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반 드 카펠레, <고요>, 1651년 이후, 예술박물관, 톨레도, 오하이오
바다 풍경화가인 카펠레는 무한한 바다와 하늘의 인상을 훌륭하게 나타내고 있다.
배가 있는 풍경은 대조적으로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고 있다.
근대성을 향해 가는 앵글로 색슨 예술
이니고 존스, 팔라디엥 다리, 월튼하우스 공원, 월트셔.
존스는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배울 수있었던 세를리오와 팔라디오의 관념에서 영감을 얻어
고전적인 엄밀함을 되살리고 있다. 그는 이렇게 여전히 유행하던 튜더 양식가 단절하게 된다.
크리스토퍼 렌, 세인트 폴 성당 정면, 1675~1702년, 런던.
걸작품인 이 성당은 로마 산 피에트로 성당의 회랑과 파리 앵발리드의 원형 지붕을 떠올리게 한다.
장식 요소가 있는 구조적인 선들의 완벽한 명확성과 완벽하게 정제된 고대 건축술을 재도입한 사실은
신고전주의의 도래를 예견하고 있다. 반면 공중에 높이 선 두 종탑의 모습은 바로크 예술의 마지막 반영처럼 보인다.
앙투안 반 다이크, <영국왕 샤를르 1세의 초상화>, 1638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1632년 영국 궁정에 도착한 반 다이크는 세인트 제임스에서 '황제와 황후의 일상적인
주요 화가'가 되었고, 왕과 왕실 가족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이 작품에서는
샤를르 1세가 신사적이면서도 권위적인 태도로 사냥에서 돌아온 모습을 그렸다.
니콜로 살비, 트레비 분수, 1732~1762년, 로마.
베르냉의 트레비 분수 계획이 완성되지 못했더라면, 살비의 영감(靈感) 역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안토니오 갈리-비비에나, 과학 극장, 만토바
극장 건축과 장식으로 유명한 집안 출시인 안토니오 갈리-비비에나는 여기에서 배우들의 공간과 관람객들의 공간이
상호 작용하고 있는 조화로운 앙상블을 창조하고 있다. 무대와 마찬가지로 건축적인 손질이 가해진 관람석 역시
건축의 일부분이다.
안토니오 카날, 일명 카날레토, <베네치아의 지우데카 운하와 대운하>
카날레토는 로마의 반비텔리처럼 자신의 작품 속에 베네치아의 실질적인 모습을 표현하였다.
빛에 대한 그의 연구는 정확성을 가지고 세세한 모습까지 실제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곤돌라 뱃사공들과 저 멀리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있는 대운하의 풍경은 이탈이아에서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던 화가의 시적 언어를 나타내주는 것이다.
프란체스코 구아르디, <바다에서 바라본 도기 궁전>, 루브르 박물관, 파리
화가는 진주빛 호수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천 가지 모습, 축제, 환희, 혹은 사람들의 행렬 등을 나타내고 있다.
뛰어난 기교의 붓놀림으로 건물들은 안개 속에 용해되거나 태양 아래 빛나고 있다. 구아르디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을 포착하는 시인이다.
지암바티스타 티에폴로, <이파게니아의 희생> 1775년, 비상스 근처의 발마라나 저택
선명하고 밝은 색깔과 사실적으로 그려진 드넓은 건축물에 대한 취향을 베로네세로부터 차용해온, 티에폴로는
유럽의 명성에 걸맞은 모든 인물들을 환상적이며 기품 있게 보여주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알레산드로 마냐스코, <고문실 혹은 종교재팑>, 세밀화, 보자르 미술관, 부타페스트
마냐스코는 매우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에는 수도승, 유랑자, 자신들을 꼭두각시처럼 만들어버리는
할 수 없는 히미이나 열에 들뜬 움직임에 의해 살아 있는 듯한 고문을 받고있는 죄수 등이 등장하여 공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점차 색깔을 없애면서 이러한 기이한 장면들을 일종으 명암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냐스코는 신랄한
반복으로 그 잔혹성을 세세히 드러내어 비참한 사건들에 환상적인 특징을 부여하는데, 이러한 특징은 명암법에 의해서
강조되고 있다.
