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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고문서에 담긴 생활과 문화 (2)

 

 

 

이경검부처별급문기 李景儉夫妻別給文記

1596(선조29), 지본묵서, 36.5×26.5cm, 한산이씨 소장.

순령군(順寧君) 이경검 부처가 딸 효숙에게 가사(家舍) 1좌(坐)를 별급하는 문서이다.

별급은 자녀 및 사마시나 문과에 합격하였거나 득남 등 특별한 경우 별도의 재삱을 분재해 주는 것을 지칭한다.

그녀는 1669년 81세로 졸 하기까지 한산이씨 집안이 가통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가세를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송병하혼서 宋炳夏婚書

1660, 지본묵서, 59.6×87.2cm, 대전 선비박물관 소장.

송병하1646-1697)와 안정나씨의 혼례 시 신랑측에서 신부측으로 보낸 납폐문서이다.

이 혼서 외에 안정나씨 집안에서 보내온 혼서가 또한 존재하는데, 한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문서 중 동일 혼인사례에 대해

양가에서 주고받은 두 건의 혼서가 모두 남아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이 혼서는 동춘당의 친필이다.

 

 

 

 

 

 

 

송요화호구단자 宋堯和戶口單子

1729(영조5), 지본묵서, 112.0×66.5cnm 대전 선비박물관 소장.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자인 은진송씨 송요화(1682-1764)가 가내(家內)의 인구현황을 적어 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

재혼한 송요화의 처 박씨는 18세 연하로, 재혼 당시 24였다. 상처한 1년 후 42세의 나이로 어린 처녀에게 새로 장가를 든 것.

 





 

 

정경세한글서간

인조연간(1630) 지본묵서, 21.9×41.5cm, 대전 선비박물관 소장.

우복(愚伏) 정경세(1563-1633)가 송준길에게 출가한 막내 딸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출가한 딸아이에 대한 '아긔' 라는 호칭은 현대어와 비교해 볼 때 미우 특징적이아. 수신자를 표시하는 '송세마 집'은

 딸 아이가 송씨 가문으로 시집 가 이미 출가외인이 된 현실을 드러내주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겠다.

 

 

 

 

 

 

 

정경세처진성이씨한글서간

우복의 처 진성이씨가 출가한 막내 딸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사(喪事)를 당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데, 여러 정황으로 보아

 진성이씨의 남편인 우복 정경세의 상으로 볼 수 있다.

 

 

 

 

 

 

 

이황서간 李滉書簡

1544(중종39), 지본묵서, 34.7×16.3cm,

이황이 외내에 사는 아들 이준(二寯)에게 보낸 편지로 광산김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퇴계유묵』에 실려 있다.

유묵첩에는 정조의 어필과 퇴계가 쓴 편지와 시 몇 편이 실려 있는데, 광산김씨 집안의 누군가가 성첩(成貼)한 듯하다.

봉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준은 당시 외내에 살고 있었는데, 이는 처가인 광산김씨 집안에 살고 있었음을 뜻한다.

 

 

 

 

 

 

 

송요화처안동김씨한글서간

1705, 지본묵서, 32.6×35.7cm, 대전 선비박물관 소장.

호연재 안동김씨(1681-1722)가 시아주버니 송요경(1688-1748)에게 보낸 편지이다.

호연재는 자신이 살았던 집 이름이면서 동시에 호를 이른다. 안동김씨 가문의 김성달의 딸로 조선 후기 대표적 여류 문인으로 통한다.

19세에 동춘당 증손 송요화와 혼인하여 42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수많은 시문과 문집을 남겼다. 이 편지의 수신자 송요경은 송병하의

장남, 즉 소대헌의 형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장손에 해당하는 송병문ㅁ이 후사가 없어 출계하였다. 마지막 발신인 표시부분에서

'종손 뎨 쳐 김 샹서' 라는 부분도 주목된다. '종손인 시아주버니의 뎨(弟)의 처' 라는 표현은 가족 위계에 대한 존중의 의미인 듯.

 

 

 

 

 

 

 

이지처고령신씨발괄 李遲妻高靈申氏白活

1634(인조12_, 지본묵서, 32×44.5cm, 固城李氏 소장.

이지(李, 1560-1631)의 부인 고령신씨가 유인갑에게 팔았다가 돌려받은 토지에 대해 안동부사에게 해결을 요청하는 발괄[白活].

