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산행·여행·풍경

설악 탐승 / 여섯째날 2 : 설악에 깃든 만해(萬海)의 발자취

                    ● 2008. 10. 18 (토)

                    ● 백담사 만해마을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소재)

 

십이선녀탕을 돌아 내려와 용대리에 문을 연

백담사 만해마을을 찾아 그의 흔적을 더듬어 보았다

 

'만해마을'의 운영 내역

 

* 문인창작지원 - 문인 및 예술인 창작집필 및 편의 제공

* 문화예술사업 - 만해축전 / 토요문학아카데미 / 통일문학교실 / 만해마을문예학당

 * 청소년 문화사업 * 청소년수련사업

* 학술 . 연구사업  * templestay  * 가족 호텔 등

 

 

문학박물관내부

 

                                                             한용운 [韓龍雲, 1879.8.29~1944.6.29]

 

 

 

오세암에서 읊었다는  그의 오도송

 

남아(男兒)란 어디메나 고향인 것을

그 몇 사람 객수(客愁)속에 길이 갇혔

한 마디 큰 소리 질러 삼천대천 세계 뒤흔드니

눈 속에 복사꽃 붉게 붉게 피네.


 

 

 

 

서상기

 

한용운이 유년시절 읽었던 중국 원나라의

희곡 형식의 잡극인 '서상기'

만해는 이 책의 제 1장인 <통곡>에 나오는

인생의 무상함을 떠올리고 입산, 출가를 하게 되었다고. 

 

조선불교유신론

 

한용운의 불교개혁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조선불교유신론'

1910년 5월 25일 불교서관 발행.

이 '조선불교유신론'은 근대불교를 대표하는 서적임과 동시에

불교의 개혁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필독서 였다.

 

 

 1914년 범어사(梵魚寺)에서 발행한 불교경전 모음집.

 

한용운이 통도사(通度寺)에서 대장경(大藏經)을 열람하며 집필했다.

이 책의 특징은 경(經)·율(律)·논(論)의 3장(三藏)에서 발췌한 경전을 주제별로 재구성한 점이다.

 

인용된 경전은 한역(漢譯) 대장경과 남전(南傳) 대장경을 합쳐 모두 444부에 이른다.

경전을 인용하면서 국한문 혼용으로 풀어놓았거나, 한문에 토를 다는 방식을 취했다.

 

범례에 따르면, "중생의 지덕(智德)을 계발하기 위하여 절세성인(絶世聖人) 석가세존의 소설(所說)과

각 보살의 소조논문(所造論文)을 초록유취(抄錄類聚)하여 편성했다"고 한다.

 

목차는 서품(序品), 교리강령품(敎理綱領品), 불타품(佛陀品), 신앙품(信仰品), 업연품(業緣品),

 개인의 학문과 지계(持戒) 등을 다룬 자치품(自治品),

가정생활에서 사회·국가 관계에 이르는 사항을 서술한 대치품(大治品), 포교품(布敎品),

해탈과 열반을 다룬 구경품(究境品) 등 총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발간 이후 불교성전(佛敎聖典) 등의 이름으로 비슷한 작업이 있었으나

이 책에 견줄 만한 업적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80년 현암사(玄岩社)에서 이원섭(李元燮)의 번역과 주해(註解)로 출간되기도 했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

 

 

사상을 정서화한 고도의 함축성을 통해 한국의 현대시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인 최대의 애송시 '님의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천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사람도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때에는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아니지만,

 

이별은 뜻 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람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님의침묵'에 대한

국어 선생님의 해석은

도저히 납득이 않되는 것이었다.

 

무슨 독립이 어떻고, 민족성과 자주, 자조 ...

 

내 느낌은

몽땅 불교와 선에 관한 것이라 여겨졌던 기억.

 

 

만해에 관한 이런 저런 것 들을 찾아 보다가

내 구미에 맞는 내용의 글이 있길래

여기 그 내용의 일부를 옮겨 본다.-

 

 

 

 

 

만해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의 비밀이 80여 년 만에 밝혀지다



1. 치열한 시대성, 차원 높은 사상성, 뜨겁고 섬세한 열정의 문학성이 삼위일체 승화되어

한국현대시사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는 만해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1926)의 비밀이

 '님의 침묵과 선(禪)의 세계'(김광원 저)에 의해 80여 년 만에 구체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2. 만해 한용운 선사(禪師)는 당나라 상찰(常察) 선사의 게송 「십현담(十玄談)」을 풀이한

매월당 김시습의 '십현담요해'를 백담사 오세암에서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 기쁨에 만해 역시 「십현담」을 풀이한 바 1925년 6월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탈고하였고,

같은 해 8월 백담사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게 된다.



