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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팔성명기 / 전라도 * 경상도 * 강원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상택지(相宅志) 권제2





 八成名基


전국총론 (全國總論) / 전라도 * 경상도 * 강원도



3)전라도 [湖南]


전라도는 동쪽으로 경상도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충청도와 이웃하고 있으며, 본래 백제의 땅이었다.  훗날 견훤(甄萱)이 이 땅을

근거지로 삼아 고려 태조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여서 태조가 여러 번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태조는 견훤을 평정하자 백제 사람들을

 미워하여 '차령(車嶺) 이남 지역은 물이 모두 등을 지고 달아난다.' 라 하고, 차령 이남에 거주하는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유명

(遺命)을 내렸다. 고려 중엽에 이르러서는 간혹 재상의 반열에 오른 자도 있었지만, 고려 왕조에서 등용된 자는 역시 매우 드물었다.

우리 조선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금령이 점차 완화되었다.




전라도 북부 일대(해동지도)



전라도 남부 일대(해동지도)


전라도의 토지는 비옥하고 서남쪽으로 바다와 인접해 있어서, 생선 · 소금 · 메벼 · 명주실 · 솜 · 모시 · 닥나무 · 귤 · 유자 · 대나무를

판매하는 이익이 있다. 전라도의 풍속은 노래와 여색 · 사치스럽고 화려함을 숭상하고, 약삭빠르고 경박하면서 아첨을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글을 쓰고 학문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므로,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로 이름난 사람이 경상도보다 적다. 그러나 인걸은

지령(地靈)이르로 전라도의 인걸 또한 자연히 적지 않다.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은 광주(光州) 사람이고, 일재(一齋) 이항(李恒)은

부안(扶安) 사람인데, 모두 도학(道學, 유학)으로 알려졌다.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과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은 모두 광주사람

인데, 절의(節義)로 알려졌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해남(海南) 사람이고, 묵재(默齋) 이상형(李尙馨)은 남원(南原) 사람인데,

모두 문학(文學)으로 알려졌다. 장군(將軍) 정지(鄭地)와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은 모두 광주 사람인데, 장수(將帥)로 알려졌다.

찬성(贊成) 오윤겸(吳允謙)과 의정(議政) 이상진(李尙眞)은 이름난 관료로 알려졌다.


사한(詞翰, 시(詩)를 비롯한 문장)으로는 고부(古阜)의 옥봉(玉奉) 백광훈(白光勳)과 영암(靈巖)의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이 있다.

우거(寓居)한 인물로는 부윤(府尹) 신말주(申末舟)가 순창(淳昌)에, 이상(貳相) 이계맹(李繼孟)이 김제(金堤)에, 판서(判書) 이후백(李後白)

이 해남에, 판서 임담(林墰)이 무안(務安)에 기거했다. 단학(丹學)으로는 도사(道士) 남궁두(南宮斗)가 함열(咸悅) 사람이고, 청하(靑霞)

권극중(權克仲)이 고부 사람인데, 모두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다.




마이산 일대(대동여지도)



노령산맥 일대(대동여지도)


덕유산(德裕山)은 충청도 · 전라도 · 경상도가 만나는 곳에 있다. 서쪽으로 한 줄기가 나와 전주(全州) 동쪽에 이르러

마이산(馬耳山)이 되었다. 또 마이산의 산백 하나로부터 서남쪽으로 임실(任實)과 전주가 만나는 곳을 따라 뻗어 금구(金溝)의

모악산(母岳山)이 되었다가, 만경강(萬頃江)과 동진강(東津江) 두 강의 안쪽에서 그친다.


또 다른 산맥 하나는 서남쪽으로 뻗어 순창의 복흥산(復興山)이 되고, 정읍(井邑)의 노령(蘆嶺)이 된다.

노령에서 여러 줄기가 갈라져 서쪽으로는 영광(靈光)에서 그치고, 서남쪽으로는 무안에서 그치고 북쪽으로는 부안의 변산(卞山)에서

그친다. 또 동남쪽으로는 담양(潭陽)과 광주 아래에 위치한 산이 된다.


마이산의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 주줄산(珠崒山)이 되는데, 이 산은 진안(鎭安)과 전주 사이에 있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산맥 하나가

나와 전주부(全州府)가 되는데, 이곳이 전라도관찰사의 치소이다.


