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혼례도 回婚禮圖
작자미상, 18세기, 견본채색, 33.5×45.5cm, 국립중앙박물관
혼례한 지 60년이 되는 해에 다시 치르는 회혼례를 그린 기록화다. 구체적으로 누구의 회혼례인지는 알 수 없다.
할아버지가 기럭아범을 앞세우고 회혼례장으로 가는 장면, 회혼례를 올리는 장면, 가족들에게 하례를 받는 장면,
친지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장면, 친지들에게 하례를 받는 장면 등 모두 5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혼례도에 보이는 악기편성은 피리 2, 대금 · 해금 · 장구 · 북 의 현재 삼현육각편성과 동일하다.
복장이 군복인 것으로 보아 이들은 세악수(細樂手)들임을 알 수 있다.
제1폭 감사행영 監司行迎 제2폭 도임환영 到任歡迎
평양감사향연도 平壤監司饗宴圖
작자미상, 18세기 후반, 견본채색, 각 128.1cm, 미국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
예로부터 평양감사는 일품감사(一品監司)라 하여 선망받는 직책이었다.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는 1774년(영조50) 죽마고우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평양감사로 부임하자 유흥에 빠지지 말고 정사에 힘쓰라고 『관서악부(關西樂府)』를 지었다.
이 병풍은 바로 이 『관서악부』를 묘사한 그림이다. 즉 관서악부도((關西樂府圖)가 바로 평양감사향연도이다.
제3폭 선화향연 宣化饗宴 제4폭 연광야연 練光夜宴
제5폭 부벽유연 浮碧遊宴 제6폭 대동선유 大同船遊
제7폭 월야선유 月夜船遊 제8폭 감사순시 監司巡視
제1폭 감사행영 부분 : 음악과 춤
제2폭 도임환영 : 음악과 춤
제3폭 선화향연 : 음악과 춤
제4폭 연광야연 부분 : 음악과 춤
제5폭 부벽유연 : 탈춤과 줄타기
제6폭 대동선유 부분 : 음악과 춤
제5폭 부벽유연 부분 : 음악과 춤
제7폭 월야선유 부분 : 음악과 춤
제8폭 감사순시 부분 : 취고수 악대
(좌측 부분)
평양감사향연도 平壤監司饗宴圖
전 김홍도, 19세기, 지본채색, 각 71.2×196.6cm, 국립중앙박물관
평안도 관찰사 부임을 환영하기 위하여 평양성에서 베푼 연회를 그린 기록화로 모두 세 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측 부분)
(좌측부분)
부벽루연회도 浮碧樓饗宴圖
대동강변 부벽루에서 펼친 잔치를 그린 그림이다. 삼현육각반주로 처용무와 포구락, 검무, 무고가 추어져,
평양감사 한 사람을 위하여 비록 규모가 작기는 하나 궁중연회와 거의 다름없이 화려한 공연이 펼져지고 있다.
(우측 부분)
<부벽루연회도> 오른쪽 위에 '단원사(檀園寫)' 라는 관지와 함께 백문방인이 찍혀 있는데, 이처럼 초서체로 둥글게 쓴 단원이란 관지는
김홍도 회화 가운데 40대 이후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30대로 보이는 화풍과 맞지 않아 그 진위에 대해 의심을 받는다.
(좌측 부분)
연광정연회도 練光亭饗宴圖
(우측 부분)
월야선유도 부분 : 음악과 춤
부벽루연회도 부분 : 음악과 춤
제2폭 제1폭
권대운기로연회도병풍 權大運耆老宴會圖屛
작자미상, 1698년, 견본채색, 199.0×485.0cm, 서울대학교박물관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 때 실각했던 남인(南人)이 1698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다시 집권하고 같은 해 8월에
그 영수인 영의정 권대운(權大運, 1612~1699)이 숙종에게 궤장(几杖)을 받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베푼 기로연회를 그린 것이다.
기사환국으로 다시 벼슬에 오른 영의정 권대운, 좌의정 목내선(1617~1704), 좌참찬 이관징(1618~1695), 행공조판서 오정위(1616~1692)
의 네 사람을 중심으로 그 자제들인 부총관 이옥(1641~1698), 경기관찰사 권귀(1648~?), 대사간 오시만(1647~?), 대사간 목림일(1646 ~?)
권중경(1658~1728)의 아홉 사람이 참석했다. 앞의 네 사람이 중심인 모임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사노회도병>이라고 불렸다.
