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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화암수록花菴隨錄

 

 

화암수록花菴隨錄

 

 

기이한 화훼가 있다면 천금을 주고라도 사겠소

 

 

 

조선 초 강희안의 《양화소록》이후 근 300년 만에 등장한 유박의《화암수록》

 이 두 책은 조선 시대 2대 원예전문서다. 엮은이는 《화암수록》을 접하게 된 계기부터

지은이가 강희안姜希顔이나 송타宋柁 같은 이의 저작으로 잘못 알려진 연구 과정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유박柳璞(1730~1787)의 본관은 황해도 文化, 자는 화서和瑞, 호는 백화암百花菴.

 《화암수록》과 연시조 <화암구곡花菴九曲>의 저자로, 몰락한 소북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채

황해도 배천白川  금곡포金谷浦 바닷가에 거처를 마련하여 백화암이라 이름 짓고, 온갖 화초를 가꾸며  

달빛을 벗 삼아 거문고를 뜯고 책을 읽으며 대숲 그림자와 솔바람 소리에 낮잠을 청하는 처사의 삶을 살았다고.

 

그는 이전의 화훼서가 주로 중국의 것을 다루고 있거나 조정에 바치는 품종만을 귀하게 여기는 점 등에 아쉬움을 느껴

화훼의 품제를 새로이 정립하고 화목에 대한 평을 달았으며 화훼서로는 최초로 개화 시기를 월별로 정리해 기록했다.

유박에게 백화암이라는 공간은 우울한 현실의 정신적 피난처로써 젊은 시절의 넘치는 정열을 쏟아낸 유일한 분출구이자,

미완의 이상향이요, 미약하게나마 세상에 자신을 알릴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던 듯.

 

꽃과 관련된 「서한(書翰)」·「제문(祭文)」·「절구(絶句)」·「율시(律詩)」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주목되는 점은

18~19장에 걸쳐 꽃과 더불어 살아가던 저자의 풍취(風趣)를 「화암구곡(花菴九曲)」(9)·「매농곡(梅儂曲)」(1) 등,

시조 10수와 2줄 형식의 국문가요「촌구(村謳)」(1)로 남겨놓았다는 사실.  필사본. 1책 5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화암수록》의 저자를 밝히는 과정에서 발굴한 다양한 자료를 더하고 분석 정리해

조선 후기 원예문화를 포괄적이면서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각주까지 달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었다.

엮어낸 책의 말미에는 《화암수록》의 원문까지 실려 있어서 나로서는 여간 공부에 도움이 된 게 아니었다.

 꽃에 심취한 화광花狂 유박의 저서《화암수록》중 일부를  살펴보기로 하자.

 

 

 

 

 

 

 

 

 

1등 

고상한 품격과 빼어난 운치를 취하였다.

 

 

매화  모두 21품종이다.

 

춘매春梅, 즉 봄에 피는 매화는 고우古友, 곧 예스런 벗으로 삼고, 납매臘梅, 즉 섣달에 피는 매화는

기우奇友, 기이한 벗으로 삼는다.

푸른 이끼, 이끼 수염.

녹악분단엽綠萼粉單葉, 즉 초록 꽂받침에 흰 홑꽂이 고매古梅에 어울린다. 도수백倒垂白, 다시 말해

아래쪽으로 늘어진 흰 꽂 또한 땅에 심기에 적합하다.

천엽황백홍千葉黃白紅, 곧 겹꽂의 황색, 백색, 붉은색 꽃은 자태가 속되므로 이미 매화가 아니다.

매화는 운치가 빼어나고 격조가 고상하며, 가지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고 성글며 비쩍 마르고 해묵어 기괴한 것을 귀하게 친다.

매화는 천하의 매력적인 물건이니,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자, 어질고 못난 이 할 것 없이

아무도 여기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원예를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매화를 가장 먼저 심는데, 숫자가 많아도 싫어하지 않는다.

소동파蘇東坡는 매화를 '빙혼옥골氷魂玉骨' , 즉 얼음 같은 넋과 옥같은 뼈라고 일컬었다.

고매는 가지가 구불구불 굽고 파란 이끼가 끼며, 비늘 같은 주름이 몸통을 가득 덮는다. 또 이끼수염이 가지 사이에 드리운다.

중엽매中葉梅는 꽂봉오리가 몹시 풍성하고 겹꽃이 여러 층으로 성대하게 피어 마치 작은 백련白蓮과 같다.

열매는 쌍으로 달린 것이 많다. 일반적으로 매화의 꽃받침은 대부분 붉거나 자주색인데 반해, 녹악매綠萼梅만은 초록색이고,

 가지와 줄기도 푸르다. 홍매紅梅는 분홍색인데 품격은 매화지만 번화하고 촘촘하기는 살구나무와 같고 향기 또한 비슷하다.

천엽황백홍은 열매가 쌍으로 달리는 것이 많으니, 이는 《梅譜》에서 말하는 중엽매와 원앙매鴛鴦梅이다.

(매보梅譜는 남송南宋의 범성대范成大가 지은 《범촌매보范村梅譜》를 가리킨다.

언제부터 매화를 접붙이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매화는 접을 붙여야만 매화이다.

그래서 옛날에 '매梅'라고 하면 단지 매실만을 일컬었다. 나의 벗 안사형安士亨의 생각도 이와 같다.

보관할 때는 따뜻하게 해야하며 물에 적셔 마르지 않도록 한다.

 

 

 

 

 

 

 

 

 

국화   황색이 54품종, 흰색이 32품종, 붉은색이 41품종, 자주색이 27품종이다.

 

 

빼어난 벗.

성품을 길러주는 좋은 약으로, 수명을 연장시키고 몸을 가뜬하게 한다.

금원황禁苑黃과 취양비醉楊妃, 황학령黃鶴翎과 백학령白鶴翎을 으뜸으로 삼는다.

황학령과 백학령은 18세기 당시 국화를 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히 유행하였던 국화 품종이다.

조선 후기 학자 기정진奇正鎭의《노사집蘆沙集》에 황학령과 백학령을 언급하는 대목이 보인다.

종회鍾會는 <국화부菊花賦>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국화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높게 달린 둥근 꽃은 하늘의 지극함을, 순수한 황색은 후토后土의 빛깔을,

일찍 심어 늦게 꽃을 피움은 군자의 덕을 나타낸다. 또 서리를 맞고 나서 꽃을 피움은 굳세고 곧음을 보여준다.

국화주는 몸을 가볍게 하니 신선의 음식이다." ('후토'는 土地神을 이르는 말로 대지의 존칭으로 쓴다.)

4월 8일 이전부터 그믐이 되기 전에 반드시 새 뿌리를 취하여 나누어 심고, 5월이 가기 전에 옮겨 심는다.

습기를 싫어하므로 물은 조금만 주면 된다. 국화를 기를 때 처음에는 누에 똥물을 네댓 번 주고, 그 다음에는 닭털을 담가

 우린 물을 대여섯 차례 준다. 장맛비가 올 때는 오래 묵힌 소변을 두세 번 준다. 온종일 볕에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

댓가지로 붙들어주면 길고 크게 자란다.

 

 

 

 

 

 

 

 

 

연꽃 22품종이다.

 

깨끗한 벗.

속은 비었고 겉은 곧다. 멀수록 향기가 더욱 맑다.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設>에서 취한 말이다)

전당錢塘의 홍백련이 가장 귀하다. 보통의 연은 꽃이 늦게 피고 빨리 시들며 향기 도한 멀리 가지 않는다.