요한 피셔 폰 에를라호, 생 샤를르 보로메 성당의 천장, 1716~1729년, 비엔나
비엔나의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들 중 가장 중요한 성당이다. 1713년 페스트가 창궐할 당시에 축원을
행하기 위해 샤를르 6세가 세운 중앙부분은 회랑으로 이루어진 정면 돌출부와 연결되어 있고, 중앙 홀을 덮고
있는거대한 타원형 천장이 있다. 이 천장은 두 개의 원주로 돌러사여 있으며, 천장을 둘러싼 원주는
폰 에르라흐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고대 로마의 양식을 본딴 것이다.
아드몽의 베네딕트파 수도원 도서관, 1779년 오스트리아
이 도서관은 바로크 시대의 장식이 특히 화려한 넓은 방으로, 바르톨로메오 알토몬테의 프레스코화로 장식하였다.
알텐베르크 장관실의 도서관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의 책꽂이에는
풍부하고 호화로운 장식에 비해 너무 작아서 마치 묻혀있는 듯 보인다.
발타자르 노이만, 브뤼홀 성의 중앙 계단, 1743~1748년, 독일
어떤 곳에서도 계단을 '트레펜하우스' 라고 부르는 독일마큼 화려한 계단은 찾아볼 수 없다.
화장 벽토, 기둥, 여인상 기둥과 흔히 대형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는 독일의 계단들은, 노이만의 걸작품인
브뤼홀의 중앙 계단처럼 방문자들로 하여금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독일에서 계단은 특히
상승의 테마다. 계단을 올라감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더 놀라게 된다. 티에폴로가 장식한 노이만의 또 다른
걸작품인 뷔르츠부르크의 계단처럼 브뤼홀의 계단은 이 상상적인 공간에 매료되도록 사람들을 인도한다.
요한 미카엘 피셔, 오토뵈렌 수도원의 예배당, 슈바벤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표시 아래 위치한 이 베네딕트파 예배당은 1737년에서 1760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독일
남부에서 바로크 예술을 궁극적으로 나타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천상의 인물들이 맴돌고 있는 모습을 통해
신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다. 입체적인 구성, 빛의 배치, 환희, 그리고 색깔이 들어간 장식의 호화로움 등 모든 것은
이 신전을 천상에 이르는 문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샤를르 드 라 포스, <음악가 천사들에 둘러싸여 그리스도에게 무기를 보여주고 있는 성 루이>, 앵발리드의 왕실 천장화, 1702~1704년, 파리
'푸생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색채 화가와 데생 옹호자, 그리고 '루벤스주의자들' 의 수장인 라 포스는 루이 14세 치하의
위대한 장식가 중 한 명이다. 루이 14세는 앵발리드가 조금 더 넓게 창공을 향하여 열릴 수 있도록 라 포스에게 천장화
를 '시원하게' 그리라고 요구하였다. 뛰어난 솜씨와 색조의 풍부함이 발휘된 이 작품은 매우 기독교적이었던 성 루이가
항상 종교를 위해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던 무기들을 받아들이고 이쓴 그리스도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제르맹 보프랑, 수비즈 호텔의 타원형 거실, 국립 고문서관, 1732~1739년, 파리
파리의 많은 호텔을 건축한 보프랑으 마레 지역에 있는 수비즈 호텔에서 들라메르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거실은 나투아르의 그림 8점으로 장식되어 있고, 금색과 흰색을 사용한 로카이유 양식 세공의 걸작품이다.
이아생트 리고, <바젤의 기사 루카스 쇼의 초상화>, 1722년, 쿤스트 미술관, 바젤
리고는 언제나 자신의 전문 분야였던 화려하고 선명한 초상화를 즐겨 그렸다.
