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鄭邃榮,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18세기, 51.2×82cm, 개인 소장.
치악산雉岳山
강원도 원주시 · 횡성군 · 영월군에 걸쳐 있는 해발고도 1,288m의 산으로, 차령산맥의 줄기이며
주봉은 비로봉毗蘆峰이다. 남쪽의 향로봉香爐峰과 북쪽의 매화산梅花山을 연결하는 남북 방향의
주능선을 경계 삼아 서쪽은 급경사, 동쪽은 완경사를 이룬다. 신라 의상義湘이 창건한
구룡사龜龍寺와 꿩의 보은설화로 유명한 상원사上院寺 등이 있다.
구룡사에서 조망한 치악산
안석경安錫儆, 「치악 대승암 유람기遊雉岳大乘菴記」
치악산은 원주에 있다. 봉우리가 험하고 두터우며, 계곡이 맑고 그윽하다. 봉우리마다 성대한 명성이
있지만 제일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이 여러 산에 비해 더욱 높다. 이름난 사찰로는 남쪽에 상원사,
북쪽에 대승암, 대승암 아래 구룡사가 있다.
병인년(1746) 봄, 나는 구룡사와 대승암을 유람하고 마침내 비로봉에 올랐다.
온 나라의 산과 바다로서 오대산과 태백산, 소백산에 가려지지 않은 것은 다 볼 수가 있었다.
다만 급하게 돌아와야 하였기에 대승암에 오래 머물 수 없었던 것이 한스러웠다.
올해(1752년) 이 산 북쪽 고을에 일이 있었다. 잠시 틈이 나서 대승암에 들어가 책을 읽으려고 하였다.
벗들이 모두 말하였다. "부디 가지 마시게. 치악산에 큰 범이 있어서 근년에 대승암 사람을 잡아 먹었다네.
대승암에 갈 수 있겠는가?" 내가 말하였다. "범은 사람을 먹을 수 없다네. 사람이 범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반드시 사람의 도리를 잃었기 때문일세. 사람이 범을 만나더라도 그 심지가 굳어서 흔들리지 않아, 위로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아래로 땅이 있다는 것을 알며 그 가운데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짐승이
사람에게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네. 그러니 범이 비록 사납다 해도
반드시 움츠리며 감히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네."
마침내 떠났다. 걸어서 20리를 갔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푸른 잔디와 흰 바위가 깔려있고, 봄 물결이 사람에게 불어온다. 혼자 길을 가서 개울물을 따라가는데, 물가
에는 철쭉꽃이 많이 피어 있다. 저녁에 구룡사에 들어갔다. 골짝 어구의 긴 소나무가 길을 덮고 있다. 새들은
서로 노래 부르는데, 인적이 없어 고요하다. 물이 우는 소리가 또한 비장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깨끗이
마음을 씻어 바꾸어 준다. 이와 같이 하기를 7, 8리나 한 후, 천주봉 앞에 이르렀다.
보광루에 올라 백련당에서 잠을 잤다. 밤새 절구질하듯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었다.
이튿날 용담을 보았다. 바위 벼랑이 입을 벌리고 있는데 푸른 물이 넓고 깊다.
스님 한 분과 대승암에 올랐다. 가는 길에 범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가 맑고 커서 온 산이 진동하였다.
가다가 약초를 캐고 꽃을 땄다. 암자에 이르니 목조건물 몇 칸인데 배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우물물이 맑고
투명하다. 스님 몇 분이서 세사에 초탈한 듯 하안거에 들어 있다.
나도 끼어 앉아서 《악기樂記》를 펼쳐놓고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머리를 빗고 몸을 씻고 책을 읽었다.
암자 뒤에는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았는데 구름 덮인 나무가 어두침침하고 가물가물하다.
암자 앞에는 거북바위가 있어서, 우뚝하게 절벽에 임해 있다. 소나무와 회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고 두견화가 빙
둘러 피어 사람을 환하게 비춘다. 암자를 대하고 있는 여러 봉우리들은 어느 하나도 나무들이 울창핮 않은 곳이
없는데, 아래쪽은 이미 짙푸른 초록빛을 띠었지만 위쪽은 아직도 연한 푸른빛이다. 아침에 감기(이내)가 끼고
저녁에 부슬비가 내릴 때마다, 어릿어릿하게 비쳐서 사랑스러워 조금도 흠잡을 바가 없다. 그 동북쪽은 멀리 서너
고을의 산들이 흰 구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가까이 있는 벼랑에는 사슴이 있어 때때로 멈추어 서서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하다. 그 울음소리는 어리숙하고 그 뿔은 높다. 새 울음소리도 여러 종류인데
제각기 특이하다. 이곳이 으슥하고 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불당의 등이 밤새도록 켜 있고 향 연기가 방에 가득하다.