전주부의 동쪽은 위봉산성(威鳳山城)이고, 약간 북쪽에는 기린봉(麒麟峰)이 있는데, 이곳에서 산맥 하나가 나와 전주부에

이르렀다가 서북쪽으로 뻗어 건지산(乾止山)이 된다. 또 산맥 하나가 나와 서쪽으로 가서 덕지(德池)가 되는데, 이 호수는 매우 깊고 넓다.

덕지를 지나면 또 다시 큰 들판을 빙 두르고 있는 평평한 언덕이 형성되는데, 이곳은 만마동(萬馬洞)의 물을 거슬러 받기 때문에

지리가 매우 아름다워 참으로 살 만한 곳이다.


주줄산의 여러 계곡물은 고산현(高山縣)을 거쳐서 전주 경계에 들어가서 율담(栗潭) · 양전포(良田浦) · 오백주(伍百州)가 된다.

이 지역은 큰 계곡의 물을 댈 수 있어서 흙이 가장 비옥하며, 벼, 생선 · 새강 · 토란 · 대나무 · 감을 판매하는 이익이 있고, 수 많은

촌락에는 생활에 필요한 기구가 모두 갖추어졌고, 서쪽으로 사탄(斜灘)에서는 선박으로 생선과 소금을 유통하며, 사람과 물산이 조밀하고

풍부하기 때문에 재화가 쌓여 그 규모가 한양과 다를 바가 없으니, 참으로 하나의 큰 도회지이다. 노령 이북의 10여 개 고을에는

모두 산람장기가 있지만 오직 전주만 기후가 청량하니, 살기에 가장 좋다.




주줄산과 전주 일대(대동여지도)



전주 북부 일대(대동여지도)


주줄산 북쪽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내려가 탄현(炭峴) · 용화산이 되고, 옥구(沃溝)에서 그친다.

탄현의 서북쪽에는 여산(礪山) 등 5개의 고을이 있는데, 그 중 여산은 흙이 차져서 산람장기가 있기 때문에 살기가 좋지 않다.


용화산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나가 여산 서북쪽에서 채운산(采雲山)이 된다.

 그 서쪽은 곧 용안(龍安) · 함열(咸悅) · 임피(臨陂)로, 모두 진강(鎭江)의 남쪽에 있다.




주줄사 서쪽 일대와 진강 남쪽 일대(대동여지도)



임피의 서쪽은 옥구이고, 탄현의 동쪽은 고산이고, 용화산의 남쪽은 익산(益山)이다.

고산과 익산에는 모두 산람장기가 있는데, 그 중 고산의 산수가 익산에 비해 더욱 험악하니, 흙이 아무리 비옥하더라도 살기에 좋지 않다.


모악산의 서쪽은 금구와 만경(萬頃) 두 고을인데, 그 곳의 샘물은 상당히 맑고, 산도 탈살(脫殺)이면서 들판 가운데를 감돌고 있고,

두 물줄기가 감싸듯 아여 기맥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살기에 좋은 곳이 상당히 많다.




모악산 서쪽 일대(대동여지도)




태인 · 고부 · 변산 · 무장 일대(대동여지도)


그 나머지인 태인(泰仁) · 고부 · 부안 · 무장(茂長) 등의 여러 고을에는 모두 산람장기가 있다.

오직 부안의 변산 부근과 흥덕(興德)의 장지(長地) 아래에는 토지가 비옥한 데다 호수와 산의 경치가 빼어나다.

그 중에서 산람장기가 없는 곳을 택한다면 또한 살기에 좋을 것이다.






노령 서쪽(대동여지도)



노령의 서쪽은 함평(咸平) · 영광(靈光) · 무안(務安)이고, 남쪽은 장성(長城) · 나주(羅州)이다.

이 5개 고을의 물과 샘에는 산람장기가 없다. 장성은 토양이 비옥하고 산수가 아름답고 수려하다.




나주 일대(대동여지도)



나주는 노령 아래에 있는 하나의 도회지이다. 뒤쪽으로는 금성산(錦城山)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영산강(榮山江)에 닿아 있어

읍터의 국(局)과 형세가 한양과 비슷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름난 관료가 많았다. 강을 건너면 큰 들판이 펼쳐져서 동쪽으로는 광주(光州)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영암(靈巖)과 통하면,풍기(風氣)가 탁 트여있고 물산이 풍부하면서 지역이 넓어 촌락들이 별처럼 늘어서 있다.

게다가 전라도의 서남쪽 강과 바다에서 생산되는 이익을 주관하니, 가장 이름난 고을이다.





