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취월당

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3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구스타브 블랑거

옴팔레는 그리스 신화를 통틀어 최고의 요부이자 음녀로 손꼽힐 만큼 남성을 유혹하는 기술이 뛰어났다. 희대의 음녀 옴팔레와 전설적인 영웅 헤라클레스가 만나 불같은 사랑을 탐닉한 그리스 최대 스캔들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옴팔레는 천성적인 음기를 감추어 두었다가 헤라클레스라는 최고의 연인을 만나 비로소 천상천애 둘도 없는 사랑의 열락(悅樂)을 맛보게 된다. 고대 그리스를 화끈하게 달군 두 남녀의 에로틱한 탐닉의 스토리는 그리스 신화에 새로운 세계를 열러 젖히는 도화선이 된다. 헤라클레스가 옴팔레를 만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오이칼리아 왕인 에우리토스의 딸 이올레와의 인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오이칼리아이 왕인 에우리토스는 아버지 멜라네우스로부터 뛰어난 활솜씨를 물려받아 궁술의 명성이 자자했다. 심지어 에우리토스는 궁술의 신 아폴론의 아들이라는 평판까지 얻고 있었다.

 

 

 

 

<이피토스를 내동댕이치는 헤라클레스> 파벨 소로킨

헤라클레스가 광기에 사로잡혀 호의적인 이피토스를 성 위에서 던지는 장면이다.

 

 

 

 

<옴팔레> 존 바이엄 리스턴 쇼

 

 

 

 

<여장을 한 헤라클레스> 바르톨로메우스 슈프랑거

놀라운 세부 묘사와 완벽한 구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옴팔레의 눈부시고 육감적인 나신에서 풍기는 성적 매력이 화면을 압도한다. 그림 속에서 옴팔레는 사자가죽을 걸친 채 큰 몽둥이를 들고 관람자를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권력을 쥐고 흔드는 당당한 가장의 모습이다. 이와 달리 헤라클레스는 옴팔레의 핑크빛 드레스를 걸친 채 실을 잣고 있다. 주눅이 들다 못해 가자미처럼 비굴한 시선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야말로 '주부'인 남성을 비굴하게 풍자한 대표작이 아닐 수 없다.

 

 

 

 

<키스> 프랑수아 부셰

침실에서 남자는 조급하고 여자는 느긋하다.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헤라클레스는 급한 마음에 세상 모든 것을 줄 것처럼 속삭이고, 본능에 굴하지 않은 옴팔레는 강한 헤라클레스를 얻기 위해 천천히 집요하게 유혹한다. 헤라클레스의 급한 마음은 그의 손이 옴팔레의 풍만한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것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루이 장 프랑수아 라그르네 레네

헤라클레스에게 당당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옴팔레의 모습이다.

 

 

 

 

<문두스와 파올리나> 이탈리아화파의 무명 작가 작품

 

 

 

 

<파올리나의 침실로 다가가는 문두스> 게르브란트 판 덴 에크후트

신전의 사제와 짜고 파울리나를 유혹해 그녀의 침실로 다가가는 문두스를 묘사하였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의 한 장면으로 1963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세기의 커플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았고 카이사르 역에는 리차드 버튼이 열연하였다.

 

 

 

 

<카이사르를 만나는 클레오파트라> 장 제롬 레옹

클레오파트라가 융단 속에 감춰져 있다. 카이사르 앞에 나타나는 장면으로,

그녀의 돌발적인 유혹에 놀란 카이사르는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안토니우스를 만나는 클레오파트라> 티에플로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에 넘어간 안토니우스가 해상에서 그녀를 만나는 장면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에 빠져 자신의 부인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클레오파트라와 정식으로 결혼한다.

 

 

 

 

<클레오파트라를 쫓는 안토니우스> 로렌스 알마타데마

악팅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전투 중 배를 돌리자 그녀를 따르는 장면이다.

 

 

 

 

<악티움 해전> 로렌조 카스트로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후의 아우구스투스)간에 로마의 패권을 두고 겨룬 해전이다. 로마의 경우 해전에 상당히 취약했으며, 악티움 해전의 경우에도 '해전을 육전화'한 로마 식의 전투가 벌어졌다. 해전 자체는 별 특징이 없이 옥타비아누스 측의 승리로 끝났다. 악티움은 그리스 북서부의 안부라키아 만 앞에 있는 반도이다.

