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프, <추상 꽃>, 12924, 캔버스에 유채
꽃이나 식물, 해골, 조개 등의 각 부분을 확대하거나 클로즈업시키는 생물형태적인 오키프의 작품에서
평론가들은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 섹슈얼리티가 어우러진 여성상에 주목한다.
르누아르, <파리지엔>, 1874, 캔버스에 유채
푸른색이 주는 이미지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루누아르는 이 작품에 세상 모든 푸른빛을 결집시켜 놓은 듯하다.
모델의 영롱한 눈빛은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아름답고 들여다보일 듯이 초롱초롱 살아 있지만
눈망울에는 푸른 눈물이 감돈다. 그 무슨 슬픔이 담겨 있기에 이토록 푸른 것일까?
드가, <압생트>, 1876, 캔버스에 유채
하얀 레이스가 달린 정장에 모자까지 제법 차려 입었지만 그녀는 몹시 초라해 보인다.
산만한 여인의 처진 눈꺼풀이 시선을 잡아 끈다. 그녀의 무표정에는 무언가
절절히 들려주고픈 사연이 서린 것만 같다.
렘피카, <부가티를 탄 타마라>925, 목판에 유채
렘피카 최고의 걸작인 자화상으로 부가티를 탄 모습이다.
부가티라면 오늘날에도 세계 최고 성능에다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드림카가 아닌가?
육욕과 열정의 시대를 살다간 자동차 시대의 여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염없이 나른한 눈매로 노려보는 여인의 현혹적이지만 독립적인 이중성은
렘피카 자신의 드라마틱한 생의 반영일 터.
렘피카, <네 명의 누드 그룹. 1925, 캔버스에 유채
렘피카는 사실 그녀의 작업보다도 그레타 가르보를 연상시키는 현란한 외모로 더 유명했다.
1970년대 재평가된 그녀가 창조한 여성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현대적이고 감미롭다.
렘피카, <초션실주의자의 손> 1960년대, 캔버스에 유채
1960년대 이후에는 나이프(spatula)를 이용해 추상미술로 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유해는 그녀의 소원대로 포포카테페틀 산 분화구에 뿌려졌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620, 캔버스에 유채
문예부흥으로 촉발된 예술가들의 신분 상승은 남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여자가 직업 화가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역사상 최초의 여성 화가로 기록된 인물은 어려움을 처절하게
체험한 17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젤틸레스키다.
카라바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598~99, 캔버스에 유채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로 젊고 부유한 과부 유디트는 아시리아 군대에 의해 자신의 도시 베툴리아가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아름답게 치장하고는 하녀를 데리고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가 그를 유혹한다. 단둘이 남게 된 그녀는
네스의 목을 베어가지고 하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베툴리아 도성 벽에 매달았다.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유디트의 이야기는 애국의 표본으로 수 많은 작가들에 의해 무수히 그려졌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디트와 하녀> 1612, 캔버스에 유채
유디트 드라마의 두번째 장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하녀의 허리춤에 들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이 담긴 바구니에서 승전의 길이 보인다.
바구니에서는 아직 식지 않은 폴로페르네스의 뜨거운 피가 떨어진다.
카우프만, <음악과 미술 사이에서 주저하는 자화상> 1775, 캔버스에 유채
가운데 젊은 알겔리카는 악보를 펼쳐 들고 차분하게 앉아 있는 여인 '음악'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카우프만은 음악과 미술에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음악이 아무리
알겔리카의 손을 끌어 당겨도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그녀의 몸은 이미 '붓과 팔레트' 를 향하고 있다.
그려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게다가 '미술'은 앞으로 올라가야 할 저 높고
험준한 산을 가리키며 갈 길을 재촉하지 않는가.
좌) 발라동, <자화상> (52세), 1917. 우) 모델을 서고 있는 젊은날의 발라동
발라동, <가슴을 드러낸 자화상> (66세) 캔버스에 유채
"예술은 우리가 증오하는 삶을 영원하게 하는 것" 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발라동이 인습과 통념에
냉소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녀는 사치와 도전과 변덕을 일삼았으며, 말년에는 자신의 아들 친구와
로맨스를 벌여 자신의 삶을 방종하게 장식했다. 그림 속 여자는 모든 애증을 넘어선 표정으로
늙어버린 자신을, 현재의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오를랑, <자기 교배, 콜롬버스 발견 이전> no. 1.2.13.26(왼쪽 위 아래 오른쪽 위 아래 순)
1998, 디지털 이미지 합성에 시바크롬 인화.
오를랑은 자신의 이름 앞에 '성녀'라는 수식어를 붙이고는
"나는 내 몸을 예술에 바쳤다" 고 술회했다. 세인들의 비판과 관심 속에 엄청난 논쟁거리가 된
그녀의 퍼포먼스는그를 '성형수술을 예술적인 퍼포먼스로 승화시킨 육체예술의 창시자이자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샤르댕, <식전의 감사기도>, 1739, 캔버스에 유채
샤르댕, <부엌 하녀> 1738, 캔버스에 유채
로코코 시대의 화려함과 달리 샤르댕은 평생 단정한 침묵 속에서
조용한 사물들의 진실한 모습을 그려냈다.
이암, <모견도> 종이에 수묵담채
실록에서 두성령 이암을 두고 '선화' 라고 했을 정도니 그림을 아주 잘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증손으로 그는 종실 출신임에도 영모도 등 장식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암,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16세기 중엽, 종이에 채색
클림트, <희망 1>, 1904, 캔버스에 유채
클림트의 여인은 언제나 반역을 꿈꾼다.