영암 일대(대동여지도)



영암은 나주의 서남쪽에 위치하는데, 이 중 월출산(月出山) 아래 지역은 서해와 남해가 교차하는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가 당나라에 조공할 때는 모두 이 바닷가에서 배를 띄웠으니, 배를 타고 1일이 지나면 흑산도(黑山島)에 이르고 또 41일이 지나면

홍의도(紅衣島)에 이르고, 또 1일이 지나면 가가도(佳可島)에 이른다. 여기에서 간방(艮方)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3일이 지나면

태주(台州) 영파부(寧波府의 정해현(定海縣)에 이른다. 만약 바람이 순조로우면 1일 만에 이를 수 있다. 남송(南宋)이 고려와 교류할 때에

정해현에서 배를 띄우면 7일이 지나서 고려의 국경에 이를 수 있었는데, 배를 대고 육지에 오른 장소가 바로 이 지역이다.


복흥산(復興山)의 동쪽은 임실 · 순창 · 남원 · 구례(求禮)로,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군(郡)이다.

마이산(馬耳山) 남쪽 골짜기의 물은 임실을 거쳐서 남쪽으로 남원에 이르러서는 요천(蓼川)과 합류하여 잔수(潺水)와 압록진(鴨綠津)이 된다.

이 물의 서쪽이 곧 옥과(玉果) · 동복(同福) · 곡성이다. 악양강(岳陽江)이 되는데, 이곳은 남해의 조수와 통한다. 이어서 지리산을 따라

남쪽으로 흐르면서 섬진(蟾津)이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섬진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구분하는 경계이다.


남원에서 동쪽으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곧 운봉현(雲峯縣)이다. 이곳은 지리산 북족 팔량치(八良峙) 위에 있으니, 곧 전라도와 경상도를

통행하는 큰 길이다. 남원현의 동남쪽은 성원(星園)이고, 그 남쪽은 구례현(求禮縣)이다. 성원에서 구례까지 온통 하나의 들판으로 이루어져

1묘에 1종(鍾)을 거둘 만큼 비옥한 논이 많다. 그러나 남원과 구례는 모두 지리산 서족에 위치하여 섬진 서쪽의 3개 고을과 함께 예로부터

산람장기가 있어 살기에 나쁜 지역으로 알려졌는데, 요즘에는 조금 청량해졌다고 한다.


복흥산 남쪽 산줄기는 담양 · 창평을 거쳐서 광주의 무등산이 되고, 무등산의 서남쪽은 광주 · 화순 · 남평 · 능주(稜州)가 된다.

이 중에 오직 광주 서쪽 일대만이 나주와 인접하여 풍기가 원대하고 화창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경치가 좋은 마을이 많았고,

또한 관료로 이름난 사람도 많았다.


영암의 동남쪽 바닷가에 8개 고을이 있는데, 풍속은 대체로 같다. 이 중 오직 해남 · 강진은 제주도로 나가는 바다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어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말 · 소 · 가죽 · 진주 · 자개 · 귤 · 유자 · 말총 · 대나무를 판매하는 이익이 있다. 그러나 이 8개 고을은 한양과

지리적으로 멀고 남해와 가까워 겨울에도 풀이 시들지 않고 벌레가 겨울잠을 자지 않으므로, 산람의 기운과 바다 기운이 찌는 듯하여

산람장기가 된다. 게다가 일본과 아주 가까워서 흙이 비록 비옥하더라도 즐겁게 살 만한 곳이 아니다.





전라도 남부 일대(대동여지도)



대략 전라도는 나라의 가장 남쪽에 있어서 토산물이 풍부하다. 산으로 둘러싸인 군(郡)은 강물이나 시냇물에 의지하여

관개하기 때문에 흉년으로 인한 피해가 적어 수확량이 많다. 바다 근처의 고을은 옛날에 제방을 막아 물을 댔는데,

신라 이후로 큰 제방과 못이 최근까지 점차 폐기되었기 때문에 자주 가물어 수확량이 적다.


옛날 중국의 사마광(司馬光)은 민(閩) 지역 사람들이 교활하고 험악하다고 말했지만, 주자(朱子) 때에 이르러서는 현자들이 계속 나왔다.

 이 전라도도 진실로 현자가 기거하면서 풍요로운 생업을 바탕으로 예양(禮讓)과 문행(文行)을 가르치면 역시 살기 좋지 않은 곳은 아니다.

