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1년에 사망한 <제프리 플랜태저넷의 장례식용 초상화>, 1151년 직후, 테세 박물관, 르 망스
도금된 동, 높이 63cm, 상르베 기법의 칠보(금을 파서 칠보를 박아 넣은 기법) 작품으로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프랜태저넷 왕조 지역의 르 망스 성당 유물이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단순화된
데생화, 색채 감각, 빈곳을 남김없이 채우려는 의도적 구성, 늘씬하게 그려진 인체의 역동성은
이 작품을 아주 독특하게 만들고 있다.
<글자 'O' 속에 성자를 안고 있는 성모>, 프랑스 남부 리옹의 성서, 12세기 말, 시립도서관 리옹
이 그림의 성상학적 기원은 비잔틴이다. 자애의 성모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들을 팔로 감싸고 있다.
성자가 입고 있는 옷의 투명함을 물결 같은 선들로 암시한 것은 비잔틴 회화의 영향이며, 흰색으로 이 선들
을 처리한 것은 성자의 얼굴, 손, 목에 생동감을 준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로마네스크 예술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성모의 옷은 색이 엷어지거나 흐려짐 없이, 단일한 원색들로 입혀진다.
그리고 그 위에 단순한 선들로 도형적인 주름장식을 붓으로 그려 넣었다. 윤곽은 짙지만 자유로운 선으로
분명하게 처리하고 있다. 화가는 글자 틀안에다 하나의 이미지를 넣어 비잔틴 시대에는 불가능한 글자
장식을 시도하는데, 이는 완전히 로마네스크 전통에 속한 것이다.
<만물의 창조자 구세주>, 체팔루 대성당의 제단 뒤 반월형 부분의 모자이크, 1131~1148년, 시칠리아
이 모자이크 장식은 지반틴 기법이 서구에 깊이 뿌리 내렸음을 보여준다.
좌) 샤르트르 대성당의 로양 정문에 있는 조각상 원주의 세부, 1145~1151년
초기 고딕 조각의 특성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우) 솔로몬 왕, 1160~1180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에손주 코르베유의 노트르담 대성당 정문에서 유래.
샤르트르 대성당의 로얄 정문, 1145~1155년경
4복음 사도들의 상징들로 둘러싸인 그리스도(팀파늄), 사도들(상인방), 묵시록의 천사들과 노인들(아치형 곡선)
의 중앙 정문, 왕관을 쓴 성모와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장면들(팀파늄, 상인방), 천사들과 조각(아치형 곡선)의
오른쪽 정문, 승천(팀파늄, 상인방), 역법과 12궁도(아치형 곡선)의 왼쪽 정문.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1163년에 착공되어 윗부분을 재작업한 후, 1220년부터 1230년에 걸쳐 완성됨.
앙고성을 강조한 중앙홀 내부는 초기 고딕 미술의 건축 기술 가운데, 대형 아케이드의
둥근 기둥들, 누대, 여섯 쪽으로 나뉜 궁륭 형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라옹 대성당의 중앙홀, 1160~1210년
내진 쪽을 향해 본 모습으로 내부의 앙고성이 두드러진다. 네 개의 층과 여섯 쪽으로 나뉜 궁륭은 초기 고딕미술의
특징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진과 가까운 벽면들 사이에서 보이는 지주들의 교차는 다른 곳에서는 사라졌다.
수석 조각가 마테오, 산티아고 데콜포스텔라의 <영광의 문>,1188년 이전
예언자들의 조각상 세부.
니콜라 드 베르뒹, <클로스터노이 부르크의 설교단>, 1181년 완성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교 중앙 부분 세부. 요나와 고래, 삼손과 사자, 가자의 문들, 이들 성서의
예시들은 위에 묘사된 그리스도 삶의 일화들(무덤에 묻힘, 고성소에 내려감, 부활)과 일치한다.
샤르트르 대성당, 13세기 초
내진쪽을 향하여 바라본 중앙홀 내부.