리고가 그린 얼굴은 페로노나 사르뎅의 경우처럼 영혼의 반향이라기 보다는, 연극에서
이따금 이루어지는 진정한 연출처럼 뛰어나거나 매혹적이거나 혹은 유명한 개성의 표현이다.
앙투안 와토, <카테라 섬에서의 순례 여행>, 1717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1712년 와토가 왕립 아카데미에서 이정받았을 때, 장차 와토의 동료가 될 사람들은 '입회 작품'에 대한
선택 그의 재량에 맡겼다. 5년이 지나서야 와토는 예전에 <키테라 섬 상륙> 이라고 불리던 <키테라 섬에서의
순례 여행>으로 왕립 아카데미에 받아들여졌다. 이 작품은 '우아한 연회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다.
이곳에서느 처녀들과 젊은이들이 멋지게 장식된 가을의 공원에서 망설임이나 비밀, 초조함, 혹은 기다림의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이 사랑의 섬에 대한 테마는 이미 여러차례 와토의 관심을 끌었다. 와토는 작품에
사랑에 대한 희망이나 추억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키테라 섬을 향한 출발뿐만 아니라
귀환도 나타내고 있으며, 정지인 동시에 행동이고, 찰나인 동시에 영원을 표상하고 있다.
샤를르 드 라 포스, <물에서 건져진 모세>, 1700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베르사유 궁의 왕자를 위한 거처에 걸린 이 작품은 같은 주제로 그려진 푸생의 두 작품을 대체하였다.
작품을 보면 성서에 등장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유쾌한 수다떨기 같은 일상적인 인상을 준다. 조명에 대한
연구, 파란색과 노란색의 조화, 당대의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의 움직임 등은 이 작품을 루벤스와 베로네즈보다
두 세대 후로 위치시켜 놓고 있다. 랴를르 드 라 포스는 데생 옹호자 혹은 후생주의자와 색채 옹호주의자들을
대립시키며 고전주의자와 근대주의자들 사이에 일어났던 분쟁에서 루벤스주의자의 수장 중 한 명이었다.
니콜라 랑크레, <인생의 세대들 : 어린 시절>, 1735년 이전, 국립 갤러리, 런던
<어린 시절>, <사춘기>, <청년기>, 그리고 <노년기> 라는 네 작품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1735년 7월 30일에는
N, 드 라르메생이 자신이 제작한 판화 원판 8점을 아카데미에 기증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미술품 수집가들이 소장
하고 있는 장식적인 시리즈를 연속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능숙했던 랑트레의 재능의 다양성과 능란함을 보여 준다.
와토의 계승자이자 '우아한 연회들' 의 신비한 은총과 시(詩)를 따른 랑크레에게는 스승이 가지고 있던 재능은 없었다.
그는 사실주의자였으며, 그에게 '우아한 연회' 는 환상과 상상의 창조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취향과 관습이 반영된
실생활과 가까운 것이었다. 랑크레는 일반적으로 매력이 넘치는 작품 속의 인물들을 생생한 현실에 기초해서 그렸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대단한 깊이나 혹은 도덕적이거나 정신적인 교훈은 찾기 어렵다.
