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축제·전시·공연

영겁 그리고 찰나 2

 

1편에 이어서...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불곡(佛谷) 감실 불상.

 

 

 

 

 

탑곡(塔谷) 북면 두 탑 사이의 여래좌상

 

 

 

 

탑곡 구층탑과 사자.

 

 

 

 

동면의 비천

 

 

 

 

남면의 승려

 

 

 

 

동면의 여래좌상

 

 

 

 

남면의 삼존불과 신장상

 

 

 

 

남면의 삼존불과 삼층석탑.

 

 

 

 

다시 바위로 되돌아가려는 우람한 선도산 마애아미타여래.

 

 

 

 

군위 삼존불

 

 

 

 

듬직한 군위석굴 본존이 손과 그 뒤로 보이는,

편안히 시립해 있는 세지보살.

 

 

 

 

천 년의 침묵 머금고 있는 아미타여래의 얼굴.

 

 

 

 

칠불암 사방불 동면 약사여래좌상.

 

 

 

 

칠불암 사방불 서면 아미타여래좌상 얼굴.

 

 

 

 

 

 

 

 

 

남산 삼릉계 마애여래좌상.

 

 

 

 

마애관음보살입상.

 

 

 

 

선각 여래입상.

 

 

 

 

선각 여래좌상.

 

 

 

 

남면 마애불상들, 대좌는 따로 만들어 끼워 놓았다.

 

 

 

 

정병을 든 세지보살의 손.

 

 

 

 

관음보살의 얼굴.

 

 

 

 

석굴암 본존 얼굴의 측면.

 

 

 

 

본존의 향마촉지인을 취한 오른손.

 

 

 

 

본존의 손가락과 발가락.

 

 

 

 

석굴암 입구 왼쪽의 금강역사상.

불끈 쥔 왼손은, 정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소가락 끝에까지 손톱 표현이 정교하다.

 

 

 

 

석굴암 입구 입구 오른쪽 금강역사상의 얼굴.

 

 

 

 

입을 다물고 있다.

 

 

 

 

사천왕상.

 

 

 

 

사천왕상이 밟고 있는 악귀들.

 

 

 

 

 

 

 

 

 

 

 

 

 

 

범천의 정병을 든 손.

 

 

 

 

발과 대좌(위)

보현보살의 발과 대좌(아래)

 

 

 

 

 

 

 

 

 

 

 

 

 

 

십일면관음보살과 십대제자.

 

 

 

 

십일면관음보살.

 

 

 

 

 

 

 

 

 

 

 

 

 

 

 

 

 

 

 

 

 

 

 

 

 

 

 

 

 

 

 

 

 

 

 

 

 

 

 

 

 

 

 

 

 

 

 

 

 

모두 다른 십대제자의 신발과 발 모습.

 

 

 

 

 

 

 

 

 

 

석굴암 본존불

 

 

 

 

 

본존불 뒤쪽 감실 안의 유마거사.

 

 

 

 

 

미륵곡 석가여래좌상. (1970년대 촬영)

 

 

 

 

측면에서 본 미륵곡 석가여래좌상.

 

 

 

 

미륵곡 여래좌상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앞으로 기운 암석에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바위로 되돌아가려든 듯한 영지의 석가여래좌상.

 

 

 

 

비장한 폐허미를 보여주는 염암곡 절터의 석가여래좌상.

 

 

 

 

 

 

 

  환원의 세계

흑백(黑白)의 세계란 원래 없는 것이다. 온갖 색으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를 본래의 모습으로 환원(還元)시키면

흑백의 세계가 되는 것일까? 흑백은 죽음을 상징한다. 인간이 죽으면 '돌아간다' 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근본으로 되돌아감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앞으로  우리가  당면해야 할

막연한 미래의 상태이거나 이미 지나간 과거의 상태일 뿐, 현실의 세계는 아니다.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는 옛 사람들은

벼슬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 귀향하여 죽음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자연으로 되돌아가 밭을 일구고 독서를 하며 자기

 자신을 찾으려 한다. 어느 종교에서는 죽음을 환원(還元)이라고 한다. 어느 다른 종교에서는 입멸(入滅)이라고도 한다.