제4폭 제3폭
기노연의 주인공들을 그린 묘법을 보면, 약간 각이 지고 날카로운 기운에 가는 선묘를 사용했고,
몸체에 비하여 얼굴을 크게 글ㅆ으며 초상화법으로 자세히 그렸다. 시중들고 있는 시녀들을 보면, 약간 각이진 묘법과 유려한
곡선미의 묘법을 혼용했다. 집을 중심으로 펼쳐진 공간은 청록산수화풍으로 나무 · 바위 등으로 약간 규제된 가운데 행사 장면을
충분히 표현했다. 하인과 말을 가져온 마부 등은 풍속화풍으로 그렸다. 기물들은 당시 수입한 박래품(舶來品)으로 보인다.
산수 · 화조· 초상 · 사녀 · 풍속 · 계회 등 당시의 화품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기록화라는 점에서 회화사적 의의가 크다고.
제8폭 제7폭
제6폭 제5폭
악기를 든 여인들은 중국식의 복색과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기로연에 참석한 인물들은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모사되었지만,
연회에 사용된 음악과 춤 등은 실제로 연행된 것이 아닌 상상에 의해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제4폭 제3폭
영조41년기로연도 英祖四十一年耆老會圖
작자미상, 1765년, 견본채색, 각 190.2×57.4cm, 서울역사박물관
일명 <영수각기로연도>라고도 한다. 1765년(영조41) 8월 영수각(靈壽閣)에서 전배(展拜)하고 기영관(耆英館)에서 기로연을 베풀며,
경현당(景賢堂)에서 잔치를 벌인 기로연 장면을 그린 것이다. 『耆社志』에 기록딘 기로연 행사만 해도 55회에 달한다. 1폭에는 발문이 있고,
2폭에는 영수각, 3~5폭에는 경현당, 6~7폭에는 기영관에서 베푼 연회장면을 그렸으며, 8폭에는 좌목(座目)을 써넣었다. 그런데 2폭과 3폭
사이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으로 보아 몇 폭이 결실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제2폭 제1폭
제8폭 제7폭
제6폭 제5폭
제4폭의 부분 : 음악과 춤
10명의 무원들이 원형으로 둘러서서 처용무를 추며, 반주석에는 건고 · 편종 · 편경이 보이고,
나머지 20명의 악사들이 어떤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제4폭 제3폭
영고화 靈鼓畵
작자미상, 19세기, 견본채색, 99.0×349.0cm, 한양대학교박물관
이 작품은 곽분양행락도에 요지연도가 부분적으로 결합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제2폭 제1폭
제8폭 제7폭
제6폭 제5폭
제10폭 제9폭
제7 · 8폭의 부분 : 음악과 춤
돗자리 위에서 두 명의 무원이 춤을 추고 있다. 치켜든 오른발의 높이와 소맷자락의 휘날리는 모습 등으로 보아
빠른 동작의 춤을 묘사한 듯하다. 무원의 양쪽으로 각각 9명으로 구성된 두 개의 반주단이 있는데, 이 반주단 역시 쌍을 이룬 모습이다.
주목할 것은 여러 궁중행사 관련 그림과 달리 <영고화>에 출현한 악사들이 모두 여자라는 점이다. 여악(女樂)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조선후기에 장악원여기가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여악이 외연에서 공연된 적이 없으며, 조선시대를 통털어 내연에서
악기를 연주한 적이 없다는 기존의 학설에 근거하자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영조대에 임금과 신하들이 참례한 내연에서
여기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은 이 작품이 상상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제2폭 제1폭
곽분양행락도 郭汾陽行樂圖
작자미상, 19세기 후반, 지본채색, 100.0×334.0cm, 서울역사박물관
궁중에서 가례를 기념해 만든 병풍으로 추정되면, 모두 8폭이다.
곽분양행락도란 당나라 때 명장으로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 697~781)가 자손들과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곽자의는 복장(福將), 복성(福星)으로 불릴만큼 만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인식되었다.
제4폭 제3
제8폭 제7폭
제6폭 제5폭
제4 · 5 · 6폭의 부분 :음악과 춤
곽분양행락도의 연회 모습은 우리나라 것이 아닌 중국의 것에 가깝다. 춤을 추는 무녀들의 복색이나 머리 모양도 중국의 것이므로
이 그림 속의 춤과 음악이 우리나라의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그림에서 음악과 관련된 장면이 두 군데서 나타난다.
하나는 중앙에 보이는 음악과 춤이고, 또 하나는 주변에서 동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인용서적 : 조선시대 음악풍속도 Ⅱ 국립국악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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