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의 수 백년 묵은 영산홍 , 아직은 깊은 잠에....
이런 저런 일로 꾸물대다 오전을 넘기고서야 집을 나섰다. 딱히 어딜 가야겠다고 정 하지도 않은 채 무작정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백양사의 홍매, 그 기품어린 자태가 궁금해진다. 과연 한 송이라도 볼 수 있을까?
백양사를 들어서려다 말고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생각난다. 백암산 뒷자락에 이어있는 “영구산 구암사” 그리고 복수초.............
다른 곳은 진즉에 피었다 이미 져버린 곳도 부지기 수 일 테지만 구암사가 위치한 백암산 뒷자락은 아직도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상태로구나.
오랜만에 들어선 경내는 대웅전 신축을 위한 불사가 한창이었고 여기저기 축대를 쌓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 외지고 응달진 구암사가 우리 근세사의 획을 긋는 엄청난 선종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복수초를 찾기에 앞서 먼저 한번 대충 훑어 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내가 어렸을 적 백양사 사하촌에 살 때, 떠도는 애길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백암산 자락 너머 어딘가에 옛날 어느 시절 무려 천명의 중이 우글대던 절이 있었다는 막연한 애기
속가의 성을 앞에 붙여 송만암 스님으로 불리웠던 “만암 대종사”도 여기 구암사에서 수학을 했었다는 애기 등 단편적으로 구암사에 얽힌 애기가 전해졌었다.
허나, 그 절 이름도 위치도 모른 채 내 기억 속에는 사라지고 없었는데 자라면서 이런저런 책자를 접 하다보니 이 구암사가 예삿절이 아니라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된 것이었다.
쇠퇴 일로를 걷던 조선 불교의 중흥이 이 영구산 자락 구암사로부터 태동되었다는 엄중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불행이도 한국전쟁의 와중에 깡그리 잿더미로 변해버렸단다.
그 와중에 귀중한 문화재도 모조리 소실되고 말았다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57년에 복원하였던 당우들도 2년 후에 또 한번의 화재로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고.....
딱 한 가지, 세조 5년 그러니까 1459년 발행된 초간본 “월인석보”만이 아직까지 전 해지고 있다는데 내 두 눈으로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영조 때의 인물인 설파 대사가 주석한 이래로 100여년에 걸쳐 화엄종맥이 계승된 사찰로 그를 선문중흥조라 일컫기도 한다.
선운사에 가면 추사가 말년에 쓴 저 유명한 “백파율사대용대기지비”를 볼 수 있다. 금석문을 연구하는 자들의 평을 빌리자면 추사체의 최고봉이라고들 한다는데...
대흥사의 초의와 이곳의 백파가 벌인 조선 최대의 선 논쟁은 너무나 유명하지 않은가? 그 와중에 자칭 타칭 조선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추사도 끼어들었다고 들었다.
여기서 내 염량으로는 저 어마어마한 사상논쟁의 변죽도 핥지 못하는 주제가 분명한지라 그 내용에서는 멀리 비켜나 한 가지 사실만 전 하련다.
다름 아닌 선운사의 백파 비문이 원래는 이곳 구암사에 전해 졌으나 출가 본사인 선운사로 보내져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고승들의 산실이었으니만치 여러 가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 많았다는데 안타깝게도 화재로 인하여 모조리 소실되고 말았다니 아깝고도 또 아까운지고......
수많은 고승대덕 아래 배출된 언뜻 우리가 알만한 인물들을 열거 해 보자면 문인 쪽으로는 조지훈, 신석정, 이광수, 서정주 등의 잘 알려진 자 들이 있고.
머리를 깍은 자들로는 청우, 운성, 청담, 남곡, 운허, 운기, 만암, 서경보 등 근세를 주름 잡았던 불교 중흥의 산실역할을 담당 했던 유서 깊은 곳이 바로 이곳 구암사인 것이다.
그 귀하다는 설중복수초 한 송이를 만나려다보니 부처님의 가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관계로 횡설수설, 부처님 동네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옛 애기들을 짜집기 해 보았다.
절 뒤쪽, 사면을 오르며 두 눈을 부릅뜨고 노란색을 찾는데 도통 보이질 않는다. 틀렸구나 하고 돌아서려는데 언뜻 더 위쪽으로 뭔가가 보여 올라가보니 설중 복수초다.
과연 구암사 부처님은 영험하시고 자비로우신지고........!
나무설중복수초타불 ^^*****!?
|
명경헌
저는 아직 복수초의 실물을 못 보았는데 이렇게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복수초의 대가? ---> 꽃뫼님, 김환기님...
구암사에 관한 기록은 육당 최남선의 '심춘순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장마에 그곳에서 유숙하던 내용이 나오는데... 글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가람의 좋은 사찰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두세번 가 보았는데... 산세나 사찰격이나 모두 그 시절의 영화를 점치기가 어렵더군요,
저는 전라도 산행을 상기 '심춘순례'에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일제 때 동아일보 연재기행물로 썼던 글인데, 심춘순례는 바로 전라남북도에 관한 상세한 자료입니다. 책으로는 한 50쪽 되던가 하는데요, 구암사를 지나 백양사를 들렀다가 고서 부근에 있던 창평역에 내려 무등산 원효사에서 하루 유숙하게 됩니다. 일제 초기에는 광주에서 대구까지 철로가 있었기 때문에 창평역에서 내려, 광주댐 옆 학구당에 들렀다가 해름녘에 원효사로 올라갑니다.
무등산 천왕봉을 오르고 난 연후에 동복 적벽을 보고 모후산을 넘어 유마사로 가는 산행이 이어 집니다.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하여튼 대단한 기록들입니다. 무등산닷컴 회원님들은 필독하셔서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머, 다 아시는 이야기를 제가 그러는가 싶습니다만...
|
2007-03-10 21:15:49 |
첨단산인
설중 복수초를 만나는 호사까지 누리는 환기형님의 열정 구암사도 백양사도 또 가보고싶지만 이제 곧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그때 고목에 가득한 벚꽃들의 향과 운치를 기다려봐야하지 않을가 합니다. 언제나 변화하는 그곳의 모습들 이기에
|
2007-03-12 08:16:3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