 게다가 산천에 기이한 명승지가 많지만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그 기운이 잘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 지역 또한 언젠가 한 번은 정기가 모여

훌륭한 인물을 길러낼 것이다. 다만 지금 기준으로 말한다면 지리적으로 멀고 풍속이 경박하여 가서 살기에는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퍌역가거지》








 4) 경상도 [嶺南]


경상도는 지리(地理)가 가장 좋다. 강원도의 남쪽에 있고, 서쪽으로는 충청도 · 전라도와 경계를 접하며,

 북쪽으로는 태백산(太白山)이 있다. 풍수가들은 태백산을 "높게 솟은 수성(水星)의 형상이다." 라 했다.

 태백산의 왼쪽(한양 기준의 방위)으로 하나의 큰 줄기가 나와 동해 바닷가에 바싹 붙어 쭉 내려오다가 동래(東萊) 바닷가에서 그친다.


태백산 천제단(天壇)


오른쪽으로도 하나의 큰 줄기가 나와 소백산(小白山) · 작성산(鵲城山) · 주흘산(主屹山) · 희양산(曦陽山) · 청화산(靑華山)

 속리산(俗離山) · 황악산(黃岳山)  · 덕유산(德裕山) · 지리산(智異山) 등이 되어 남해(南海) 바닷가에서 그친다.

이 두 줄기 사이에는 1,000리에 걸쳐 비옥한 들판이 펼쳐져 있다.





태백산 황지공원(上池)                                                                   (下池)


황지(潢池)의 물은 태백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아래에서 산을 뚫고 나온다.

이 물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예안(禮安)에 이르러서는 동쪽으로 굽어졌다가 다시 서쪽으로 안동(安東)의 남쪽을 돌아, 용궁(龍宮)과

함창(咸昌)의 경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남쪽으로 굽어져 낙동강(洛東江)이 된다. 낙동이란 상주(尙州)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상주는 일명 '낙양(洛陽)'이다.】


낙동강은 김해(金海)로 들어가 경상도 중앙을 가로지르면서 흐르니, 낙동강의 동쪽을 '경상좌도'라 하고 나동강의 서쪽을 '경상우도'라 한다.

경상좌도와 경상우도 이 두 갈래가 다시 김해에서 크게 합쳐지면서 70개의 고을이 하나의 수구를 함께 공유하면서 큰 형국을 만들었다.





경상도의 산줄기와 물줄기(대동여지도)





경주 일대(대동여지도)


아주 옛날에는 이곳에 면적이 사방 100리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가 매우 많았는데, 신라가 출현하면서 이런 작은 나라들을 모두 통일했다.

신라는 천 년 동안 나라를 향유하면서 경주(慶州)에 도읍 했는데, 예전에는 경주를 '계림군자지국(鷄林君子之國)'으로 불렀고, 지금은

'동경(東京)'이라 부른다. 태백산 왼쪽 줄기의 중앙 지점에 있다. 풍수가의 말에 따르면 경주는 '회룡고조(回龍顧祖)' 로 서북쪽을 향해 벌어진

형국이니, 형국 안의 물은 동쪽으로 흘러 큰 강을 이루어 바다로 들어간다. 경주에는 신라 때 유적인 반원성(半月城) · 포석정(鮑石亭) ·

괘릉(掛陵) 의 옛터가 남아 있다.


신라 때에는 북쪽으로 발해(渤海)와 거란족에 육로가 막혀서 오로지 해로로만 당나라에 조공했다.

신라는 당나라와 사신 교류가 끊이지 않아 문명과 문물에 관해서는 중국을 본받았으니, 그 문화가 상당히 우수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상도에서는 고려에서 우리 조선에 이르기까지 천 년 동안 고관대작과 장군, 글을 쓰고 학문하는 일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와 공훈을 세우거나

절개를 지킨 사람, 선도(仙道) · 불도(佛道) · 도교(道敎)의 무리가 많이 배출되어 인재의 창고라고 불린다. 만력(萬曆) 이전에는 나라를 장악한

사람이 모두 경상도 사람이었고, 이 시기에 문묘(文廟)에 모셔진 사현(四賢) 또한 경상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근래 백 년 동안은 관료로 이름난

선비가 상당히 적다. 그러나 선배들이 남겨놓은 풍속과 은택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아서 풍속이 예의와 겸양을 숭상하니,

 지금까지도 과거시험의 합격자가 다른 도에 비해 많다.


경상좌도는 흙이 척박하고 백성이 가난하기 때문에 비록 검소하게 아끼지만 학문에 뛰어난 선비가 많고,

경상우도는 흙이 비옥하고 백성이 부유하기 때문에 사치를 좋아하고 게을러 선비들이 글을 쓰고 학문하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

이것이 경상도의 대략이다.


