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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묵방도담

도담과 주담의 혼연일체(渾然一體)

2014. 8. 1~2

 

경남 거창군 위천 계류

 

 

위천에서 만난 사람들

 

 

 

 

 

 

 

 

 

건계정(建溪亭) / 거창읍 상림리

 

송나라 때 고려로 귀화한 거창장씨(居昌章氏)의 시조 충헌공(忠獻公) 장종행(章宗行)의 후손들이

선조를 기려서 1905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를 건계(建溪)”라고 이름한 것은 중국의 주돈이와

주자 두 선생의 염계(簾溪)”자양(紫陽)”을 본 딴것으로 거창 장씨의 시조 장종행이

 중국 건주(建州:建溪)에서 건너왔으므로후손이 선조의 고향을 잊지 않는다는 뜻.

 

 

누각 내부 나무 판재에 그려진 맹호도

 

 

 

 

 

 

 

 

 

 거연정(居然亭

 

 

 

 

 

 

 

 

 

 

 

 

 

 

 

거연정에 집결한 도담 일행

 

 

 

 

 

 

의식확장, 심신의학,

신에너지 분야의 연구 및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

내사(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 방문

- 경남 함양군 안의면 황산리 -

 

 

'미내사'는 이원규 선생(앞줄 중앙)을 주축으로 대덕연구단지 과학자들과

의식개발에 관심있는 개인들이 연합하여 설립한 '클럽' 으로

'지금여기' 라는 제호의 격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법인사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法印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보물 제1691

 

 법인사 감로왕도 法印寺 甘露王圖)  

 보물 제1731

[출처 : 검색인용, 사진-서태일]

 

고비선원(高飛禪院)

 

 

 

 

 

고비선원에 피어난 산나리

 

 

 

 

 

 

 

 

고비도담(高飛道談)

 

 

 

 

 

 

 

 

 

 

 

 

 

 

 

 

 

 

 

 

 

 

 

 

 

 

'고려초조대장경(두루마리본)'이 보관될 예정이라는 경남 함양군 남효리.

위 건물 앞 쪽에 박물관을 지어 보관하게 된다고.

 

 

 

 

탐스럽게 피어난 흰색 목백일홍의 우아한 자태.

 

 

 

박물관 예정터를 지키고 있는

"용수의 사유" 저자 신상환 박사(사진상 오른편)와 함께한 도담 일행.

 

 

 

 

1968년 전남 광양에서 출생. 순천고등학교(1986), 아주대학교 환경공학과(1993)를 졸업하고,

카라콜람 산맥을 넘어 파키스탄을 통해서 인도로 들어간 후 인도/티벳/중국 등을 여행하였다(1993~1998).
티벳 불교를 공부하기 위하여 타고르 대학으로 알려진 인도의 비스바 바라띠(Visva-Bharati) 대학의

인도/티벳학과(Indo-Tibetan Studies)에서 티벳학 석사 및 같은 학교에서 산스크리뜨어 준석사(Diploma)

등을 마쳤으며 캘커타 대학의 빠알리어과에서 찰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999-2008).
 비스바 바라띠 대학의 인도/티벳학과 조교수(Lecturer) / 현 고려대학교 고려대장경연구소 專任硏究員

주요 저서로는 티벳/타클라마칸 사막/고비 사막의 자전거 여행 기록인 '세계의 지붕 자전거 타고 3만리' 등과,

역서로는 싸꺄 빤디따의 '선설보장론'이 있으며, 논문으로 '시초 단계의 초기 대승 불교에 대한 반야부의 영향/가설적 접근',

 '삼예 논쟁의 정치적 배경과 까마라쉬라의 수습차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문 대장경에서의 밀교의 자취' 등이 있다.

 

(저서와 명함 등에서 발췌한 내용)

 

 

중론송 [Mulamadhyamakakarika, 中論頌]

(산스크리트 Mūlamadhyamakakārikā는 '中道의 원리'라는 뜻)

대승불교 중관학파(中觀學派)의 시조(始祖)인 용수(龍樹 Nāgārjuna:150경~250경)의 대표적 저서.

 

엄격한 논리와 종교적 직관을 결합하여 궁극적 '공'(空)의 교리를 명쾌하게 제시한 뛰어난 저서이다.