(오늘날 중국 절강성 항주부의 전당현을 이른다.)

붉은 꽃과 흰 꽃을 한 연못에 심으면 안 된다. 붉은 꽃이 성하면 흰 꽃이 반드시 시들기 때문이다.

연못의 구역을 갈라 나눠 심고

쇠똥으로 거름을 주어, 입하立夏 2~3일 전에 연뿌리를 파내 마디의 머리 부분을 따고 진흙을 붙여 심으면그해에 바로 꽃이 핀다.

모종할 때는 곁뿌리를 다 제거해서 연뿌리가 얽히게 해서는 안 된다. 뒤얽히면 꽃이 피지 않기 때문이다. 5월 20일에

연을 옮겨 심을 때 잎자루가 긴 것은 대나무 가지로 붙들어주면 다 잘 산다.

연꽃은 오동기름과 칡뿌리를 제일 싫어한다.

 

 

 

 

 

 

 

 

 

청죽도(靑竹圖) | 전(傳) 조익(趙翼),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나무

 

맑은 벗[淸友].   차군此君

대나무는 품종이 몹시 많은데, 마디의 색깔이 흰 분절分節과 검은 빛을 띤 오죽烏竹을 가장 귀하게 친다.

한 마디에 가지가 두 개면 자죽紫竹, 즉 암대나무라 하고, 하나뿐이면 웅죽雄竹, 곧 수대나무라 한다.

굳세지 않고 부드럽지도 않으며, 풀도 나무도 아니다. 비고 찬 정도가 조금씩 다르나 크게 보아 모두 같다.

모래밭이나 물가에서도 무성하게 자라고, 바위나 땅에서도 솟아난다. 가지가 쭉 뻗어 무성하고, 푸른빛이 빼곡하다.

차군은 면목이 빼어나다.

5월 13일은 죽취일竹醉日이다. 2월 2일과 3월 3일은 본명일本命日이라고 한다. 2월에서 5월까지는 십이지 중

진일辰日을 만날 때마다 모두 옮겨 심을 수 있다. 얼굴을 씻은 기름기 있는 물을 뿌리면 바로 말라 죽는다.

대나무는 서남쪽의 땅을 좋아하므로 동북쪽의 높고 평평하며 물이 없는 곳에 심어야 좋다.

대나무는 짙은 그늘을 좋아하므로 심은 뒤 보름 동안 해를 못 보게 하면 바로 산다. 7월에 심으면 틀림없이 산다.

◎ 보관할 때는 따뜻하게 하면 안 되고 물을 주어 마르지 않도록 한다.

 

 

 

 

 

 

 

 

 

 

 

소나무

 

오래된 벗[老友]  온갖 나무의 우두머리, 창관蒼官의 장부.  늙은 소나무[老松]  키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

《격물총론格物總論》에서는이렇게 말하였다. "소나무 높이가 10여 길이나 된다. 울퉁불퉁 마디가 많이 지고

껍질은 몹시 거칠고 두꺼워서 마치 용의 비늘과 같다.서린 뿌리와 구부러진 가지는 사철 내내 푸르러 가리와 잎의 빛깔을 바꾸지 않는다.

바늘잎이 셋인 것은 괄자송栝子松이고, 바늘잎이 다섯인 것은 숭자송崧子松이다.

큰 소나무가 천 년을 살면 정기가 푸른 소[靑牛]로 변하고 엎드린 거북이 되기도 한다.

◎ 부재符載는 《식송론植松論》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슬을 안에 적시고 해와 달의 빛을 밖에다 두른다. 상서로운 봉황이 그 위에서 노닐고, 샘물은 아래서 울며 흐른다.

신령한 바람이 사방에서 일어나면 피리 소리로 뒤덮인다. 뿌리는 황천까지 닿았고 가지는 푸른 하늘을 어루만지니

명당의 기둥이나 큰 건물의 마룻대로 쓸 수 있다.

소나무를 심을 때 나무 속의 큰 뿌리를 제거하고 다만 사방의 수염뿌리만 남겨두면 비스듬히 덮게 모양으로 자란다.

반드시 춘사일春社日 이전에 흙을 붙인 채로 뿌리를 옮겨야 한다.

연기를 두려워한다. 보관할 때는 따뜻하게 하면 안 된다. 사흘에 한 번씩 물을 주되 그늘진 곳에 두지 않는다.

장맛비가 올 때는 뿌리를 덮어주어 습기가 스며들지 않게 한다.

 

 

 

 

 

 

 

 

 

 

 

2 등

부귀를 취하였다.

 

모란 - 정황색이 11품종, 대홍색이 18품종, 도홍색이 27품종이다.

분홍색이 24품종, 자주색이 26품종, 흰색이 22품종, 청색이 3품종이다.

 

열정적인 벗 [熱友].  꽃의 왕[花王].

황루자黃縷子와 녹호접綠蝴蝶을 상품으로 친다. 아황금사백鴉黃金絲白과 금사진홍金絲眞紅이 그 다음이다.

마간홍馬肝紅은 하품으로 친다. 반드시 땅이 비옥하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다 심는다.

보통 꽃은 봄에 심어야 마땅하나 모란만은 추사일秋社日을 전후하여 심거나 접붙이는 것이 좋다.

위자魏紫.  요황姚黃.

 

 

 

 

 

 

 

 

 

 

 

 

 

 

작약

황색이 18품종, 심홍색이 25품종, 분홍색이 17품종, 자주색이 14품종, 흰색이 14품종이다.

 

귀한 벗[貴友].   꽃의 재상[花相].

금사낙양홍金絲洛陽紅과 천엽백千葉白, 천엽순홍千葉純紅을 귀하게 친다. 가을에 씨를 뿌려야 한다.

작약은 한번 성이 나면 3년간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럴 때는 똥물을 주어 분을 풀어주어야 한다.

 

 

 

 

 

 

 

 

 

 

 

 

 

왜홍

 

권세 있는 벗.

왜철쭉과 영산홍은 가지와 잎과 꽃 꽃의 빛깔이 대동소이하다. 영산백映山白 또한 귀하다.

중국산 영산홍과 철쭉은 일본산만 못하다.

우리 세종대왕께서 즉위하신 지 23년(1441) 되던 봄에 일본국에서 철쭉 화분 몇 개를 진상하니 궁궐 안뜰에 두어 씨를 받으라 하셨다.

꽃술이 매우 크고 겹받침에 겹꽃으로, 오래 되어도 시들지 않는다.

가지를 굽혀서 땅에 접붙이기 좋다.

습기를 싫어한다. 보관할 때는 따뜻하게 하면 안 된다. 물을 주더라도 습해서는 안 된다.

 

 

 

 

 

 

 

 

 

해류

 

◎ 정다운 벗[情友]. 《격물총화格物叢話》에서 이렇게 말하였다."해류는 신라국에서 나왔다. 일명 백엽류百葉榴라고도 하고, 속명은 화석류花石榴, 즉 꽃석류이다.붉은 꽃에 흰 테두리가 둘렸다." 꽃잎이 몹시 많아 피고 지면서 30여 일을 간다. 다만 이슬만 받게 해야지 비를 맞거나 햇빛을 쬐게 해서는 안 된다. 햇빛을 쬐면 빛깔이 엷어지고 비를 맞으면 꽃잎이 썩는다. 가지와 잎은 석류와 차이가 없지만 열매가 달리지는 않는다.

