흠뻑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

  

외롭다는 것은 천벌이다.

당신의 외로움은 곧 나의 외로움이다. 타인의 고독에 동참 해 주는 것이 곧 나의 고독을

해결하는 것 이다.

 

나 밖에 모르는 것은 객관이다. 주관을 변화시켜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

개념을 제대로 파악 해야만 혼돈을 막을 수 있는 것 이라는 말씀.

 

말씀을 의논 해 보자는 동양의 고전 논어(論語).

그 논어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에서 부터, 각종 한시와 현대시에 이르기까지를

막힘없는 해석으로 설파하시며 좌중을 사로잡는다.

 

 어릴적 부터 천착 해 왔던 밝음(明)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환갑 줄에 들어 서서야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 해 주시는 대목에선 머리가 절로 끄덕여 지고 있었다.

 

"동쪽 산 꼭대기에 물 지나간 것 보았는냐?" 라는 선문답에 이르러선

구름이 곧 물 이 아니냐 라는 말씀으로 아마도 직관을 강조 하시는 듯.

 

당신 사상의 근저는 불교라고 당당히 주장하시면서도, 타 종교인에 대한 배려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 이라 설파하시는 애교도 서슴없이 보여 주신다.

 

이 자리에 모인 여성 제위께 보약이 될 만한 말씀도 해 주고 계셨는데.

 

여성이란 모름지기 여왕 대접을 받아야만 하고, 받아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데

그러려면 청구서를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하고, 청구서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데엔

 청순가련형이 도움을 줄 거라는 요지의 말씀도 하고 계셨는데,

이 자리에 모인 여성 분 들의 반응은 토~~~~옹  알 수 없는 노릇.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절명시를 절절하게 읇조리고 나서의 후렴이 예술이었다.

 

" 형, 내가 형의 몫 까지 멋지게 살아줄께........ "

 

조선의 美는 열두폭 치마선에 있는 것인데 그것은 한 없이 슬픈 美다.

작은 점과 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열두폭의 치마에 한국인의 의상철학이 있다는 말씀과

몸매가 빼어나면 빼어난 대로, 반대의 경우 감출 수도 있는 효용성도 미의 요소라는 말씀.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의 방법론 까지도 친절하게 일러 주신다.

 

장편을 읽다 지루하면 단편을 펼치면 되고, 그것도 지루하면 시를 읽어야 하고

詩도 따분 해 지면 음악을 들어야 하는 것이고, 듣는 것도 시들해 지면

침묵 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하는 바 컸다고 해야겠다.

 

미움과 사랑에 대한 얘기 끝에 나온

어린 아이가 내는 '까꿍과 까르륵'은 천지를 여는 소리라는 말씀에도  고개가 끄덕.

 

강의 도중 ,자신의 동생 박문호 선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나서 하시는 말씀.

 

"내 동생은 지금 대전에서 160名을 모아 놓고 사기(?)를 치고 있고,

나는 이 곳 휴림에서 여러분 들을 앉혀놓고 사길 치고 있으니

말 하자면 형제가 동시에 사기를 치고 있는 셈이 아니냐... "

 

 선생이 던지는 메가톤급 해학에 일순 모두다 자지러지고 만다.

 

위에 설파하신 선생의 해학에서, 오늘 "축령산 이야기 마당 제1탄"의 주제였던

"논어(論語)의 시각으로 본 오늘의 시대상"에 대한

모든 함축의 의미를 읽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면  무리일까...?

 

공기 아껴 먹는 법 에서 부터, 사막을 갈 때 목말라 죽지 않는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선생께서 제시하는 사상의 지평은 종횡무진 바로 그 자체라 해야 할 터.

 

강의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소천 선생의 열강.

분명 장시간에 걸친 강의였건만, 전혀 시간에 대한 의식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다양한 계층이 모여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자기 소개 시간은 너무나도

유익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드디어 오늘의 강좌와 전체적인 질문과 토론이 마무리 지어진 후,

청담이 정성으로 빚어낸 비장의 '팔목주'로 갈증을 달래가며

각자 자유로운 내용을 들고나와 또 다른 이야기 마당은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길고 긴 이야기 마당의 멍석을 접기로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대화와 토론의 보따리를 정리하면서 본 시간은 이튿날 새벽 6시.

물경 12 시간의 자리가 끝난 셈이다

 

소천 선생의 훌륭한 강좌 내용을  전달 한답시고,

  알맹이는 쏙 빼버리고

 괴발개발 두서없는  얘기만을 늘어놓은 게 분명한지라

자칫 선생의 명성에 흠이나 내지 않았을까 여간 염려스러운 게 아니다.

부디 너그러움으로 감싸주셨으면 고맙겠다.

 

일일이 거명치 못한 오늘의 모든 참석자 여러분께 진심어린 감사와 고마움도 전 하련다.

 

아울러 오늘의 소중한' 이야기 마당'을 이끌어낸 청담의 열의와 노고에도

한 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싶다.

 

멋진 "두메문화"를 일구겠노라는  청담 변동해 선생의 수승한 의지와 열정에

 부디 수 많은 이 들로 부터 화답의 메세지가 이어져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