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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19세기 서양미술 I

구스타브 쿠루베, <만남 혹은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파브르 미술관, 몽펠리에.

전통과 맞서 힘을 겨룬 쿠루베는 현대예술을 창조하기로 결심한 최초의 화가였다.

 

 

 

 

폴 세잔, <변호사 혹은 도미니크 삼촌>, 1866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세잔은 인상파의 색채에 대한 깊은 관심과 관점을 취하면서 형태에 대한관심을 접목시켰다.

 

 

 

 

구스타브 쿠르베, <화가의 아틀리에, 예술가로서의 7년 생애의 단 단면을 결정짓는 실제 알레고리>,

1855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쿠루베는 만국 박람회 심사위원들이 거부한 이 유화를 알마 광장에 위치한 사실주의 화실에 내걸었다.

들라이쿠루아는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걸작을 발견했다. 유일한 단점이란 화가가

그림 한복판에 '실제 하늘' 의 분위기를 그려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독특한 작품 하나가 거부당한 것이다."

여러 다양한 해석들을 가득 담은 주제와 히화적 특성은 이 작품을 프랑스 회화의 대작으로 만들어 놓았다.

 

 

 

 

구스타브 쿠르베, <오르낭의 장례식>, 1849~1805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살롱 전시목록에서 쿠르베는 이 작품에 <오르낭의 장례식에 참가한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들의 그림>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시장, 사제, 판사, 부르주아, ㅅ시민, 그러나 또한 노동자, 포도 배배자, 날품팔이꾼 등의 상이한

사회계층에 속하는 약 50명이ㅡ 오르낭 마을 주민들이 그림엣 재현되고 있다. 쿠르베의 기념비적인 이 첫 번째

유화의 소박함은 당시 맹위를 떨친 파토스에 대립하며, 작품은 훗날 사실주의 연대의 기수로 여겨지게 되었다.

 

 

 

 

토마 구튀르, <퇴락한 로마인들>, 1847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살롱에서 정부가 구입한 이 거대한 유화는 볼로냐와 베로나 출신 이탈리아 거장들의 사례를

미학의 기초로 삼고 있는 19세기 중반 역사화의 거의 모든 전형을 보여준다.

 

 

 

 

구스타브 쿠르베, <세느 강변의 처녀들(여름)>, 1856~1857년, 프티 팔레, 파리

1855년 이후 쿠르베의 작품은 '원형 상징주의' 에 가까워졌다.

허나 쿠루베를 시작으로 모더니티의 소재는 현실에서 취해지게 되었다.

 

 

 

 

에드가르 드가, <누벨 오를레앙(뉴올리언즈)의 목화구입 사무실 내부>, 

<목화 사무실>이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짐, 1873년, 보자르 미술관, 포

구성이 아주 대담한 이런 작업 장면의 재현은 영세산업이나 농부를 다룬 전통과는 무관하지만, 무역 상인인

드가 가족의 재현과 조합집단을 그린 초상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다. 또한 이 그림은 제2회 인상주의 전시회

에서 <누벨 오를레앙< 사무실 묘사> 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그의 삼촌은 앞쪽에 앉아 있다. 형 르네는

신문을 읽고 있으며, 또 다른 형 아쉴은 유리창에 몸을 기대고 있다.

 

 

 

 

 

오귀스트 루누아르, <보트 타는 사람들>, 일명 <강변에서의 점심식사>, 1879년경, 시카고 예술학교.

워싱턴의 필립스 컬렉션이 소장한 1880~1881년의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를 위한

첫 번째 구상으로 여겨지는 이 그림은 종종 위 소장품의 제목을 지니고 있지만 잘못된 것이다.

샤투(Chatou)에서 그려진 것이 분명한 이 작품은 일요일에 세느 강변에 놀러간 사람들의

여가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에두아르 마네, <통상의 경마>, 1864년, 시카고 예술학교.

