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산행·여행·풍경

석송대(石柗臺) 소고

 

 

 

 

석송대(石松臺)

 

 

이곳은 하서 김인후의 제자인 송강 정철과 석탄 이기남 등이 풍류와 학문을 논하곤 했다는  

이른바 선인들의 체취가 서린 장소인데, 어인 일인지 몰라도 복원과 보존과는 거리가 먼 형편이다.

 

 청안 이씨 석탄 이기남 선생은 이곳 기산리가 본향으로  박순, 정철, 기효간등과 교류 하였고

 선조때 동몽교관, 사헌부 감찰 등에 천거 되었으나 모두 사양 하였다는 처사형 인물.

그의 아들인 이문룡은 변이중, 박광옥의 문인으로 임란때 박광옥과 함께 고경명의 막하에서 활약하였으며

 백의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여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되고 사헌부 감찰에 제수 되었으나 응하지 않았다.

 

학술적 근거도 빈약한 홍길동이란 인물을 내세워 축제까지 열다가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니

작금엔 '황룡'을 모티프로 소위 '엘로우 시티'를 표방, 이른바 '국가정원'을 청원한다는 장성 황룡강 일원.

 

 

소위 조선조 한가닥 했던 선비들의 체취가 남은 장소임이 확실하게 고증된 황룡강 '석송대'의 현주소는

 사진상에 보는대로 야금야금 음식점, 휴계소, 자동차 정비공장 등이 진을 치고 있는 상태로 변해 버렸다.

 

 

 

 

결론인 즉, 그 흔한 안내판은 물론, 문화유산의 소중한 자산까지를 내팽개치는 지자체의 의도는 물론이려니와

  발굴 보존에 별다른 성의와 의의를 제기치 않는 장성군민들의 의식도 확실히 제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내 단편적 소고(小考)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짙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고찰(考察)일 수도 있겠다.

 

 

 

 

 

 

 

일주일 만에 다시 들른 석송대 인근 덕향산방.

 

 

 

 

 

 

 

 

 

 

 

 

 정적에 휩싸인 이른 바 적요(寂寥).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지경은 바로 이런 경우를 이름이라.

 

 

 

 

 

 

남촌 선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들어선 정원


 

 

 

 

 

 

 

 

 

 

 

산방 윗편 검붉은 홍단풍 터널에 들어 선다.

 

 

 

 

 

 

 

연초록의 계절에 홍단풍의 붉음이라.

 잎새의 붉음을 봄꽃으로 치환시켜 감상해보는 것도 나름 ...ㅎ

 

 

 

 

 

 

 

 

 

 

 

 

 

 

 

 

 

 

 

 

 

 

 

 

 

석송대

 

江上高臺松落陰 

강 가 드높은 석송대 솔 그늘 드리웠거늘

  英雄千古幾登臨?

영웅들 오랜 옛날 여기 얼마나 올랐을까

人間興廢無竆恨

인간 세상 흥망성패에 이는 한없는 회한     

都付楓林倦鳥吟

오직 단풍 숲 둥지 찾는 새나 읊조려야지

 

 

 

 김우급의  추담집(秋潭集권 4

 

 

 

 

 

 

기산리 내기(內岐)마을은 임란때 순절한 남원윤씨 윤진장군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1590년 필암서원이 이 마을에 세워졌다가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어 지금의 필암으로 이건하였다고.

해주오씨의 집성촌이기도 한데  이 산방의 쥔장 남촌 선생이 바로 해주 오씨라는 사실.

 

 

 

 

 

 

 

 

 

 

 

 

 

 

 

 

 

 

 

 

 

 

 

 

정절부인행주기씨정려각

(장성읍 기산리 2구 장성문향고 옆 동산)

 

 

 

 

 

마치 '설치 미술'의 한 작품을 보고 있는 느낌.

소실점의 끝으로 정려각이 올려다 보인다.  

 

 

 

 

 

 

 

 

 

 

 

석탄 이기남의 3남 이문룡의 처 행주기씨 정려각이다.

 

 

 

 

 

 

 정절(貞節)의 상징 청죽의 호위를 받는 정려각의 모습.

 

 

 

 

 

 

 

 

 

 

 

 

 

 

貞節夫人幸州奇氏精勵碑

정절부인행주기씨정려비

 

 

 

 

 

 

정유재란(1597) 당시 왜인들의 능멸을 피해

어린 아들을 업은 채 황룡강에 몸을 던진 이른바 정절(貞節)의 상징적 인물.

 

 

 

 

 

 

 

「원종공신증통정대부」에 봉한다는 정려.

 

 

 

 

 

기씨 부인의 절의를 전해들은 조정에서는 1604년(선조37년) 정려를 포상 하였으며,

그 사적이 '동국삼강록'에 실린 바 있다.

 

 

 

 

 

 

기산리 1구는 내기마을, 2구는 외기마을로 불리운다.

 외기마을 어느 집 담장을 장식한 황매, 영산홍, 호랑가시 등이 정겹기만.

 

 

 

 

 

 

 

 

 

 

 

 

 정절의 상징이런가!

기왓골을 배경으로 피어난 사월의 영산홍 한 그루 자태가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데...

 

 

 

 

 

 

 일승문(日昇門)이라 ! 

유학자의 집임을 한 눈에 알아 보겠다.

문패를 보아하니 장성의 거유 노강(蘆江) 박래호(朴來鎬) 선생 댁이더라는 사실.

 

 

 

 

 

 

 

 

 

 

 

 

 

 

 

 

 

 

 

 

 

 

 

 

황룡의 꿈틀대는 이미지를 다리에 적용한 듯.

 

 

 

 

 

 

저 아랫쪽으로는 수중보 공사가 한창 진행 중.

더 아랫쪽 고속철도가 지나는 곳은 수중보가 이미 완공된 상태.

그 외 황룡강변 이곳 저곳에서 이런 저런 공사가 현재진행형임을 볼 수 있었다.

 

 

 

 

 

약 한 달여 후면 강변은 온통 꽃밭으로 변할 터인데...

 

 

 

 

 

 

 

 

 

 

 

 

 

 

 

 

 

Thank You - Phamie Gow

 

 

'자연 > 산행·여행·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룡동산 데크길   (0) 2020.04.29
화사별서(花史別墅)  (0) 2020.04.27
야은재 영산홍  (0) 2020.04.18
관어대(觀魚臺)  (0) 2020.04.16
덕향산방  (0) 20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