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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살롱 드 월봉

<제22회> 살롱 드 월봉 Ⅲ

                -제22회-

           고품격 인문교류마당 - salon de wolbong  

  

                      ● 주제 /  도예의 힘 Ⅲ

 

              강사 : 三田 송 기 진 도예가

                     

                     - 일시 : 2014년 4월 25(금) 오후 7시 - 10시 

                     - 장소 : 월봉서원 교육체험관

                     _ 주최 : 문화재청. 광주광역시 광산구  

                     - 주관 : 교육문화공동체 '결'

                     - 후원 : 행주기씨문헌공종중, 너부실 마을 주민, 상상창작소, 문화기획사 라우,

                                 광산문화원, 광주향교여성유도회, 광산구문화유산해설사회 (재)고봉학술원,

 

 

 

 

 

   

 

 

 

 

  

 

 

 

 

 

 

 

 

 

 

 

 

 

 

 

 

 

 

 

 

 

 

 

 

 

 

 

 

여섯째, 구분을 할 수 없는 경우이다.

초벌덤벙이가 원래 의도대로 완전히 백자처럼 만들어지게 되면, 이 그릇은 관상적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왜냐하면, 기물의 외관이 백자와 똑 같기 때문에, 이 그릇을 개서 유약과 백토속에 감춰진 태초를 확인하기

전에는 덤범이 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벌덤벙이로 제작된 그릇들 주 백자와 똑 같은 성상을

갖춘 그릇은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 보성덤벙이는 3번 굽는다.

* 인위적인 것은 금방 질린다.

* 떨어져 나간 흠집의 이해 : 흠집 주변에 그림이 그려진다.

* 조선 사발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변화가 심한 기물이 보성덤벙이다.

* 보성덤벙이는 달의 형상을 보인다.

* 자연성과 영원성의 합일이어야 한다.

* 가이락(비파색)을 손으로 하나 하나 잡아냈다.

* 유약이 묻어 있지 않음에 묘미가 있다.

 

 

 

살롱 드 월봉에 참석한 문화재청 주무관의 인삿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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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건너가 그들의 국보로 추앙된 조선의 막사발.

우리에겐 막사발이었지만 남다른 심미안을 지닌 일인들의 눈에는

지상 최고의 예술품이었기에 혹자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었노라 말 하기도 한다.

 

도자기(陶瓷器) 문화가 이땅에 전래된 시기는 고려 초.

사실 도기와 자기는 엄연히 다르다.

도기는 800~900도 정도에서 굽고 자기는 1,300도 이상의 높은 고화력에서 굽게된다.

이토록 높은 온도 속에서 전혀 다른 예술 세계가 탄생하게 되는 바,

그것은 인간의 손을 떠난, 가히 신의 영역이라 규정지어도 무방하리라.

 

청자와, 분청 백자등으로 이어져 온 우리네 찬란한 도자기 문화.

하지만 17~18 세기를 거치며 도자기를 산업으로 발전시킨 일본에 반해 우리는 개항기를 거치며

모든 경쟁력을 잃어 버렸고 보물같은 제작기법까지도 모두 사라져 버린 것.

 

해방 이후, 우리 고유의 도자문화 부활에 노력해 온 이들이 있다.

고려청자의 유근형(1894~1993), 조선백자의 신정희(1930~2007), 분청사기의 천한봉 등.

이들 현대 도자문화 1세대들에 이어 근래엔 대학에서 도자를 전공한 젊은이들이 분기탱천,

 과거의 찬란했던 선대 도자문화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구랍 25日 살롱 드 월봉에 등장한 강사는 '보성요' 대표이자

'보성덤벙이문화복원연구원이사장' 이라는 기나긴 직함을 소유한 도예가 송기진 선생.

 

도예가의 길이 가난과의 전쟁이었노라는 요지로 말문을 연 다음,

그야말로 고군분투 속에 '보성덤벙이'를 기어코 재현 시켰노라는 말씀. 

더 나아가 우리네 도자사의 부끄러운 부분인 일본식 '도자용어'의 우리말 보급을 위해

 학술대회와 저술 등을 통해 우리네 정서를 담은 용어를 정착시키는데 앞장 서고 있다고.

 

거친 손을 연상하며 작가와 악수를 나누는데 마치 어린 아이 손 처럼 여린 느낌.

도예의 세계라는 것이 예술성과 심미안 만으로 해결되는게 아니고,

시쳇말로 上 노가다 이상의 체력이 요구되는 것으로 아는데

이처럼 예민한 손으로 저토록 투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보성덤벙이'를...?

 

책상머리의 글이나, 현장과는 거리가 먼 형이상학적 입방아에 식상하던 차.

 확고한 신념 아래 고난의 작업을 펼쳐온 송기진 선생의 박력있는 예술 다큐멘터리는

 살롱 드 월봉에 모여든 모든 수강자 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Very Best Of Andre Gagn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