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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장성 문화유산 톺아보기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 노사 蘆沙 기정진 奇正鎭 선생의 강학 공간인 고산서원 高山書院

도열한 비석 중 노사선생이 저술한 '임술의책' 비문을 읽고 있는 시민운동가 단비 백선기 선생님.

 

담장 부분에 상당한 굵기의 무궁화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모르고 무심히 지나치는 듯.

 

제향과 학술회의 등을 제외하곤 늘 문을 걸어 잠그지만

오늘은 문화재 보수 관계자들이 예초 작업중인지라 

협문을 통해서나마 서원 내부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사실.

 

담대헌 澹對軒

 

서원 마당에 선 '위성류나무' 양쪽으로 두 그루가 서 있다.

 

멀리 보이는 산은 장성 불태산이다.

 

구례 운조루 마당의 위성류나무는 줄기가 땅을 기어가다가 솟구쳤는데

이곳의 위성류나무는 위로 곧장 뻗어 올라간 형상이다.

 

 

 

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뒷쪽으로 과거 준수한 매화가 있었건만 지금은 사라지고

위성류 나무 바로 옆에 청매 한 그루와 또 다른 매화 한 그루 단 두 그루 만 남은 상태다.

 

 

문정공(文靖公)기정진을 주향(主享)으로, 김녹휴(金錄休)·조의곤(曺毅坤)·정재규(鄭載圭)·

송사 기우만(奇宇萬)·김석구(金錫龜)·정의림(鄭義林)·이최선(李最善) 등을 배향(配享)하고 있다.

 

답사 처 두 번째로 찾은 곳은 광산군 백우산 자락에 위치한 월봉서원.

행정구역상 현재는 광주시 영역이지만, 장성의 학맥과 닿아있는지라 찾아온 것.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빙월당 氷月堂

 

 

 

사당

 

서원 뒷편 산자락에 위치한 고봉 기대승의 묘소

 

 

묘소에 예를 갖추는 단비 선생

 

 

고봉 선생 묘소를 돌아 내려오니

고등학교 1년 여학생들이 단체 유복 차림으로 서원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교육관에 들러 예진 아씨께서 내오는 커피 한 잔...

 

세 번째로 찾은 곳은 노사 기정진 선생 묘역.

여러 번에 걸쳐 찾아왔지만 이렇게 잡풀에 뒤덮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도 황망해서 군청 관계자에게 전활 해 이게 어떻게 된거냐 물었더니만

끝내 우물쭈물 답변을 흐리고 있었다.

 

넘어져 벌겋게 죽어 넘어진 소나무하며, 명색 '위정척사탑'을 이렇게 홀대해서야 어디 원~~~

 

관계 당국은 이런 모습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 묘소와 탑에 접근하는 좁은 길 옆으로는

각종 농기계와 농자재가 수북히 쌓여 차량 출입이 불가였고, 수북한 잡풀을 뚫어야만

간신히 위정척사탑과 노사 묘소에 접근할 수 있는 험상궂은 지경이라.

 

 이곳을 찾아온 답사객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안고 돌아갈지...

 

 

'위정척사탑' 제단 앞이 온통 잡풀에 점령당해 그야말로 흉칙한 모습.

어찌된 영문인지 군청 문화 관계자의 답변을 오늘도 기다려 보건만...

 

노사 선생 묘역

 

그래도 선생 묘역은 지난 추석 벌초 작업이 있었던 듯

 

 

무덤 석상 앞에서 이내 속 터지는 심정을 하소연이라도...

 

 

 

네 번째로 찾아온 곳은 '요월정 원림'

 

 

 

 

 

 

 

 

다섯 번째로 찾은 곳은 장성 동학혁명 황룡 승전지

 

 

 

 

 

고종의 명으로 동학군 섬멸을 위해 이곳에 왔다가 농민군에게 죽임을 당한

관군 대장 이학승을 추념하는 '순의비'가 전적지 근처에 서 있다는 사실...

