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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제2차 영호남선비문화교류 -제4편-

 

'2011 월봉서원과 함께하는 즐거운 나날'

 

 

"제2차 영호남 선비문화 교류 답사"

 

- 제4편 -

 

    ○ 주최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주관 : 교욱문화공동체 "결"

    ○ 후원 : 문화재청, (재)고봉학술원, 행주 기씨 문헌공 종중, 광곡(너브실)마을 주민 일동,

산문화원, 광주향교 여성유도회, 광산구 문화유산해설사회

 

 

■  답사일 : 2011년 10월 1일 

     ■  주   제 : 경북 경남의 문화유산      답사지 : 경북 영양 주실마을

 

 

 

 주실마을

 

경북 영양군 일월면에 소재한 400여년 역사의 마을로

조선 중기 때 환란을 피해 이곳에 정착한 한양조씨들의 집성촌이다.

 

호은종택(壺隱宗宅) 

 

주실마을 한 복판에 자리한 집으로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의 생가이다.

'ㅁ' 자형으로 정침(正寢)과 대문채로 나뉘어 있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솟을대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6 . 25 때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1963년 복구하였다고 한다.

 

 

 

정침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7칸이고,

정면의 사랑채는 정자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선생의 태실(胎室)이 자리한다.

 

 

 

 

 

 대문에서 바라본 주실마을 문필봉.

 

풍수가들의 필수 답사 코스 중의 하나로 이 마을에서 유독 문필을 다루는 학자가 많이 나왔는데

조지훈을 비롯 이 집안에서만 조동일, 조동걸 조동원 교수 등 10여 명의 박사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지훈문학관

 

 

저 앞 영상실에서는 조지훈의 이른바 '주도유단론'이 소개되고 있었다.

술꾼을 바둑에 비유해 9급에서 1급까지, 1단에서 9단까지 자그만치 18등급을 매기리만치

술을 사랑했다는 지훈. 18등급의 내용이 궁금하시거든 당장 인터넷을 한 번 뒤져 보시라.

 

 

 

 

 

 

밤  길 

 

- 조 지 훈 -

"이 길로 가면은 주막이 있겠지요."
"나그네 가는 길에 주막이 없으리아
꽃같이 이쁜 색시 술도 판다오."

얼근히 막걸리에 취하신 영감님
수심가(愁心歌) 한 가락을 길게 뽑으며
달구지 달달 산모루를 돌아간다
白楊(백양)나무 가지 우에 별이 피는데...

"人生... 한번... 죽어지면...
만수(萬樹)... 장림(長林)에... 운무(雲霧)로구나."

 
구슬프고 아픈 가락 고요한 밤에
달구지꾼 영감님의 수심가(愁心歌)소리

"여보 색시 나이는 몇 살이오."
술상 앞에 앉은 색시 두 손을 쥐어 본다.


"열아홉..."
새빨간 두 볼이 고개를 들고서

"임자는 어데까지 가시는 길입네까"
"서울로 가는뎁쇼. 같이 갈까요."

 

목화(木花)송이 터지듯이 꿈길이 피어나서
이 색시 이 저녁에 서울길이 기룬게지!

"어 졸려라 이 색시 하로밤 같이 자구 갈까부다."
"자는 일 누가 말려..."

내가 도루 색시처럼 부끄러웠다.
장명등(長明燈) 달아 놓은 술집을 나오며
양산도 한가락을 날리어 본다.

 

 

 

 

 

 

 월록서당(月麓書堂)

 

영조 49년(1773)에 지었으며 조지훈이 어려서 한문을 배운 서당이다.

'주실마을의 인재양성소" 격인 이곳은 구한말 이후엔 신교육 전당으로 바뀌었다고.

서당의 중간은 마루이고 왼편은 '존성재' 오른편은 '극복재' 편액이 붙어있다.

 

 

 지훈詩 공원

 

 

 

 

 

 

 

 

 

 

 

주실마을의 교회

아마도 주변 고택들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건축물인 듯.

 

 

 

 

 

주곡동 옥천종택(注谷洞 玉川宗宅)

(경북 민속자료 제42호)

한양 조씨 옥천 조덕린의 고택으로, 17세기 말 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이 집은 살림채인 정침과 글 읽는 별당 기능의 초당, 가묘(家廟)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ㅁ' 자 향의 집이기는 하지만, 안방이 동쪽에 있고 사랑방이 서쪽에 있다는 점이 다른 집들과 다른 점이라고.

 

 

 사당

 

 

 

 당호

 

 

 

 당호가 내걸린 마루에서 바라본 안채 내부

 

 

 

 

 

 초당에서 바라본 모습

 

옥천종택 마당 오른쪽 담장 곁에 있는 우물은 주실마을에서 단 하나뿐인 우물이라고 한다.

우물을 여러 개 파지 않은 이유는 풍수적 원리 때문.

주실은 배 모양의 형상인지라 우물을 파면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다는 믿음 때문에

 먼 곳에서 파이프를 통해 물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

 

 

 

 주실마을 전경

 

일찍 개화를 했으며 일제 때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할 정도로 지조 있는 마을로 알려진 주실.

 한가지 독특한 가풍이 전해 내려온다는데 그것은 바로 '삼불차(三不借)'.

세가지를 빌리지 않는다는 뜻인데 이것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고.

노론이 득세하던 시대, 남인이었던 이곳 선조들은 재물, 사람, 문장을 빌리지않는다는 

삼불차 정신을 가풍과 전통으로 이어올 만큼 당당한 삶을 이어왔다고 한다.

 

 

 

 

 

 

 

 

 

 

 

 

 

 

 

 

 

 

 

 

 

 

 

 

 

 

사   모

- 조 지 훈 -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고

당신은 멀리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움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 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물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한 잔

미리 알고 정하신 하느님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