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드도 다 빈치. <리타의 성모>. 1490년
장 레옹. <아레오파고스 앞에 선 프리네>. 1861
알폰소 산체스 코엘로. <발루아의 엘리자벳>. 1565
오귀스트 로댕. <다나이드>. 1885
카바넬. <비너스의 탄생>. 1863
마네. <올랭피아>. 1863
1863년 같은 해에 발표된 위 두 점의 누드화가 나란히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 여인은 그 해의 누드로 꼽히며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구입되어 궁정 생활의 온갖 화려한 영예를 누린 반면,
다른 한 여인은 온갖 욕설과 비난 속에 평생 화가의 집에 쳐박혀 있어야 했다, 이윤 즉, 너무 '퇴폐적'이어서 라고.
과연 어느 쪽이 진정 '퇴폐적'이라는 것일까?
핑크빛 살결에 뇌쇄적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카바넬(Alexandrc Cabanel)의 <비너스의 탄생> 일 거라는
보통의 예상과 달리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83) 의 <올랭피아> 가
바로 그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사실.
카바넬의 비너스 같은 여인들이 시대를 풍미하던 프랑스 제2제정 당시를 상기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문제의 살롱전에 마네가 이 작품을 출품했을 때 보수적 비평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로 부터도 전통을 무시한
'저질' 이라는 비난 가운데 당사자인 마네는 에스파냐로 줄행랑을 쳤을 정도였다고.
게릴라 걸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벌거벗어야 하는가>
1989. 사진 석판인쇄.
마네가 활동하던 당시엔 매춘부 계층의 여자가 누드 모델에 등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정직하고자 했던 마네의 정신은 근현대 미술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는 사실.
고릴라 가면을 쓰고 공격적인 쉬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미술 모임 게릴라 걸스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근대미술 부문에 여성 작가들이 작품은 5% 밖에 걸려 있지 않은 반면,
이 미술관에 소장된 누드화의 경우 85%가 여성이다" 라는 점을 비판한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안토니오 카노바. <아모르와 프시케>, 1787~93, 대리석
<가브리엘 데스트레 자매의 수상한 몸짓>
작자 미상, 16세기 후반 퐁텐블로파 화가, 1590년 경, 목판 위에 유채.
지난 1천 년 간 미술 작품 속에서 여성들은 대부분 어머니로, 여신으로, 그리고 성적인 대상으로 그려졌다.
예술도 권력과 무관치 않다. 그것은 그림 속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림 속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남성들의 시선, 구체적으로는 그림 소유자의 시선을 철저하게 의식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 이전 서양회화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의 핵심이라는 사실.
루벤스,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 연작 가운데 <마르세유 상륙>
1622~25,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역사상 호색한으로 유명한 앙리 4세의 취향에 부응하듯, 충직한 화가는 두 여인의 누드에
'정숙함' 이라는 비상구를 설치해놓았다. '보여짐'(display0, 이것이 이 그림을 해석하는 열쇠라고.
한 순간 젖혀진 커튼 사이로 순종적인 여인들이 드러난다. 나체의 자신들을 주시하는 감상자를 오히려
정면으로 바라보는 두 여인은, 그러나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과 그림을 소유한 이의 감정이나 욕망에 대한 복종을 보여줄 뿐.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캔버스에 유채
벨라스케스, <화장하는 비너스>, 1644~48년경, 캔버스에 유채
화장품을 뜻하는 cosmetics는 희랍어 코스메티코스(kos-meticos)에 근원을 두고 있으니, 이에 비추어볼 때
화장을 한다는 것은 더욱 아름답게 가꿈으로써 우주의 질서에 따르는 행위로 해석될 터이다. 위의 두 '비너스'는
서양미술사에 나타난 비너스 가운데 가장 도발적인 누드화로 거론되며, 후대 수 많은
거장이 그린 비너스의 표본 격이라 할 것이다.
서양에서 인식의 주체는 '자아' 다.
누드는 기원전 5세기경에 서양문화의 근원이자 인본주의 철학의 산실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예술 형식이다.
그리스 신들의 모습은 누드에 제격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육체는 완전한 나체가 아니라 대개 얇은 베일에
감싸여 있는 점이 특기할 만한데, 얇은 천 아래로 여체의 윤곽만 살짝 드러낼 뿐
여성을 완전히 벗기는 것은 당시에도 금기였던 듯.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안은 인간중심주의의 표현이라고 할 때
그 인간은 남성이지 여성은 아니라는 사실.