예안(禮安) · 안동(安東) · 순흥(順興) · 영천(榮川) · 예천(醴泉) 등의 고을은 태백산과 소백산의 남쪽에 있는데 이 고을들은

신명(神明)이 모이는 복지(福地)이다. 태백산 아래에는 평평한 산들과 탁 트인 들판이 밝고 수려하고, 깨끗하고 상쾌하며, 흰 모래와 견고한

흙까지 갖추어져 있으니, 그 기상이 완연하게 한양과 같다. 예안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고향이며, 안동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고향이다. 이 5개 고을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인접해 있으면서 사대부가 가장 많은데, 모두가 이황과 유성룡의 문인과 자손들이다.


이들은 오륜(五倫)과 의리(義理)를 밝히고 도학(道學)을 중시하여 비록 외딴 마을이나 쇠잔한 마을이라도 늘 글 읽는 소리가 들리고,

해진 옷을 입고 항아리 주둥이로 창을 만들어 살 정도로 가난해도 모두 도덕(道德)과 성명(性命)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풍습이

점점 쇠락해서 비록 성품이 수수하고 신중해서 작은 일에도 끈질기게 매달리기는 하지만, 실속이 적고 말다툼을 좋아하기 때문에

또한 지금사람이 옛사람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안동부(安東府)의 치소는 화산(花山)의 북쪽에 있다. 황수(滉水, 낙동강)는 간방(艮方)에서 흘러오고,

 청송(靑松)의 읍천(邑川)은 임하(臨河)를 따라 흘러온다. 이 두 물은 치소의 손방(巽方)에서 합류하여 읍성을 휘감으며 서남쪽으로 흘러간다.

안동부 남쪽에는 영호루(映湖樓)가 있는데, 명승이라 불린다.





예안 · 안동 · 순흥 · 영천 · 예천 일대(대동여지도)




안동 · 임하 · 청송 · 화산 일대(대동여지도)




진보 · 영양 · 영해 · 평해 · 읍령 일대(대동여지도)


태백산의 동쪽에는 영양현(英陽縣과 진보현(眞寶縣)이 있는데, 두 현의 풍속이 거의 같다. 진보현에서 동쪽으로 읍령(邑嶺)을 넘으면

영해부(寧海府)이다. 영해부는 북쪽으로 강원도 평해(平海)와 접해 있다.





비안 · 의성 · 군위 · 의흥 · 안동 · 신녕 일대(대동여지도)


안동에서 황수를 건너면 팔공산(八公山)이 있다. 팔공산의 북쪽과 황수의 남쪽에는 의성(義城) 등 8~9개 고을이 있고, 그 남쪽은 경주이다.

북쪽으로는 영해부에서부터 남쪽으로 동래(東來)에 이르기까지 모두 9개 고을은 모두 태백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 밖에 있는데,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 좁으며 모두 바다와 가까이에 있어 생선과 소금을 판매하는 이익이 있다.

이 중 경주는 9개 고을 가운데 가장 큰 도회지로, 아직도 고도(故都)의 풍속이 남아 있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고향이다.









대구 · 칠곡 · 하양 · 경산 · 자인 일대(대동여지도)


팔공산(八公山) 남쪽은 대구(大丘)이고, 서쪽은 칠곡(漆谷)이며, 동남쪽은 하양(河陽) · 경산(慶山) · 자인(慈仁)등의 고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높게 막혀 있어서 그 안에 큰 들판을 감추고 있다. 들판에는 금호강(琴湖江)이 있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의 하류에서 합류한다. 대구는 경상도관찰사의 감영은 금호강의 남쪽이나 북쪽으로의 거리가

매우 비슷하고 또한 지세와 풍경이 뛰어난 도회지이다.





경산 · 자인 · 현풍 · 청도 · 창녕 · 영산 · 밀양 · 양산 일대(대동여지도)


대구에서 동남쪽으로 동래에 이르기까지 8개 고을이 있는데, 이 고을들은 비록 흙은 비옥하지만 왜(倭)와 가까워서 살기에 좋지 않다.

하지만 오직 밀양(密陽)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고향이고, 현풍(玄風)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고향으로,

이 두 고을은 강을 끼고 있으면서도 바다와 가까워서 생선과 소금을 판매하는 이익이 있고 뱃길이 편리하며, 또한 번화하면서 경치 좋은 곳이다.

