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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관어대(觀魚臺)

 

 

 

대지의 생동감이랄까?

불과 이틀 만인데 연녹의 채도가 다소 짙어진 느낌.

 

 

 

 

 

 

 

 

 

 

 

오늘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한다.

 

 

 

 

 

 

산과 물이 만나는 지점에 예전에 없던 둑길을 만들어 

위 아래 끊어진 부분과 연결시키더니만  설마 했던 사변(?)이.

 

'관어대'에 얽힌 詩와 해의 등을 적어 이곳을 오가는 이들의 이해를 도운 모습.

 

그렇다!  바로 이런 것이 향토의 문화 창달이자, 지자체를 이끄는 사람들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작은 입간판 하나가 인문학의 무한 고양과 향토인의 자존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금번 사업을 추진한 관계자들의 수고로움에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관어대(觀魚臺)

어대현 북쪽 13리 되는 곳에 있다. 노나라 은공이 이곳에서 고기를 잡은 곳이다.

또 북쪽에는 무당정(武唐亭)이 있는데 두예(杜預)는 은공이 융(戎)과 회맹(會盟)한 곳이다 라고 하였다.

『대명일통지』 권23, 연주부.

 

 

 

 

 

 

관(觀) 앞의 잡목을 제거하여

글자를 좀 더 선명히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나무 이파리가 돋아나면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

 

 

 

 

 

 

 

 

 

 

 

 

 

 

 

 

 

 

 

 

 

 

기록에 의하면 '관어대' 각자 위쪽 어딘가에 정자가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한 번 확인을 해보는 것도...

 

 

 

 

 

 

사진상 맨 오른편으로 올라

혹시 흔적이라도 남은 게 있는지 살펴 보기로 한다.

 

 

 

 

 

 

이 바위 윗쪽...?

 

 

 

 

 

 

아니면 이 근처...?

 

 

 

 

 

 

아래를 내려다 보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시야가 신통치 못하다.

 

 

 

 

 

 

이 근처일 개연성이 가장 커 보이는데....!

 

 

 

 

 

 

지금처럼 아래로 도로가 나기 이전 시인묵객들이 장안마을에서 이곳을 오려면 마을 뒷산을 넘어 왔을 터.

저 앞 조선조 현청이 있던 성산에서는 둑을 타고 곧장 이곳으로 접근할 수 있었을게고.

 

 

 

 

 

'관어대' 앞으로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의 모습이다.

 

 

 

 

 

 

예전의 모습.

 

 

 

 

 

 

조선조 현청이 있었던 성산 일원.

 

 

 

 

 

 

'관어대' 에서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부엉바위(鵂岩)

임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는 과정에서 뼈아픈 사연을 낳게 된 슬픈 사연이...

 

 

 

 

 

 

 

근처 장안마을 황주변씨 일가에 조정으로 부터 '삼강정려'의 영광이 내렸다.

그러나 이른바 효자, 충신, 열녀 三綱에 대한 정려를 하사 받기까지

 이 집안과 민초들이 겪어냈을 고초와 희생을 어찌 다 필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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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발굴과 보존은 물론 각종 학술적인 성과를 도출하는데는

적잖은 수고와 비용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건 내남 없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 '관어대'에 대한 최초의 정보는 지난 70년대 초 어떤 지인으로 부터 얻었다.

후로 가끔씩 찾아가 나무를 헤치고 기어 올라 각자 앞에 이르러 올려다 보곤 했었다.

 

고르지 않은 독립된 바위마다에 한 글자 씩 새기느라 적잖은 애로가 있었을 터이고

글자의 크기나  필선이 제법 웅혼한 것이어서 나름 감상할 맛이 난다고 해야겠다.

 

아무튼 중국의 장강변 어딘가에 '관어대'가 있고 그곳을 읊은 중원의 시가

해동국 문인들에게 알려졌을 테고 조선의 시인묵객들이 이를 차용한 게 분명.

 

어쨌건 인문학적인 내용은 학자들이 풀어 낼 사안이자 몫이고

나 같은 하수들은 그저 보고 느끼고 즐기는 일에 열중하면 그만.

 

그런 의미를 오늘의 산책에 적용해 본다면, 

다리 발품을 파는 일 쯤이야  이내 장기이자 평생을 이어온 예삿일 아니던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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