 적멸(寂滅)의 상태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해탈(解脫)의 상태로 된다는 것.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절대적 자유의상태, 모든 고통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다시는 윤회(輪廻) 하지 않는 절대적 무(無)의 상태.

 

- 중략 -

 

흑백이란 단지 양감을 살리고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흑백사진이란 우리를 과거로 되돌려 놓으며, 더 나아가 더 근원적인

어떤 것을 회상케 하는 것임을 처음으로 깨닫게 디었다. 우리말에 '철학(哲學)'이란 명사는 있어도 '철학하다' 라는 동사는

없다. 그러나 독일어에는 있다. PhilosoPhieren. 흑백 사진은 우리로 하여금 철학하게금 만든다. 과거를 회상하게 하고,

과거에 있겠끔 하고, 어떤 근원적인 것, 어떤 본질적인 것을 생각하게 한다.

 

- 본문 중에서 -

 

 

 

새벽에 운무가 낀 태종무열왕릉과 그 계열 왕릉들 그리고 길게 뻗친 남산.

 

 

 

 

 

 

얼마 후 운무가 걷힌 풍경.

 

 

 

 

 

계림 옆 왕릉들.

 

 

 

 

 

하나가 된 쌍분.

 

 

 

 

불곡 감실 불상.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된 석굴에 들어앉은, 신라 최초의 석불이다.

 

 

 

 

 

아기 부처.

 

 

 

 

 

남산 삼화령 미륵삼존불은 신라 7세기의 가장 이른 삼존불 형식이다.그 좌우 협시보살의 천진난만하고 얫된 얼굴 모습은 '신라의 미소'라 불릴만 하다.

 

 

 

 

 

 

선도산 마애본존불과 환조보살상.

안산암 바위에 새겼고 관음과 세지보살은 다른 곳에서 화강암을 옮겨 와서 독립상으로 조각해서

세웠다. 본존은 높이 칠 미터, 보살은 높이 오 미터, 보살은 대좌와 신체를 따로 만들어 조립한,

특이한 수법으로 세워졌다.

본존의 얼굴도 인위적으로 파손됐다. 누군가 산 위로 올라가 큰 충격을 주어서 얼굴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다.이 사진은 19+78년경의 모습으로, 복원되기 전의 기록이다.

 

 

 

 

 








어느 때인가 인위적으로 파손되어 보살들의 머리도 잘리고 몸도 동강이 났다.



 

 

경주 골굴암 마애불.지금은 보호각이 지어져 있다.

 

 

 

 

 

석굴암 입구 양편에 서 있는 쉬호신인 금강역사상.

 

 

 

 

 



 

 

 

 

 

석굴암 본존 석가여여래.

 

 

 

 

 

석굴암의 핵심은 본조존 석가여래이고, 그 존재의 핵심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극복하여 깨달음에 이른 원만한 모습이다.

 

 

 

 

 

 

 

석굴암 본존의 왼손. 싯다르타 태자는 두 손ㅇ은 무릎에 포갠 선정인의 자세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깨달으면서 오른손을 내려 항마촉지인을 취하며 악마를 물리친다. 왼손은 원래 선정인 때의 모습이다.

 

 

 

 

 

석굴암 천개석

 

 

 

 

 

창조의 원리, 즉 존재를 표상하는 인도 재래래의 최고신 범천.

 

 

 

 

 

가장 높은 가치인 지혜를 표상하는,그리하여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형상화한 문수보살

 

 

 

 

 

석굴암 십대제자상.

 

 

 

 

 

 

 

 

 

경주 암곡 고선사 터.