20세기에 즐겨 취급되고 드가가 특별히 선호한 주제에

마네는 뛰어난 '파프레스토(fa pesto)' 기법을 더하고 있다.

 

 

 

 

프레데릭 바지유, <몸치장>, 1870년, 파브르 미술간, 몽펠리에.

바지유는  보불전쟁에서 29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피에르 보나르, <산책>, 1899년, 개인소장.

쿠르베 이후에 '미완성' 미학을 거치며 회화의 소재 자체는

종종 그 농도와 화려함을 자주 얻게 되었다.

 

 

 

 

에밀 앙투안 부르델, ,몽토방의 위대한 전사, 오른쪽 다리 습작>, 1897년 이후, 부르델 미술관, 파리

이 조각은 1870년  타르 네 가론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위한 기념물로 제작되어 1902년 설치되었다.

이 시기의 부르델은 사실주의를 버리고 거대한 형태와 큰 손 그리고 음각으로 인해 생기는

빛의 효과로 특징지어지는 인상주의 양식으로 작업했다.

 

 

 

 

좌) 빅토르 레노(1810~1878년), <사진기를 사용한 습작 206번>, 파리 국립도서관.

파리 근교 세브르 시이 가내수공업 경영자인 빅토르 레노는 귀스타브 르 그레, 앙리 르 세크, 샤를 마르빌,

그리고 외젠 퀴블리에와 더불어 '초기 사진작가'라고 불리는 그룹에 합류하여, 1850년을 중심으로 바르비종

유파와 유사한 경향의 작업활동을 했다.

우) 다겔타입(은판(銀板) 사진기). 프랑스 사진협회.

니엡스가 처음으로 사진을 발명한 뒤, 다게르는 다게로타입을 선보였다.

사진은 화가들의 시지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귀스타브 르 그레, <지중해 언덕>, 1856~1857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1849년을 시작으로 르 그레는 전기인상주의의 자연주의적 경향의 주제에 집착하여 퐁텔블로 숲의 나무들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1856년 12월 런던 그리고 1857년 파리에서 그는 <해양화> (실제로는 바닷가 습작)를

소개하며 열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작품은 파도의 움직임에 대한 인상에 구름이 잔뜩 낀 석양빛

하늘의 장중함을 결합하고 있다.

 

 

 

 

에드가르 드가,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1868~1869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1868년경 드가는 거의 매일 저녁 오페라를 드나들었다. 이 그림의 대담한 구성은 일본미술과 사진을 연상시킨다.

즉 오케스트라의 일부만이 등장하며, 인물들은 절단되었고, 연속적인 세 개의 층위로 구성된 평면의 전개(음악가

들과 관객을 구분하는 경계, 음악가가 차지한 공간, 강렬한 조명에 의해 발레복의 살랑거리는 소리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무희들의 물질화된 장면)는 그것이 어떤 장면인가보다는 장면의 본질 자체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방향을 두고 있는 시선을 느끼게 한다.

 

 

 

 

 

 

 

 

 

톨루즈 로트레크, <물랭가의 한 살롱에서>, 1894년, 툴루즈 로트레크 미술관,알비

근대 화가들이 선호한 유곽의 테마를 다룬 이 그림은 로트레크 역시 일본예술과 사진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한쪽의 빈 공간과 인물들로 가득 찬 또 다른 공간을 서로 분리 시키는 사선에 기초한 구도는

매우 뛰어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모습이 잘려나간 인물들은 이 그림이 삶의 한조각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림의 색채는 매우 생생하다.

 

 

 

 

구스타브 쿠르베, <목욕하는 여인들>, 1853년, 파브르 미술관, 몽펠리에.

살롱에서 스캔들을 일르킨 이 그림은 님프나 여신 혹은 쉬잔이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장면을 다룬

유럽의 전통을 따른다. 쿠르베는 자신이 작품에서 즐겨 다룬 이 두 여인의 신비스런 장면을 통해

나체화와 고전주의적 장식의 사실주의를 대위법적으로 서로 겹치게 하고 있다.