랭스 대성당, 중앙홀 내부에서 내진쪽을 바라본 전경, 13세기 전반
잔 다르크가 구해낸 샤를 7세가 1429년 이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아미앵 대성당, 1260년 봉헌식
채광창들로 빛이 환한 트리포리움 중앙홀. 내진의 내부 전경. 프랑스 고딕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며, 샤르트르 대성당, 랭스 성당과 더불어 고딕건축의 파르테논 신전이라고 불린다.
부르즈 대성당, 13세기 전반
내진을 향해 볼 때의 중앙홀 내부. 중앙홀을 덮고 있는 6쪽으로 나뉜 궁륭은
일종의 고풍스러움을 보여주는데, 이 점에서 다른 샤르트르식 건축물과는 다르다.
<수태고지의 천사>(1255년경)와 <성모 방문의 군상>(1211~1233), 랭스 대성당 정면의 중앙 정문 남쪽 벽
17세기 조각의 정수를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자를 안고 있는 성모>, 파리 생트 샤펠 성당 수장고, 1250~1260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상아, 다색 장식이 특징, 높이 41cm, 13세기 중반, 상아 제작은 파리에서 빠르게 발전되었고, 15세기
말까지 계속된다. 생트 샤펠 성당의 성모는 상아로 된 중세 작품 중에서 분명 가장 아름다운 것에 속한다.
상당한 크기, 호리호리한 모습, 팔 아래까지 올려진 겉옷의 풍부한 주름장식, 갸름한 삼각형 얼굴에
아몬드형으로 늘려진 눈, 이 모든 모습은 성왕 루이 9세 시대에 파리 양식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툴루즈 자코뱅당 교회 내진의 야자수 장식, 1260년 착공
벽돌로 만들어졌다. 내부는 같은 높이의 두 개 종앙홀로 나뉘어 있는데, 이들 중앙홀들 가운데
정렬된 석주들이 분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석주들 위로 첨두아치들의 리브들이 내려와 모인다.
가장 독창적인 이 '야자수' 는 후진과 중앙홀의 마지막 기둥에서 궁륭들의 22개 리브를 모아들인 모습이다.
생트 세실 대성당, 알비, 1276년 착공하여 13세기 말에 완성
남방 고딕 건축의 대표작으로 루이 당부아즈 추기경을 위해 세워졌다.
상) 엘리 대성당, 8각형의 중앙교차부, 1322~1342년, 영국
장식 양식의 승리인 첨두형 궁륭 형태의 변형은
영국에서 놀랄 정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 스트라스부르 성당의 서구식 정면, 중앙 정문의 닫집형 차양과 거대한 장미창
1277~1340년.
스트라스부르의 정면은 방사선식 고딕 양식이 이룬 형태의 탐색을 매우 잘 보여준다.
뚜렷하게 재단된 수많은 장식적 요소들과 진짜 돌로 만들어진 레이스와 같은, 무한히
증가할 듯한 수많은 요소들 아래 건축물의 존재는 사라진 것 같다.
윈체스터 대성당의 정면, 14세기 중반, 영국
장식기법에 대한 반발로 '수직식' 은 직각으로 교차되는 수직선과 수평선들을 선호하며
곡선들은 이 선들이 만들어내는 망 안으로 들어간다.
선랑왕 장 2세(1350~1364년)의 초상화, 1350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높이 59.8cm, 옆모습을 그린 독립적인 초상화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 최초이다.
이 초상화는 서구에서 초상화 예술의 재출현을 증명하는데, 조각에 대한
고대 및 현대의 연구와 함께 비교할 필요가 있다.
<샤를 5세의 왕홀>, 파리 생 드니 성당의 수장고, 1380년 이전, 루브르 박물관, 파리
금, 진주, 보석, 전체 높이 60cm. 왕홀의 윗부분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꼭대기에는 샤를마뉴의 조각상, 그 아래에는 프랑스 왕을 상징하는 백합,
백합 아래에는 샤를마뉴의 전설적인 세 이야기 장면들이 표현된 구형의 장식이 그것이다.
