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식서가숙
東家食西家宿
2012. 9. 12 ~ 13
격포항 야경
모항해나루호텔
이튿날 아침 모항 해나루 호텔에서의 곰소만 감상
광주국립박물관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높이 10.4cm,곡성 당동리, 통일신라
부처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과거의 다보·연등여래, 현세의 석가여래, 미래의 미륵불로 구분한다.
석가여래는 석가모니를 말하며, 처음 불상이 만들어 졌을 때는 모두 이 여래상이었다. 석가여래상 중에는
것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여원인與願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는 것이 많다. 또한 수도를 하는 선정인禪定印과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을 하고 있다.
이 불상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하고 있는 여래상이다. 부처얼굴은 민머리에 정수리에 높은 육계가 있으며,
양감이 잘 표현된 볼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가사는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이며, 팔각형의 대좌에는
각기 위와 아래를 향한 연꽃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표현 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딘다.
두 귀 달린 자라병 / 삼국 5 ~ 6세기
신안 지도읍 내양리
금 동 관 / 국보 제295호 / 나주 신촌리 9호분
외外 관冠과 내內 관冠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깥 관은 3개의 나무모양 장식을 세우고
그 끝에 유리 구슬을 달았다. 안쪽 관은 고깔모양으로 옆 면에는 연꽃무늬와
덩쿨무늬를 단아하게 표현하였다.
상상의 동물모양 토기 / 삼국 5세기
해남 만의총 1호분
금동사천왕상 / 높이 16.2cm영암 용흥리, 통일신라
금동으로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왼쪽으로 몸을 틀고 있는 입상(立像)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무장(武將)의 모습이다. 치켜 올린 눈썹과 부릅뜬 두 눈은
사악한 기운을 제압할 듯하고, 굳게 다문 입과 각진 얼굴은 사천왕상 특유의 힘이 배어 있다.
양팔을 걸쳐 아래로 흘러내린 천의(天衣)자락의 유려한 모습은 신라조각 특유의 세련됨을 잃지 않고 있으며,
뒷면에 주조(鑄造) 후 칼로 새긴 갑옷의 문양은 섬세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76년 3월 영암군 용흥리에서 출토된 것이다. 사천왕은 본래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천에 거주하면서
도리천의 제석(帝釋)을 섬기며,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수호신(守護神)이다.
용암사지 사리갖춤
월출산 구정봉 하단 용암사지 삼층석탑 기단부 감실에서 나온 금동지장보살좌상과사리를 담은 항아리이다.
지장보살상은 오른손에 아미타구품인을 하고 있으며, 왼손엔 보주를 들고 있다.
사리단지 안에서는 32과의 사리가 있었는데, 그 사리는 석탑에 다시 봉안 하였다고.
용암사지 규모는 330여 평으로 법당과 요사체를 건립했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도선이 지목한 3대 비보처 중 한 곳이다.
불두 /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8호
고려시대 / 무등산 원효사 출토
나한상 / 조선시대 / 담양 서봉사지
일부는 채색 흔적이 남아있다.
청자 모란줄기 무늬 병
청자 포도 무늬 병
청자 포도동자 무늬 주전자와 받침 / 고려 12세기
주전자와 받침의 포도무늬는 흑상감으로 장식하고 포도 넝쿨을 잡고 노는 동자는 백상감하여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포도와 동자는 자손의 번성을 의미하는 문양이다.
분청사기 물고기 무늬 병 / 조선 15세기
둥그런 몸체의 양면을 두둘겨 편평하게 만든 후 전체를 백토로 규얄하고, 사기장의 마음 가는대로
물고기 무늬를 새겨 넣었다. 물고기는 힘이 있으면서도 시원스럽게 그리고 단숨에 새겼는데
모두 밝게 웃고 있어 조선시대의 푸근함과 해학을 느끼게 한다.
분청사기 인화문 대접 /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국화문 접시 / 조선 15세기
이 접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부지내에 위치한 광주읍성에서 출토되었다.
분청사기 모란 무늬 합
분청사기 넝쿨 무늬 병 / 조선 15세기
"어존"이 새겨진 분청사기 마상배 / 조선 15세기
광주 충효동에서 출토된 마상배로 "어존"이라는 한글이 새겨져 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 이후에 제작되었음을 알려주며 분청사기에 한글이 쓰인 것으로는 유일한 예이다.
분청사기 연적 /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제기 뚜껑 /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풀 무늬 병 / 분청사기 잎 무늬 병
조선 15 ~ 16세기 / 해남 송지면
분청사기 잎 무늬 항아리 / 조선 15세기
백자 구름 용 무늬 항아리 / 조선 17세기
검붉은 색을 내는 철화안료로 용무늬를 장쾌하고 대담하게 그렸다. 왕의 품격으로 여겨졌던 용을
장엄함 대신 툭 튀어나온 눈과 멋대로 그려진 갈기와 비늘에서 이무늬를 그린 장인의 해학과 소탈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 항아리는 물레로 한번에 만든 것이 아니라 위 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여
전체적으로 비대칭을 띈다.
