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고창군 아산면 일대
@ 영모정 - 구암마을 - 삼천굴 - 구암제 -선바위 -
안장바위 - 병풍바위(230.9m) - 인천강 - 김정회고가
두암초당 (반암리 영모마을)
하서 김인후의 문하생 호암 변성온과 그의 동생 인천 변성진의 업적을 기리는 정자
1815년 10월 호암의 5대손 변동빈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나 오랜 세월 유실되었다가
1954년 재 건립되었고 같은 시기 영모당 재실도 건립되었다고함
(고창군 자료인용)
선바위
말발굽 형상의 선운산 맨 바깥쪽 능선 ,그러니까 구암마을 뒷쪽
비학산(307.4m)에서 구황봉(299m)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있다
층층잔대
비학산 자락의 삼천굴
무속인이 점령한 '삼천굴' 내부에서...
구암제에서 바라본 안장바위
맹렬한 기세의 선바위를 망원으로 줌
보라색 산도라지
안장바위 실루엣
능선상의 선바위 오름길
도솔제와 구암제 구황봉과 비학산의 십자로
구암제를 출발 선바위 오른편으로 올라와 안장바위로 가면서 돌아본 모습
맨 뒤 오른쪽은 소요산, 왼편은 변산반도 의상봉.
가운데 삼각형 모양은 구황봉(구암봉으로 정정해야 옳을듯)
그 왼편의 끝은 인경봉이다.
도솔제 건너는 선운산의 가운데 능선상의 사자바위와 투구바위다.
맨 뒷쪽 오른편은 도솔산에서 개이빨산으로 이어지는 라인
안장바위
안장바위에서의 하경
들판 가운데 바위로 이루어진 작은 산.
풍수연구가들의 세계에서 그 유명한
선인취와(仙人醉臥)형의 혈자리로 널리 알려진 곳.
해골바위님 아뇽하십네까...?
안장바위와 구암제. 저 멀리는 형제바위...?
병풍바위에서 바라본 오른쪽의 낙조대와
배맨바위로 향하는 철계단 (맨 끝 라인)
구암마을로 뻗어내린 능선
비학산
가운데 흰 부분까지 임도로 이어져있고
사륜구동 차량은 오를 수 있다.
바위 사면, 멋스런 수세의 소나무
소위 호남 8대 명혈이라는 선인취와형 혈자리 감상
선바위, 안장바위, 형제바위, 별바위, 탕건바위, 병풍바위
사자바위, 병바위, 소반바위 등,
물경 아홉개의 상서로운 바위가 도열한 각종 혈자리의 집합처 인지라
풍수꾼들의 필수 답사처로 소문이 짜 한 곳이기도하다고
저 혈자리엔 인촌 김성수의 조모되는 영일정씨의 묘가 있다고하는데
자료를 구해 읽어 보니 호남의 거부 인촌 일가의 풍수사랑(?)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라서 주요 몇 부분을 여기 옮겨보았다.
* * *
호남 인맥을 논함에 울산 김씨 인촌가는 단연 으뜸이다.
동아일보, 고려대, 경성방직을 창립하고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이
우리 현대사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동생 수당은 삼양사를 설립해
실업가로 우뚝 섰다. 고 김상만 동아일보 회장이 인촌의 아들이고,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수당의 아들이다.
조선중기 유학자로 문묘(文廟)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1510∼1560)가
인촌의 13대조다.
호남의 거부로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촌가(仁村家)는 발복지
생가로부터 호남의 제일가는 길지 명당만을 찾아 묘를 썼기로 유명하다.
풍수학계서는 인촌 문중처럼 풍수지리를 굳게 신봉한 집안도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명당일묘(一明堂一墓)'라 하여 정확한 재혈(裁穴)이 아니고서는
자칫하면 혈처를 비껴 갑니다. 그래서 제대로 명당에 모시려면
단장(單葬)으로 모시는 법입니다. 더구나 쌍분으로 용사할 경우는
두 분 중 한 분은 혈장에 모실 수가 없다는 이치지요.
인촌가는 9대조 합장 이후 다음 대부터는 단장으로 모셨습니다."
전남 장성 북일면에가면 여흥민씨 할머니 묘가있다,
호남 8대 명당 중 하나로 마치
가마솥을 엎어 놓은 듯한 대표적인 복부혈로 울산김씨의 중시조가 된다
하서 김인후의 5대 조모가 되는 여흥 민씨는
조선 3대 임금 태종의 사촌 처제로 왕권강화 일환으로
가문이 화를 당할 때 이곳으로 와 숨어 살면서
울산 김씨의 중시조가 된다.
당판에 올라서니 거대한 가마솥을 엎어 놓은 모양이다.
이곳이 그 유명한 복부혈(覆釜穴)이다. 민씨 부인은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묻으라고 위치까지 정해 주면서
"말 탄 사람들이 묘 앞 넓은 뜰을 가득 채울 것"이라고 예언했다 전한다.