고개지, <여사잠도권> 가운데 화장하는 장면. 당대 모본, 비단에 채색.
동양미술에도 이와 비슷한 주제의 그림이 종종 등장한다.
동진(東晉)의 화가이자 회화이론가이기도 했던 고개지가 그린 <여사잠도권>에 서진(西晉) 시기 문인이었던 장화(張華)
라는 사람이 궁녀들의 문란한 행동을 교훈적으로 풍자하는 내용을 글로 쓴 <여사잠女史箴>에 근거하여 그린 것으로
모두 아홉 편의 그림을 두루마리에 싣고 있다. 이 그림은 1900년 아편전쟁 때 영국군이 가져가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25년경, 캔버스에 유채.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8~39, 캔버스에 유채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5~38, 목판 위에 유채.
그리스인들의 신화에서 아르로디테(비너스)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미인대회.
혈기왕성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어느 날 난처한 심판을 맞게 된다. 아름다운 ㅂ마다의 여신 테티스와 미르미돈의
영웅 펠레우스 오아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 바,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 빼고 모든 신이 빠짐없이 이 혼인잔치에 초대받는다.
이에 격분한 에리스는 분풀이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쓴 황금사과를 결혼식장의 하객들 사이에 던져 넣는다.
여신들의 치열한 설전 끝에 결선에는 제우스의 정실부인이자 정숙하지만 질투심 많은 헤라. 전쟁과 지혜의 여신으로서
투구를 쓰고 창과 고르곤 방패를 든 콧대 센 아테나,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이지만 가끔 살인도 저지르는 아프로디테
셋이 남았다. 바야흐로 '미스 올림포스' 앞에서 신중의 신 제우스는 갈팡질팡한다. 이 난감함을 이데 산에서 양치기를
하고 있는 잘생긴 트로이의 왕자 파레스에게 맡겨 버림으로써 인간이 신을 심판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바람기 많은 청년 파리스는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던졌고, 그 대가로 헬레네(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를
유혹하여 가로챌 수 있었다. 이제 공식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인정받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미스 올림포스' 로 뽑히는 영광 속에 황금사과는 아르로디테의 상징이 되었다.
사실 벌거벗고 한껏 미모를 뽐내는 세 명의 여신들을 그냥 봐서는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여렵다.
그러나 여기에도 공식은 있다. 신들의 왕 제우스의 아내로서 허영심 많고 권력을 쥐었으며 결혼가 출산을 관장하는
헤라는모피코트를 걸치고 선 오른쪽 여인이다. 발 밑에 페르세우스가 잡은 괴물 고르곤의 눈알 백 개를 빼서 장식했다는
공작새(허영과 결혼을 상징한다) 가 보인다. 아테나는 전쟁의 여신이므로 갑옷을 둘러야하지만 여기서는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갑옷을 입지 않은 대신 매두사의 방패와 지혜를 표상하는 올빼미를 가까이 배치하여 그녀를 상징했다.
결국 보석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선 가운데 여신이 미의 장원 아프로디테일 터이다.
사과를 들고 한참을 심사숙고하는 파리스 뒤에 나무에 기대선 이는 신들의 사자 헤르메스로, 날개 달린 모자와
손에 든 카드케우스(아폴로에게서 받은 선물로 뱀 두 마리가 가운데 지팡이를 친친 감고 있는 형태는
의료기구에서 많이 발견되며, 병을 치료해주는 효과가 있다) 가 눈에 띈다.
불화의 여신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에리스가 떨군 황금사과는 여신들 사이의 불화뿐만 아니라 트로이 전쟁이라는
인간의 비극을 낳는다. 판결에 앙심을 품은 헤라와 아테나의 질투는 파리스를 불행에 빠지게 한다.
아프로디테가 데려다 준 여인이 스파르타 메넬라오스 왕의 부인 헬레네였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스파르타 · 그리스 연맹과 트로이의 길고 긴 전쟁이 시작된다.
니클라우스 마누엘, 파리스의 심판>, 1517~18, 캔버스에 템페라.
등장인물들의 패션이 상당히 현대적이다. 이미 황금사과를 건네 받은 비너스는 고혹적인 의상으로 파리스를
유혹하고, 탈락된 두 여신들은 심사 결과에 분개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서는 큐피트가 눈먼
사랑의 화살을 파리스에게 쏠 태세다. 앞으로 닥칠 불행의 전조가 드리워져 있다.
서양의 역사를 움직인 네 차례의 변환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 네 개의 사과를 든다.