 

 

 

 

쥘리앙 발투 드 빌뇌브, <누드 에튀드>, 사진(종이에 음화), 1850년 이후, 파리 국립도서관.

쿠르베가 이 사진을 <아틀리에>의 나체여인을 위해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1853년 국립도서관에 납본된 이런 유형의 다른 사진들 역시 <목욕하는 여인들>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피에르 보나르, <어린 세탁부>, 1896년, 국립도서관 목판화실, 파리.

일본 미술에 관심을 지닌 제2세대 화가들은 호쿠사이나 우타마로의 음각이나

원근법이 배제된 과거의 목판화를 연구하고, 거기에서 총합의 교훈을 도출하였다.

 

 

 

 

제임스 맥 네일 휘슬러, <흰옷을 입은 젊은 처녀: 백색 심포니 2번>, 테이트 갤러리, 런던

휘슬러는 이본물품에 깊이 심취하여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포함시켰다.

루소, 마네, 모네, 드가와 더불어 그는 일본 판화에 매혹된 제1세대 화가에 속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알려진 일본판화는 서양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것들은 음각을 특출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 원근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리 카사트, <세면>, 1892년, 시카고 예술학교

드가의 친구인 이 미국인 역시 일상적인 실내 장면, 정확히는 세면 장면.

옷의 줄무늬로 강조된 사선, 공들인 배경 등에서 일본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본다.

 

 

 

 

톨루즈 로트레크, <여자 광대 차 우 카오, 물랭 루즈의 예술가>, 1895년경, 오르세 미술관,

파리 1890년대에 화가는 페르낭도 원형서커스장의 화려하면서도 우울한 매력에 관심을 가지고

서커스장의 여자 곡마사, 곡예사, 광대를 연구하였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여자 광대의

기름이 ㅂ만지르르하고 풍만한 실루엣을 그렸다.

 

 

 

 

에드가르 드가, <음악 카페>, 단쇄 판화와 파스텔, 1876~1877년경, 코르코란 예술 갤러리, 워싱턴

 

 

 

 

에드가르 드가, <욕조 안의 여인>, 마분지에 색연필, 1892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17세기 이래 프랑스의 예술론을 촉발시킨 우위론, 즉 회화에서 우선하는 것이 색채인가

드로잉인가라는 논쟁을 증명하는 드가는 당시 가장 뛰어난 드로잉 화가였고, 색연필로

그린 드로잉과 나아가서는 파스텔화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여, 나비파,

특히 보나르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조르주 미셀, <몽마르트르 근교에서>, 루브르 미술관, 파리

낭만주의 풍경화의 아버지인 미셀의 이 작품은 북유럽의 영향을 드러낸다.

주의를 끌 만한 것이 없는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색감과 빛의 격렬한 대조가 돋보인다.

 

 

 

 

장 바티스트 코로, <생 앙드레 앙 모르방>, 1842년, 루브르 미술관, 파리

용킨트는 코로를 '풍경화의 아버지' 로 취급하고 부댕은 그를 '하늘의 왕' 이라고 부르고 있다.

프랑스에서 유럽으로, 브르타뉴에서 네덜란드로, 프로방스나 모르방에서 스위스나 이탈리아로 끊임없이 여행한 코로는

자연의 시인이었다. 그는 색조에 미묘한 변화를 주면서 일종의 은총이 머무르는 잔잔한 분위기를 창조했다.

피사로와 베르트 모리조는 그의 맞수였다.

 

 

 

 

존 컨스터블, <라 스투르 풍경, 플랫포드의 물레방아>, 1817년, 테이트 갤러리, 런던

컨스터블의 그림은 진지한 감흥과 자발적 자연주의, 변화무쌍한 자연 장관으로부터

인상을 표현하려는 열망을 지녔다.