발괄은 청원, 진정, 고소의 성격을 가진 소지류(所志類) 중 하나로 작성하는 자의 신분과 사람 수, 사건을 판결하는 상대 및

문서의 형식에  따라 그 명칭이 소지, 등장, 발괄, 단자, 원정, 의송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안동부재산상속입안 安東府財産相續立案

1539(중종 34),지본묵서, 66.5×47.5cm, 고성이씨 소장.

안동부에서 이용(李容)이 시양모(侍養母) 상산김씨로부터 노비 10구, 와가 1좌, 전답 8곳을

분재 받았음을 확인해 주는 문서이다.

 

 

 

 

 

 

 

이병휴제문 李秉休祭文1763(영조 39), 지본묵서, 46×41cm, 정산(貞山) 이병휴(1710-1776)가 아내 양천허씨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유씨부인열녀포증요청소지 柳氏婦人烈女褒贈要請所志

1653(효종 4), 지본묵서, 35×22cm, 대전 선비박물관 소장.

동춘당 송준길이 자신의 8대조비 고흥유씨에 대한 열녀포증을 요청하기 위하여 작성한 소지.

유씨부인은 사망후 200년여년이 지난 뒤 동춘당 등 220여명의 자손들이 정려를 진정하여 열녀에 포증되었다.

 

 

 

 

 

 

송요화처안동김씨추증고신 宋堯和妻安東金氏追贈告身

1756(영조 32), 지본묵서, 70×98.8cm, 대전 선비박물관 소장.

소대헌 송요화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호연재 안동김씨(1681-1722)를 숙부인에서 정부인으로 추증하는 교지.

 

 

 

 

 

 

<본문 부분>
통감속편 通鑑續編 24권 6책. 1422(세종 4) 金屬活字本(庚子字本), 29.6×18.3cm, 국보 제283호, 경주손씨 서백당 소장. 중국 고대의 반고씨(盤古氏)로부터 고신씨(高辛氏)까지, 거란(契丹)에서 오대(五代)까지, 송 태조(太祖)에서 상흥(祥興) 2년(1279)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것으로 경자자본(庚子字本)이다. 서(序)·목록(目錄)·서례(序例)는 계미자로 찍었다. 원(元) 지정(至正) 21년(1361)에 중국에서 간행된 바 있고, 60년 뒤인 1422년(세종 4)에 우리나라에서 동활자로 찍어낸 것이다. 편찬자 진경이 이 『통감속편』을 편찬하게 된 동기를 보면,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주희(朱憙)의 『강목(綱目)』은 모두 주(周) 위열왕(威烈王)에서 오대에 끝나고, 위열왕 이상은 원(元) 김이상(金履祥)의 전편(前編)이 있기는 하나 또한 요(堯) 임금에서 끊어졌다. 그래서 이 『통감속편』을 지어, 머리에 반고에서 고신씨까지 기술함으로써 김이상의 미비함을 보완하여 제1권 세편(世編)으로 하고, 다음에 거란 및 오대 때의 일을 모아 제2권 외편(外編)으로 하고, 그 다음 3권에서 24권까지 22권은 송 태조에서 상흥까지 송대(宋代)의 일을 기록하여 통감(通鑑)의 뒤에 이어붙였다. 그래서 『통감속편』이라 이름한 것이다.”라 하였다.
책 머리에 1361년(지정 21) 주백기(周伯琦)의 서가 있고, 다음에 1358년 진기(陳基), 1362년 총계당(叢桂堂), 그리고 강절(姜浙)의 서, 찬자(撰者) 진경의 1350년 서가 있다. 그리고 책 뒤에 1422년(세종 4) 변계량(卞季良)이 지은 주자발(鑄字跋)이 있다.또 이 책에는 ‘집희경지(緝熙敬止)’·‘눌재(訥齋)’·‘국로(國老)’·‘효중(孝仲)’ 등의 소장인이 찍혀 있는데, 특히 ‘집희경지’는 문종의 세자 단종이 공부하던 자선당(資善堂)의 서적에 찍은 도장이다. 조선 초기 경자자로 찍은 책으로 완질본일 뿐만 아니라, 특히 자선당 소장본이란 점에서 서지학 및 고인쇄기술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서문>



 

 

 

 

협주명현십초시 夾注名賢十秒詩

1452(문종 20, 목판본, 32×20.6cm, 경주손씨 서백당 소장.

만당(晩唐) 시인 26명과 이 시기에 입당(入唐0하여 수학한 신라의 빈공제자(賓貢諸子) 4명을 합한

30인의 칠언율시 10수씩을 뽑아 간행한 시선집이다.