육전(陸戰)을 주창한 안토니우스도 해상 결전을 고집한 클레오파트라의 의견을 받아들여 해상에서 옥타비아누스 함대와 격돌하게 되었다. 양 진영은 각각 500척 이상의 함선을 보유하였으나 옥타비아누스의 부장 아그리파가 바람의 방향을 계산한 교묘한 전술로 기선을 제압, 안토니우스 함대를 격파하였다. 안토니우스는 남쪽으로 달아나는 클레오파트라 함대에 실려 이집트로 도망했다. 육상과 해상전투는 잠시 더 계속되었으나 옥타비아누스군의 대승리로 끝났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이듬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죽었으며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의 승리를 통해 내전을 종식하고 로마 최고의 권력자로 부상할 수 있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레지날드 아서

이집트 코브라를 이용하여 죽음을 선택한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한 것.

 

 

 

 

<메살리나 발레리나> 한스 마카르트

로마 황제 클라욷우스의 아내이자 로마의 황후.

고대 로마의 타락한 성의 상징으로 불린다.

 

 

<메살리나 발레리나> 파벨 스베돔스키

거리의 창녀가 되어 남자를 유혹하는 메살리나 발레리나

 

 

 

 

 

 

 

 

<메살리나> 앙리케 베르나델리

메살리나는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원로원은 물론,

노예들까지 불러들여 불륜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죽임을 당하는 메살리나> 프랑수아 빅토르 엘로이 비엔노리

그녀의 소생들도 좋은 결말을 맺지 못했다. 딸인 옥타비아는 어머니와 달리 착하고 현명했으며 정숙한 여인으로 이름이 높아 로마인들의 동정과 사랑을 받았으나, 남편이었던 네로에게 냉대를 당한 끝에 간통 누명이 씌워져 죽임을 당했다. 아들인 브리타니쿠스 역시 네로의 황위를 위협하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말에 따르면, 현대 이탈리아어에서 메살리나라는 이름은 '아무 남자와 동침하는, 몸가짐이 헤픈 여자'의 대명사로 쓰인다고 한다.

 

 

 

 

<매음굴의 메살리나> 귀스타브 모로

젊은 남자가 메살리나를 바라보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고 메살리나는 침대 한 쪽에 발을 올려놓은 채 남자의 어깨를 애무한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메살리나의 시선은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성욕을 암시하며, 하얀 메살리나의 몸과 강한 대비를 이룬 남자의 몸은 성적 쾌락에 빠져 있음을 나타낸다. 두 사람 뒤에 횃불을 들고 있는 여자는 황후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지만 황후의 행실엔 시선을 두지 않고 있다. 화면 왼쪽 열린 창문 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로마의 궁정을 나타내며 메살리나가 있는 곳이 사창가임을 암시한다. 침대 시트와 반쯤 열려 있는 커튼은 섹스의 쾌락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왕관은 그녀가 황후임을 상징하며, 그녀의 신분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남자보다 높게 서 있는 구도로 그렸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디트> 카를로 프란체스코 누볼로네

유대의 아름다운 과부 유디트가 자신의 나라를 쳐들어온 홀로페르네스를 미인계로 유혹하여

그의 목을 베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유디트> 구스타프 클림트

사람의 키 정도로 그려진 그림으로, 유디트와 살로메의 공통점은 남성의 목을 갖고 있는

여인이라는 것 때문에 유대인 후원자들은 이 작품에 살로메를 부제목으로 쓸 것을 요청하였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카라바조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의 명암법을 창시한 카라버조의 역작이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디트> 빈센트 셀레르