기독교 정신을 상징하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 근대 정치사상을 상징하는 '윌리엄 텔의 사과',
근대 과학사상을 상징하는 '뉴튼의 사과', 그리고 여기 아프로디테의 승리를 증명하는 '파리스의 사과'가 그것이다.
파리스의 사과가 상징하는 것은 헬레니즘, 즉 중세의 신 중심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의 대변환을 뜻한다.
신윤복, <월야밀회月夜密會>, 《혜원풍속도첩》 중에서, 1805년 이후.
어스름한 달빛아래 골목길 후미진 담 모퉁이에서 남녀가 밀애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담 옆으로 비켜서서 사람의 기척을 감시하며 이들을 지켜보는 여인이 비밀스런 만남을 주선한
뚜쟁이인 듯 싶다. 남자의 차림새로 보아 어느 영문(營門)의 장교가 분명한데, 당시 하급 무관들이
화류계를 주름 잡으며 기생의 기둥 서방 노릇을 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이런 밀회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던 듯 싶다.
이이크, <아르놀피니 부부 초상>, 1434년 경, 목판에 유채
이이크, <아르놀피니 부부 초상> 볼록거울 부분도
그림 왼쪽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샹들리에와 창틀을 비추며 모든 사물을 서로 부드럽게 연결시킨다.
일 인해 화가의 뛰어난 빛 처리와 과학자 같은 관찰력의 가공할 만한 결과가 펼쳐진다. 마룻바닥, 투명한 유리,
빛나는 거울, 남자가 입은 모피코트의 부드러운 털, 여자의 리넨 머리쓰개의 레이스, 녹색 벨벳 드레스의 단
가장자리를 두른 모피의 잔털까지, 코앞에서도 보일 만큼 묘사가 끝없이 이어진다.
이 그림 속에는 실로 여러가지 종교적 상징이 곳곳에 숨어있다.
벽에 걸린 수정 묵주와 티없는 거울은 때묻지 않은 순결을 상징하며, 창틀 아래 나무 궤짝 위에 놓인 사과는
아담과 이브가 원죄를 짓기 전의 순결한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사과는 오랜 서구 문화의 상징 기호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헌정되는 아름다움의 예찬으로 이어진다. 성스러운 결혼식이 열리는 이 방은 성소(聖所)
를 상징한다. 주목할 부분은 신부 발 아래 자리잡고 있는 충실한 개의 등장이다. 남편에 대한 신부의 충성과
복종은 원죄를 지어 남자를 수고롭게 한 여자로서의 죄를 갚는 일을 은유한다. 임부복을 연상시키는 옷 처리
역시 신부의 중요한 임무인 잠재적 생식력을 강조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신부는 신랑에게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얌전히 왼손으로 치마를 움켜쥐고 있다
카라바조, <승자로서의 아모르>, 1601~2, 캔버스에 유채
비너스의 아들이자 금화살과 납화살을 가지고 신과 인간에게 온갖 못된 사랑의 장난을 치고 다니는
큐피드(아모르라고도 하며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에 해당한다) 가 날개를 활짝 편 채 화살을 들고는
정면을 향해 생글생글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그림의 분위기는 소년의 표정과는 달리 매우
극적이다. 아모르의 잘 다듬어진 몸매를 측면에서 비추는 빛, 그로 인한 그림자의 강한 대비 등, 강렬
하고 명료한 구성은 이탈리아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 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는 올림포스 신들 가운데 가장 추하게 생긴데다 절름발이인
대장장이 신 볼카누스(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했다. 불카누스의 기술과 발명품이 필요했던
올림포스 신들은 가장 아름다운 비너스와의 결혼을 미끼로 그를 올림포스로 불러들일 수 있었지만, 비너스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맺어진 못생긴 남편에만 매달려 지내지 않았다. 사랑의 여신답게 비너스는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연인을 거느렸는데, 그 중 미혼의 청년 마르스에게서 남성다움을 느껴
남편을 마다하고 그와 사랑을 나누었고 그 사이에서 사랑의 신 큐피트가 태어난 것이다.
베르니니, <성녀 테레사의 환희>, 1646~52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승리의 성모 마리아) 성당의 코르나로, 레로스 적 정념이 표현되어 있다.