그래서 한양의 역관들이 이곳에 귀중한 물품을 많이 두었다가 왜와 교역하여 많은 시장의 이익을 얻는다.


경상 우도를 살펴보면, 문경(聞慶)은 새재[鳥嶺] 아래에 있어서 경상도 경계의 첫 고을이다.

대개 사방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고을이어서 매우 험한 지형 가운데 있지만, 풍수가들은 이곳을 '소탈실(小脫殺) 한 곳이라 한다.


문경의 남쪽은 함창(咸昌)이고, 그 남쪽은 상주(尙州)이다. 상주 역시 새재 아래의 도회지로, 산은 웅장하고 들판은 넓다.

북쪽으로는 새재와 가까워서 충청도 · 경기도와 육로로 통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에 닿아 있어서 김해 · 동래와 수로로 통한다.

말과 선박으로 운송하니 남북으로 수로와 육로의 요충지가 되어 물자의 거래에 편지라기 때문에 상주에는 부유한 사람이 많고 이름난 선비와

관료도 많다. 정경세(鄭經世)와 이준(李埈) 모두 상주 사람이다.


상주 서쪽은 화령(火嶺)으로, 노수신(盧守愼)의 고향이고, 동쪽은 인동(仁同)으로, 장현광(張顯光)의 고향이다.





문경 · 함창 · 상주 일대(대동여지도)



상주 남쪽은 선산(善山)으로, 상주에 비해 산수가 더욱 청명하고 빼어나다. 예로부터 선산에 글을 쓰고 학문하는 선비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선 인재의 절반은 경상도에 있고, 경상도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 있다." 라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가 선산을

지나가던 중 명나라 술사(術士)가 조선에 인재가 많음을 꺼려서 병졸에게 명하여 산산 뒤 주산의 맥을 끊기 위해 숮을 피워 지진 뒤,

큰 쇠못을 바가 지맥을 눌러놓았다. 이때부터 인재가 쇠해져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황악산과 덕유산 동쪽의 물이 합류해서 감천(甘川)이 되어 동쪽에서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감천과 닿아 있는 고을은 지례(知禮) · 김산(金山)

 · 개령(開寧)이니, 이 고을들은 선산과 함께 모두 관개의 편리함을 누린다. 논이 극히 기름져서 백성들이 그 땅에서 편안히 살고, 죄짓기를

두려워하며 간사함을 멀리하기에 이 지역에는 대대로 거주하는 사대부가 많다.





화령 · 안동 · 선산 일(대동여지도)




지례 · 김산 · 개령 일대(대동여지도)



김천 남쪽에는 선석산(禪石山)이 있고, 그 남쪽은 성주(星州)와 고령(高嶺)이다.

또 남쪽은 합천(陜川)으로 모두 가야산(伽倻山)의 동쪽에 있다. 3개의 고을의 논은 경상도에서 가장 기름져서 조금 파종해도

 많이 수확할 수 있으니, 이곳의 토박이들은 모두 부유하여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 성주는 산천이 밝고 수려하여 고려 때부터

이름난 선비나 관리가 많았으며, 우리 조선에 이르러서는 김우옹(金宇顒)과 정구(鄭逑)가 모두 성주 사람이다.

합천의 남쪽은 삼가(三嘉)로, 조식의 고향이다.





성주 · 고령 · 합천 · 삼가 일대(대동여지도)


덕유산 동남쪽은 안음(安陰)으로, 정온(鄭蘊)의 고향이다. 안음의 동쪽은 거창(居昌)이다.

이 두 고을을 남쪽은 함양(咸陽)과 산음(山陰)으로, 모두 지리산 북쪽에 있다. 이 4개 고을 모두 흙이 비옥하지만, 그 중 함양은 경치도 좋아

산수굴(山水窟)로 더욱 알려져, 거창 · 안음과 함께 모두 이름난 고을로 알려졌다. 오직 산음만 지대가 어두컴컴하여 살기에 좋지 않다.





안음 · 거창 · 함양 · 산음 · 진주 일대(대동여지도)


이 4개 고을의 물이 합류해서 영강(瀯江)이 되어 진주(晋州) 고을을 돌아 남쪽으로 흐르다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진주는 지리산 동쪽에 있으며 큰 고을이다. 여기서는 장수와 재상이 된 이재를 많이 배출했다.

