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를 들어서는 검문소에서 한바탕 소란을 겪고 황혼의 황톳길을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던 고교시절을 떠 올리는 가운데,
실학의 원조 반계 유형원선생 유허지가 있는 모습을 왼편으로 보면서 우동제를 지나 바드재를 넘어 쇠뿔바위봉과 의상봉이
바라다 보이는 청림 마을에 도착, 먼저와 기다리고 계시는 “전북산사랑”의 벽송 김정길님과 일행들을 반갑게 조우합니다.
오늘의 최종 목표는, 의상봉 마천대에 자리하고 있다는 불사의방(不思議房)
통일신라 경덕왕 때의 인물로 널리 알려진 율사라는 칭호를 얻은 고승 진표(眞表)가 이곳 변산 제일봉 8부 능선 바위틈에 자리한
불사의방이라는 곳에서 망신참법(亡身懺法 자기 몸을 바위에 부딪치고 위해를 가하는 불가 수행법의 일종)으로 수행하여
미륵불과 지장보살을 친견 득도한 후, 수많은 이적과 기행을 통하여 불법을 전 했노라는 사실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오다가다 귀동냥으로 들어왔고 늘 그 장소를 찾아보겠다는 향심을 가져 왔었는데 드디어 오늘 그동안의 묵은 숙제를
풀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동안 혼자서라도 그곳을 찾아보겠노라 마음은 늘 갖고 있어왔지만 정확한 루트를 알 수 없어 멀리서만 바라보며 애를 태워오던
가운데, 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전북산사랑의 벽송님께서 부안군청에 근무하신다는 황창호님을 섭외,
오늘의 길라잡이로 내 세운 다음 그의 뒤를 따릅니다. 한 눈에도 강인한 체력임을 느끼게 하는 분으로 이곳 변산 일대에 대해 너무 밝으셨습니다. 먼저 동쇠뿔바위에 올라 멋진 풍광을 조망한 다음 고래등바위로 이동, 서쇠뿔바위봉을 거쳐 저 멀리 바라보이는 의상봉을 향하는
능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언젠가 불사의방을 답사하고 글을 쓴바 있는 저자를 직접 만나 찾아 가는 방법을 물은 적이 있었지만 막상 오늘 안내자의 뒤를 따르며
살피자니 초행자는 혼자서 찾아가 봤자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찾는다 해도 두루 살핀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거라는
결론입니다. 안내자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의상봉에 자리한 돔 형태의 시설물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약 8부 능선쯤을 따라 깎아지른 듯 아찔한 모습의 절벽
마천대에 섭니다. 비룡상천봉에서 쇠뿔바위봉으로 이어지는 전경, 그리고 지나온 능선과 기타 내변산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쾌함은 결코 자주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리라..........!
시선을 거두고 조금 더 전진, 어느곳에 이르니 드디어 불사의방으로 내려서는 로프가 주렁주렁 걸린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길이를
가늠해 보니 대략 이십미터쯤.......! 장소가 협소하니 두 그룹으로 나누어 내려가야 한다는 리더의 말씀을 따라 차례로 절벽 아래로 로프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하는 가운데,
떨리는 마음으로 나도 줄을 거머쥡니다. 내려서 보니 왼쪽으로 좁은 절벽길이 보이고 그 중앙에 뭔가 설치물을 세웠는지 네모 모양으로 움푹 패인 부분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드디어 그토록 와 보고 싶었던 불사의방에 당도 합니다. 그동안 그림으로 보면서 상상해 왔던 것은 안쪽으로 굴이 다소라도 있을거라
생각 했는데, 절벽에서 약간 안쪽으로 비스듬히 파인 모습으로 약 서너평의 공간 뿐, 굴은 없었고 거주하기엔 너무 열악하고
협소다고나할까?..................... 더 전진하니 역시 절벽 사이로 간신히 오금을 저리며 걸어갈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어 끝까지 가보니 느낌으론 그곳에 아마 사다리가
있어 오르내렸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을 하게 합니다. 다시 되돌아와 진표가 고행 끝에 아무런 소식이 없어 뛰어 내렸다는 절벽을
내려다 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그는 과연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처절한 신심으로 공부에 매진, 드디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의 멱살을 움켜쥔 진표는 그 순간에 다시 부처로 재 탄생 했으리라........ 그리하여 수 많은 절을 중창하고 미륵신앙에 대한 확고부동한 설화를 이 땅에 남겼으리라. 어린시절 장난으로 개구리를 잡아 나무에 꿰어 놓았음을 잊고 있다가 그 이듬해 개구리의 울음을 듣고 충격을 받아 입산 했다던가? 한 인간이 처절한 고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도 결국은 대오각성과 맥이 닿아있음이라 ! 오래전 이 땅에와서 도솔천을 구현하고자 했던 진표, 어쩔수 없는 속물인 나로서는 그가 이룩했다는 사상의 편린 보다는, 그가 자신에게 처절하게 위해를 가 하면서 이 아찔한 바위틈에서 수행하다 소식이 없자 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는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그럴싸한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작은 암자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절벽에 쇠말뚝을 박아 묶었다는 증거인 듯 쇠토막이 절벽에 박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도대체 이 좁은 공간에 어떻게 집을 지었으며 또 기와까지 얹었는지 깨진 파편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앞을 바라보면 세상만사가 째째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옵니다. 어떻게나 아름답고 장쾌한지 열심히만 공부하면 어지간한 사이비 도사쯤은 될 수 있겠다는 건방진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즉 먹고 자는 것 입니다. 우선 물이 어딘가 가까운 곳에 있어야 수도고 뭐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의문은 다시 로프를 당겨 절벽 위로 올라 하산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풀렸습니다. 마천대 아래쪽을 돌아가려니 절벽 맨 아래쪽에 굴이 보입니다. 들어가 보니 맨 안쪽에 겨우 먹을 만큼의 물이 있었는데 마치 진표의 눈물 방울이 고인듯한 느낌입니다. 누군가가 기거하면서
수도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황창호님에 따르면 언제까진가는 도인이 있었고 쌀을 갖다 주기까지
했다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위 불사의방에서의 삶도 대충 감이 옵니다. 이 아랫쪽 굴에서 모든 문제는 해결 할 수 있을 거고 저 위 불사의방에서는 오로지 정진만 했었을 거라고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변산 땅에는 대단히 강한 어떤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듯.......... !
원효와 진표, 진묵등 불가의 큰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비교적 근세에는 증산교의 강일순, 원불교의 소태산 등이 월명암에서 득도, 사상의 뼈대를 세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길지임이 분명하고 심지어는 정감록 등에서도 이곳 변산을 생거부안이라 하여 길지로 내 세우고 있으니 곳곳에 명당이 산재 하는 듯, 산자락 여기저기 괜찮은 곳이라 여겨지는 곳엔 어김없이 묘가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번에 걸쳐 내외변산을 돌아보지만 절대로 싫증나지 않고 늘 새롭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만큼 살만한 곳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다시 돌아온 청림마을, 모정에 앉아 지나온 산들을 한 눈에 봅니다. 오랜 숙제 하나를 시원하게 해결한 듯, 하산주의 맛이 유달리 산뜻 합니다.
오늘의 자리를 마련해 주신 벽송님과 선두에서 끝까지 안내와 자상한 설명까지 곁들여 주신 황창호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박영근회장님과 장혜경총무님, 최병옥선생님과 그의 곁님 그 외 일일이 이름을 다 거명치 못한 전북팀의 여러 선생님들께도 한량없는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아울러. 이 아름다운 만남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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