백자 태 항아리 / 조선 17세기 / 오른편은 16세기
왼편은 양녕대군의 태를 담았던 항아리이다.
백자 합 / 조선 15세기
이 백자 합은 궁중과 관청에서 소용되던 세련된 백자를 생산한 경기도 광주 제품으로 여겨진다.
백자 풀무늬 병(왼편)와 백자 풀무늬 항아리 / 17세기
백자 칠보 무늬 접시 / 19세기
청화 백자 물가풍경 무늬 항아리 / 조선 19세기
"수"壽 자가 쓰여진 백자 사발 / 조선 19세기
연적
백자 산수 무늬 부채 모양 연적
백자 산수 무늬 연적
백자 연꽃 넝쿨 무늬 연적
백자 복숭아 모양 연적 / 19세기
복숭아 꼭지는 붉은색의 동화 안료를 사용했고, 잎은 푸른색의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산뜻한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복숭아는 전통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서왕모西王母 전설' 의 영향으로 다수多壽를 의미하며 한편으로는
아들과 다남多男을 상징하기도 한다.
백자 용 무늬 필통 / 19세기
백자 매화 무늬 필통 / 조선 19세기
여덟 마리의 말 八駿圖 / 작자 미상, 비단에 색, 조선
조선이 건국될 때 공을 세운 여덟마리의 말의 공덕을 치하하여 조선의 건국이 하늘의 뜻임을
알리기 위해 만든 글과 그림으로, 숙종 31년(1705)에 제작한 화첩이다. 원래 세종 28년(1446)
화원인 안견이 그리고 집현전 학사들을 비롯한 문신들이 글을 쓴 것이지만, 안견의 그림은 소실되어
후대의 화원이 다시 그리고 다시 만든 것이다.
분청사기 연꽃잎 무늬 병
청자 매병 / 고려 11세기 / 완도 어두리
청자 연꽃넝쿨 무늬 매병 / 고려 12세기
![청백자매병](http://gwangju.museum.go.kr/fileUpload/real/small/IMG421286160055347.jpg)
청백자매병 (靑白磁半陽刻雲龍文梅甁) / 원元(14세기), 경덕진요, 높이 26.5㎝
청백자는 눈 같이 흰 태토에 푸르스름한 빛을 띠어 붙인 이름으로 송과 원대에 유행하였다.
원의 청백자는 자토에 고령토를 넣어 산화알루미늄이 증가하여 더욱 흰 빛을 띠며, 그릇의 두께도 얇아진다.
주로 경덕진요景德鎭窯에서 생산되었다. 매병梅甁은 북송시기에 처음 만들어진 형태로 입이 작아 매화 가지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병이라는 의미이다. 술을 담는 그릇이지만, 요대벽화에서 꽃이 꽂혀 있는 것으로 보아
진열 장식품으로도 볼 수있다.송대의 매병은 버섯 모양의 입에 몸체가 날씬하다. 반면에 원대의 매병은 작은 입,
짧은 목, 풍만한 어깨, 하단부에 곡선을 이루는 듬직한 몸체가 특징이다.
이 매병의 몸체에는 바다의 용을 실감 있게 표현하였다.
![백유항아리](http://gwangju.museum.go.kr/fileUpload/real/small/IMG41286160094706.jpg)
백유항아리 (白釉磁黑畵雲形文壺) / 원元(14세기), 자주요, 높이 29.0㎝
이 항아리는 자주요磁州窯도자기로 구름 속 용무늬가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자주요란 중국 당말唐末부터 14세기 말까지 하북성 자주磁州에 있던 가마를 일컫는다.
자주요磁州窯는 그릇이 대형이라는 점과 태토에 백토로 분장粉粧한 후 문양을 나타내는 점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장식기법은 그림을 그려 넣거나 백토를 깎아 내거나 혹은 백토 위에 문양을 새기는 등 여러 기법을 사용한다.
이외에 다 채색의 연유鉛釉를 사용하거나 유약 위에 여러 가지 색의 에나멜을 칠하여 문양을 나타낸 것도있다.
경쾌하고 우아한 모양이나 장식적인 무늬들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친근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흑유매병](http://gwangju.museum.go.kr/fileUpload/real/small/IMG291286160107285.jpg)
흑유매병 (黑釉褐斑文梅甁) / 원元(14세기), 길주,I 높이 30.2㎝
길주요吉州窯에서 제작된 흑유병이다. 길주요는 장시성江西省에 위치하며 송∙원대의 민요로
흑유와 백지흑화자기白地黑花磁器를 주로 생산하였다. 백지흑화자기는 흰 바탕에 철분 안료로 문양을 그린 것이다.
이 흑유병은 아가리가 밖으로 말린 형태이며, 그 아래에는 짧고 가는 목이 어깨로 연결되어 있다.
넓고 풍만한 어깨부터 점차 내려오면서 폭이 줄어든다. 몸체에는 칠흑색의 광택이 있는 유약 면에
황갈색 반점이 흩뿌린 듯 장식되어 있다.