흙이 기름진데다가 강과 산의 경치가 좋아서 사대부들은 재력과 세력을 뽐내며 주택가 정자 짓기를 좋아하니,

이곳에 사는 이들은 비록 벼슬살이를 하지 않더라도 유한공자(游閑公子)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





의령 · 초계 · 단성 · 곤양 · 남해 · 사천 · 고성 · 진해 · 웅천 · 거제 · 함안 · 칠원 · 창원 · 김해 · 하동 · 광양 일대(대동여지도)


진주의 동쪽은 의령(宜寧) · 초계(草溪)로, 진주와 풍속이 대체적으로 같다. 영강의 남쪽에 있는 13개 고을에는

옛날부터 관료로 이름난 사람이 적었다. 또한 바다와 가깝고 왜와 인접해 있으며 물에 산람장기가 있어서 살기에 좋지 않다.

다만 이 중 하동(河東)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고향으로 지리산 남쪽에 있으면서 전라도 광양(光陽)과 경계가 연접해 있기 때문에

'좌귀우부(左貴右富)'라 한다. 그래서 하동 고을 곳곳에 오래도록 이름난 마을이 많다. 그러나 위치가 서울과 멀어 대대로 거주하던

토박이가 아니면 갑자기 가서 살기 어렵다, 《팔역가거지》







5) 강원도 [關東]


강원도는 함경도와 경상도 사이에 있다. 서쪽으로는 황해도 곡산(谷山) · 토산(兔山) 등의 고을과 이웃하고,

서남쪽으로는 경기도와 충청도와 접해 있다. 강원도의 산줄기는 철령(鐵嶺)에서 남쪽으로 태백산(太白山)에 이르기까지

하늘에 있는 구름에 닿을 듯이 가로로 뻗어 있다.


강원도 일대《삼한일람도(三韓一覽圖)》


산줄기 동쪽에는 다음 9개의 군(郡)이 있다. 흡곡(歙谷)은 북쪽으로 함경도 안변(安邊)과 접해 있고, 통천(通川) · 고성(高城) ·

간성(杆城) · 양양(襄陽) · 강릉(江陵) · 삼척(三陟) · 울진(蔚珍)이 있으며, 평해(平海)는 남쪽으로 경상도 영해(寧海)와 접해 있다.

이 9개의 군 모두 동해 바닷가에 있는데, 남북으로는 거리가 천 리나 되지만 동서로는 백 리가 채 되지 않는다. 산줄기가 서북쪽을

이미 막고 있으며 동남쪽은 바다와 매우 가깝다. 지세가 비록 협소하고 큰 산줄기 아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아래 들에 있는 산은 대부분 나지막하고 평평하며, 밝고 수려하다.


동해(東海)에는 조수가 없기 때문에 물이 혼탁하지 않아 '벽해(碧海)'라 불린다. 물길이 갈라지는 섬처럼 가로막는 것도 없기 때문에

크고 평평한 호수나 저수지 곁에 있는 듯이 탁 트여 있어 아득하고 웅장하다. 또 이 지역에는 유명한 호수와 기이한 암석이 많아서,

높은 곳에 오르면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골짜기에 들어서면 물과 바위가 그윽하면서 고요하여

 경치가 실제로 나라에서 제일이다. 경치가 빼어난 누대와 정자도 많다,


9개의 군 서쪽은 금강산(金剛山) · 설악산(雪嶽山) · 오대산(五臺山) · 두타산(頭陀山) · 태백산(太白山) 등이 있는데,

산과 바다 사이에 뛰어난 명승지가 많고, 동부(洞府)는 그윽하고 깊으며 물과 바위가 맑고 깨끗해서 간혹 신선에 관한 기이한 행적이 전해 온다.


토박이들은 실컷 놀러 다니기를 좋아하여 그 중 나이 지긋한 이들은 기생 · 악공, 술 · 고기를 싣고 호수나 산에서 질탕하게 논다.

그래서 이들의 자제들도 놀러 다니는 데에 물들어 글을 쓰고 학문에 힘쓰는 자가 적다.

 또한 이곳은 한양(漢陽)과 개성(開城)에서 아주 멀기 때문에 예부터 관료로 이름난 사람이 적다.


오직 강릉만이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상당히 배출했다. 게다가 흙이 매우 척박하여 논에 1두(斗)를 심으면 겨우 10여 두를 수확한다.

오직 고성과 통천에 논이 가장 많고 아주 척박하지도 않다. 그 다음은 삼척인데, 논에 1두를 심으면 이따금 40두를 수확하기도 한다.


