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꽃
(장성 사거리에서)
해바라기
참나리
(방장산 자락에서)
방장산 자락 "도덕협회 "라는 종교단체에 내걸린 범종과 종뉴
상당한 크기의 범종으로 정오 약간 못미쳐 울리고 있었는데
종소리의 맥놀이가 제법 오래가면서 그런대로 들을만 했다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죠?
대만에서 건너온 종교라는 애길 얼핏 들은것 같은데....
갈재너머 정읍의 입암면 영안리 소재 수령 약 90년 탱자나무
어디선가 ,가히 천연기념물 급의 탱자나무가 입암면에 있다는 애길 주워듣고
물어 물어 찾아 갔더니만 마을 회관 바로 앞집 마당가 담벼락에 서 있었다
곧게 자란 것만 빼곤 수세나 수령이나 그리 신통치 않아보였다.
- 수고는 어림잡아 약 5 m 쯤 -
위 탱자나무의 표피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소재 옥산서원 돌담길
@ 문화재자료 141호 / 옥산서원
전북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344
의촌 김남식과 시은 김이성·인일정 김성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이를 계승하고자 세운 서원이다.
김남식은 김집 선생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굴욕적인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와 계령산 밑에 살며 집 이름을 대명유계라 하였다.
김이성은 김남식의 아들로 송시열 선생의 문인이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전한다.
김성은은 김이성의 증손으로 황의찬 문하에서 수학하였고『동국문헌록』등의 저술이 있다.
정읍땅은 나라안의 서원 전시장이라 할 만큼 여기저기 서원도 많다
경주 안강땅의 희재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과 이름이 똑같다
정갈하고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는데
문제는, 전혀 안을 들어가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광산김씨들이 관리하는 모양인데 이래서는 안된다.
모름지기
서원이라면 학인들이 찾아와 머물면서
글 읽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야 하거늘
여러개의 대문 중 단 하나도 열리질 않는다.
말 하자면,
이러저러한 수식이 붙은 조상들의 이름 석자을
문패에 새기고 그 들의 후광을 등에 업은
적막강산의 박제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애기다.
개요등
마을앞 연화정에서 오수를 즐기는 아낙네 들
왜 연화정이라 했는지는
정자 바로 앞 모촌방죽의 둑길에 올라서보면 안다
모촌지의 훙련이 이렇게 예술일줄이야.... !
연꽃보살님의 망중한
.
.
.
모촌지를 돌아나와 태인의 피향정 연꽃을 볼 량으로 길을 잡는데 첨산으로부터
어디냐고 위치를 뭍는 전화가 걸려온다.
이어서 날아온 문자.
"대낮의 연꽃 사진은 별로라던데 이 쪽으로 오시는게 좋을듯...."
전번은 첨산것이 분명하지만 글의 내용은 산소님의 스타일이 분명하다.
군말없이 차를 돌려 다시 갈재를 넘어 백양사로 향한다.
쌍계루 앞 보를 넘는 물줄기
올 들어 처음 들이대보는 별 신통찮은 물몽선
운문암 길을 따라 올라간 금강계곡
캬 ~~~~~
세상에나 ~~~~~~
이토록 씨원할 줄이야 ~~~~~~
정말이지 올 여름들어 처음으로 시원하다는 느낌으로
황홀경에 빠져있을시, 딸내미로부터 날아온 문자를 보여주시는산소님.
"웬 거지 왕초 하나가 집에 들어왔어요"
".............. ??? "
일주일간 제주 일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승준군의 몰골에 대한 예진양의 스케치.
충분히 시원했고 그만 아들내미도 보고잡고 헝께 내려가자는 산소님의 제의.
아뿔사.....
내 어찌, 한 가정의 오붓함에 찬물을 끼얹으며 겐세이를 놓는 몰염치만 주장할 수 있단말인가?
입으론 내려가자는 말쌈에 동의하고 있었지만 내심으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금강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이 씨원한 청풍을 외면하고 그만 내려가야 하다니.
으~~~ㄱ.
수전증 관계로 단 하나도 쓸만한 폭포 사진은 건질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두고 첨산이 옆에서 염장을 지른다.
거의 2 초 정도는 손각대로도 아무 하자가 없다고 .....
두 분 옆에 자리한 쌍계루에 오르면
고려말의 충신 정포은이 지었다는 이런 시가 걸려있다.
시를 요구한 백암사 스님을 지금 뵈니
붓을 잡고 읊조려도 글이 안되어 부끄럽네
청수가 누각을 세워 이름이 중해지고
목옹이 기문을 지어 가치가 더 보태졌다네
노을빛이 아득하여 저문 산이 붉어지고
달빛이 배회하니 가을물이 맑아지는데
오랫동안 속세에서 부대껴 왔거니와
옷깃을 떨치고 언제나 그대와 올라보나
(위의 시 중 기문을 지었다는 목옹은, 목은 이색을 지칭한다)
금강계곡을 오르다 약사암 입구에 적혀있는 이런 요지의 문구를 보게된다.
입암산 쪽으로 산행을 하시려거던 가능한한 운문암 골짜기를 택하지 마시고
약사암과 백학봉을 거치는 코스를 선택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얼마나 완곡한 표현이요, 겸손함이 묻어나는 문구인가?
모름지기 글이란 저래야 하는 법이다.
상황봉 아래 운문암은 지금 한참 "하안거"중일 것이다.
치열한 신심으로 구도의 길을 가는 눈푸른 납자들이
잠을 내 팽개친체 치열하게 나를 찾고 있을 터.
우리 모두 저 들의 공부에 보탬은 못 줄 망정
훼방을 놓는 우를 범 해서는 곤란하다.
불경스런 표현으로 빗대자면
잡인들의 소란한 발소리는
칼날 위에 서서 공부하는 저 운수납자들에게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을 강요할 개연성이 무척 높다는 얘기다.
저 운문암이라는 곳은 이 땅의 불교가 만신창이에서
헤어나오게 만든 고승들의 산실이라고 알고있다.
현명한 산객들은 앞에서 얘기한 약사암 입구에 씌여있는
문구를 한번즘 귀담아듣는 아량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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