 

 

 

 

 





 

파초

 

우러르는 벗[仰友]   풀의 왕[草王]   녹천암綠天菴

땅에 심는데 3년을 묵혀두어야 꽃이 핀다고 한다. 보관할 때는 따뜻하게 해야 하며 땅을 파고 거꾸로 둔다.

물을 마르지 않게 주어야 한다.

 

 

 

 

 

 

 

 

 

 

 

3  

 운치를 취하였다.

 

치자

 

선미禪味가 있는 벗[禪友]  담복薝蔔   월도越桃

대부분의 꽃은 꽃잎이 여섯 개가 안 되는데 치자꽃은 여섯 개다.

《유마경維摩經》에서 말하였다. "오직 담복의 향기뿐이요 다른 꽃의 향기는 맡을 수가 없다.

◎ 치자는 네 가지 훌륭한 점이 있다. 꽃 빛깔이 희고 기름진 것이 첫째요, 꽃향기가 맑고 짙은 것이 둘째며,

겨울철에도 잎의 빛깔이 바뀌지 않는 것이 셋째고, 열매로 누런색 물을 들이는 것이 넷째이다.

9월에 열매를 채취하여 볕에 말린다.

소가 치자의 가지와 잎을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등불 기름이 한 방울만 떨어져도 치자는 살지 못한다.

촉 땅에는 꽃이 붉은 치자가 있다.

보관할 때 온도를 알맞게 맞추기가 가장 어렵다.

물을 주어 마르지 않게 한다.

 

 

 

 

 

 

 

 

동백

 

◎ 신선 같은 벗[仙友]    산의 차[山茶]

홑꽃으로 눈 속에 피는 것이 동백이니, 화보花譜에서 말하는 일념홍一稔紅이다.

봄에 피는 꽃은 춘백春栢으로 화보에서 말하는 궁분다宮紛茶이다. 천엽금사千葉金絲의 보주다寶珠茶가 가장 귀하다.

가지나 잎이 다른 물건과 닿게 해서는 안 되고, 불기운과 가까워도 안 된다.

동백 잎은 먼지가 잘 앉으므로, 면포로 깨끗이 닦아주어 광이 나도록 해야 한다.

춥고 따뜻하기가 적당해야 한다. 물을 주되 푹 적시면 안 되고 너무 마르게 두어도 안 된다.

해를 두려워하므로 강한 볕을 쬐어서는 안 된다.

 

 

 

 

 

 

 

 

 

사계

당시唐詩에 이르기를  "삼천三川 눈에 계곡물 불어나더니, 정원에 사계화가 피어났구나" 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계'가 틀림없이 본래 이름일 텐데, 당 · 송의 시인들 중에 이 꽃을 노래한 사람이 드물어서 본래 이름이 널리 전해지지 못한 것일까?

 

 

 

운치 있는 벗[韻友]

붉은 꽃과 흰 꽃, 두 종류가 있다. 꽃이 흰 것이 운치가 더 빼어나다. 꽃이 네 계절의 그믐에 피어서 이름을 사계화라 한다.

그믐에 맟춰 꽃이 피는데 빛깔이 엷은 것은 월계화月季花 혹은 월월홍月月紅이라고 한다.

햇볕을 많이 쬐면 빛깔이 짙어지고 햇볕을 쬐지 못하면 빛깔이 엷어진다.

보관할 때는 너무 따뜻하게 하면 안 되고 계속 물을 주어야 한다.

 

 

 

 

 

 

 

 

 

 

 

종려

 

 

누런 꽃과 흰 꽃, 두 종류가 있다. 열매는 꿀처럼 달고 모양은 생선알 같다.

목어木魚라고도 하고 엽규라고도 한다.

 

 

 

 

 

만년송

 

속칭 노송老松이라 한다. 줄기가 휘고 굽어 붉은 뱀이 숲을 기어 오르는 모양을 한 나무가 上品이다.

잎이 희고 가시가 있는 것은 下品이다.

성질이 추위를 잘 견디므로 괴석 위에 심기가 좋다.

물을 계속 주어야 하고 나무 그늘 밑에 두면 안 된다.

 

 

 

 

 

4등

똑같이 운치를 취하였다.

 

화리

강진향降眞香과 비슷하다. 땅에 심어야 좋다.

※ 보라색 꽃이 피어 자등향紫藤香이라고도 한다. 나무의 줄기로 향을 만드는데,

 향이 좋고 연기가 곧게 올라가 신神이 잘 강림한다는 속설이 있다.

 

소철

봉미초鳳尾草라고 하고, 번초番焦라고도 한다.

건조하여 살기가 어려울 경우, 숯불 위에 놓아두어 불기운을 쐰 쇠못을 등걸 위나 가지 사이에 넣어두면

 바로 살아나 순이 뾰족하게 돋아난다.

 

서향화

특별한 벗

황색과 자주색, 두 종류가 있다. 자주 물을 주면 안 된다. 마땅히 소변을 주어야 지렁이를 죽일 수 있다.

한 송이만 피어도 향기가 온 뜨락에 가득하다.

여산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포도

초룡草龍

흑마유와 자마유 품종이 좋고 청마유는 맛이 달다. 청포도는 맛이 달고 씨는 작다.

시렁에 올리면 아무리 많아도 줄기가 열 개 이상 생기지 않는다.

씨가 맺힌 뒤에는 똥물을 주면 열매가 잘 달린다.

시렁은 높게 만들어 바람을 잘 받아야 좋다. 시렁을 만드는 재목으로 소나무는 피해야 한다.

◎ 보관할 때는 따뜻하게 해야 하고 계속 물을 주어야 한다.

 

 

영특한 벗.

기운을 내려주고 정신을 통하게 한다. 몸을 가볍게 해 오래 살게 해준다.

층층의 가지에 가시가 있다.

소금물을 뿌리에 듬뿍 주고 화분 안에 죽은 쥐를 묻으면 몹시 잘 자란다.

뿌리가 너무 뻗으면 화분 안에 담아두기 어려우므로 해마다 뿌리를 잘라주어야 한다.

심은 지 20년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다.

보관할 때는 온도가 알맞아야 한다.

 

 

 

 

5등

번화함을 취하였다.

 

석류

아리따운 벗   安石榴   왜류倭榴   ◎ 羅榴

일명 단약丹若이라 한다. 《광아廣雅》에서는 약류若榴라 하였다. 열매가 흰 것은 수정류水晶榴라 한다.

꽃은 홍 · 백 · 황 세 종류가 있다.

낮에 물 주는 것을 좋아한다. 석류는 물을 좋아하지만 열매를 맺을 때는 물을 많이 주면 안 된다.

◎ 보관할 때는 따뜻하게 해야 좋다.

 

복숭아

어여쁜 벗

벽도碧桃, 홍도紅桃, 삼색도三色桃, 천엽분도千葉粉挑, 울릉도鬱陵挑, 완도椀挑, 유월도六月桃, 칠월도七月挑,

 상도霜挑, 담인도噉仁挑, 울릉담인승도鬱陵噉仁僧挑, 수도水挑, 승도僧挑, 태백도太白挑.

당나라 현종이 초나라 동산 안에서 천엽홍벽도千葉紅碧桃를 처음 얻고서 양귀비와 더불어  날마다 그 밑에서 노닐며 말하였다.