검은색 바탕 위에 임신한 여인의 모습은 어딘지 창백한 느낌이다.
이 작품의 배경에는 '미치 치머만' 이라는 한 여성이 있다. 한 때 클림트의 모델이었으며
그의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고 애정어린 보살핌을 가장 많이 받은 적극적인
연인이기도 했으나 결코 결혼할 수 없는 상대였다.
클림트, <삶과 죽음> 1908~11(1915~16 개작) 캔버스에 유채
클림트 특유의 양식인 인간 기둥이 죽음과 대면하고 있다.
거대한 기둥 안에는 갓 태어난 생명부터 어린 소녀, 처녀, 어머니, 중년 여성,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까지 서로 뒤엉켜 한 몸을 이룬다. 죽음의 방망이를 막 휘두르려는 죽음 앞에서 고통 보다는
희열이 보이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죽음이란 시간이 기다리기에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일까
케테 콜비츠, <자화상> 1934, 석판화
열렬한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며 예술과 생애를 모두 독일의 '프롤레타리아 회화와 반전화(反戰畵)
작업에 바친 케테 콜비츠는 '여성으로서는 유일한 신예술 판화가' '사회민주주의의 선전가' 또는 '비탄과
고난을 형상화한 화가' '종교적 예술가의 한 사람' 이라고 평가받는 등 오늘날까지 찬사가 이어진다.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화면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콜비츠의 자화상에는 슬픔이 화면을 지배한다.
마군후, <촌녀채종>, 1851년경, 종이에 채색
조선 후기 인물인 마군후는 생애는 물론 가게에 대해서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료 발굴이 좀 더 진행된다면 영모화와 풍속화에서 주목해야 할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림 속 풍경 모두 다 참 자연스럽다. 밝은 느낌이 화면에 가득한 것은
따뜻한 모성애가 느껴지기 때문.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51, 목판에 유채
피카소는 정치와 현실에 절대 냉담하지 않았다. 이 그림은 한국전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단색화에 가깝지만 그러한 배색에 죽음이라는 공포가 뒤섞여 오히려 처절하고 비극적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 현대사에 깊은 파장과 상흔을 남긴 한국전쟁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비판적 예술작품은 극히 드물다.
리하르트 치글러, <젊은 미망인>, 1922, 캔버스에 유채
아마도 남편의 장례식을 막 치르고 돌아온 여성으로 보인다.
그녀는 지금 슬퍼할 겨를도 없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홀로 남겨진 자기 자신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민생고가 놓여 있을 뿐이다. 전쟁이 망가뜨린 자신의 삶을 추스르기 위해
그녀는 도시의 밤거리로 향해야만 할 것이다.
폴 델보, <보름달빛 아래의 요부> 1940, 목판에 유채
가난한데다 열네 살 되던 해 어머니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등
마그리트의 기억은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인생의 허무를 죄짚는 애조 띤 비논리와 수수께끼 같은 환상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혼란한 꿈속에 담긴 잠재의식의 표현은 20세기 초 당시 현실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플랙, <마릴린> (바니타스), 1977,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여성 작가 오드리 플랙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삶에 대한 허무감을 표현하는 정물화)라는 엄숙한
주제 속에서 먼로를 다루고 있다. 마치 사진을 그대로 보는 듯한 포토리얼리즘 기법으로 2미터가 넘는
큰 스케일의 화면에 드라마틱한 소재들을 매우 꼼꼼하게 확대해놓았다. 사진 속 먼로는 청순하다 못해
그저 순진무구하다. 금발의 고혹적인 미소로 세계를 지배한 '섹스 어필'은 카메라와 대중매체가
인공적으로부풀려 놓은 공허한 이미지일 뿐이다.
셔먼, 무제, 1989, 컬러 사진.
중세 이콘화의 성모 마리아처럼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인 분장의 컬러 셀프코트레이트다.
큰 스케일이 주는 중압감은 중세 성모상을 볼 때처럼 권위적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식의 성모상과는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그녀의 가슴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물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임을 강
조 하는 듯하다. 성모상의 모티브를 차용했지만 바로 그 이미지에 도전하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성스러운 표정 밑에는 유혹하는 여성, 요부가 숨어 있다. 여성의 이미지가 혼란스럽다.
바로 팝가수 마돈나의 전략 아닌가.
장 푸케, <마돈나와 아기예수>, 멜런 두폭화 가운데 왼쪽 그림, 1450, 목판에 템페라
천상의 여왕임에도 불구하고 코르셋으로 단단히 조인 잘록한 허리에 드레스 앞여밈을 헤치고 노출시킨
풍만한 가슴의 15세기 성모는 세속의 여인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마돈나의 실제 모델은 사를 7세의 연인이었던
아녜스 소렐(푸케의 첫 후원자였던 기사와도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이라는 풍문이 이를 더욱 실감 나게 한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천사들, 그리고 북유럽 양식의 정교하고 현실적인 장식과 세부묘사가 굉장히 감각적이다.
레제, <아침식사>, 1921년, 캔버스에 유채
20세기 초 절정에 달했던 산업시대의 가공한 만한 힘은 인류를 근육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몸' 이란 '정신' 이 배제된 '기계' 로만 평가된다.
그러나 현대는 인간을 거꾸로 기계 또는 물체로 보는 기계시대 미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르네상스의 고전적인 비너스 상은 바로 우리 시대의 마네킹인 것이다.
저자는 "이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여자임이 즐거웠다" 라는 에필로그로 내용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 대저 미술에 대한 느긋한 감상이 그저 즐겁기만...
인용: 정은미 著 <화가는 왜 여자를 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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