 

 

 

 

 

조지프 터너, <비, 증기, 속도, 위대한 서부>, 1844년, 런던 국립미술관

위대한 서부는 타미즈 계곡과 드봉 지역을 연결하였다. 1840년대 초, 시간당 150킬로미터의 속도를 내는 이 기차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 영국의 모든 지적 경향이 산업혁명에서 최후 종말의 서막을 발견하며 자연과 중세로

돌아 가기를 주장하던 시기에 터너는 기차와 속도를 좋아했다. 터너의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이 유화는

런던에 체류 중이던 모네와 피사로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테오도르 루소, <몽마르트르 평지에서 바라본 풍경, 폭풍우 인상>, 1850년경, 루브르 미술관, 파리

'프랑스의 뤼스다엘' 이라 불린 화가는 '우리의 예술은 진지함에 의해서만 감동적인 것에 도달할 수 있다' 고

말한 바 있다. 감동이 낭만주의로부터 남겨진 것인 반면, 자연 앞에서의 진지함은 새로운 태도라 할 수 있다.

 

 

 

 

 

 

 

 

 

에밀 루봉, ,걸어가는 소 떼들>세부, 1851년경, 그라네 미술관, 엑상 프로방스

루봉은 프로방스 유파의 진정한 시조이다. 뛰어난 초상화가인 그는 또한 대기 변화에 주의가 깊은

풍경화가이자 동물 초상화가였다. 색채의 대비, 쪽빛 하늘 그리고 회색과 황토색 대지의 대립으로

표현되는 그의 풍경은 유년기 세잔의 몇몇 작품과 유사하다.

 

 

 

 

클로드 모네, <개양귀비 언덕>, 1873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모네는 지극히 신선한 관점을 특징으로 삼는

소위 '아르장퇴이유' 라 불린 시기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알프레드 시슬레, <포르 마를뤼의 홍수>, 1876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시슬레는 <마를리의 슈닐 광장> 에서 볼 수 있듯이 본

질적으로 물과 구름에 비치는 하늘 빛의 효과에 집착했다.

 

 

 

 

 

알프레드 시슬레, <마를리의 슈닐 광장>, 1876년, 보자르 미술관, 루앙

 

 

 

 

 

클로드 모네, <생 라자르 역, 노르망디 행 기차>, 1877년, 시카고 예술학교

생 라자르 역을 그린 유일한 화가는 아니다. 그러나 마네와 카이보트는 유럽교에서 바라보는 역을 선호했다.

제3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소개된 이 그림의 일곱 편의 판본들에 대해 졸라는 다음의 유명한 말을 남기고 있다.

"달려가는 기차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넓은 차고 아래로 펼쳐져서 그득해지는 연기가 보인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그림이다. 그것은 이처럼 폭 넓은 현대적 틀 속에 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 무도회>, 1876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르누아르의 벗이자 연대기 작가인 조르주 리비에르에 따르면 '전적으로 즉석에서' 그려진 이 그림은

제3회 인상주의전시회 마지막 순간에 소개되었다. 카이보트가 이 작품을 구입했다. '물랭 드 라 갈레트' 는

주일의 여흥 장소였다. 그 흥겨움을 르누아르는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베르토 모리조, <나비 채집>, 1874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화가의 누이인 퐁티용 부인과 그의 딸들이 그려진 정원은 오베르 근교의 모르쿠르에서 그려졌다.

처음엔 도시화가였던 모리조는 1873년 모르쿠르 첫 번째 체류부터 전원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여류화가는 1874년 마네의 형과 결혼하고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가하였다.

 

 

 

 

실베스트로 레가, <라 페르골라>, 1868년, 피나코테카 디 브레라, 밀라노

<점심식사 후> 라는 제목으로 1868년에 전시된 이 유화는 화가의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순수주의의 엄격함과 빛 효과의 해석 사이에서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용 : 니콜 튀펠리 著 <19세기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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