 "이 꽃은 한스러움을 녹일 수 있다."

홍도와 벽도는 한 화분에 두고 같이 접붙이기 좋다.

복숭아를 심으면 5년 만에 무성해지고 7년이면 쇠약해지며 10년이면 죽는다. 칼로 껍질을 벗겨 기름기를 제거해주어야 한다.

보관할 때는 따뜻하게 하면 안 되고, 물을 계속 주어야 한다.

 

 

해당

얌전한 벗.

안사형이 말하였다. "해당은 향기가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해당은 향기가 있다.

원석공袁石公은 '봄 들면 해당화로 꽃꽃이 한다' 고 하였는데, 우리 땅에서 나는 해당은 4월 이후에야 처음 꽃이 핀다."

고 하였는데,

또 말하길, "매화는 해당과 접붙일 수 있다. 천엽매千葉梅는 성질이 해당과 서로 가깝지 않다. 그러나 속명으로

산단山丹이라 하는

금사단엽홍金絲單葉紅은 향기가 없고 꽃 또한 매화와 가가우나 색깔은 곱고 어여쁘다. 증단백이 말한 명우名友,

즉 이름난 벗과

비슷하니, 산단은 아무래도 해당일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근래에 혜환도인惠寰道人 이용휴에게 들으니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석리石梨, 즉 돌배에 단단을 접붙이면 해당을 쉬이 얻는다. 하지만 앵두에다 산단을 접붙이면 수사해당垂絲海棠이 된다."

대개 우리나라 사람이 여러 가지 꽃의 이름과 품종에 밝지 못해서 동백冬柏을 산다山茶라 하고, 백일홍百日紅을

자미화紫微花라 하며,

향불向佛은 신이辛夷라 하고, 소철을 비파라 한다. 서향瑞香은 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며, 월계화와 사계화

또한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어떤 이름으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해마다 중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책망을 면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장미

좋은 벗.   황색과 홍색, 두 가지가 있다.

 

 

수양

홍도紅桃와 접을 붙여서 소도小挑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꽃이 버들실 사이로 비친다.

 

 

 

 

 

6등

5등과 똑같이 번화함을 취하였다.

 

두견

때에 맞는 벗.

붉은색과 흰색, 두 종류가 있다. 꽃은 흰 것이 더 운치 있다.

북쪽으로 향하게 두어야 한다.

습기를 싫어한다.

 

살구

고운 벗.

단행團杏, 연지단행嚥脂團杏, 이행梨杏, 유행兪杏, 맥행麥杏이 있다.

 

백일홍

속된 벗[俗友]   자미화紫微花   파양화怕痒花

※ 여기서 백일홍은 草本이 아닌 목본木本 배롱나무를 이른다.

 

감나무

칠절七絶, 즉 일곱가지 놓은 점이 있다.

장준, 월화月華, 수시水枾가 좋은 품종이다.

 

오동나무

벽오동이 좋은 품종이다.

화분에서도 덮개 모양으로 기르기에 좋다.

 

 

 

 

 

7등

이하는 각각 좋은 점을 취하였다.

 

배나무

우아한 벗

품종이 많은데 정선旌善에서 나는 청리靑梨는 과일 그릇 하나에 들어갈 정도로 크다.

 

정향

그윽한 벗 

정향丁香이라고도 한다. 홍 · 백 두 종류인데, 꽃이 피면 향기가 온 뜰에 가득하다.

 

목련

속명은 목부용木芙蓉이다.

담박한 벗  백련과 흡사한데 향기가 몹시 진하다  흑목련黑木蓮이 있다.  ◎ 습한 데를 좋아한다.

 

앵두나무

함도含桃    열매의 빛깔은 홍 · 백  · 청 · 흑 네 종류가 있다.

 

단풍

마땅히 괴석 위에 심어야 한다.

 

 

 

 

8등

 

무궁화

6월 초7~87일에서 17~18일 사이에 꽃이 피면 그 해에는 서리가 일찍 내린다. 12~13일부터 22~23일 사이에 꽃이 피면 서리가 늦어진다.

단군께서 나라를 여실 때 무궁화 꽃이 처음 나왔다. 그래서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컬을 때는 반드시 근역槿域이라 하였다.

흰 꽃이 대단히 아름답다. 《시경詩經》에서 "얼굴이 순화純華와 같다 라 한 것이 바로 이 꽃이다. 속명으로는 무궁화라 한다.

 

석죽[패랭이꽃]

꽃다운 벗    ◎ 꽃은 정색正色 과 중간색 등 스무 종류 남짓이다.    습기를 싫어한다.

 

옥잠화

차가운 벗 

 ◎ 꽃의 빛깔은 희고 진하며 잎사귀는 빛나고 윤기가 돈다. 꽃향기는 맑고 진하다.

 

봉선화

겹꽃은 진홍과 연홍의 두 가지 색이 있다. 속칭 천엽은 꽃잎이 네 개뿐이다. 이 또한 진홍과 연홍 두 가지 색이 있다.

보통의 봉선화는 꽃잎이 두 개이고 빛깔이 흰 것도 꽃잎이 네 개인 것과 두 개인 것이 있다.

홍색과 백색, 중간색 등 세 종류가 있다.

 ◎ 천엽홍을 가장 높이 치고, 일반적인 천엽홍백은 높이 쳐주지 않는다.

 

두충杜㥙

정목貞木. 상록수이니 예전 절개가 곧은 여인이 변화하여 이 나무가 되었다.

 

 

 

 

9등

 

규화[접시꽃]

색깔은 다섯 가지가 있다.

 

전추사

가을바람이 서늘해져 뭇 꽃들이 시들면 전추사가 능히 잇달아 꽃을 피워 국화를 이으니 아낄 만하다.

봄에 피는 것은 전춘라剪春羅라고 한다.

 

금전화

쓰임이 전추사와 비슷하다.

 

창촉

속명은 석창포石菖蒲인데 한 치마다 아홉 개의 마디가 있다. 용의 몸같이 구불구불한 뿌리가 나고

수염이 가늘다. 뿌리를 씻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 연기를 싫어하고 괴석 위에 심어야 좋다.

 

화양목

송나라 때 화석강化石崗에서 먼저 화양목 화분 두 개를 얻었다.

※ 화석강은 북송의 휘종이 기이한 돌과 꽃나무, 진귀한 귀석과 화훼를 수집해 꾸며 만든 산을 이른다.

 

 

 

 

 강인재의 화목구품을 붙이다.

모두 52종이다.

 

1품 : 소나무, 대나무, 연꽃, 매화, 국화

2품 : 모란

3품 : 사계, 월계, 왜철쭉, 영산홍, 진송, 석류, 벽오동

4품 : 작약, 서향화, 노송, 단풍, 수양, 동백

5품 : 치자, 해당, 장미, 홍도, 벽도, 삼색도, 백두견, 파초, 전춘라, 금전화

6품 : 백일홍, 홍철쭉, 홍두견, 두충

7품 : 배꽃, 행화, 보장화, 정향, 목련

8품 : 촉규화, 산단화, 옥매, 출장화, 백경화

9품 : 옥잠화, 불등화, 연교화, 석죽화, 앵속각, 봉선화, 계관화, 무궁화

 

※ 강인재는 조선 초기의 문인 강희안을 이른다.

