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월봉서원과 함께하는 즐거운 나날'
"제1차 영호남 선비문화 교류 답사"
- 제4편 -
○ 주최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주관 : 교욱문화공동체 "결"
○ 후원 : 문화재청, (재)고봉학술원, 행주 기씨 문헌공 종중, 광곡(너브실)마을 주민 일동,
광산문화원, 광주향교 여성유도회, 광산구 문화유산해설사회
○ 돌째날 : 2011. 6. 4
○ 주제 : 천 년 古都 경주를 가다.
답사지 : 경주국립박물관 / 난타공연
숭복사(崇福寺) 쌍귀부(雙龜趺)
두 마리 거북이 서로 붙어있는 흔치 않은 비석 받침돌로 토함산 자락의 승복사지에 있던 것이다.
원성왕의 명복을 비는 내용으로 최치원이 찬한 사산비명 중의 하나이고 비석 파편은 박물관 내부에 보관되어 있다.
성덕대왕 신종
국보 제29호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실측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
에밀레종이 납형법으로 제작되려면 22톤의 쇳물, 감량 20 30%를 계산하면 약 25 30톤의 쇳물을
형틀에 부음과 동시에 쇳물 속 기포를 빼 내야 한다는데...
화려한 문양과 조각기법,
통일신라 예술의 절정기에 주조된 에밀레종,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 오를 듯.
연화문양 그리고 일천 수백년간의 타종 흔적
종 아랫 부분의 문양
장항리사지 석불
토함산 너머 장항리 사지 석조대좌 위에 놓였던 장대한 석불.
그나마 이 정도라도 남아 있다는게 기적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귀면와
금동보상화무늬문고리
금동불 손
금동광배
야외석조물 전시장
고선사지 삼층석탑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75년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을 조립식으로 짜 맞추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하여 복원하면서 밝혀졌다.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로 미끄러지는 네 귀퉁이에서 또렷이 들려있어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다.
밑면에는 계단 모양으로 5단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통일신라시대 전기인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전형적인 석탑양식으로 옮겨지는 초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이 탑과 함께 감은사지삼층석탑에서
시작되어 이후 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석등
경주읍성에 있던 이 석등은 하대석, 기다란 팔각기둥, 그리고 상대석 일부만 남아 있었으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높이가 자그만치 6m에 이를만큼 통일신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인면문수막새(人面文圓瓦當)
신라 7세기 (新羅 7世紀)
이 기와는 오릉(五陵) 북쪽의 영묘사터(靈廟寺址)에서 발견된 것이다.
영묘사는 선덕여왕 4년(635)에 ‘칠처가람터(七處伽藍址)’ 의 하나였으며, 조선 1460년에는
성덕대왕신종 (聖德大王神鍾)을 옮겨 걸어 두기도 했던 곳이다.
수막새는 연꽃무늬(연화문수막새:蓮花文圓瓦當)가 일반적이지만 이처럼 사람 얼굴을 표현한 예는
대단히 희귀한 의장(意匠)이다. 수줍은 듯 살짝 미소짓고 있는 신라 여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우수한 작품이다.부분적으로 파손되었지만 반 원통형의
수키와를 붙였던 자국이 뒷면에 그대로 남아 있어, 실제로 지붕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황룡사(皇龍寺)에서 발굴된 치미
높이 182cm에 이르는 대형 치미는 건물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차돈 순교비
네모난 대좌 위에 놓여진 6각기둥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위에는 옥개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없어졌다.
제1면에는 이차돈의 순교장면이 얕은 부조로 새겨져 있다. 527년(신법흥왕 14) 이차돈이 불사(佛事)를 일으키다
왕명을 거역했다는 죄목으로 참수형을 당했는데 그의 목을 베자 흰 젖이 수십 장(丈)이나 치솟아 올랐으며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고 땅이 크게 진동하여 왕과 군신들이 마침내 불교를 공인했다는 내용이다.
아래쪽에는 땅을 상징하는 물결과 같은 무늬가 있고 그 위에 관을 쓴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져 있다. 목이 잘린 채
비스듬히 서 있는 몸체는 원통형에 가까우며 옷주름은 세로선으로 간략하게 표현했다. 제2~6면 사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해독이 어렵다. 그러나 〈삼국유사〉 권3 원종흥법염촉멸신(原宗興法厭觸滅身)조에
의하면 이 비의 건립연대는 817년(헌덕왕 9)으로 추정된다. 이 비상은 불교의 순교상으로 유일한 예로서
한국 불교사뿐만 아니라 9세기초 불교조각사 및 복식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의 마지막 미팅.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한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며, 군데군데 평행한 옷주름을 새겨
넣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다소 연약해 보인다. 불상과는 별도로 마련해 놓은 광배(光背)는 매우 장식적인데, 광배 안에는 작은 부처와 보상화·
덩쿨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불을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 놓았는데, 이러한 형식은 밀양 무봉사나 경북대 광배 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예이다.
김정현 선생의 해설을 열심히 경청하는 선비문화교류단.
보리사 터로 추정해서일까?
현재도 보리사 간판을 내 걸고 있다.
남산 불곡 석불좌상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이것은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인왕리석불좌상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세가 아름답고 여성적이다. 양 어깨에 걸쳐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 위 사진은 지난 2007년에 찍은 것이다.-
어둠이 내린 경주 시내에 "난타" 공연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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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국립박물관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물고기가 물을 만남 셈?
불교미술이 전공인데다 박물관 학예사로 까지 활동하신 전력의 김정현 선생의 독무대.
'선비문화교류단' 일동은 그야말로 복이 터진 셈이다.
어디가서 이토록 귀하고 비싼(?) 해설사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판국이니,
신라 천년의 핍진한 향기가 절로 절로 가슴속에 솔솔 밀려 들 수 밖에.
오랫만에 찾은 '남산 미륵곡 석불좌상'
어쩌면 저리도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고 계실까?.
아랫쪽에서 일행을 바라보고 계시던 비구니 스님께서 어쩐지 좌불안석이시다.
내용인 즉, 저녁 예불 시간이니 빨리 떠나달라고....
'남산 불곡 석불좌상'에 이르니 벌써 어둠이 내렸다.
석불 앞 너럭 바위에 돗자리라도 펴고 저 은근한 미소의 미녀불(?)을 불러 내어
신라 천년의 비사를 경청하면서 하룻밤을 새워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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