백자청화인물 고사관 (白瓷靑花人物 故事罐) / 명(正統)
高 38.0cm 口徑20.2cm 底徑22.5cm
백자 구름 용 무늬 항아리 / 조선 18세기
이 작품은 18세기 후반 분원리 관요 제품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두께가 고르지 않아
가마 속에서 형태가 휘어졌으나 장중한 품격이 느껴지는 왕실용 항아리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용 항아리는 발가락이 3개 또는 4개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처럼 발가락이
5개로 표현된 경우는 매우 드물고 귀하다.
백자 달항아리 / 조선 17 ~ 18세기
모나지 않고 넉넉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지녀 보는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은은한 회백색 유약이 입혀져 있다.
청자 모란 무늬 주전자 / 고려 13세기
청자 정병 / 고려 12세기
몸체 중앙에 장식된 버드나무는 물을 정화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특히 관음보살과 관계가 있어
정병이나 향완과 같은 불교 법구에 사용되었다.
청자 버드나무 학 도아 무늬 매병 / 고려 13세기
늘어진 버드나무와 노니는 학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자의 모습은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어 고려인의 해학이 느껴진다.
백자 연꽃무늬 항아리 / 조선 19세기
백자 꽃 나비 무늬 병 / 조선 19세기
백자 삼층 합 / 조선 19세기
청자 대나무 모양 술병 / 조선 19세기
눌재 박상 초상(1474 ~ 1530)
삼인대의 상소로 잘 알려진 눌재의 초상
고양이와 까치 / 조선, 작가 모름
남나비로 불리우는 남계우(1811 ~ 1890)의 작품이다.
허소치의 모란도
꽃과 새 (화조도) / 작가미상, 조선
현악기
광주 신창동에서 출토된 악기는 현악기인 슬(瑟)과 찰음아기(擦音樂器)로 보이는 거치봉(鋸齒捧) 등
2예가 있다. 모두 목제로 우리나라 최고의 것이다. 현악기는 두부에 현을 거는 작은 구멍이 있고,
미부에는 평면 역삼각형의 돌출부를 만들고 여기에 두개의 촉구멍을 뚫어 현고정부를 결합토록 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현공은 6개이나 원래는 10개 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내부는 전체적으로 파내어
요상(凹狀)이나 중앙부가 솟아있는 형태인데 이는 받침의 이동을 통해 음을 조절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빝바닥은 전체가 고른 평탄면이다.
위를 토대로 제작한 모습.
뜬금없이 본 영화 "광해"
"현장 스님과 문수행님께서 오셨습니다. 내소사 쪽으로 오시죠"
일포 선생님의 명을 받잡고 어둠이 내리는 서녘을 향해 달린다.
격포항에 좌정 푸짐한 꽃게탕으로 뱃살을 불린 후 방파제를 거닐며 정담을...
이튿날, 빗속 곰소만이 내려다 보이는 찻집.
질펀한 재즈 선율이 가슴을 후비는 가운데 빛고을로 이동하자는 의견 합일에 이른 일동.
문화생활에 있어 절대 제쳐서는 아니될 항목 '시네마' 감상.
하지만, 도대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뭐였더라...?
떠오르지 않는 기억과 한참을 씨름하는 가운데 화면이 펼쳐진다.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제목의 영화가 시작되는데.
대충의 내용인 즉,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난폭해져 가던 왕.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의 위험을 대신할 인물을 찾을 것을 지시.
이에 허균은 '광해'와 똑같은 외모는 물론 흉내까지도 완벽하게 연출하는 '하선'이라는 인물을 발굴,
질펀한 놀이판에 몰두한 '광해군'의 하룻밤을 대신하게 한다.
헌데, 정적들이 음식에 몰래 탄 아편에 광해군이 쓰러지는 일이 발생.
이에 졸지에 '하선'에게 열흘 동안의 '광해군 대역'이 맏겨지게 되는데.
말 하자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또 한 명의 왕이 있었다는 야그.
월드스타라는 배우가 '광해'와 '하선' 두 역할을 동시에 해 내고 있었는데.
작금의 시절과 맞아 떨어져서일까?
자연스레 킹메이커 허균 역을 맡은 배우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었다.
그의 열연도 그만하면 후한 점수를 매겨서 전혀 하자 없을 터였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의 오찬장.
역사에 관해 천착해 오신 현장 스님께서 '광해군 8년'과 앞 뒤 저간의 사정에대해
자상한 해설까지를 덧붙여 주시니 이야말로 문화향유의 특급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이어 이동한 광주국립박물관.
미적거리다 놓친 "강진청자특별전"의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고도 남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각설하고, 몇 번이고 더 찾아가 도자류 등의 감상에 열을 올려봐야 겠다는 생각이다.
"東家食西家宿"의 달인을 지향한다면,
시도 때도 없이 대성통곡으로 위기를 모면했던 삼국지의 미염공 유비(劉備) 정도의 처세는
습習 해야 할텐데, 아무래도 이내 염량으로는 무리인 모양.
부안 일포선생님댁 드넓은 '묵방산들국화펜션'에 널부러져 西家宿을 청하고,
현장스님을 따라 빛고을에서 東家食을 해결함이 못내 면구스러울 따름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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