그의 저서 《양화소록》은 중국의 역대 문헌에 보이는 원예 지식과 15세기 조선의

원예기술을 집대성한 원예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화품평론

 

매화

평한다. 강산의 정신이요, 태고의 면목이다.

논한다. 고매古梅는 풍취가 아득하여 이보다 더 훌륭하기가 어렵다. 말을 잘 하는 선비도 그 모습을 비슷하게라도

형용하지 못하니,

틀림없이 용과 같아 그려내기가 어렵다. 태상노군太上老君 같은 고매라도 홍황백천엽紅黃白千葉, 즉 붉고 노랗고

하얀 겹꽃은 자태가

속되어 이미 매화가 아니다. 매화를 좋아하는 자들은 이를 매력적인 물건으로 지목하였고,

시인 또한 말고 여윈 승려라고 설명하였지만,

이들 모두 고매와는 비슷하지도 않다.

 

국화

평한다. 순수한 원기요, 무한한 조화이다.

논한다. 금원황, 취양비는 꽃의 성인이고 학령 또한 성인의 경지에 들기에 충분하다.

 

연꽃

평한다. 얼음 병에 담긴 가을 물, 맑게 갠 달빛과 빛나는 바람 같다.

논한다. 홍백련은 강호에서 초연하여 굳이 이름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또한 기산箕山과 영수潁水 사이의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같은 부류이다.

 

모란

평한다. 부귀하고 번화하다는 공론이 이미 정해졌다.

  논한다. 모란은 본래 거칠고 커서 부귀를 오롯이 누리고 홀로 패권을 잡았다. 실로 오백伍伯 가운데 제환공齊桓公이다.

 

작약

평한다. 뭇 꽃 가운데 우뚝하니, 붉고 흰 꽃 중에 으뜸을 다툰다.

   논한다. 작약의 부귀함은 화왕花王, 즉 모란 못지 않다. 또한 진나라 목공과 초나라 장왕에 해당하니

화왕에게 머리를 숙여 재상宰相의 인수印綬를 받지 않으려 들까 염려된다.

 

왜홍

평한다. 온갖 꽃에서 아득히 벗어나고 꽃의 숲에서 전권을 휘두른다.

  논한다. 왜철쭉과 영산홍이 온 세상을 환히 비추니 보통의 사내와 아낙네가 놀라 따르지 않음이 없다.

한 차례 천하를 바로잡고 아홉 전 제후를 규합한 것은 어찌 쇠미한 세상의 어진 중부仲父의 솜씨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관중管中의 인품이 다섯 패자보다 더 나은 듯하다.

 

해류

평한다. 서시西施가 이마를 찡그리자, 사람들의 애간장이 끊어진다.

 

석류

평한다. 조비연趙飛燕과 옥진玉眞 , 즉 양귀비이니, 그 총애가 육궁六宮을 위태롭게 한다

해류와 묶어서 논한다. 석류는 국색國色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으나 불행히도 백엽류百葉榴와 함께 꽃다움을

다투니 가련하다 하겠다.

윤부인尹夫人이 형부인邢夫人과 한 세상에 나란히 있는 격이다.

 

사계

평한다. 장강莊姜, 반희班姬의 맑은 덕과 정성스런 마음이다.

   논한다. 월계화와 사계화는 꽃과 잎이 운치가 있고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계속한다. 순수하면서도 끊임없는 정성이 있다.

 

서향화

평한다. 한가한 가운데 특별한 벗으로 맑은 향기가 10리를 간다.

   논한다. 서향화는 운치가 맑고 빼어나, 볕드는 창 아래 깨끗한 책상 위의 좋은 벗이 된다.

 

치자

◎ 평한다. 여윈 학과 구름 속 기러기가 곡기를 끊고 속세를 벗어난 듯하다.  

 

동백

평한다. 도골선풍道骨仙風, 즉 신선과 도인의 풍격으로 속세를 떠나 무리를 벗어난다.

   서향화, 치자와 묶어서 논한다. 날개가 달린 것이 뿔이 없음은 천지가 본래 한 가지 사물만을 편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자와 동백은 말고 가녀린 꽃이 있는데도 또 빛나고 윤기 도는 네 계절의 잎이 있으니

더더욱 화림花林 가운데 맑고 높으면서 온전한 복을 갖춘 것이다.

 

해당

평한다. 해맑고도 어여뻐서, 잠을 잔 흔적이 몽롱하다.

 

장미

◎ 평한다. 다른 빛이 섞이지 않은 순황의 바른 빛깔, 그 자태도 우아하다.

   해당과 묶어서 논한다. 해당은 화려하고 장미는 아리땁고 우아하니 시에 능한 수재의 부인이 되기에 알맞다.

 

백일홍

평한다. 어이 굳이 순영이리오, 얼굴빛이 짙은 붉은빛일세.

※ '순영'은 《시경》에서 무궁화를 가리킨 말이다.

 

홍백도

평한다. 문에 기대어 웃음을 던지니 채찍을 떨구지 않는 이 없네.

    백일홍과 묶어서 논한다. 백일홍은 아리땁기가 자도子都와 같고,

홍벽도는 풍도馮道처럼 아첨을 잘하니 모두 환관이나 희롱하는 신하이다.

 

살구

평한다. 등수가 높은 작은 별.

 

평한다. 한가하고 우아한 부인.

 

석죽{패랭이꽃]

평한다. 울지 않는 어린아이.

 

정향

편한다. 영리한 사미승.

 

전추사

평한다. 문간에서 심부름하는 동자.

   살구, 배, 석죽, 정향, 옥잠화와 묶어서 논한다.

살구꽃은 아리땁고 배꽃은 담박하며 석죽, 즉 패랭이꽃은 곱고 정향은 수척하다. 옥잠화는 차고, 전추사는 어여쁘다.

모두 명화名花의 자태를 갖추어 꽃병에 꽂아 심부름꾼으로 부릴 만하다.

 

 

 

 

스물여덟 가지 벗의 총목록

 

춘매는 예스러운 벗으로 삼는다. / 납매는 기이한 벗으로 삼는다. /  국화는 빼어난 벗으로 삼는다.

/ 연꽃은 깨끗한 벗으로 삼는다.

대나무는 맑은 벗으로 삼는다. / 소나무는 오래된 벗으로 삼는다. / 모란은 열정적인 벗으로 삼는다.

/ 작약은 귀한 벗으로 삼는다.

왜홍은 권세 있는 벗으로 삼는다. / 해류는 정다운 벗으로 삼는다. / 파초는 우러르는 벗으로 삼는다.

/ 치자는 선미가 있는 벗으로 삼는다.

동백은 신선 같은 벗으로 삼는다. / 사계는 운치 있는 벗으로 삼는다. / 서향화는 특별한 벗으로 삼는다.

/ 유자는 영특한 벗으로 삼는다.

석류는 아리따운 벗으로 삼는다. / 복숭아는 어여쁜 벗으로 삼는다. / 해당은 얌전한 벗으로 삼는다.

/ 장미는 좋은 벗으로 삼는다.

살구는 고운 벗으로 삼는다. / 백일홍은 속된 벗으로 삼는다. / 배는 우아한 벗으로 삼는다. / 정향은 그윽한 벗으로 삼는다.

목련은 담박한 벗으로 삼는다. / 석죽은 꽃다운 벗으로 삼는다. / 옥잠화는 차가운 벗으로 삼는다.