에로틱한 감수성의 예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처에 명멸한다. 성녀 테레사가 '불타는 화살' 로 화한
하나님의 극적인 사랑을 받았을 때 느낀 영적인 고통과 환희의 절정을 나타냈노라 하지만, 무아경에 빠진
성녀의 얼굴에서 성성(聖性)과 성성(性性)을 가려내기란 매우 애매하다. 기독교적 성윤리의 지배 아래 서양
사회의 미술에 나타난 에로스는 아름다운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성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간접적인
상징물을 쓰거나 여성에게 감정을 전가하고 고통이라는 비상구를 만들어놓는 등 이중적인 성 관념을 보인다.
안토니오 코레조, <주피터와 이오>, 1531년, 캔버스에 유채.
성에 대한 기독교적인 두려우모가 신체에 대한 경멸은 에로스를 악의 상징으로 대체하기에 이른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때 누드로 표현된 것은 대부분 여성의 신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옷을 벗는
수치심을 죄인인 이브의 딸들에게 맡겼다. 그것도 성성(性性)을 아주 매력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티치아노, <비너스와 다도니스>, 1533~55, 캔버스에 유채
미와 사랑을 주관하는 여신 비너스는 어느 날 아들인 큐피드의 장난으로 사랑의 황금화살에 상처를 입는다.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아도니스는 결사적으로 붙잡는 비너스의 손을 뿌리치며 개를 몰고 사냥에 나서려 한다.
벤자민 웨스트, <아도니스의 죽음을 슬펴하는 비너스> 1768~1819, 캔버스에 유채.
당인(唐寅), <왕촉궁기도축王蜀宮妓圖軸> 명대 16세기, 비단에 채색
음욕을 멀리하라는 교훈적인 그림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는 사실.
오대토국의 하나인 전촉의 왕은 많은 후궁을 거느리며 연회 때마다 노래하고 춤추며 시중들게 하는 등
호사스런 생활 했다고. 전촉이 망하고 뒤를 이은 후촉(後蜀)의 왕 맹지상은 전철을 경계삼았던 듯.
당대 이래 전통적인 미인 묘사법인 '삼백법'을 사용해 이마, 코, 턱 부문을 더욱 희게 그렸다.
장 - 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1767년경, 캔버스에 유채
강한 빛이 그네를 타고 있는 주인공 소녀를 향하고 있어 왼쪽 풀밭에 있는 남작의 하반신은 풀과 어우러져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른쪽에서 그네를 밀고 있는 하인인지 사제인지 아리송한 인물도 그림자에 묻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영리한 화가 프라고나르는 로코코의 '우아한 향연'의 대가답게 '사랑과 격정' 이라는
상당히 에로틱한 테마를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사랑스럽고 경쾌한 분위기로 창출해내
그림에 별로 천박한 느낌을 남기지 않았다.
18세기 귀족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미의식과는 판이하다.
지나치게 머리가 작거나 호리호리한 여인들, 또는 창백한 피부, 코르셋으로 꽉 조여 부러질 것같이 가는 허리,
어린애처럼 작은 손발을 가진 소녀 취향으로 나타난다. 펄럭이는 실크 드레스 단을 차고 날아오른 소녀의
신발은 힘차게 날아오른 그네의 힘이 아니라 소녀의 열정의 강도를 보여준다. 부유하는 듯한 파스텔 색조,
회색과 은색, 회녹색, 장미색처럼 창백하고 투명한 색깔이 사람의 마을을 잡아 끈다.
평론가들은 <그네>를 두고 프랑스 로코코 시대에 '사랑의 향연화(響宴畵)' 라는 주제를
가장 감미롭게 잘 담아낸 작품이라고 평가 한다고 한다.
프랑수아 부셰, <비너스의 화장>, 1751, 캔버스에 유채
18세기가 미처 다하기도 전에 프랑스 왕실과 군주제, 또 귀족사회라는 커다란 건물은 소리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로코코 그림을 구입하던 고객들은
모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로코코 미술도 막을 내렸다.
로제티 <백일몽>, 1880, 캔버스에 유채
남편이자 화가인 로제티의 완벽한 모델이었던 시달은 <백일몽>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녀는 범접할 수 없는 미의 원형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나무 위에 걸터앉은 그녀에게서는
물리적인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창백한 얼굴에 공허한 눈빛은 무릎에 놓인 책에서도
멀어져 있다. 이 그림이 그려졌을 때 시달은 이미 이 세상의 여인이 아니었다.
서구방(徐九方), <수월관음도>, 1323(고려 충숙왕 10), 비단에 채색, 일본 쥬우은행 소장.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신들의 모습은 대부분 미남 미녀다.
'아름다움' 이란 우리 마음에 가없는 자애를 가득 차오르게 하고,
그 아름다움은 찰나에 스치는 감각이 아니라
기나긴 여운을 남기는 영원성에 본질을 두고 있기에 벅찬 감동으로 이어진다.