 

여섯 번째로 찾은 곳은 하서 김인후 선생 묘역.

무덤의 주인공은, 친정에 다녀 오던 길, 왜놈들에게 잡힌 손을 잘라버리고

황룡강에 뛰어들어 절개를 지킨 인물로 다름 아닌 고봉 기대승 선생의 따님이시다.

다시말해 하서와 고봉은 사돈이라는 말씀.

 

'일비장묘'에서 바라본 하서 선생 신도비

좌측은 처음 세워진 신도비이고,

우측은 글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해 세운 이른 바 뉴 신도비이다.

 

하서 김인후 선생 묘역

 

 

하서 선생 내외 합장 묘

 

 

 

 

하서의 강학 공간이었던 '백화정'에서 보면

들판 너머로 이 '통곡단'이 자리한 난산이 보인다.

 

 

 

 

통곡단

 

세자 시절의 인종과 그의 스승이었던 하서.

총명한 인종에게 요순 시대의 꿈을 기대했을테지만

즉위 일 년여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린 인종.

하서는 그 처연함과 망연한 설움을 이곳 통곡단에 게워냈으리라.

 

 

일곱 번째로 찾아온 곳은

의병장 성재 省齋 기삼연奇參衍 선생 묘역

 

 

여덟 번째로 찾은 곳은

청백리 아곡 我谷 박수량 朴守良 선생 생가 및 부조묘

 

 

아홉 번째로 찾아온 곳은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 

 

박수량 선생 백비白碑

 

“내가 초야(草野)의 출신으로 외람되게 판서(判書)의 반열에 올랐으니, 영광이 분수에 넘쳤다.

내가 죽거든 절대 시호를 청하거나 묘비를 세우지 말라.” 

 

40여 년의 관직 생활 중 두 번에 걸쳐 '청백리'에 녹훈되었던 아곡 선생.

그의 청렴함에 오히려 누가 될까 '백비'를 내렸다는 명종.

 

헌데 자세히 살피면 누군가가 이 백비에 뭔가를 새겨넣었다가

다시 백비로 전환한 흔적을 알 수 있다. 손으로 만지면 문자의 흔적이

느껴지기에 하는 말이다.

 

 

무덤 위로 자잘한 가을꽃이...

 

 

 

 

열 번째로 찾은 곳은 하서 河西 김인후 金麟厚 선생을 배향한 필암서원

 

 

하서 선생의 초서

 

 

하서 선생의 초서

 

벼루와 옥필을 비롯한 하서 선생의 유물

 

 

하서와 함께 필암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고암 양자징은 담양 소쇄원을 조영한

 양산보의 아들. 하서는 주옥같은 소쇄원 48영 수를 남긴 바 있다.

 

필암서원 筆巖書院

 

필암서원 확연루

 

 

장경각

 

사당

 

강학 공간

 

열한 번째로 찾아온 곳은 망암 변이중을 배향한 봉암서원 鳳岩書院

 

망암 변이중이 제작한 '화차'가 전시된 시징당

 

 

 

 

 

 충신, 효자, 열녀로 대표되는 조선조 최대 가문의 영광

'삼강정려'

 

열두 번째로 찾은 곳은 제봉 고경명 선생 묘역

 

 

 

 

제봉 고경명 선생의 묘역

 

 

제봉 선생 내외 묘에 예를 갖추는 단비님

 

묘 아래로 보이는 마을은 오동촌

 

 

열세 번째로 찾은 곳은 오동촌 마을에 소재한 영천鈴泉(방울샘)

 

 

 

 

지하에서 끊임없이 물방울이 솟아 오른다.

 

방울샘을 안고 있는 오천정사

안쪽 정자엔 조선 왕조 유일의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 글을 받는 조건으로 상당한 독립자금이 전달되었다는 후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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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답사처 모든 내용에 관한 자세한 해설은

과거 취월당 유람록'에 여러 번에 걸쳐 언급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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