인도 골콩드의 왕을 위해 뒤플렉스가 주문한 천지창조 추시계,
1754년, 베르사유 국립 미술관
이 추시계는 실용적인 물건이라기보다는 로카이유 양식을 암시하고 있는
예술품으로서, 18세기의 뛰어난 금은세공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팔코네(E.), <목욕하는 여자>, 대리석 조각, 루브르 박물관, 파리
이 여인의 섬세한 모습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18세기의 정숙한 우아함이고,
이것은 세브르 도자기 공장의 초벌구이 도자(陶瓷)가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수아 부셰, <비너스의 화장>, 1746년, 국립 미술관, 스톡홀름
이 주제는 부셰가 희한하게 자주 취급한 것이었다. '아기자기한 기교' 와 로코코 양식의 취향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을 비꼬았다. 이들은 퐁파두르 부인의 총애를 받은 부셰의 작품에 나오는 황금색의 포동포동한 피부를 가진
인물들과 아기 천사들. 작품을 위해 사용된 비싼 재료들, 그리고 금도금 등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 테마는
부셰가 비너스의 승리와 함께 서로 짝을 이루어 자주 그린 것으로, 두 작품 모두 그의 신화적인 영감을 나타내주고
있다. 서명이 있고 날짜가 매겨진 스톡홀름에 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넓고 화려한 옷주름을 많이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내밀한 장면, 규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이는 이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일치하는 것으로, 유명한 예술품 수집가이자 스웨덴 건축가인 칼 할르만이 프랑스 화가들에게 주문한 문의 6개의
상부 장식 중 하나다. <비너스의 화장>은 부세에게 우연히 들어온 주문이었다. 부셰는 스웨덴인드로가의 관계에서
항상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 작품의 대금만도 500파운드였다.
장 루이 데프레, <폼페이. 이시스 신전>, '생 농의 시칠리아 섬과 나폴리 회화 여행' 을 위한 데생.
1777~1778년 장식 예술 도서관, 파리
이시스 신전과 검투사 숙소, 그리고 두 곳의 극장 발굴 작업이 시작된 것은 1765년부터였다.
조각사가 데프레는 1777년부터 로마에서 프라고나르와 위베르 로베르의 친구인 생 농의 수도원장 리샤르의
'생 농의 시칠리아섬과 나폴리 회화 여행' 에 밀접하게 참여하고 있었다. 1781부터 1786년까지 4권으로 출판된
이 작품집에는 헤르쿨라눔과 폼페이의 여러 풍경들을 그린 데프레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니콜라(흔히 빅토르) 루이, 보르도 시립 극장의 정면 계단, 1773~1780년.
중앙 홀의 내부 공간은 보통 궁전 외면에 사용되는 건축술에 따라 만들어진다.
이로 인해 이 계단은 육중하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자크 드니 앙투안, 파리 조폐국 중앙 계단, 1768~1775년.
1768년 앙투안이 조폐국을 짓기 위한 콩쿠르에 응모했을 당시 그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다.
콩쿠르에 당선된 그는 루이 14세 양식의 거대하 주랑을 배제하면서 이 웅장한 중앙 계단에서 조화로운 단순성이
나타나는 건물을 지었다. 이 계단은 이중의 개혁을 의미하며, 엮음 장식이 조각되어 있는 멋진 난간으로
가장자리가 둘러쳐져 있다. 세로홈이 파여진 이오니아식 기둥은 계단에 리듬을 부여하고 있다.
장 프랑수아 외벤과 장 앙리 지즈너, 루이 15세의 책상, 1760~1769년, 베르사유 궁 국립 박물관.
정교한 이 책상은 곡선과 둥근 각만을 사용한 모양과
풍부한 금도금 청동 장식이 주목을 끄는 작품이다.
장 라무르, 당시의 광장에 있는 철책문
1728년, 바르와 로렌 공국의 소유주이자 폴란드의 왕인 스타니스라스 레슈친스키의 집권 하에서
각 모퉁이마다 풍부한 로코코 양식으로 장식한 철책문이 있는 넓은 직사각형 광장이 낭시에 등장하였다.
이 광장의 철책문은 철물 제조인 장 라무르의 작품으로 조각가 바르텔레미 기발의 작품이 있는
분수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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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세브르 공장,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초벌구이 도자, 18세기, 장식 예술 미술관, 파리
우) 조셉 하농, 스트라스부르크의 도자기 접시, 도자기 박물관, 세브르
피에르 필립 토미르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색다른 장식의 꽃병 한 쌍,
경자기와 청동, 1780년, 도자기 박물관, 세브르.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금속을 닦는 여자>, 1738년, 헌트리안 미술관, 글래스고 대학.
