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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축제·전시·공연

36년 전을 회상케한 국소남 콘서트

2007-06-26 17:38

 

국소남, 그의 시작을 지켜봤는데 세월은 흘러 어언 환갑 줄에 들어섰다고...
아담한 체격이었다고 기억되는 국소남과의 첫 만남,

그가 36년 음악인생을 결산 한다고 해서 득달같이 달려가 보았습니다.

 

기타 그리고 포크...

 

 72년이라면? ....

대학은 내게있어 시간 낭비 일 뿐이다라고 시건방을 떨 때로군요.
산도 엄청 쫓아다녔고 음악도 엄청 쫓아다니던 시절이라 회상됩니다.

 

그 때를 회상케 해준 콘서트의 막이 오릅니다.

 

 

국소남, 한 땐 국대남이라 불러달라고 했던 시절이 있었음도 기억합니다.
오프닝에 엄청 신경 쓴 듯, 동요 윤석중의 반달로 목을 가다듬더군요


 

 You are so beautiful 로 일단 여성 들을 뇍인 다음

 

 

 You Don' to say you Iove me 로 분위기를 띄우더군요

 

 머리칼을 자르는 장면의 배경 영상이 뜨는 걸 바라보니

 

저 유명한 영화 삼손과 데릴라라......
구약에 나오는 머리카락 애기로 너무나 유명한 삼손과 데릴라 영화가 배경으로 뜨는 가운데...

 

국소남이 딜라일라를 열창합니다.

데릴라의 영어식 발음이 딜라일라 라는 사실 모두 다 잘 아시죠?

 

 영국 가수 탐존스가 불렀던 딜라일라,

조영남을 클래식에서 끌어내려 대중앞에 세운 곡이기도 한데

아무튼 그 시절 눈만 뜨면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고

엄청 파워플한 탐존스의 성량이 떠오릅니다

연주자 모두와 백 코러스를 맡은 아니마 앙상블의 파워있는 연주에서 모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방극만의 Oboe 연주가 콘서트의 품위를 더욱 돋 보이게 해 주는 가운데

 

후배 가수와 듀엣으로 향수도 들려주고

 

 아래의 두 곡을 선 보이는데 대중성은 물 건너 간 느낌이었습니다

 

 

 

 

 

데뷰 당시 듀엣으로 활약 했던 이장순이 영상에 나와 국소남의 파이팅을 주문하며 격려 하는 모습.

 

 

 

 Guest로 초대된 Soprano 류은미

 

기타 3중주의 하모니로

 

 

열창을 들려주며 관객을 열광시키고 맙니다

 

 

배경의 영상과 함께

 

Mother를 열창 하는 모습

 

앙상블의 파워도 점점 더 해만 가고....

 

닐 다이어먼드의 Song song blue 등을 들려준 다음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더 할수 없이 어울리는 곡
영광의 탈출

 

 

혼신을 다 한 열창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콘서트를 마무리 하는 모습.


 

 

쏟아지는 앵콜에 대한 화답은 이봉조의 "보고싶은 얼굴"

 

 

박수.............
전국적으론 무명일지 몰라도 적어도 전남 광주 지역에서 만큼은 괜찮은 카수로 인정하는 국소남.

육십의 나이에 노래 부름을 행복해 하는 작은 영웅의 콘서트 였노라 규정하고픈 밤이었습니다.

 

*

*

 

 

 

소위 대중음악 이랄 수 있는 가요, 팝 등에서 가장 내용적으로 괜찮은 음악이 발표되었던 시기는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초반이 아니었을까?
내 삶에 있어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와 맞 물려 있기에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결코 그런 것만도 아님은 다수의 의견과 판단에도 근거하고 있다고 해야 하겠다.

그 격동의 시기 젊은이들의 낭만을 도와주었고 분노를 삭이는데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던 게 있었으니

바로 심야 시간대에 방송되었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이라 하겠다.
그런 어느 날, 일주일 동안 음악에 관해 연달아 퀴즈를 내 보내는 코너가 있었는데 가만 들어보니  난이도가 상당이 높은 문제라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긴 어려울 거라는 판단과 함께 결정적으론 기타를 상품으로 준다는 얘기에 혹 해서

행여나 하고 열심히 엽서를 보냈더니 덜커덕 당첨이 됐고 방송국으로 나오라는 애기가 그 시절 최고의 인기인 이었던

광주 MBC, DJ, 소수옥의 꿈결 같은 목소리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하여 다음 날, 지어진지 얼마 안 되었던 궁동 MBC 사옥을 찾아가 소수옥씨를 만나 기타 수령을 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이장순 이라는 사람과 듀엣을 결성하여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국소남 이라는 사람도 처음 보게 되었던 사실이 기억난다.
.

.

.


“환기 형님, 국소남씨 콘서트가 있는데 와 주실래요?”