사진에서 느끼는 대로 이곳은 깊은 산골이어서 어둡다. 그래서 예부터 암곡(暗谷) 이라 불리었다,

일찍이 원효가 머물렀던 곳이어서 그의 비석이 세워지기도 했다. 감은사의 삼층석탑과 크기가 같고 양식이 같아서

거의 같은 시기인 통일초 680년 경에 이 절이 창건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원효가 분황사에서 절필(絶筆)하고 속세로

돌아갔으나 아마도 그에 앞서서 이 고선사에 오랫동안 머물며 저술에 몰두했던 것 같다. 이 일대는 이십여 년 전

보문댐 건설로 수몰되어 지금은 절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암곡 고선사 터의 우람한 삼층석탑과

원효대사비의 귀부는 지금 국립경주박물관 뜰에 옮겨 놓았다.

 

 

 

 

 

 

원원사탑 십이지상.

 

 

 

 

 

통일신라에는 시간신(間  )이며 동시에 방위신(方位神)인 십이지장상이, 방위 수호신인 사천왕과 함께

탑에 조각되기도 하지만 매우 드물다. 십이지상을 마치 비천(飛天)처럼 천의(天衣)가 휘날리게 조각했다.

 

 

 

 

 

강릉 굴산산 당간지주.

범일(梵日)은 중국에서 돌아와 851년 입적했는데 그의 부도가 선 입구 오른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당간지주 너머 저 멀리 사굴산이 보인다. 내 마음의 깃발은 늘 당간지주 사이 드높은 깃대에서 휘날리고 있다.

 

 

 

 

 

 

높이가 오 미터나 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도 하지만, 표면을 조금도 다듬지 않고

전 표면에 친 정(釘) 자욱을 그대로 남긴 야성미가 내 맘을 울린다. 대담하다.

 

 

 

 

 

 

永劫의 세월을 이겨낸 불멸의 예술품, 그리고 刹那로서의 사진

 

“인간의 차원에서는 찰나(刹那)가 영겁(永劫)의 한 미세한 먼지와 같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크게 깨닫는다면 우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면서 찰나를 영겁처럼 여기리라. 겁에서 찰나를, 찰나에서 겁을 느끼니, 영겁과 찰나는 불이(不二)다. 사진 찍는다는 것은 탄지(彈指)의 순간에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것, 영원 속에서 찰나를 붙드는 것, 찰나에 사물의 변화를 멈추게 하여 영원히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진마저 변한다. 허나 그때 절망감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한 느낌, 불가사의한 기쁨을 느낀다. 영겁과 찰나는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것. 혼연일체가 되는 불이(不二)의 상태를 사진에서 때때로 나는 느낀다.”

천 년 이천 년을 변함 없는 자태로 있는 신라의 벌, 무덤, 석탑, 석불 들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신라 천 년 그 이상의 영겁의 세월을 헤아리고, 나아가 크게 깨닫는다면 그 영겁의 세월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彈指)’ 찰나의 순간과 다르지 않음을 감지해낸다. 그리하여 무상(無常)한 세월과 불멸(不滅)의 예술품을 동시에 헤아리면서 이들을 사진이라는 기록매체로써 찰나의 순간에 고정시켜 둔 것이다. 무상한 세월 속에서, 미술사가로서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옛 작품의 매 순간순간을 끊임없이 붙들어 두려는 저자의 이러한 사진기록 행위는, 영원 불멸의 탑과 불상 들을 만들어내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이름 모를 신라 석공(石工)의 정신(魂) 그것에 다름 아니다.

 

(출판사 서평 중에서)

 

 

 

'문화 > 축제·전시·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안 청자  (0) 2016.08.30
이재 황윤석 / 석전 황욱  (0) 2016.08.29
영겁 그리고 찰나 1  (0) 2016.08.24
모네가 사랑한 정원  (0) 2016.08.22
추사 명선(茗禪) 진안변(眞贋辨)  (0) 2016.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