정물화의 대가 샤르댕은 일상 노동의 겸허한 시(詩)를 훌륭하게 표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계획된 등장인물의 단순성은 그가 자주 비판받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대단한 인기를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장 바티스트 피갈, 작센 지방 원수(元帥)의 무덤, 부분, 1777년, 생 토마 성당, 스트라스부르크.
퐁파두르 부인이 총애하던 피같은 작품 구성에서 사실주의와 과학을 접목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위베르 로베르, <노트르담 다리와 퐁토샹즈에 있는 건물의 철거>, 1786~1787년, 카르나발레 미술관, 파리
위베르 로베르는 1770년부터 더 이상 풍경, 정원, 동굴, 공장 등을 다루지 않고 파리의 거리 풍경을 즐겨 그렸다.
이것은 현실과 상상을 섞어가며 도시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환기시키는 시사 리포터 같은 것으로, 미술계에서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그림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자신이 만들어낸
장면이나 인물을 첨가하면서 실제 사건과는 조금 다르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에게 진실은 삶 속에 있다.
장 바티스트 그뢰즈, <농촌 약혼녀>, 1761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공증인 앞에서 혼인계약서를 작성하던 '결혼 서약' 의식을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은 1761년의 미술 전람회에서
즉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 그림에서는 부르고뉴 사람인 그뢰즈가 이 지방에서 이런 종류의 의식에 참여한 것이
틀림없음을 나타내 주는 생생한 묘사의 풍부함, 서술적인 특징, 그릭 단순한 삶과 자연, 유행으로 복귀하고 싶은
감정과 잘 어우러진 소박한 감각성 등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에 매료된 디드로는 미술 전람회 관람평을 길게 썼고,
민감한 감정의 토로와 좋은 관습을 찬미하고 있다. 이 작품이 불러일으킨 반향은 그뢰즈의 작품
전체에 까지 파급되었고, 이러한 명성은 많은 화가들이 그의 작품을 복사하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
이 작품은 왕실 영선국장이던 마리나에게 팔렸다가, 1782년 루이 16세에게 팔렸다.
프란시스코 드 고야, <카르피오 백작 부인으 초상화>, 솔라나 공작부인,
1792년 이전 작품, 세밀화, 루브르 박물관, 파리.
이 스페인 귀ㅣ부인의 가냘픈 실루엣은 마치 유령처럼 검은 눈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몽상에서
깨어나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작품은 고야가 청각을 잃어버리기 전에 그린 가장 주목할만한
초상화 중 하나다. 백작부인은 1795년에 사망한다.
로베르 아담, 에전의 코톨드 학교였던 흠 하우스의 원형 계단, 1775년, 런던.
이니고 존스에 이어 아담 형제는 그리스와 로마 예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기반으로한 건축 양식을
구상하였다. 이곳은 그 결실의 하나로 은은한 색깔로 강조된 단순한 입체감이 잘 나타나 있다.
게인즈버러, <화가와 그의 부인인 마가레트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초상화>,
1746~1747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게인즈버러는 1746년 마가레트와 결혼했다. 그녀를 향하고 있는 그는 이미 낭만을 풍기며 약간은
솜처럼 물렁한 느낌을 주는 풍경을 배경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멀리 히멘 사원이 보인다.
우아한 붓놀림은 색채의 생생함이나'순간성' 의 매력과 잘 어우러져 있다.
윌리어 호가스, <'배가의 오페라' 중 한 장면>, 1729년, 테이트 갤러리, 런던.