예수와 부처와 공자,그리고 산신령의 심성만을 간추려 버무려 놓은  반야도인 첨단산인의 전화를 받고  

득달같이 달려 도착한 곳은 문예회관 대극장.
포스터 속의 국소남의 행색을 보자니 언뜻 누군가의 옛날 행색을 벤치마킹 한 느낌이다,

장발에다 모자를 눌러쓰고 머플러를 목에 두른 모습,

거기에다 국방색 야전점퍼를 걸친 모습이 영락없는 70년대 카수 조영남을 패러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안녕 하세요”

산골소녀님의 인사다. 결론부터 애기 하자면 난 오늘 또 한번의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뭐냐? 바로 우리 산골소녀님의 화려한 빠숑과 그에 어울리는 미모에 넋이나가

문예회관를 찾은 모든 남정네들의 뭇 시선을 끌어 모은 모습을

미처 카메라에 담아 두지 못했다는 대 실수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굽 없는 뾰족 구두에다 꽃무늬로 감싼 늘씬한 자태를 꼭 담아왔어야 하고 여기 공개 했어야 하는데  

문제의 “미녀조우,정신놓음증”(?) 이라는 기나긴 병명의 불치병 땀시로 그만.......

어떻게 하다보니 객석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고 어둠 속에 동공이 적응을 마친 즈음 무대를 바라보니

이건 결코 애들 장난 수준이 아니었다.

Krossover Ensemble,  광주 필 챔버 오케스트라,  CNS 금관5중주,  아니마 여성 앙상블에 이르기까지.

무대 영상 자막을 보니 36th 국소남 2007 - It' s me  나 세상 밖으로.....
카수쟁이 36년이라...... 월남 파병에서 돌아와 노랠 시작한지가 36년 째 라는 얘기다.

서석초등학교 시절, 노래자랑에나가 수상을 했다는 동요 “반달”을 부르면서 콘서트가 시작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젊은 시절의 그는 지금처럼 살이 찐 모습이 아니었고 무척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오랜 미국 생활을 접고 고국에 돌아와 그것도 고향 광주에서 음악 생활의 후반기를 연다고 봐야겠는데

그의 끈기 하난 대단하다고 봐야 하겠다.

 

남들처럼 중앙 무대에서 크게 빛을 본 것도 아니고 겨우 지방 한 모퉁이에서

옛 추억을 더듬는 이들의 정서를 달래 주며  

그 와중에도 신곡을 발표하고 오늘처럼 개인 콘서트를, 그것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풀 밴드를 동원,

사회자 없이 모든 걸 혼자서 이끌어 가는 그의 의지에 경의를 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의 래퍼토리 모두가 내 귀엔 익숙하고 편안하다.
중간 중간 영상 메시지를 깔면서 콘서트를 진행하는 스타일도 시대의 조류를 반영한다고 봐야겠다.

특히 그의 신곡 발표를 집중해서 들어보았다.

 

예의 그 특유의 세미클래식 창법의 노래라고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대중과 영합하고 공감을 이끌어내기엔 미흡한 멜로디의 전개요 창법이라는 느낌이었다.

 

허나 육십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사람, 거기에다 사십여년 세월을 노래한 공력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를 폄하 하는 자들도 결코 그 점에 있어서 만큼은 유구무언 이리라.

광주를 대표하는 통기타 1세대라 불리는 그가 오늘날까지 음악을 이어와

대중을 불러 콘서트를 연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라도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 해 과거엔 꿈조차 꾸어보지 못한 사변이 오늘 날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기에 말이다.

 

그의 건투를 빌어마지 않는다,

그의 건투가 곧 그의 노래와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도 희망이요 회춘이자

노년의 갈색을 배재한 젊음의 초록을 잃지 않게 하는 훌륭한 보약이요 반면교사의 모범 사례이기 때문이리라.

 

 

 

 

 

 

한병인
서수옥, 국소남, 70-80의 hero 이장순
이름만 들어도 숨이 잔잔해 지는듯한 정겨운 이름들입니다.
작년 가을엔가 70-80에가 이장순 님의 노래를 생맥에 기울여 한잔 하는데
남자로서의 비애를 깊이 느끼고 나왔습니다.
뭇 여성들은 눈과 마음이 다 이장순님에게 가있고
기 팍 죽어 나온 일이 있는데
지금 좋은 노래를 드려 주시니 좋을 따름입니다.
2007-06-26
18:36:35

첨단산인
마리오 델 모나코, 파바로티, 니콜라이 게다, .......
칼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푸르트 뱅글러.......
베토벤, 비제, 사라사테.....
어쩌다 접한 클래식에 푸욱~ 빠져들어 클래식을 제외한 모든 쟝르의 음악들을
아주 하챦은 것으로 여겨버렸던 나의 70~80년대
그래서 청바지와 통기타의 시대를 알지 못했고 그런 흐름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국소남씨의 존재를 알게된곳은 지난 2005년이었죠 차츰 나이가 들어가는지 트로트의 리듬과
창법이 가슴에 다가오고 주변 패러다임의 조류를 느끼게 된순간 그때서야 대중문화의
깊이와 파급효과를 느끼게 되었으니 이거 둔해도 너무 둔한수준 아닌가요?
2007-06-27
08:12:14

리더컴 김종호
첨단산인 집사님의 실력은 제가 직접 보고 듣고..등 등 경험으로 알고 있는데 김환기님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의외군요..
첨단산인을 자주 만나다 보면 경지에도 이를것으로 사뢰되는군요
저에겐 생소한 가수지만 60년 후반에서 70년 전반에 활동한 가수군요
2007-06-27
17: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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