유디트의 모습을 매우 관능적이고 요염한 모습으로 나타냈다. 홀로페스트의 목을 하녀가 들고 있는 자루에 넣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그림의 유디트에게는 조금 전 장수의 목을 자른 끔찍한 거사보다는 홀로페르네스와의 열정으로 정사를 나눈 흥분이 다 가지지 않은 듯 나타내고 있다. 미쳐 가리지 못한 옷매무새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녀의 알몸, 두 뺨에 홍조를 띠고 있는 모습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하녀의 모습에서도 그런 상황이 잘 나타나고 있다. 하녀는 끔찍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보다도 홍조로 흥분되었던 유디트를 바라보고 미소를 보내고 있다. 자루에 담기는 홀로페르네스 역시 자신의 죽음보다 유디트의 유혹에 순응하는 표정으로 지극히 남성 우월적인 관점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디트와 하녀는 적극적으로 일을 마치기 위해 소매를 팔꿈치 위로 걷어붙이고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려고 한다. 유디트는 남성을 유혹하는 성적 매력을 지닌 여인이 아니라 용감한 여전사로 나타내고 있다.

 

 

 

 

<메데이아와 이아손> 페르디난트 볼

메데이아는 이아손에 반하여 아버지와 그녀의 나라를 배반한다.

 

 

 

 

<메데이아와 이아손> 버트 제임스 드래퍼

황금 양털을 탈취해 달아나던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영웅들은 콜키스의 추격대를 따돌린다.

메데이아가 어린 동생을 죽여 바다에 버리고 있다. 그녀의 머리 뒤쪽으로 황금 양털이 걸려 있다.

 

 

 

 

<약초를 캐는 메데이아> 발렌타인 카메론 프린셉

메데이아가 마법의 약초를 캐는 장면이다.

 

 

 

 

<주술을 행하는 메데이아> 로랑 드 라 이르

콜키스 왕국의 마법사인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사랑하여

그를 억압하던 숙부인 펠리아스를 마법으로 죽인다.

 

 

 

 

 

<마법사 데데이아> 프레데릭 샌디슨

이아손과 왕녀 사이의 혼담이 진행될 때 왕녀의 부친인 크레온은 메데이아의 이전 행적을 경계하여 그녀를 코린토스에서 완전히 추방할 생각을 굳히고, 이아손도 여기에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냉큼 떠날 것을 강요한다. 졸지에 자식 둘을 데리고

나라 밖으로 쫓겨나게 될 메데이아는 고민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타테리나와 오를에앙 공작(앙리 2세)의 결혼> 프란체스코 비안치 보나비타

메디치 가문의 딸 카테리나는 삼촌인 교황 클레멘스 7세이 중매로 프랑스의 오를레앙 공작과 결혼하게 된다.

 

 

 

 

<디안 드 푸아티에 초상> 프랑수아 클루에

앙리 2세가 사랑한 정부 디안은 앙리 2세보다 20살이 많았다. 앙리 2세의 왕비 카테리나와는 동갑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앙리 2세가 연상의 여인을 사랑한 것은 그가 아버지 프랑수아 1세의 석방을 위해 인질로 스페인에 갈 때였다. 당시 여섯 살의 어린 앙리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자신에게 애틋하게 작별의 키스를 해준 26세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귀부인이 바로 디안이었다. 앙리 2세는 당시 어머니까지 여의었기에 그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로 돌아온 앙리 2세는 후에 왕위에 오르자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디안은 50대가 되었어도 미모가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림에는 매우 피부가 고운 디안이 처녀와 같은 가슴을 드러내며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작은 화살을 손에 들고 있다. 그녀의 오른쪽 유모는 카테리나의 아이로 보이는 젖먹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고, 디안은 앙리 2세와 카테리나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었다. 고개를 내민 아이가 프랑수아 2세로 보이며 원근법의 구도 속에서 멀리 물동이를 안고 있는 여인을 비련의 여인인 카테리나로 묘사하여 그녀를 조롱하고 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알렉상드르 카바넬

샤를 9세 어머니 카테리나는 왕에 대한 위그노인 콜리니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가톨릭교도인 기즈 가문이 계획한 콜리니의 암살을 승인하였다. 1572년 카테리나의 딸 마르그리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위그노들은 파리로 몰려들었다. 이 기회를 노려 콜리니를 암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왕이 이를 조사하자 암살 음모가 탄로날 것을 두려워한 카테리나는 파리에 모인 위그노 지도자들의 암살계획을 꾸몄다. 마침내 8월 24일 새벽, 타톨릭교도들의 위그노들에 대한 무차별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왕이 학살 금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해 10월까지 유혈사태는 지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수천 명의 위그노들이 학살되었다고 전한다.