1728년에 상연된 존 개이의 <부랑자들의 오페라>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이 작품은 영국에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고
오페라 만큼이나 성공을 거두었다. 호가스는 적어도 이 작푸의 두 개의 이본(異本)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에 그려진
장면은 교도소에서 쇠사슬에 묶인 부랑자들의 우두머리 마키스 대위를 나타내고 있다. 그의 정부인 폴리와 루시는
각각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를 풀어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마키스는 특히 폴리 패첨을 쳐다보고 있는데, 이 역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재능까지 겸비한 유명한 여배우 라미니아 펜톤이 맡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호가스는
사법관과 간수들을 비난하고 있다.
레이놀즈, <비브롤터 총독인 헤스필드 경의 초상화>, 1787년, 국립 갤러리, 런던.
이론가이며 영국 학파의 우두머리인 조슈아 레이놀즈는
루벤스에게서 이어받은 따뜻한 색조를 강조하였다.
<시돈즈 부인의 초상화>, 1785년, 국립 갤러리, 런던.
포즈의 단순함에서 게인즈버러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레이놀즈가 완전히 연극적인 방식으로 유명한 연극배우 사라 시돈즈를 '비극의 뮤즈' 로 그린
초상화와 비교해 본다며 게인즈버러의 특징을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 <연민>, 1795년경, 테이트 갤러리, 런던.
그리고 연민, 천상의 지품천신(智品天神) 처럼, 공기를 가르는 눈 먼 준마에 올라타고 있는...." 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있는 시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수채화 기법이 두드러지는 이 채색 판화는 환상이 깃든 블레이크의
정신과 서정적인 상상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자기 동생의 영혼이 제안한 것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
하고 있다. 판화라는 형식은 그의 생각에는 그림보다 더욱 예술에 들어맞는 것이었다. "나는 허울뿐인 표면을 없애고
그것이 가리고 있는 무한을 나타내기 위하여 지옥에서는 위안이며 치료제인 부식제를 사용할 것이다" 고 블레이크는
단언하고 있다. 판화는 좀더 편리하고 수익이 많은 방식으로 그의 생각을 보급할 수 있는 기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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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신고전주의 양식 의자
세로홈을 판 다리아 칠현금 모양을 모티브로 한 장식 요소의 사용과
선(線)의 단순성은 이 양식을 특징짓는 것이다.
우) 안토니오 카노바, <목욕을 마친 비너스>, 1812년, 피티 궁전, 피렌체.
요셉 마리 비앵, <사랑을 파는 여자 상인>, 1763년, 퐁텐블로 성 미술관.
디드로가 경탄한 이 작품은 헤르쿨라눔 미술에서 영감을 얻어 1763년 미술 전람회에 출품된 것이다.
이 작품은 매우 일화적임에도 진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고대로의 귀환은 이러한 승리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따랏 이 작품은 부셰의 영향으로 타락한 궁정 예술의 특징인 '아기자기한 기교' 에 대항하여 진실과 정직의
모델처럼 여겨졌다. 비앵이 방문했던 헤르쿨라눔과 폼페이 발굴 현장은 고대의 재발견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 <구걸하고 있는 벨리재르>, 1781년, 보자르 미술관, 릴.
과거에는 영광을 누렸지만 눈멀고 걸인이 된 늙은 군인을 다룬 주제는 1767년에 마르몬텔의 소설이 출판된 이후에
대중적인 것이 되었다. 예전 그의 부하 중 한 명이 그를 알아보고는 놀라움과 연민에 할 말을 잃고 멈춰 섰다는 단순
한 일화에 다비드는 감정의 표현과 도덕적인 효과 속에서 극적인 위대함을 뚜렷이 부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최초의 '감성적인' 신고전주의 그림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1784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이 작품에서 다비드는 국가에 대한 의무를이행하는 개인의 자발적인 희생을 찬양하며, 로마 역사상 유명한 일화에
시간을 초월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천에 그려진 구성과 앞부분에 쏠린 무게감, 그리고 간소한 색채의 효과는
석관을 장식하는 얕은 돋을새김에 그려진 이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요소다.
인용: 피에르 카반느 著 · 정숙현 옮김 <라루스 서양미술사 III 고전주의와 바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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