 

 


<이운준(李云俊)의 발문>

 

 

<

 

<간행참가자 명단>

 

 



 

 

 

 

<이첨(李詹)의 서문>

 

응제시 應製詩

1462(세조8), 목판본, 33×20.2cm, 진양하씨 소장.

명태조가 양촌 권근(1352-1409)에게 친제하여 하사한 「태조고황제어제시삼수」와 권근이 명태조(明太祖)의 명에 의해 지은

응제시 24수를 모아 권람이 주를 붙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조선 초기에 권근(權近)이 지은 한시. 1396년(태조 5) 명나라에 보낸 표의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명나라 태조가 표를 지은 사람을 불렀다. 권근은 그 표의 윤색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불려갔다. 명나라 태조는 권근을 사면하고 문연각(文淵閣)에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 잔치를 베풀어 주고 명제(시문 따위의 글에 제목을 정함)하여 시를 지으라고 하였다. 이 때에 지은 시가 이 작품이다. 응제시는 원칙적으로 임금의 명에 의하여 지어진 시를 말한다. 권근의 경우는 중국 황제 앞에 가서 지은 것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 시는 3차에 걸쳐 지은 24수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1396년 9월 15일에 지은 8수, 9월 22일에 지은 10수, 10월 27일에 지은 6수가 전부이다. 권근이 9월 15일에 지은 8수의 시는 조선에서 중국에 오기까지의 여정에 관련된 시제가 대부분이다. <봉조선명지경 奉朝鮮命至京>·<도경서경 道經西京>·<도압록 渡鴨綠> 등의 시가 그것이다.

 

주로 중국에 오기까지의 여행 과정과 그간의 작자의 심회를 피력하기를 희망하는 의도를 나타낸 시이다. 자신의 잘못을 견책받기 위한 중국행에서도 곳곳에서 태조의 성덕을 읊고 그 덕화에 고마워하는 내용이다. 권근이 9월 22일에 지은 10수의 시는 조선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내용이다. <진한>·<마한>·<변한>·<신라> 등의 조선의 고대국가와 <금강산>·<대동강> 등의 산수· 지리를 읊은 시가 있다.

1차의 명제(命題)가 주로 작자의 현재적 심정과 의중을 묻는 것이라면, 2차의 명제는 작자의 과거 역사에 대한 역사적 의식을 타진한 것이라 하겠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고대국가의 흥망치란을 간략히 읊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데에 머무르고 있다. 권근이 10월 27일에 지은 6수의 시는 중국에서 머무르는 동안의 행적을 시화한 것이다. 태조에게 사면을 받고 뜻밖의 후대를 받는 심정이 어떠한가를 읊은 내용이다. 시제는 대개 노래를 듣는 일, 광대놀이를 본 일, 술에 취한 일 등의 주로 누대에서 벌어졌던 연회 때의 심정과 관련된 것이다.

 

시제 설정 자체가 칭송의 말을 기대하며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내용은 이것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우악한 대접에 감읍하고, 아울러 번화한 문물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룬다. 권근의 응제시는 사대주의적 아유문학(아첨문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명나라 태조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여 자신의 안전과 조선의 국익을 앞세웠다는 점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과 명나라 태조의 덕을 찬양하고 은총에 감사하는 가운데에서 조선 개국의 정통성과 합리성을 강조하여 민족주체성을 몰각시켜 버리지 않았던 것은 더욱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다.권근의 <응제시>는 당시의 절대적 힘의 우위에 있던 명나라와 조선의 외교적 마찰을 완화시켜 주는 국가적 차원의 공헌도가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작자 개인의 문명을 내외에 떨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축맹헌(祝孟獻)의 후지>

 

 

 

<간행참가자 명단>

 

 

 

 

 

 

 

<족보 본문>

 

 

 

<간행협조자 명단과 발문>
진양하씨족보 晉陽 河氏族譜1606(선조 39), 목판본, 35.1×23.8cm, 진양하씨 운문종택 소장.하혼(河渾) 등이 주관하여 합천 해인사에서 간행한 진양하씨의 족보.

 

 

 

 

 

 

 

<목판>

 

 

 

 

<능화판>

 

관감록 목판 및 능화판 觀感錄 木板 및 菱花板무의공 박의장(朴毅長)의 실기(實記)인 『관감록』의 목판과 종택 소장 능화판.

 

 

 

 

 

 

선조어필 宣祖御筆

1630(인조 8) 帖, 목판본, 45×30.5cm, 진주정씨 소장.

선조의 아들 의창군(義昌君) 광(珖, 1589-1645)이 판각한 선조의 어필첩으로

의창군의 발문에 편찬 동기와 판각연대를 밝히고 있다.

