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 화가 알폰스 무하(1860~1939) 이름은 '무하 스타일'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무하는 19세기 말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무하 스타일이라고 불리게 된 장식예술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알폰스 무하는 오늘날 순수미술과 상업주의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무하는 양쪽을 자유로이 오가며 담배 광고 포스터의 삽화뿐만 아니라 체코 미술 역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역사화 연작 <슬라브 서사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무하의 삶을 들여다보면 세기말 파리의 상황에 대해 완벽히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다. 성공한 예술가에겐 더할 수 없이 멋진 시기였지만, 작품을 인정받지 못한
20여 년간 파리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 무하는 상업용 삽화 디자인으로 성공한 까닭에 폴 세잔,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등과 동시대에 활동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무하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나 쥘 쉬레와 같은 그래픽 삽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파리의 삶을 예술로 옮겨 담았다. 이들의 삽화 작품은 당시 그래픽디자인의 중요한 역사적 증거자료이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폴 세잔은 무하가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엑상프로방스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세잔은 후원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재력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반면 무하는 후원자가 없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한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당시 출판없계가 성장하면서 삽화가
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삽화는 무하의 생계 수단이 되었다. 무하가 파리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1893년에서 1803년은 세기말 풍조를 완벽히 압축한 시기였다.
··· 그는 신비주의, 신지학神智鶴, 그리고 비밀결사대에 흥미를 보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움직임을 따랐다.
알폰스 무하는 1860년 7월 24일 ㅁ라비아(현재 체코공화국)의 수도 브르노에서 남서부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이반치체에서 태어났다. 무하는 이반치체 지방법원의 공무원으로 일하던
안드레아스 무하(1825년 생)의 막내아들이었다.
인용: 로잘린드 오르미스턴 著 / 김경애 옮김 《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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