용수는 남인도의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나 소승불교에 입문했다가 다시 대승불교로 전향했다.

그는 학문적인 상좌부 논장(論藏)의 분류법과 분석법을 논리적 극한에까지 이끌고 가서 마침내는 논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존재의 여러 요소, 수행의 경지, 능력 등을 존재론적 무(無)로 환원시켜버린다.

이러한 용수의 근본 철학은 한편으로는 반야(般若 Prajñāpāramitā:완전한 지혜) 전통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중론송〉은 반야부 경전들에서 시사되는 '공'에 대한 통찰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450개의 게송(偈頌)으로

 이루어진 〈중론송〉은 석가모니 내지 열반(涅槃)조차도 그 자체에 실체적인 것은 없다는 교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 저서는 일시적인 현상계와 열반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진정한 정신적 깨달음

이라고 설파하면서 끝맺고 있다. 다시 말해 무상한 현상계뿐만 아니라 열반 그 자체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모든 집착을 떠나는 데에 중도의 참된 뜻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백과사전 발췌)

 

 

 

 

『용수의 사유』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용수(Nāgārjuna)의 철학적 사유를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이다.

인도, 티벳, 타클라마칸 사막, 고비 사막 등지를 자전거로 여행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저자 신상환은 지난 10여

년간을 인도 샨띠니께탄에서 살며, 용수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중론(근본중송)』의 산스끄리뜨어, 티벳어, 한문 그리고

영문 서적들을 탐독, 비교 연구하였다. 그 결과 철학이나 이념이 아닌 삶 그 자체를 직시하기 위해 철학 그 자체의 허구를

 비판하는 용수의 사유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이 이 저서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런 만큼 현존하는 티벳 대장경과 한역 대장경에 수록된 ‘팔종지조사(八宗之祖師)’, ‘공사상의 전파자’로 알려진 용수의

생애와 저작들에 대해서 현미경으로 보듯 살펴보았을 뿐만 아니라, 인도 사상의 영원한 보고(寶庫)인 우빠니샤드의 영향,

부파 불교의 상황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그 결과인 부록에 수록된 <이부종륜론> 주해나 여러 티벳 자료들을

이용하여 제작한 도표들은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는 것들이다. 저자는 용수 이후의 중관사상의 발전에 대해서 다루면서

자립논증과 귀류논증으로 해석했던 기존의 논의에 대해서도 귀류논증이 원래 산스끄리뜨어의 쁘라상기까(Prāsaṅgika)’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중관사상의 논리적 발달사뿐만 아니라 티벳 전통에서 강조되는

 밀교를 포함한 중관사상의 발전사를 같이 보아야 할 것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그는 ‘금세기 최고의 공(空)사상 개설서’로 소개된 무르띠의 <불교의 중심 철학>의 오류를 지적할 뿐만 아니라,

불교도에 의한 불교 연구와 비불교도에 의한 불교 연구의 문제 등을 언급하며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또한 ’서구 철학을 통한 중관사상 보기’가 아닌 ‘중관사상을 통한 서구철학 보기’라는 비교 연구를 통해서 기존의 중관사상과

서구철학과의 비교 연구 등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아직 한국에 채 알려지지 않은 티벳불교에서의 중관사상을 집대성한

쫑카빠의 <지혜의 대해>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 <중론> 연구서들에 대한 1차 자료의 인용 및 이에 대한 비판 또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저서의 가장 큰 특징은 ‘고통에서의 해방’을 설파한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것은 8불(不) 중도 연기(緣起)사상으로

‘이것이 바로 공(空)이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존의 논의들을 재해석하는 데 있다. 이것을 위해서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을 사용하여 8불(不)을 입체화하여 연기의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며  <중론> 27품의 449개 게송들의 구조를

분석하기도 한다. ‘사구부정’과 ‘통렬한 비판주의’를 「제25관열반품」에 적용하여 열반이라는 개념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그는 윤회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뿌드가라(Pudgala)를 비롯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정의된 모든 개념화된 범주들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를 지적하며 ‘그 (이면의) 마음’과 ‘언어적 표현’이란 방법으로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 저서는 공사상으로 알려진 용수의 중관사상은 형이상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삶의 총체성을

 관찰하는 지혜와 올바른 삶을 위한 도덕의 함양에 그 강조의 방점을 찍고 있다. 저자는 용수와 그의 정신적인 아들 아리아데바,

티벳현교의 도도한 흐름에 물고를 튼 까마라쉬라 그리고 한역 대장경권에서 추앙받는 꾸마라지바의 역동적인, 그리고

 비극적인 삶에서 그 ‘실천이성’의 모습을 보고 있다.