온밤 내내 우레가 크게 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비로소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빗속의 풍경이 흐릿하여 읊조릴 만하다. 비가 그치자 사방의 모습이 선명하였다. 높고 낮고 멀고 가까운 곳이
모습은 다르지만 사람을 즐겁게 하기는 마찬가지요, 아침과 저녁, 비가 오거나 날이 개거나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사람의 마음에 맞는 것은 마찬가지요, 나무와 돌과 새와 짐승들이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사람에게
가까이 하는 것은 마찬가지요,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말을 하거나 입을 다물거나 흥취는 저마다 다르지만
뜻에 맞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개 오래 있을수록 더욱 기쁘고, 보면 볼수록 시간이 부족하다.
아아, 세상의 즐거움 중에 이것과 바꿀 것이 있겠는가? 이 산이 이미 깊고 험한데 이 암자는 높고 또 고요하여
옛 책을 읽기에 적당하다. 내가 만일 항상 거처할 곳을 얻는다면 10년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지만,
장차 열흘이 차지 않았어도 떠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산을 올려다보고 골짜기를 내려다보매, 화창한 봄날의 사물들이 모두 유유자득悠悠自得하니,
내 어찌 깊이 사랑하여 돌아보며 서글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임신년(1752) 4우러 7일 대승암에서 쓰다.
안석경(1718~1774)은 충주 가흥에서 태어나 강원도 삽교에서 생을 마감하였던 처사였다.
아버지 안중관安重觀이 김창흡金昌翕의 문하에 있었으므로 김창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과거에 번번이 실패하다가 불혹의 나이에 원주의 손곡에 안착하였다가48세인 1765년 이후로 횡성의
삽교에 정착하였다. 안석경은 산수 유람을 통해 심적 위안을 얻었다. 1741년 꿈속에서 어떤 산을 유람하고
그 감회를 적은 「일산기一山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세상일에는 실로 기쁜 것이 없고, 산수에서만 기쁨을 느끼지만, 병이 들어 이루 다
유람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 꿈은 아마도 상상으로 행해진 유람이었던가? 아니면 과연 실제 경물을
왕래한 것이 있었던가? 알지 못하겠다. 다만 마음이 넉넉해지고, 아직 잔상이 남아 있어,
산수에서의 일 하나하나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므로,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
그래서 지필묵을 가져다가 기록한다.
일생 세 번 과거에 응시하지만 모두 낙방할 만큼 불우했던 안석경은 산수 유람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청평산 유람기」에서 그는 고려 때 이자현,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과 숙종 때의 문인 김창흡 등 일사逸士
들의 삶을 추억하고,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는 초라한 자신을 후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며 눈물을 흘렸다.
1752년 안석경은 치악산 대승암에서 9박 10일간 머물며 독서와 산수완상을 병행하였다.
「치악대승암시서雉嶽大乘菴詩序」에서는 산놀이와 독서의 병행이 지닌 맛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옛사람 가운데 권세에서 소름끼쳐 하고 이익에서 두려움을 느낀 사람이 있다. 권세에서 남을 이김을 제멋
대로 함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불쾌해지고 욕망을 함부로 부림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부족해기기
때문이다. 만일 9년 동안 중서부中書府에서 권력을 멋대로 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대개 국가 권력을 쥐고 9년 동안의 치적을 이룬다고 하여도, 9일 동안 산에 있는 즐거움과 바꿀 수는 없다.
하물며 고요하게 독서하고 한가하게 음송하여 깊은 이치를 천천히 찾아나가고 싶은 맛을 상세히 맛봄으로써
책의 정수와 속뜻을 얻을 수 있는 데다가, 높은 곳은 높이고 깊이 들어간 곳은 깊게 한 것을 보고 푸근히 감싸
서 길러주어 태어나게 하고 펴나가게 하는 것을 살펴서 사람의 정신과 뜻에 보탬을 줌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기에 인간 세상의 부귀와 구차하게 비교하고 따질 것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30세 되더 1748년, 횡성의 「덕고산을 바라보고 쓴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매양 산을 유람할 때면 반드시 최고봉에 오르는데, 이 산만은 유독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한가한 날을 기다려 다시 유람하여 오르려 하였다. 혹자 말하기를 "산을 오를 때 반드시 높은
봉우리를 오르려 하다니 호고好高의 뜻이 덕고德高라 이르는 것과는 다른 것이 아닌가?" 라고 하기에,
내가 말하였다. "산에 올라 산의 모습과 골짜기의 의취意趣를 모두 보고 느끼고자 한다면 반드시
최고봉에 오른 뒤라야 그럴 수가 있다오. 고봉高峰이라는 명성만으로 좋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오.
하지만 '높은 봉우리' 라는 것도 곤륜산과 비교해 보면 다만 낮을 뿐만이 아니니, 어디 이것을 높다 하겠소?"
의취는 심미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일어나는 흥취이다.
산수자연은 주관과 동떨어진 대상으로서 나와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관에 의해
포착되어 흥취를 일으킨다. 그 흥취는 개별자의 일회적 경험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산이 아니라
나 자신이 흥취를 느낄 수 있는 산을 사랑하겠다고 그는 말한 것이다.
이것은 비단 산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취미로 삼을 수 있는 모든 사물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인용: 심경호 著 <산문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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