 

 

 

 

 

 

 

 

 

 

 

 

 

<문종의 글씨 (전반부)>

 

해동명적 海東名迹중종년간,첩, 石刻本, 37×25.5cm, 固城李氏 소장.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신공제(申公濟, 1469-1536)가 우리나라의 역대 명필 20인의 글씨를 모아 석각 한 뒤탁본하여 간행한 서첩으로 모두 23권 2책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후대의 중각(重刻) 간행에 따라 수록된 순서와 필적의 종류에 다소 출입이 생겼다.

 

 

 

<문종의 글씨 (후반부)>

 

 

 

 

 

 

 

 

<인조의 글씨>

 

열성어필 列聖御筆

목판본, 48×32.9cm, 한산이씨 수당고택 소장.

조선 태조로부터 경종에 이르는 역대 임금의 어필을 모아 판각한 법첩(法帖)으로 전체 분량의 배치는

선조어필 106면, 인조어필 8면, 효종어필 28면, 현종어필 14면, 숙종어필 44면, 경종어필 4면이다.

 

 

   

 

左 <성종의 글씨>                                        右 <효종의 글씨>

 

 

 

 

 

 

 

<명(銘) 부분>

 

대로사비 大老祠碑

1787(정조11) 첩, 48×24cm, 夕刻拓本, 진양하씨 운문종택 소장.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하리에 있는 대로사의 내력을 적은 비분의 탁본첩으로 대로사는 조선 중기의 학자 송시열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1785년(정조 9) 왕이 영릉(英陵)에 참배하였다가 옛날 송시열이 능을 향해 통곡하며 후진에게 북벌(北伐) 의 대의를 주장했다는 말을

듣고 김양행 등 유신에게 명하여 건립토록 하고 사액하였다. 정조는 이미 기득권층으로 보수화 되어있던 율곡학파를 회유하기 위해

그 정점에 서 있던 송시열을 송자(松子)로 존숭하여 공자, 맹자, 주자의 뒤를 잇는 성현으로 대접하였다.

이 비문 역시 정조의 치세에  불만을 품은 노론 세력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볼 수 있다.

 

 

 

 

 

 

 

<복희육십사괘도>

 

 

 

<문왕팔괘차서도>

 

도서첩 圖書帖

肅宗年間, 첩, 지본묵서, 40.5×27cm, 연안이씨 소장

주희의 『역학계몽(易學啓蒙』에 대해 이황이 저술한 『계몽전의(啓蒙傳疑』를 후대에 엮은 첩으로

하도(河圖), 낙서(落書)를 바탕으로 한 성리학의 기본적인 우주관, 역철학(易哲學)을

도형(圖形)화 한 것을 이황의 설명글로 엮은 학습서이다.

 

 

 

 

 

 

 

무이도첩 武夷圖帖

肅宗年間, 帖, 紙本淡彩,25×37.5cm, 연안이씨 소장.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가 그린 무이구곡도와 관련 기록들을 모아 만든 도첩(圖帖)이다.

 

 

 

<6-7곡 부분>

 

 

 

<이만부의 서문>

 

 

 

 

 

 

 

이관징서첩[경수첩] 李觀徵書帖

1683(肅宗9), 帖, 지본묵서, 34×23.5cm, 연안이씨 소장.

이관징(1618-1695)이 손자인 이만부(1664-1732)에게 행서로 써 준 필첩이다.

제목은 「제거감흥(䐡居感興)」으로 당나나 시인 진자앙의 「감우(感遇)」시에 영향을 받아 쓴 시로

모두 20장(章)이다. 앞뒤로 이 시에 대한 발문을 적고 있으며, 상편 9장, 하편에 11장을 싣고 있다. 종이는 귤색지(橘色紙)와

남색(藍色紙)를 번갈아 사용하여 화려하게 꾸몄다. 시의 내용은 유가는 물론 도가와 불가의 사상까지 광대하게 아우르고 있다.

 

 

 

 

 

 

 

 

 

 

수오재경침 守吾齋警枕

정조년간, 목재, 16.3(높이), 15cm,(윗지름), 22cm,(아래지름), 순흥안씨 소장.

수오재 안민수(安敏修), 1724-1790)의 목침으로 목침 가운데에는 「경(警)」과 「침(枕)」이 새겨져 있고

목침의 바닥에는 4언으로 된 잠언(箴言)이 새겨져 있다.

 

 

 

 

 

 

인용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25주년 기념 고문서특별전』

 

 

 

 

 

Blue Dawn - Tron Syve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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