백합은 예전에는 불투명한 흰색 칠보로 덮여 있었는데, 금에 롱드 보스
(볼룩한 면에 칠보를 입힌 기법)를 적용한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장 드 리에주, 샤를 5세(1324~1328년)와 잔 데브뢰(?~1371년)의 내장을 보관한 횡와상,
1370~1372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모뷔송 수도원에서 가져옴, 대리석, 중세 왕실의 관습은 몸, 내장, 심장으로 나누어, 각 부분이 따로 묻힌다.
이 왕 부부의 몸은 생 드니에, 심장은 파리의 성 도미니크회 수도원과 성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에,
내장은 모뷔송에 매장되었다.
잔 데브뢰의 <성무일도서>, 1325~132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 뉴욕
체포된 그리스도와 수태고지 장면을 그립 삽화이다. 높이 9cm, 클로이스터 콜렉션
조반니 피사노, <성자를 안고 있는 성모>, 스크로베니 성당, 파도바
피사의 상아 성모상(1299년) 처럼 이 조각상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탈리아 조각 양식에 영향을 미친 프랑스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조반니 피사노, 피스토이아의 <성 안드레아 설교단>, 1298~1301년
여기에 새겨진 <수태고지>는 14세기 부조 작품 가운데 가장 섬세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반니 피사노, <수태고지>, 피스토이아의 성 안드레아 설교단 세부, 1298~1301년
예수 탄생과 목자들에게 알려짐을 표현, 조반니 피사노는 이 조각 작품에서 극적인 양식에다
더욱 더 자연주의적 특징들과 파리식 전형들의 웅장한 조형성을 톱합시킨다.
좌) 교황 니콜라우스 4세의 성배, 생 프랑수아의 수장고
높이 22.4cm, 정확한 날짜가 명시되어 있는 이 보물은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영향받은 성상화, 토스카나의 전통과
이탈리아 밖의 영향이 섞인 양식과 기법, 저부조의 반투명 칠보세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작품이다.
우) 볼세나의 성체포를 모셔놓은 성유물함, 1264년, 오르비에토 대성당
높이 1.39m, 이 성유물함은 볼세나 기적의 성체 때 생긴 몇 방울의 성혈을 받은 성체포(미사 때 제단을 덮는 보) 를
모셔놓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형태가 당대의 건축물을 연상시킨다(오르비에토 대성당의 정면). 두 개의 면 위에는
성체포와 그리스도 수난에 대한 다양한 일화들이 설명되어 있으며, 제단 밑 부분은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에 할애되어 있다.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 <고성소에 내려가심>, <나를 만지지 말라>,
1308~1311년, 도오모 부속미술관 시에나.
판넬 두 개의 뒷면 세부
조토, <나자로의 부활>, 1305~1307년경
파도바 아레나 성모 수태고지 성당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프레스코화 세부.
시모네 마르티니, <수태고지>, 1333년,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리포 멤미와 공동작업으로 채색됨.
암브로조 로렌치티, <선한 정부의 우화>, 1338~1399년
시에나 시 공회당의 프레스코화 세부.
장 드 라 그랑주의 석관에 조각된 사체상, 1400년경, 프티팔레 박물관, 아비뇽
아비뇽 생 마르시알의 웅장한 무덤의 일부분이다.
클라우스 슬뤼테르 <모세의 샘>, 1396~1405년, 상몰 병원, 다종
상몰 샤르트르회 수도원의 예수 수난상 받침 부분,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와 6명의 예언자에 둘러싸힌 상징적인 샘을 형상화 했다.
멜키오르 브루델랑, <이집트로의 피신>, 1400년경, 보자르 박물관.
상몰 샤르트르회 수도원의 제단화 오른쪽 면의 세부.