 

- 출판사 서평 중에서 -

 

 

신상환 박사의 우거에서 펼쳐진 용수(龍樹)에 대한 열띤 담론.

 

 

 

의심할 여지없이, 중관사상(中觀思想, Madlhyamaka)은 약 2천여 년 전에 사조(師祖) 용수(龍樹)에 의해서 주창된 이래

가장 중요한 대승불교의 교리로 이어져 오고 있다.철학적 부분에서 대승불교는 중관파와 유식파의 사상으로 간략하게

 나눌 수 있겠지만, 만약 우리가 이 두 학파들 이전의 초기 불교철학과 인도의 다른 전통적인 논의들을 유념 한다면,

이들이 변증법적인 역사 발전에서 반명제(anti-thesis)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 중략 -

 

불교를 공부하다 보면, 수행 중의 여러 의식, 신학적 . 신비적 요소들을 포함한 일반적인 관습 등, 불교가 자진 총체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되는데, 만약 우리가 이런 요소들을 제외하고 사변적인 철학만 강조한다면 인도 및 서구철학과 자연스럽게

비교되겠지만불교는 철학을 포함하지 철학 그 자체가 아니다. 불교가 가진 종교적 . 수행적 측면과 처락적 측면이란 이 문제는

항상 심각한 딜레마로, 간략하게 말하자면 필자와 같은 변변찮은 수행자이자 보잘 것 없는 중관학자는 불교의 총체성

가운데 중관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외줄타기'를 하며 다른 요소들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 중략 -

 

이 와중에 '철학이라는 단어가 용수의 중관사상을 표현하는 적당한 어휘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왜냐하면 가우따마 붓다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재정립시킨 용수의 중요한 저작들 가운데 도덕률을 담고 있는

『권계왕송(勸誡王頌)』과 『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은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철학에 포함시키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완전하게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철학보다는 광의의 어휘라 판단하여 '사유(thought)'를 선택했고 이 '사유'라는

'철학적 개념 . 구성 . 판단 . 추리 등을 행하는 인간 이성의 작용'을 뜻하는 용수의 근본적인 철학적 . 도덕적

관점의 '내 . 외부적 관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했다.

 

- "용수의 사유" 서문 중에서 -

 

 

 

이것은 용수의 8불과 이후 논사들이 생각한 2종 무아를 통해 얻은 그림이다.

이 안에 한 점을 찍어 연기라고 보고 그것을 움직여 보면, 이것이 8불의 입체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불(不)로 이루어진 공(空)의 내부에 위치한 한 점의 움직임만 상상해 보자.

만약 이 한 점이 연기(상호 연관)에 의해서 이 3차원적인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면, 자립논증이나 귀류논증이나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둘 다 설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 한 점이 공간 밖으로 튀어 나가려고 할 경우에는

외벽을 이루고 있는 8불과 마주치게 된다. 부정적ㆍ반구성적인 표면과 부딪칠 때, 마치 같은 극성을 가진 전자들이 서로를

밀쳐내는 것처럼 동일한 요소, 즉 부정적인 그리고 반구성적인 귀류논증이 자립논증보다 훨씬 더 유효하게 적용된다.

이 경우, 우리는 왜 티벳불교에서 월칭을 높이 평가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142쪽)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의 해석은 항상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철학의 문제는 아직도

세계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며, ‘해석’ 그 자체가 곧 ‘변혁’이다. 석학 콘쩨는 그의 <불교 연구 30년

(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에서 나비에 대한 3가지 관찰법을 적어두었다. 첫 번째는 과학적(scientific) 방법으로

일단 잡아서 해부해 보면 나비의 생체를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인문주의적(humanistic), 또는 생태학적인 방법으로 나비가

알에서 태어나 애벌레가 되고 성충이 되고 나중에 고치에서 나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자연 속에서 관찰해 보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초월적인(transcendental) 방법으로 직접 나비가 되어 보는 것이다.