그러나 9개의 군 모두 바다에서 생기는 이익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은 고기잡이와 해산물 채취, 자염(煮鹽)을 생업으로 하여

부유한 사람도 많다. 다만 서쪽 고개가 너무 높아 이곳이 마치 머나먼 이역(異域) 같아서

한 때 유람하고 감상하기에는 적당하지만 오래도록 살만한 곳은 아니다.


강릉의 서쪽은 대관령(大關嶺)이고 대관령 북쪽은 오대산인데, 우통수(于筒水)가 여기서 나와 한강의 발원지가 된다.

북쪽으로는 회양(淮陽)에서 남쪽으로 정선(旌善)까지가 모두 여기저기 어지러이 뻗은 산과 깊은 골짜기이며, 물은 모두 서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간다. 지대가 높아 기후가 추우며 땅은 척박하고 백성은 거칠다. 그래서 비록 계곡과 산의 경치가 빼어나지만

역시 살 만한 곳은 아니다. 그 중에 오직 춘천(春川)과 원주(原州)가 조금 낫다.


춘천은 인제(麟蹄)의 서쪽에 있고 수로와 육로 모두 서남쪽으로 한양과의 거리가 200여 리이다.

고을의 북쪽에 청평산(淸平山)이 있고, 산에는 고려 처사 이자현(二資玄)의 곡란암(鵠卵庵) 옛터가 있다.

산 남쪽 10여 리 지점은 소양강(昭陽江)에 닿아 있는데, 이곳은 맥국(麥麴)의 천년 고도(故都)이다.

 이 지역 밖에는 우두촌(牛頭村)이 있는데, 한무제(漢武帝)가 팽오(彭吳)를 시켜 길을 열었다고 전해지는

우수주(牛首州)가 바로 이곳이다. 산속에 평야가 탁 트여있고 두 강이 춘천 가운데로 흘러간다.

 이곳은 기후가 좋고 지세는 맑고 훤하며 토지가 비옥하여 대대로 거주하는 사대부가 많다.


원주는 영월(寧越) 서쪽에 있고 강원도 관찰사의 치소이다.

서쪽으로 한양과의 거리가 250리이다. 동쪽으로는 산봉우리와 골짜기에 잇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경기도 지평현(砥平縣)과 접해 있다.

산골짜기 사이사이에 구릉과 들판이 섞여 펼쳐지는데, 밝고 수려하며 지형이 그다지 험하거나 가파르지 않다.

원주는 경기도와 강원도 동쪽의 산봉우리들 사이에 끼어 있어 동해의 생선 · 인삼 그리고 관곽(棺槨)이나 건축 목재 등을 운송하므로

강원도의 도회지가 되었다. 산골짜기와 가까워 전란이 있으면 세상을 피하기 쉽고, 서울과 가까워 세상이 평화로우면

 벼슬에 나갈 수 있기에 한양 사대부들 중에 이곳에 살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원주 북쪽에는 횡성현(橫城縣)이 있는데, 골짜기 안이 탁 트여 있어 환하게 밝고 넓으며 물이 푸르고 산이 평평하여,

형용하기 힘든 일종의 맑은 기운이 특별히 있다. 그래서 이 지역 안에도 대대로 거주하는 사대부가 많다.


동북쪽에서 오대산 서쪽 산의 물을 받아들어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원주에 이르러 섬강(蟾江)이 되고,

흥원창(興元倉) 마을에 들어갔다가 남쪽에서 충주 지역의 강 하류와 합류한다.


철령(鐵嶺)과 금강산(金剛山)의 물이 남쪽으로 흘러 춘천의 모진(牟津)이 되고, 양근(陽根)의 용진(龍津)에 이르러 한강으로 들어간다.

춘천에서 강을 건너면 서쪽에는 양구(楊口) · 김화(金化) · 금성(金城) · 철원(鐵原) · 평강(平康) · 안협(安峽) · 이천(伊川) 등

7개 고을이 있는데, 모두 경기도 북쪽이자 황해도 동쪽에 있다.


그 중에 철원은 태봉(泰封)을 건국한 궁예(弓裔)의 고도(故都)로, 골짜기 안에 들이 펼쳐지며 서쪽으로는 경기도 연천(漣川) 접해 있다.

흙이 비록 척박하지만 큰 들판과 작은 산들이 탁 트여 있고 환하다. 이곳은 두 강 사이에 있으면서 또한 골짜기 속에 있는 도회지이다.

《팔역가거지》


※ 인용서적: 『임원경제지』「상택지」






A Place In The Sun - Gand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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