 

 

 

 

 

 

 

 

증단백의 열 가지 벗을 붙이다

 

난초는 꽃다운 벗으로 삼는다. / 매화는 맑은 벗으로 삼는다. / 납매는 기이한 벗으로 삼는다. / 서향화는 특별한 벗으로 삼는다.

연꽃은 깨끗한 벗으로 삼는다. / 치자는 선미가 있는 벗으로 삼는다. / 국화는 빼어난 벗으로 삼는다.

/ 계수나무는 신선 같은 벗으로 삼는다.

해당은 이름난 벗으로 삼는다. / 도미는 운치 있는 벗으로 삼는다.

 

(도미는 한국에서는 백합과의 맥문동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으나 중국이 문헌에서는 대체로 장미과의 찔레꽃을 지칭한다.

초여름에 강렬한 향기를 지닌 새하얀 꽃이 피어 소동파를 비롯한 중국의 이름난 문인들이 시의 소재로 삼기도 하였다.

하얀 빛깔의 향기 좋은 술을 가리키기도 한다.)

 

 

 

 

화개월령

아울러 짧은 설說을 두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절기의 이르고 늦음과 관계가 있다.

또 중국과 우리나라의 남쪽 지역은 천지의 기운을 받음이 일정하기가 않아, 꽃이 피는 시기를 확정해 말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다만 계절의 차례에 따라 시기별로 나누어 이 땅에서 각각의 꽃이 피는 것을 살펴 이같은 규칙을 정하였다.

이는 풀과 나무 하나하나가 때에 맞춰 꽃을 피우거나 시기를 놓쳐 시드는 것이

오직 주인이 어떻게 기르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이를 통해 부지런히 가꾸어 때에 따라 꽃의 성질에 맞춰

 저마다의 참된 자태를 드러내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정월

매화, 동백, 두견

 

2월

매화, 홍벽도, 춘백, 산수유

 

3월

두견, 앵두나무, 행화, 복숭아, 배나무, 사계, 해당, 정향, 능금

 

4월

월계화, 석류, 서향화, 해류, 위성류

 

5월

월계화, 석류, 사계, 목련, 연꽃, 무궁화, 석류

 

6월

석죽, 규화, 사계, 목련, 연꽃, 무궁화, 석류

 

7월

무궁화, 백일홍, 옥잠화, 전추사, 금전화, 석죽

 

8월

월계, 백일홍, 혹잠화, 전추사, 금전화, 석죽

 

9월

전추사, 석죽, 사계. 조개황, 승금황, 통주홍황, 금사오홍

 

10월

전추사, 금원황, 취양비, 삼색학령

 

11월

학령, 소설백, 매화

 

12월

매화, 동백

 

 

 

구등 외 화목을 붙이다

 

임금, 단내, 산수유, 위성류, 백합, 상해당, 산단화, 철쭉, 백자, 측백, 비자, 은행

 

이상 12종은 운치가 있고 번화하니, 마땅히 4등이나 5등에 들어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1등은 고상한 품격과

빼어난 운치를 취하고

2등은 부귀를 취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저마다 옮길 수 없는 등수가 있으므로, 매 등마다 다섯 가지씩

뽑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마침내 9등 밖에 따로 적어 덧붙인 까닭은 저 꽃이 이것보다 나아서가 아니다. 그저 형편이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화암구곡

 

一曲

꼬아 자란 층석규요 틀어 지은 고사매라

삼봉괴석에 달린 솔이 늙었으니

마마도 화암 풍경이 너뿐인가 하노라

 

二曲

바람 맑고 달 밝은 밤 석 자 금琴을 곁에 놓고

네 계절 좋은 흥을 온갖 꽃에 부쳤으니

이 몸도 태평 시절 임금 은혜에 젖었는가 하노라

 

三曲

마당에 보리 들고 화단에 석류 핀다

간밤 빚은 술을 갈건에 걸러내니

아마도 세상 시름이 반남짓 줄어든다

 

四曲

초당에서 낮잠 깨어 낚싯대를 들어 메고

석양의 낚시터에 무심히 앉았으니

백구도 한가이 여겨 짐짓 희롱하더라

 

五曲

오동에 빗물 듣고 대숲은 안개 잠겨

작은 배에 사립 두고 등상에 누웠더니

어디서 닺 드는 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나니

 

六曲

막대 짚고 거닐자니 버들 바람 슬슬 분다

긴 휘파람 짧은 노래 뜻대로 소일하니

어디서 나무꾼 목동이 웃고 가리키누나

 

七曲

석양에 백구 돌아오고 처마에 안개 자고

꽃향기와 달빛이 철없이 방에 드니

아이야 거문고 연주해라 취해 놀까 하노라

 

八曲

시름겨워 늘 취하고 근심겨워 꽃을 본다

근심과 시름을 꽃 띄워 술로 치니

어즈버 술은 광약 아니요 꽃은 한가한 취미인가 하노라

 

九曲

맑은 물에 벼를 갈고 청산에서 나무한 뒤

서편 숲 비바람에 소 먹여 돌아오니

두어라 야인 생애도 자랑할 때 있으리라

 

 

 

 

 

 

 

매농곡

눈보라 치는 산재에서 한 그루 매화 마주하여

웃으며 저를 보니 저도 나를 보고 웃는구나

두어라 매화가 나요 내가 매화인가 하노라

 

 

 

촌구

뜬다 뜬다 달이 뜬다

핀다 핀다 꽃이 핀다

꽃 위에 달이 뜨니 백화암 흥이로다

 

 

 

화암만어

 

달은 서산에 숨고, 밤은 삼경이라 고요한데, 이 몸 홀로 꽃 사이에 서니, 옷깃 가득 바람과 이슬이요 하늘의 향기일세.

 

화암에서 실컷 자니, 흰 갈매기 다 날아가, 뜨락 가득 석양이요, 강 마을은 적막할 때,

어디선가 뱃사공의 한 곡조 뱃노래 소리, 멀리서 또 가까이서 들려오네.

 

 

붉고 흰 꽃 몇 그루 향기 몹시 짙은데, 뜻 있는 이 술병 들고 나귀 방울 울리며 찾아왔네.

책상 위엔 책이요, 시렁에는 거문고라, 어쩌자고 아이는 바둑판을 또 내오나.

 

화암의 주인은 근신謹愼함은 성구聖求만 못하고, 유의有爲함은 사형士亨만 못하며, 일처리는 계존季尊만 못하고,

섬민贍敏함은 사장士章만 못하다. 염아함은 백휴伯休만 못하고, 원각愿慤, 즉 성실함은 호문好問만 못하다.

성질은 덕조德祖가 더 낫고,

담박함은 중선仲宣이 더 낫다. 적용適用은 운약雲約만 못하고, 과감하고 아는 것 많기는 안공보安公輔만 못하다.

글 또한 여러 사람의 아래이다.

하지만 오직 꽃을 사랑하는 것만은 열 사람의 벗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꽃과 마주하여 문득 적어둔다.

 

 

 

 

화암기

 

나는 타고난 성품이 졸렬하여 내가 봐도 쓸모가 없다.사는 곳의 산수는 몹시 탁하여 유람을 나닐 만한 경치가 드물다.

궁벽한 골목의 거적을 단 문에는 1년 내내 신분 높은 분의 수레가 이른적이 없다. 근래 사계절의 화훼로 수백 그루를 구하여

큰 것은 땅에 심어 기르고 작은 것은 화분에 담아, 화단을 쌓고 백화암 가운데 보관하였다.