3. '님의 침묵'과 '십현담주해', 만해의 두 저작(著作) 사이의 상관성은

이전부터 학자들에 의해 상당수 논의되어 왔으나, 각각 90조각으로 나눠지는 이 책들이

일대일의 순차적 대응관계로 저술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의 저자 김광원에 의해 처음 발견된 것이다.



4. 일례로 '십현담주해'의 첫 부분 ‘화사첨족(畵蛇添足)’이라는 표현은

'님의 침묵의 서언(序言) ‘군말’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치는 마지막 90번째 조각까지 이어진다.

'님의 침묵' 전편 해설서인 이 책 '님의 침묵과 선(禪)의 세계'에서는 그

 구체적인 상관성을 핵심으로 하여

'님의 침묵' 전편을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감상, 해석하고 있다.



5. '님의 침묵'의 이와 같은 창작 배경이 밝혀지면서 과거 다소 난해하게 여겨지던 부분들이

명쾌하게 해석되는 바, 한양대 국문과 이도흠 교수는 이러한 상관성의 의미를

“'님의 침묵'이 화엄(華嚴)의 깊이를 갖게 되고,

'십현담주해'가 시(詩)의 비단옷을 입게 되었습니다.”라는 말로 간단히 집약한 바 있다.

 '님의 침묵'과 '십현담주해'의 상승적 결합은 정

신적 위기에 처한 21세기의 현시대에 더욱 빛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6. 이 책에서 저자는 '님의 침묵' 88편 전체 시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번뇌가 곧 깨달음)’라는 역설적인 말로 함축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우리들 앞에 놓인 삶의 아픔이

곧 깨달음의 에너지로 승화되는 이치를 더욱 새기게 되고,

그리하여 모든 생령(生靈)들이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행복하게 되기를

소망한다.”라는 말로 이 책 발간의 소감을 피력하고 있다.


 

 

출처 - 김광원의 '님의 침묵과 선의 세계'중에서 -

 

 

 

만해가 최초로 참선 수행을 했던 금강산 건봉사

 

 1920 ~ 30 년대에도 이따금 이 곳을 들러 학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워주고 건봉사 사지를 편찬하기도 했다고

 

 

 

 

 

 

 

근세의 고승이면서도 독립운동가요, 무었보다도 보통의 우리네에겐

'님의침묵'의 시인으로 각인되어있는 만해 한용운

 

 열여덟 나이로 동학혁명에 참여했다가 참담한 패배를 맛보고

설악의 품으로 탈속하게 된다.

 

27살에 득도한 후

원산과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이르기까지

풍찬노숙의 고행을 하고 돌아와

저 유명한 '불교유신론'을 집필한 만해.

 

"혁파없는 유신은 있을 수없다 라는 혁신 사상을 설파하였으며

"산간에서 길거리로"를 외치며 불교 대중화론을 펴게된다.

 

그 일환의 한 가지로 만해는 불경의 국역에 힘을 쏟아

"불교대전" 등을 펴 내기도 한다.

 

33인의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 놓고

3.1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민족주의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신간회'에서도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했었다.

 

이광수와 최남선을 비롯한 당대 지식인 대부분이

의지를 굽히고 일제에 협력하는 가운데서도

만해는 결코 곡필 따위는 사양한 채,

오히려 당당히 "님의침묵'을 발표하게 된다.

 

애족정신에 투철햇던 그는,

붓다의 제자이자 시인이요, 혁명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훌룡한 이의 발자취가 설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는데

못 본체 지나친다는 것은 어느모로 봐도 도리가 아닐 것이다.

 

산행도 좋고,

단이와 풍이를 눈에 담는 유람과 탑승 모두다 좋다.

 

허나,

선각자의 흔적이 근처에 있다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봐야 하는 법. 

 

그들이 살아온 처절한 삶의 흔적위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느껴야하고,

 

깨달아야 하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