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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범 종단과 함께

영축산 묘현사

2016. 7. 25



영축산 묘현사

(전남 장성군 서삼면)















잠시 더위를 피하겠노라 산을 올랐는데

 저 앞에 보이는 평상에서 묘각 스님과의 담소가 꽤나 길어질 줄이야...





무등산과 영암 월출산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날이 흐린 관계로...








장성 영축산(축령산) 묘현사는 묘련 스님(대한불교 현광종 종정.1924~1998)이 일군 소박한 사찰.
 묘각 스님은 묘련 스님의 속가 동생으로, <법화경>의 대의를

형님 스님으로부터 이은 후학이시기도 하다.


묘현사는 <석가여래행적송>을 지은 고려 충숙왕 때의 운묵무기(雲?無寄) 스님이 수행했던 곳으로.

 취서사,관불암  등의 이름으로 이어오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묘련 스님이 일구고 주석하여

<법화경>의  진보된 해석을 내놓아 한국 불교의 새로운 장을 연 의미 깊은 장소.


일생을 <법화경> 연구에 매진했던 묘련 스님의 뜻을 이은 묘각 스님 역시

서출판 간경도감을 통한 다양한 포교활동을 펼쳐 오시는 중.

묘련 스님의 <법화경> 해설서도 있지만 묘각 스님이 지은 이차돈, 자장율사, 진묵대사 등 고승전과

 <알기 쉬운 법화경> <법화경과 원자물리학>등 법화경 관련 서적을 내시기도 했다고. 










법화경

묘법연화경 권1 목판본(1607년), 청주고인쇄박물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Saddharmapuṇḍarῑka-sūtr


 7권 28품으로 천태종을 비롯, 여러 종파에서 불교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경전으로 존숭되어왔다.

법화경 은 그밖의 여러 종파의 사람들에 의해서도 매우 아름답고 위력을 가진 종교 고전으로 여겨졌으며,

동아시아 불교의 주도적 형태인 대승 불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하고 널리 읽혀온 경전의 하나이다.


삼국유사 권3 대산오만진신조(臺山五萬眞身條)에 이 경의 이름이 보이고 있고,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이에 대한 경흥(憬興)의 소(疏), 태현의 고적기(古迹記),

도륜(道倫)의 소, 원효(元曉)의 종요(宗要)와 방편품요간(方便品料簡), 의적(義寂)의 강목(綱目),

순경(順憬)의 요간(料簡) 등 신라인의 연구 주석서가 보이고 있다.


고려시대 법화경 간행에 대한 기록은 1020년(현종 11)에는 현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대반야경(大般若經) 과 함께 법화경을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에 김제 금산사에서 1083년에서 1097년 사이에 법화현찬(法華玄贊)

등을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백련사원묘국사중진탑비(白蓮寺圓妙國師中眞塔碑)에

국사가 법화경을 천만 번 염송한 뒤 법화경강요(法華經綱要)를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묘현사 너머 고창 문수사(文殊寺)에서 간행한 법화경의 발문에 보면 1340년 요원(了圓)이 편찬한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이 만의사(萬儀寺)에서 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고종 때는 고종 자신이 법화경을 숭상하였으며, 이규보(李奎報)는 법화경을 암송할 정도로

법화 공덕사상이 널리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법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으로 평가되고 전승된 것은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이다.

삼승(三乘)이 결국은 일승(一乘)으로 귀일(歸一)한다는 이 사상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보살(菩薩)의 무리들에게 맞게끔 갖가지의 법(法)을 설하였지만,

 그것이 모두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이고 깨달음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

시방불토(十方佛土)에는 오직 일불승(一佛乘)의 법만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화엄경의 원융무애사상(圓融無碍思想)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꽃을 피워 한국불교의 전통을 회통적 귀일불교(會通的歸一佛敎)로 이끌었고,

한민족의 화사상(和思想)에도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신라의 삼국통일이 이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제2품 「방편품(方便品)」, 제3품 「비유품(臂喩品)」, 제4품 「신해품(信解品)」

제5품 「약초유품(藥草喩品)」, 제7품 「화성유품(化城喩品)」 등에서 높은 문학성을 지닌

불타는 집의 비유, 방탕한 자식의 비유, 초목의 비유, 주정뱅이의 비유 등을 통하여

그러한 입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조선시대는 배불숭유정책(排佛崇儒政策)으로 사찰경제가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불교경전의 간행은 사찰이 중심이 되어 끊임없이 계승되어 왔다. 조선시대의 법화경 간행은

경전 독송이나 교학 연구라기보다 경전신앙(經典信仰)에 의해 시주자들의 공덕을 위하여 간행된 경향이 짙다.

 고려 때의 볍화경 유통에 대한 공덕사상이 조선 초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금은자(金銀字)의 법화경사경(法華經寫經)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위 법화경 해설은 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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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함을 동반한 더위 앞에 더 이상의 인내는 무용지물.

대문을 박차고 느낌 가는대로 가다 보니 어느덧 축령산 초입이라.


저수지 너머 멀리 8부 능선 쯤에 자리한 묘현사에 꽂히는 시선.

정도 높이라면 다소나마 시원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올라본 묘현사.

입적하신 묘현 스님은 과거에 뵌 적이 있었지만 묘각 스님은 오늘이 초면.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도 제대로 못 보면서 달만 쳐다보라는 것은

도대체 '어불성설'() 아니겠습니까?"


예상했던대로 『법화경』의 설법지 묘현사 답게

한국 선불교에 대한 날선 비평을 서슴없이 내놓으시는 묘각 스님.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스님과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다가온 저녁 예불 시간.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좀 더 머물기를 권하시는 스님의 청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오자니

산 위의 시원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또 다시 훅 밀려드는 더위.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熱夜)       

보나마나 오늘밤에도 쉬 잠들긴 틀렸을게다.





Emerald Forest - Dan Gib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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