몸이 그 사이에 있으면서 소일하며 세상과 더불어 서로를 잊고 기뻐하며 자득하였다.

 

분매와 금원황, 취양비는 그 정신을 찬찬히 살핀다.

 왜철쭉과 영산홍은 멀리서 보아 웅장함을 취한다. 모란과 작약, 계수나무와 복사꽃은 새로 얻은 여인과 같다.

 치자와 동백을 보면 마치 큰 손님을 마주한 여인의 아리따운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석류는 품은 뜻이 시원스럽다. 파초와 괴석은 뜨락의 명산으로 삼는다.

비쩍 마른 소나무는 태곳적의 모습을 얻었고. 풍죽風竹은 전국시대의 기상을 띠고 있다.

이것들을 섞어 심어서 시중드는 하인으로 삼는다. 연꽃은 공경스럽게 주돈이를 마주하고 잇는 것만 같다.

 

기이하고 예스러운 것을 취하여 스승으로 삼고, 맑고 깨끗한 것을 취하여 벗으로 삼는다.

번다하고 화려한 것을 취하여 손님으로 삼는다. 남에게 사양하려 해도 남들은 내다버리는 까닭에

다행히 홀로 즐겨도 막는 사람이 없다.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희로애락을 모두 이 꽃들에게 부쳐서,

나 자신을 잊고[忘形] 늙음이 장차 오는 것도 알지 못할 뿐이다.

 

 

 

 

매설

내가 매화 그늘에서 잠이 들었다. 꿈에 못습이 기이하고 예스럽게 생긴 사람을 만났다.

그가 흰 옷을 입고 맑은 기운을 띄고서 내게 절하며 장난으로 말하였다.

 

"그대는 나를 좋아하는데 능히 알아보겠는가? 내가 누군지 알고 싶거든 나를 찾아보게나. 그대는 上古에 뜻을 두어

질박함을 벗으로 삼는 사람이다. 나는 성질이 저잣거리를 싫어하고 홀로 산림만을 좋아하여 세속의 밖에 이름을 숨겼다.

 비록 초나라의 굴원이라 해도 내 이야기를 들어 알지는 못한 채 세상을 떴다.

이름 없늕 사람 중에도 비밀스런 자취를 나와 함께한 사람이 또한 수없이 많다.

사실 나는 굴원을 원망치 않고 소동파를 원망한다. 그로 인해 얾음 같은 넋과 옥 같은 뼈의 자취가 드러나

세상 사람들이 나를 요망한 물건으로 지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대가 나를 안다면 적막하고 황량하게 추운 山水의 가장자리와 세상에서 등한히 여겨 버린 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면서,

 속된 무리와 가까이 함을 면하고,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하여본래 타고난 성품을 보전하였으면 한다."

 

나는 매형梅兄의 뜻을 받들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후 잠에서 깨어났다. 이를 적어둔다.

 

 

 

 

 

 

 

 

우화재기寓花齋記


채제공蔡濟恭


 체제공의 《번암집樊巖集》권 35에 실린 <우화재기寓花齋記>이다.

 

 

 

 

 

 

 

사문 유박은 꽃에 벽癖이 있다. 집은 황해도 배천의 금곡인데, 어지러운 세상일을 사절하고 날마다 꽃 심는 것을 일과로 삼아,

 기르지 않는 꽃이 없었고 꽃이 피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다섯 이랑 크기의 울타리 안이 향기 가득한

중향국衆香國, 즉 꽃나라였다.

그는 스스로 뽐내며 그 집의 이름을 우화재라 짓고는 한 시대에 시를 잘 짓기로 이름난 사람에게 널리 요청하여

이 일을 읊게 하였다.

나를 찾아와 기문記問을 지어달라 하므로 내가 듣고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가 꽃을 아낀다면 진실로 그럴 만하겠지만, 애초에 도에 통달하지는 못한 듯하다. 천하 만물은, 있음은 없음의 출발점이요

쇠함은 성대함의 종착점이다. 이치가 반드시 그러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밝으면 어두워지고 어두우면 밝아지며, 추위가 대단하면

 더위가 찾아오고 더위가 심해지면 추위가 돌아온다. 권세와 위엄이 성대한 자에게는 재앙이 미치고, 부귀가 성대한 자에게는

앙화殃禍가 이른다. 대개 사물이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까닭은 그 성하고 쇠함이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꽃은 천지의 정영精英으로 색깔은 사람의 눈을 홀리고, 향기는 사람의 코를 찌른다. 이 점을 높여

혹 왕이라 일컫기도 하고, 바른 것을 높이 보아 군자라 하기도 한다. 서리를 견뎌내는 모습을 보고 혹 절개에 견주기도 하고,

 티끌세상을 벗어난 모습을 두고 처사處士에 비유하기도 한다. 요컨데 천지가 꽃을 몹시 아끼기는 해도, 늘 피어 있게 하지는 않는다.

 

이런 까닭에 꽃이 피어나면 비바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는 조물주가 그치게 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물이 성하고 쇠하는 것은 비록 조물주라 해도 어찌할 수가 없다. 이제 그대가 꽃을 심을 때 높은 것은 높이고

 낮은 것은 낮추어 형형색색을 갖추었으니, 이 꽃이 평소와 다름없이 핀다.

 

이 같은 방법에 따라 행한다면 밝거나 어둡거나 춥거나 덥거나 간에 꽃이 피지 않을 때가 없을 것이다.

권세와 위엄이 있는 자가 그 화려함을 길이 가져갈 수 있고 부귀한 자가 즐거움을 오래 누릴 수 있게 될 터이니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하물며 그대가 우화재라고 이름을 붙이기까지 하였으니 또 얼마나 편협한가.

 그대의 집은 온갖 꽃으로 울타리를 삼았고, 그대 자신은 집에 기거하는 것을 우화寓花, 즉 꽃에 깃들여 산다고 여기니, 그럴싸하다.

 

하지만 나무의 뿌리는 흙에 깃들이고 줄기는 뿌리에 깃들이며 가지는 줄기에 깃들이고 꽃부리는 꽃받침에 깃들이며,

 꽃술은  꽃부리에 깃들이고 벌과 나비는 꽃술에 깃들인다. 그러니 꽃은 진실로 이렇게 깃들이는 것을 견디지 못할 터이니,

그대가 여기에 또 깃들여 군더더기를 더하도록 놓아두겠는가. 그대는 시험 삼아 한번 생각해보게나. 그대의 몸뚱이는 집에 깃들이고,

집은 천지天地의 사이에 깃들이니, 천지란 것은 바로 사물이 묵어가는 여인숙일 뿐이다.

 

그대가 이를 일컬어 말하기를, '여인숙에 깃들인다'라고 한다면 꽃에 깃들인다고 해도 되겠지만,

이것은 또한 사물을 사사로이 소유하려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가 들으니 그대가 꽃을 몹시 사랑하여 사람들이 여기에

 감화되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 그대가 일이 있어서 먼 데로 가느라 때에 맞게 돌아오지 못하면 집안사람들은 꽃을 심고

 또 꽃에 물을 주는데, 그대가 집에 있을 때와 똑같이 하여 그때를 놓치지 않는다.

 이야말로 꽃에 대한 그대의 사랑이 집안사람을 감화시킨 것이라 하겠다.