고려 왕조의 화려하고 세련된 미의식의 진수는 고려불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 가운데 특히 아름답다는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선재동자가 인도 남쪽 바닷가에 연한 보타락가산에서 법을 설포하는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을 묘사했다.
달이 높이 떠올라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이 물가의 벼랑 위에 앉아서 선재에게 법을 설포했기 때문이다.
원광은 마치 휘영청 밝은 달을 묘사한 듯한데, 그 달안에서 관음보살이 그윽히 미소짓고 있다.
이 반가사유의 모습은 인간이 지닌 환상이 꿈 또는 물에 비친 달의 덧없음과 같노라
깨우침으로써 인생의 고난을 초월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라파엘로, <대공의 성모>, 1505, 목판에 유채
마리아가 자신의 아들을 우아함으로 안고 있지만 그 아기는 신의 아들이다.
두 말할 나위도 없는 르네상스 정신의 발현이자 표출이다.
고흐, <오베르의 교회>, 1890, 캔버스에 유채
고흐의 정신적인 격정이 섬찢할 정도다.
우리네 인간은 참으로 오랫동안 종교에 길들여져 왔던 게 사실.
절대자를 내 세우고 죄의식을 부각시킨 연후 죄를 사해준답시고 주머니를 터는 행태.
그럼에도 스스로 순치되어 성스러움으로 채워진 풀 안에 스스로 뛰어드는 군상들.
정신적 고립감을 탈피해보려는 불쌍한 민초들은 그저....
고흐, <뉘에냉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 1984, 캔버스에 유채
뉘에냉 시절에 처음으로 그림 이 그림은 고흐의 말년 작품인 <오베르 교회>와 정확히 대응한다.
고베르 교회을 그릴 당시 고흐의 심경 변화와 뚜렷이 비교 된다 할 수 있겠다.
프리다 칼로, <우주와 지구, 나, 디에고 그리고 애견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1949, 캔버스에 유채.
루소, <꿈> 1910, 캔버스에 유채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숲 속에 엉뚱하게도 한 벌거벗은 여인이 긴 의자 위에 옆으로 누워 있다.
20세기의 대전환기에 홀로 독자적인 길을 고립스레 걸어간 소박한 화가 루소는 자연을 향한다.
뭉크, <죽음과 처녀>, 1893년경, 캔버스에 유채
벌거벗은 숫처녀가 남자를 애무하고 있다.
그러나 함 몸이 된 남자를 자세히 보면 그는 이미 해골이 되어 있다.
사랑의 종국에는 죽음이 공존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성적 환희에 잠겨 있다.
에곤 실레, <수녀를 껴안는 추기경>, 캔버스에 유채
클림트와 평생 친교를 나눈 실레의 경우는 더욱 강박적이다.
호색적인 검은 눈초리에 관능적인 불안한 시선, 앙상한 몰골에 돌출한 광대뼈,
그리고 혼란스러울 정도로 공격적인 포옹, 제국 말기의 퇴폐와 위선이 만연했던
세기말의 오스트리아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순결한 금욕과 동물적 포옹이라는 적나라한 관능의 겸비는 가히 충격적이다.
모로, <살로메>(유령 출현), 1876, 캔버스에 유채
이국적인 동방의 궁전이나 이교도의 신전을 연상시키는 신비스런 실내 장식을 배경으로 눈부신
광휘에 휩싸인 세례 요한의 머리가 춤추는 살로메 앞에 나타난다. 귀스타브 모로는 이 그림에서
살로메와 그녀에게 희생당한 세례자 요한의 잘린 목을 희생시키는 자와 희생당하는 자, 또는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시각화했다. 대부분의 성자들은 사랑으로 모든 이를 포용하는데, 왜 요한은 살로메
의 격정적인 사랑을 경멸적으로 거부한 것일까. 남성 요한에게 그녀는 사악한 요부였기 때문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괘락의 정원 중 지옥 부분>
온통 무겁고 사악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공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 점이 이 그림 최대의 비극이다. 이들의 존재는 모순 덩어리다. 서로에 대한 사랑도 나눔도
배려도 화해도 없다.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보스는 인류의 과거와 미래 모두를 본 것일까?
16세기 환상을 통한 보스의 정신분열적인 조형언어는 21세기 현대의 인간에 대한 투시도로 투영된다.
인용: 정은미 著 <화가는 왜 여자를 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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