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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살롱 드 월봉

2014 고봉문화제 <1편>

고품격 문화살롱  salon de wolbong   

 

 

 

氷月秋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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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국립광주박물관 정명희 학예연구사

 

18~19세기 해남 녹우당은 하나의 거대한 전시관이었다.

엄청난 양의 시대적 지식과 정보가 모여 있었다는 뜻이다.

 

회화 유물 전시는 빛, 습도 등 유물의 피로도를 고려 

 최대 3개월 전시 후 10개월 정도는 꼭 휴지기에 들어가야 한다.

금번 전시회를 위해 20여 유관처로 부터 약 200여 점의 유물을 빌려왔다.

 

 

금번 전시회의 컨셉은 '과거와 현재의 소통'이다.

전시회 관람은 그 어떠한 선입견 없이 보는 게 가장 옳은 방법이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녹우당 현판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현판의 뒷편에 적혀진 간지를 보존과학자가 적외선 촬영으로 밝혀내게 되었다.

 

 

윤두서의 자평이다.

 

 

공재에 대한 비평

 

전시장의 구성과 동선에 대하여.

하이라이트인 공재 자화상은 맨 나중에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첫번째 공간 해남.

 

48세를 살았던 윤두서는 실제로 46세가 될때까지 생애 대부분을 한양에 머물렀다.

성호 이익, 옥동 이서 등과는 아주 가깝게 지냈다. 지금의 명동 성당 근처가 그의 집이었다.

 

해남으로 떠난 공재에게 옥동 이서가 보낸 편지로 추정된다.

이서는 공재의 아들 윤덕희의 스승이기도.

 

 

아래 맨 왼편이 '녹우당인'

 

- 윤씨가보 -

윤두서의 화첩은 그의 아들 윤덕희가 아버지의 그림을 모아 꾸민 것이다.

 

 

 

초의선사진영

 

- 윤두서의 가계도 -

윤두서는 48세를 살았고 그의 아들 윤덕희는 82세, 그의 손자 윤용은 33세를 살았다.

(윤용은 서울에서만 살았다.)

 

 

- 해남윤씨 도서목록 -

 

윤덕희의 장수 덕분에 수 많은 장서와 서화 등이 지켜질 수 있었다.

 

- 방성도 -

윤두서 소장

 

- 수학책 -

 

천재지변에 대한 그림으로 본다고.

(윤두서가 그렸을 거라고)

 

조선과 일본을 그린 지도

(윤두서가 일본에 첩자를 보내 그렸을 거라고)

 

윤두서의 초서

 

 

 

 

2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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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Mancini / Gypsy Vio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