나비보다 나비를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74쪽)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듯, 불교철학과 다른 철학과의 가장 큰 차이성 중의 하나는 불교철학에서는

두 가지 진리, 즉 이제二諦,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의 논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142쪽)

 

용수도 이 문제를 MK「제27관사견(觀邪見品)품」에서 다루고 있다.

 

1) 나는 과거에 존재했었다.

2) 나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다.

3) 나는 과거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였다.

4) 나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또는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세계의 문제는,

 

1) 세계는 항상하다.

2) 세계는 항상하지 않는다.

3) 세계는 항상하며 항상하지 않는다.

4) 세계는 항상ㅈ하지 않는 것이거나 항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147쪽)

 

그대가 연기(緣起)이고 공성(空性)인 것을 파괴한다면

그대는 또 세간에서의 모든 언어 관습을 파괴하는 꼴이 된다.

 

이처럼 강조하는 용수이지만, 무엇이 이제론 또는 공성인지 설명하지 않은채

다만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150쪽)

 

만약 가우따마 붓다의 가르침을 주창하는 용수의 기본적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각 층위를 이루고 있는

불교의 총체적인 구조를 무시한다면, 형이상학적 개념들에 대한 부정을 통해 언어의 한계를 지적한 용수의 언급들은

항상 궤변처럼 들리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언어적 표현의 한계다.(254쪽)

 

환락의 상징인 궁전 대신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던 '고통에서의 해방'이란 주제는

인간 가우따마 싯다르타라는 한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것이다. 용수는 당대의 구사론자들과

논리학자들이 형이상학적 범주에 집중하는 자세를 비판하는 중관사상을 통해 이 근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 가기를 바랐다.(337쪽)

 

무르띠의 경우, 그가 변증법을 강조하는 만큼 이것에 대항하여 비판하려고 했다.

무르띠처럼 연기가 가진 상호 연관성을 변증법으로 해석하고 이를 '중관사상은 변증법이다!'라고 정의할 경우,

용수의 사구부정 논의 안에 함축된 비판의식은 소멸된다. 결구 반형이상학적 입장을 취한 분석철학의 논리적

긍정주의에 대응한 '논리적 부정주의(Logical Negativism)'라는 명칭을 이 글에서 제안하고 있지만,

이것이 기존의 서구철학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할지, 그리고 다른 학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연기(緣起)를 보는 자, 그는 이것을 본다. 즉 고(苦)와 집(集) 그리고 멸(滅)과 도(道).

 

그리고 그는 또 말한다.

 

 연기인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空性))이라고 말한다.

그것(=공성)은 의존 된 가명(假名)이며 그것(=공성)은 실로 중도(中道)이다. (379쪽)

 

- '용수의 사유' 중에서 발췌한 내용 -

 

 

 

 

 

 

- 우에서 좌로 -

무진 정동기  / 나우 하경주 / 일포 이우원 / 기연 신영철 / 현산 박흥덕

봄날 송순현 / 무애 최원녕 / '용수의 사유' 저자 신상환 박사

 

- 사진 外 -

박신원 대사 / 다천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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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얼굴과 새로운 얼굴이 어우러진 가운데

거창과 함양 일대 심산유곡을 오가며 나눈 정겨운 대화의 장.

 

불도(佛道)와 선(禪)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모든 담론을 재생시켜 정리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이내 능력 밖의 사안.

 

기실 내가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인 대목은,

담론의 형식에 따른 참가자들의 이해와 공감의 폭을 살피는 것이었다.

 

* 용수의 사유 * 가는자는 가지 않는다.  * 초논리의 논리,

*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Ludwig Josef Johann) 등이 동원된 열띤 도담(道談)의 장.

 

도담의 열기는 마침내 저잣거리로 내려가 

 오찬과 함께 주담(酒談)으로까지 이어졌는데.

 

  달아오른 담론의 열기가 과하다 싶은 하늘의 토닥거림인가?

 칠월 칠석날 함양땅엔 태풍을 동반한 줄기찬 비가 그칠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불꽃 튀는 도담(道談)과 주담(酒談)이

대저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이루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