 

 

 

 

<마키아벨리> 

16세기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 정치이론가. 대표작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즘이란 용어가 생겼고, 근대 정치사상의 기원이 되었다. 군주의 자세를 논하는 형태로 정치는 도덕으로부터 구별된 고유의 영역임을 주장하였다.

 

 

 

 

<파이드라> 알렉상드로 카바넬

파이드라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와 왕비 파시파에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테우칼리온, 아리아드네와 형제지간이다.

크레타와 아테네 사이의 정략결혼으로 테세우스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다.

 

 

 

 

<히폴리토스와 파이드라 부조>

파이드라가 히폴리토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히폴리토스의 단검을 빼앗은 파이드라> 장 라신

파이드라가 히폴리토스의 단검을 뺏앗아 자신을 찌르려고 하자 유모가 말리는 장면이다.

 

 

 

 

<히폴리토스를 질책하는 테세우스> 피에르 게랭

파이드라의 모함에 테세우스가 아들인 히폴리토스를 질책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캐서린과 아서 튜더>

캐서린은 영국의 국왕 헨리 7세의 장남이자 헨리 8세의 형인 아서 튜더와 약혼했고, 15세가 된 1501년에 잉글랜드로 가서 1살 연하인 아서와 결혼했다. 그러나 병약한 아서는 결혼 생활 반년만에 죽고 말았다. 병약한 그와 정사를 치룰 수 없었던 그녀는 처녀였다. 이에 헨리 8세는 정략적인 이유로 형수인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헨리 8세의 초상> 한스 홀바인

16세기 영국 튜더 왕조의 왕.  헨리 7세의 차남으로 태어나 형의 죽음으로 왕좌에 올랐고, 적자녀 셋은 모두 왕이 되었으며, 수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특히 사생활 문제로 6번의 결혼 생활 중 2명의 왕비가 그에 의해 처형되는 옴므 파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앤 불린의 초상> 한스 홀바인

영국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캐서린 왕비와의 결혼 무효를 교황이 인정하지 않았으므로써 영국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그녀는 후에 대영제국을 일으킨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낳았다. 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

헨리 8세로부터 처형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헨리 8세에게 이혼을 거두어 달라는 케서린> 프랭크 솔즈베리

캐서린은 헨리 8세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앤 불린이 대관식을 치르고 나서도 문서나 편지에도 왕비 캐서린이라고 서명했다. 말년에 앤 불린과 헨리 8세의 사이가 급속도록 틀어지자 캐서린은 왕이 자신을 다시 받아들일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메리 불린>

앤 불린의 언니로 그녀는 먼저 헨리 8세와 관계를 가졌다. 그녀는 앞서 프랑스에서 프랑수와 1세와도 관계를 맺었는데 프랑수아 1세는 그녀가 헨리 8세와 정을 통했다는 소식에 자신이 먼저 메리를 정복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고 한다.

 

 

 

 

<앤 불린과 메리 불린 자매> 에두아르 시보

앤 불린이 사형에 처해지자 이을 슬퍼하는 메리 불린이다.

하지만 그림과 다르게 그녀는 앤 불린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프란체스코 첸치>

포악무도한 프란체스코 첸치 백작은 가족을 폭행하고도 모자라

자신의 친 딸 베아트리체 첸치를 성폭행했다.

 

 

 

 

 

 

 

 

 

<베아트리체 첸치> 엘리자베타 시라니

아버지를 독살시키기 위해 독약을 담는 모습으로, 그녀의 표정은 매우 담담한 모습이다.

 

 

 

 

 

<베아트리체 첸치 초상화> 귀도 레니

이 초상화는 첸치가 사형 당하기 전 날, 귀도 레니가 형무소에 직접 찾아가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본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수 차례 경험했다.

이런 증후는 '스탕달 증후군'이라 명명했다.

 

 

인용: 차홍규 著 《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자연 > 취월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양취회(咸陽聚會)  (0) 2020.12.08
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4  (0) 2020.12.04
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2  (0) 2020.11.20
욕망과 탐욕의 인문학 1  (0) 2020.11.14
종교적 메시지  (0) 202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