전경의 작은 수반과 풍경은 깊이의 효과를 주고 있으며, 이런 식의 기법은 이탈리아의 1300년대 혁신적인
기법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15세기 프랑스 예술가들이 우아함을 쫒으며 시작된, 돋을새김과
흐르는 듯한 주름장식의 부드러움을 알아볼 수 있다. 끝으로 물을 병째 마시고 있는 성 요셉의 의상과
짐은 아주 세심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플랑드르적 사실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다.
트레본의 수석화가(위팅고), <부활>, 1380년경, 국립미술관, 프라하
트레본 '수난의 제단화' 의 판넬.
<윌튼의 두폭 제단화>, 내셔널 갤러리, 런던
영국의 리터드 2세는 세례 요한, 반지를 들고 있는 고백자 성 에드워드와
화살을 들고 있는 성 에드먼드에 의해 성모에게 소개된다.
랭부르 형제, <12월 뱅센 숲 속에서의 사냥몰이>, 1413~1406년경, 콩데 박물관, 상티이
'베리 공의 극히 풍요로운 시기들' 을 그린 미니어처들 중 하나의 세부.
뒤로 뱅센 성이 보인다. 정확한 세부묘사, 깊이와 공간의 원근법적 환상을 주는
빛의 역할은 15세기 플랑드르 지역 회화의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황금 망아지>, 1402~1403년경, 소교구 교회의 수장고, 알퇴팅, 바비에르
황금, 도금된 은, 환조에 입힌 칠보, 진주와 보석, 높이 62cm,
1404년 이바보 여왕이 샤를 6세에게 준 새해 선물, 작은 기단 위에서 두 명의 어린 성 요한이 쳐다보는
가운데, 성자를 안고 있는 성모는 프랑크푸르트의 천국을 만든 수석조각가나 베로나의 스테파노를
떠올리게 하는 정원의 격자 아래 앉아 있다. 왕과 시종은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 성모 앞에 무릎을 꿇고
투구를 바치고 있으며, 아래쪽의 또 다른 한 명의 시종은 왕의 말 고삐를 쥐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원하는 것에게 바침>, 1500년경, 클뤼니 박물관, 파리
일각수를가진 여인 태피스트리, 양모와 비단실로 짠 것이다.
우의적인 각 장면들(미각, 후각, 청각, 촉각, 그리고 알아내기가 더욱 어려운 마지막 감각) 은
작은 동물들이 수많은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배경과는 분리되는 일조의 작은 동산 위에 위치한다.
생 세브랭 성당, 회랑의 내부 전경, 15세기 후반, 파리
생 미셀 광장 근처에 세워진 예파리 대학의 부속 성당. 후기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13세기 때 확대되었다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530년경이다.
프랑스 혁명 때는 화약고로 사용되었다.
필리프 포의 무덤, 15세기 말, 루브르 박물관, 파리
부르고뉴의 지방판관으로 1493년에 사망했다. 시토에서 유래, 브르고뉴.
바이트 슈토스, 크라쿠프의 노트르담의 중심 제단화, 1477~1489년, 뉴른베르크
왼쪽 면의 사부로 동방박사들의 경배 장면이다.
사랑에 빠진 쾨르의 수석화가, 1460~1470년경, 오스트리아 도서관, 비엔나
쾨르는 마법의 샘의 글을 읽고 있다. 인간의 열정을 인물로 표현한 우의적인 이 소설은,
앙주 공작이며 프로방스의 영주이자 시칠리아의 왕인 르네 왕(1480년 사망)이 쓴 것이다.
비엔나 필사본에 담긴 일련의 삽화들은 바로 그를 위해서이다.
이 삽화들에서 초자연적 경이에 사로잡힌 기사들의 세계가
몽환적이고 부드러운 빛의 시학 위에서 펼쳐진다.
인용 : 자닉 뒤랑 지음 · 조성애 옮김 <르투스 서양미술사 중세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