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천봉산 대원사
대원사 김지장전 벽화로 보는 <김지장스님 일대기>
신라청년 김교각은 어떻게 지장왕보살이 되었나?
(좌), 석가세존 열반 1500년 되는 서기 696년 신라 왕가에 한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의 부친은 성덕대왕이고,
그의 모친은 성정황후이다. 아니의 이름은 교각(僑覺)이며 학명은 수충(守忠)이라 하였다.
(중), 당나라에 유학하여 학문과 무예를 익히고 고승대덕을 찾아 불법의 깊은 뜻을 깨달았다.
고국에 돌아온 교각은 신라 왕실의 다툼을 보고 24세 되던 해 불법으로 중생을 구제코자 출가하였다.
(우), 당나라로 가면서 선청이란 삽살개와 황립도라는 볍씨, 금지차 종자, 신라송이라는 잣 열매와
조 씨앗 등 다섯가지 생물자원을 중국 구화산에 전하였다.
(좌), 중국 절강성 항주에 도착하여 만불사에서 본 꿈 속 수려한 풍광을 찾아 안휘성 구화산에 이르게 되었다.
(중), 모든 이웃을 복되게 할 절을 짓고자 하니 가사를 덮을 땅을 시주해 달라고 구화산의 주인 민양화에게
말하여 승낙을 받고 지장스님이 가사를 벗어 던지니 구화산 99개 봉우리를 모두 덮어 버렸다.
(우), 지장이 수화산 동굴 속에서 수행에 전념하던 차 구화산 산신이 그를 시험코자 어여쁜 여인을 보내
유혹하였다. 그러나 반석같은 지장의 신심에 산신이 감동하여 바위에 구멍을 뚫어 샘물을 솟구치게 하였다.
(좌), 구화산 천대봉에 올라 49일간 침식을 잊고 정토삼부경을 독송하던 차
바위위에 스님의 두 발자국이 새겨지고 이를 고배경대(古排經臺)라 부른다.
(중), 청향현의 장자 제갈절이 구화산을 유람 왔다가 지장의 수행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시주를 모아 절을 바쳤다. 구화산 최초의 가람 화성사가 완성되었다.
(우), 호랑이에게 물려 죽게 된 동자를 구해주고 이 아이를 제자로 삼았다.
그러나 산 속 적막을 이기지 못한 동자가 속가로 돌아 가니 이 심중을 詩로 읊었다.
(좌), 서기 794년(음) 7월 30일 세수 99세를 맞이하여 대중들에게 유언법문을 남기고 가부좌인 채 입적하였다.
이 때 산이 울리고 돌이 무너지고 화성사의 종은 아무리 쳐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중), 지장의 육신은 가부좌인 채 석함에 안치되었다. 삼년 후 석함을 열었더니 얼굴빛이 생전과 다름 없었다.
대중들이 스님의 육신에 금분을 입히고 탑에 모셔 받드니 지금은 육신보전이다.
(우), 누구든진 김지장 삼존불을 참배하고 지장왕 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서원을 나의 서원으로 실천하는
이는 업장을 소멸하고 세상을 밝게 비추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 김지장 스님의 서원문 -
대원사 구상전 내부
현장 스님과 일포 선도사님
국내 최장 최고의 대원사 벚꽃길
대원사 벚꽃길을 빠져나와 주암호에 놓인 죽산교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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