그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이 혈처가 있어 인촌가의 부귀가 우연이 아니라면 누가 풍수의
동기감응(同氣感應)설을 부인하겠는가.
▲전북 부안군 산내면 지서리 변산해수욕장 뒷산에 있는 비룡승천혈의
증조부(김명환) 묘
▲순창군 상치면 시산리 보평마을의 증조모
(전의 이씨·갈용음수혈) 묘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 뒤 도솔산 옛 백련암 자리의 조부
(김요협·복치혈) 묘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호암마을의 조모(영일 정씨·선인취와혈) 묘
모두가 말 그대로 천하길지 대명당이라는 데 풍수학계의 이론(異論)이
별로 없다. 순창군 복흥면 반월리 화개산의 9대조(김창하·순천 박씨)
묘만 합장으로 용사돼 있는데 이 또한 '삼천년향화지지'로
너무나 유명하다.
인촌 묘는 경기 남양주시에 있으며 첫 부인 고씨 묘
(전남 장성군 백양사 백암산 정상)는 '군신봉조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묘들은 수십리에서 멀게는 수백리까지 떨어져 있어
산 사람의 정서로는 외롭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명당을 찾아 멀고 가까움을 개의치 않고 '일명당일묘'를 고수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흩어진 묘를 일일이 살펴보느라 수일이 걸린 적도 있다고
묘 하나하나에 얽힌 일화와 혈처를 찾기 위해 쏟은 정성만을 얘기하려 해도
밤새는 줄 모를 것이란다.
예로부터 명당 혈처가 있다고 해서 아무나 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3대를 적선해야 '한 자리'를 얻고, 베풀었다 해도 재물이 있어야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했다,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구암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본 병바위
인천강(주진천)이 휘감는 곳에 우뚝선 모습인데
호암, 장군바위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운다
왼편의 병바위와 오른편의 소반바위까지
소반바위 아래엔 아산초등학교와 영모정, 영모마을이 자리한다
병바위라는 명칭은 도무지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었다
소반바위, 두부바위 등 이름이 여러개
영락없는 사람의 두상으로 보인다.
강 건너 정면에서 바라보니 전혀 다른 모습
꼭 한번 정수리에 오르고픈 욕망이 불끈 솟는다.
구암마을 실루엣
풍수적 구전을 풀어보면 반암마을에 결혼식이 있었던 날 선인봉에서
신선이 마을 타고 내려오게 된다. 신선은 옥녀의 거문고 소리에 취하고,
술맛에 취해 등잔을 밝히면서까지 술을 마시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지게 되었는데 쓰러지면서 술상을 발로 차버렸다.
그 자리가 바로 선인취와혈 이고 굴러간 술병이 거꾸로 선채 병바위가 되었다고
인천강에서 먹이를 노리는 노랑부리백로(?)
고창천과 무장천이 합류되는 지점부터 인천강이라 한다.
운곡천, 두월천, 사신천, 용산천, 선운천의 물이 합류되어 인천강을 만들고,
인천강과 곰소만이 인접한 곳을 장수강(장강)이라 하였다.
인천강은 섬진강, 금강, 만경강, 동진강과 함개 전라북도 5대 강의 하나이며,
발원지가 고창군의 유일한 물줄기인 요충지다.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칠성마을 수량동의 명매기골에서 발원하고
강의 길이는 31km 이른다.
이강은 고창의 농경지의 젖줄이 되고, 경수산과 소요산 사이를 거쳐
줄포만으로 흐른다.
다시 찾은 김정회 고가
고가 내부
고가 앞 백련지에서 거둔 연실
고가의 기와 너머로 걸리는 석양
너무나도 정겨운 고가를 나서며
*
*
*
뻔질나게 선운산을 올랐으면서도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미답 코스가 있었다.
다름아닌,
희여재에서 비학산을 거쳐 구황봉을 지나 노적봉과 형제봉, 선운사 입구
식당가로 떨어지게되는 라인을 여태껏 빼 먹은 것 말이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오르겠노라 달려갔는데
그만 동행자께서 초를 치고만다.
그 코스는 진즉에 섭렵을 해보았는데
식당가에서 형제봉으로 치고 오르는 코스가 시쳇말로 구질구질 하단다.
"되게 재미도 없고 볼 것도 없어요"
계획을 급 수정, 구암제를 들머리삼아 능선상의 선바위로 오르기로하고
먼저, 큰길에서 바라보면 깍아지른 절벽에 내걸린 모습의 정자 부터 찾아가기로 한다.
반암리 소재 "영모정"
일자로 뻗은 동네길을 계속해서 따라가니 "아산초등학교"다
운동장엔 엄청난 굵기의 벚나무가 도열한 모습.
응당, 내년 봄의 화려한 벚꽃 감상을 기약하고 학교 뒷쪽의 '거대한 바위로 눈길을 보내자니
무식하기 짝이없는 내 눈으로도 범상치 않은 바위라는 게 한 눈에 느껴질 정도의 위용이다.