 

금곡 인근의 마을에 사는 사람이 그대가 화단을 쌓아 꽃 뿌리를 북돋운다는 말을 들으면 시키지 않아도 달려오고,

권하지 않아도 일을 해서 마치 자기 일을 그만둘 수 없는 것같이 한다. 이는 그대의 꽃 사랑이 이웃까지 감화시킨 것이다.

 고을에서 배를 몰아 날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자가 기이한 품종을 보면 화분에 담아다가 배로 보내 신이 나서 바치기를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올리는 것처럼 한다. 이것은 그대의 꽃 사랑이 뱃사람마저 감화시킨 것이다.

그대는 포의布衣를 입은 선비일 뿐인데 대체 무슨 힘으로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자사子思는 '성실함이 없으면 사물도 없다' 고 하였고, 일찍이 공자께서도 '성실함을 가릴 수 없음이 이와 같구나' 고 하셨다.

천하의 일은 성실하데도 감응感應하지 않는 것은 없다. 대저 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단지 향기와 빛깔 때문이 아니라,

 꽃을 통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그대는 성실한 마음으로 꽃에 대한 취미를 추구하고 천하 사물의 실다운 이치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면 훗날 뿌리를 북돋워 열매를 먹는 보람이 또한 무궁하지 않겠는가. 이에 글을 지어 권면한다."

 

 

 

 

 

금곡 백화암 상량문

 

- 유득공 -

 

유득공의 《영재집泠齋集》권13에 실린 <금곡백화암상량문金谷白花菴上樑文>이다.

 

 

 

 

꽃이 백 가지에 그치지 않지만 백이라 한 것은 숫자를 채우려 한 것일 뿐이다.

암자의 이름은 어찌된 것일까. 틀림없이 그 실제 사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꽃의 주인[花主人]이 누구냐 하면 유 선생 아무개이다.

그는 헌원씨軒轅氏의 먼 후예요, 조선의 벼슬하지 않은 포의布衣이다.

그는, 도연명이 버드나무를 심었던 일을 배웠고, 범려范蠡가

채찍 하나만 남겨놓고 급히 배를 타서 황금을 흩어 나눠 준 것을 사모하였다.

사물과 나 사이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모두 잊었으니,

나비가 장주莊周가 되고 장주가 나비가 된 셈이다. 귀하고 천함과 영화롭고 욕됨 따위야 어이 족히 말하겠는가.

 

엄군평嚴君平은 세상버렸고 세상도 엄군평을 버렸다. 이에 소요하면서 노니니, 시간을 보내며 회포를 푸는 데 방법이 있었다.

화교和嶠는 돈에 벽이 있었고, 왕제王濟는 말에 벽이 있었다. 꽃에 벽이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눈[雪]은 사람의 마음을 시원스럽게 해주고 달은 고독하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을 운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꽃이다.

그는 어떤 사람의 집에 기이한 화훼가있다는 말을 들으면 비록 천금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구하였고,

바다에서 온 배가 감춰두고 있는 것을 엿보아 만리 떨어진 데 있는 것이라도 반드시 가져왔다.

 

여름에는 석류, 겨울에는 매화, 봄에는 복사꽃, 가을에는 국화를 길러 네 계절 내내 꽃이 끊이지 않았다.

치자는 희고 난초는 푸르며 규화, 즉 접시꽃은 붉고 원추리는 노라니, 오색 가운데 검은색이 빠진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태곳적 둥지를 엮어서 열매를 따 먹으며 살 수는 없고 무하향無何香을 세워 그 그늘에서 잠들 수도 없지만,

여기에 낡은 집이 있으니 바로 해묵은 건물일 뿐이었다. 낮에는 띠를 얹고 밤에는 새끼를 꼬니 농사의 여가에도

 애쓰지 않음이 없고,애꾸눈을 떠서 먹줄을 잡고 등을 구부려 벽을 바르니 어찌 뜬금없는 비방이 있겠는가.

 

향을 살라 들보를 올리는 제사 지냄에 연주延州 땅의 인절미를 치고 영롱한 왕골자리는

예성강 서쪽[江西] 땅의 용수초로 짰구나.

산림과 수석의 훌륭함은 우리 당숙께서 이미 말씀하셨고, 시문과 서화는 나와 한 시대를 사는 아무개와 아무개의 것이다.

비록 한 채의 띠집에 불과하지만, 백화암이라고 말하기에는 충분하다. 이는 마치 제자들이 항렬에 따라

어떤 사람은 마루 위로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방 안으로 들어가 서로 손님과 주인의 처지가 되어,

너는 동쪽 계단에 서고, 나는 서쪽단에 서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나무를 잘 심는 곽탁타郭橐駝 같은 사람을 만나면 이끌어 윗자리로 모시고 도화桃花에 빠진 역마살을 자랑하니 옛 사람에 견주어 과연

어떻한가. 과연 금곡의 번화함이 어느새 문득 향기로운 세상으로 변하였도다. 어떤 이는 "어이하여 고생 하는가. 그만두게나" 라고 하지만

그는 웃으며 대답하지 않고 유유히 내버려둘 뿐이다. 년간 호해湖海에 살며 권세 있는 집의 문 앞에는 발길조차 두지 않았으니,

온 봄이 마치 그림과도 같아서 꿈에 벌과 나비를 바람 속으로 데리고 오는 듯하다.

 

들보의 동쪽으로 던지세, 벽란도의 사공들에게 분부하노라.

좋은 화분 금곡으로 실어 올 때는 뱃삯은 한 푼도 받지 마라.

 

 

들보의 서쪽으로 던지세, 돛대 바람 한 번 받으면 청주靑州의 제군齊郡이로다.

우리 땅엔 있지 않고 중국에만 있나니, 여지와 종려를 어이해야 구하리

 

들보의 남쪽으로 던지세. 뱃사람이 어느 지역 장성인가 묻노라.

사는 곳 강진과 해남 고을이라면 동백과 치자, 석류와 감귤을 가져오게.

 

들보의 북쪽으로 던지세, 북쪽 가서 꽃 구해야 하지만 얻지는 못하리라.

다만 황주 땅엔 좋은 배[生梨]가 나서 사람들이 긴 장대로 쳐서 따 먹는다고 하네.

 

들보 위로 던지세. 하늘 위 흰 느릅나무 쌍쌍이 서 있도다.

월궁月宮으로 곧장 들어 두꺼비 등 밟고서 계수나무 꺾어올 이 그 누구이겠는가.

 

들보의 아래로 던지세, 세속에서 화초를 위한다는 사람들,

온종일 명예와 이익 쫓아 내닫더니 저녁이 오면 뒷짐지고 문아文雅한 체 하는구나.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에는 새가 꽃술을 쪼지 아니하고, 벌레가 뿌리를 갉지 않으며, 바람이 시렁을 부수지 않고,

추위가 화분을 깨지 않기를. 더위에 국화가 죽지 않고, 추위에도 매화가 병들지 않으며, 석류는 향기를 뿜고, 화초는 꽃을 피우길.

스물네 차례 좋은 바람 불어와 봄이 가고 봄이 오며, 360일 날마다 꽃이 피고 지길 원하노라.

 

 

 

 

 ※ 인용서적 : 유박 지음.  정민 / 김영은 / 손균익 外 옮김 『화암수록

 

 

 

 

 

Songbird - Steve Rai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