'영모정' 뒤쪽의 깍아지른 절벽에 갑자기 수 많은 시 들이 꽉 찬 느낌으로 다가온다.
소반바위를 비롯 여러가지 명칭을 갖고있는 저 절벽을 오르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교정을 나온다.
구암마을을 향해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가는데 저 멀리 익숙한 모양의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망원으로 당겨보니 영락없는 사람의 옆 모습을 하고있다, 이름하여 "병바위".
고창을 소개하는 책자에서 간간히 본 일이 있었고 결정적으론 언젠가 (사) "인천강지킴이"의
정현도 회장과의 만남 자리에서 그이가 내민 명함에 저 바위 모습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 했었는데 반암마을 뒷쪽 인천강가에 서 있을 줄이야.....
하산하여 자세히 살펴보기로하고 구암마을 뒷편 선바위로 오르는 길을 찾는다는 것이
그만 비학산 자락으로 들어서게 되어 먼저 "삼천굴"을 찾아 오르게 되었다
동굴을 올려다보니 굴 앞에 쌓아놓은 돌탑이 보이고, 뭔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나오고 있었다.
올라보니 커다란 굴 안에다 집을 지어놓고 전기까지 끌어다 놓았으니 이만하면 딱 끝.
굴 안쪽, 좌복을 깔고앉아 뭔가를 열심히 외고있는 자의 모습이 보인다.
분명 등 뒤에 객이 와 있음을 알고있을텐데 도무지 돌아설 기미가 없어 대화를 포기하고 돌아선다.
다시 구암마을로 내려와 구암제서부터 산행을 시작 선바위를 향해 들머리를 모르는데
이건 숫제 풀숲을 헤엄치는 수준, 허나 얼마간 오르니 확실한 등로가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선바위를 왼쪽으로 두고 능선에 올라 비학산 쪽으로 길을 잡아가면서 능선상의 바위 감상에 나선다
산 아래서 보았던 "안장바위"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가능한 곳까지 바위를 오르다가
더 이상의 위험을 감수하기엔 무모한 짓이라 여겨져 그만 내려온다.
능선을따라 병풍바위까지 가면서 이런 저런 모습을 즐기고 비학산 직전에서 되돌아와
도솔제로 나뉘는 지점에서 구암마을로 원점회귀 , 득달같이 병바위로 달려간다.
과거, 심한 오염으로 몸살을 겪었던 인천강을 오염에서 되살려내어
은어를 비롯, 참게와 저 유명한 방류, 최근에는 장어도 올라오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양.
예전에는 바닷길이 여기까지 이어져 배가 오르내렸다고 .
물산이 풍부하고 바다와 육지가 래왕하는 곳 이었기에 많은 선사인들이 몰려 살았을테고
그에 따라 수 많은 고인돌 유적이 근처에 널리게 되었을 것 또한 분명.
귀로....,
일전에 "알게된 김정회고가"와 백련지를 다시 찾아가
고가를 지키시는 김경식 박사님으로부터 향기로운 차 대접과 함께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던 중
오늘 다녀온 반암마을 출신으로 당대 동양 최고의 경제 학자였던 동암 백남운에 관한 애길 듣게되었다.
수원농림학교를 졸업 관비로 일본에 유학, 동경상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연희전문대 교수를 거쳐
해방되던 해 조선학술 위원장과 경성대학 법문학부 경제학 교수를 지낸 인물로 조선독립동맹
경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진출했고, 후에 월북하여 북한의 교육상과
최고인민회의의장 등을 역임하다 1979년 사망한 인물.
비록 월북하여 북을 위해 일한 인물이지만 내 고장의 인물에 대해선 사상이나 체제 따위를 넘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는데 전적으로 동감.
가칭 '"땅끝에서 무주의 설천까지"라는 제목으로
상고사에서부터 오일팔 민주항쟁에 이르는
기나긴 질곡의 호남 역사를 아우르고 바로잡는 내용의 책을 집필키위해
자료를 정리하신다는 말씀을 듣고선 그저 두 손이 모아질 뿐으로
노 학자의 열정은 끝간데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교수님의 배웅을 받고 해가 지는 고가를 나서 멋스런 돌담길을 지나
백련지 옆에 세워둔 차에 다가서 주머니를 뒤지는데
아뿔사 !
키를 꼽아놓고 차문을 닫아버렸구나.
@
@
@
애라 모르겠다
기왕지사 이런 판국이니 백련향이나 실컷 들이 마시고 가는 수 밖에.....
'자연 > 산행·여행·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롱한 백로(白露) 그리고 가을 꽃 (0) | 2008.09.07 |
---|---|
수려한 암릉에서의 조망 만끽 / 현성산 (0) | 2008.09.07 |
운무 속을 비와 함께 / 월봉산 (0) | 2008.08.24 |
고창기행 <1> (0) | 2008.08.22 |
불태산 나옹암지 유감 해소 (0) | 2008.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