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청산(太淸山, 593m) 전남 장성 ~ 영광
▶ 봉정사(鳳停寺) - 태청산 왕복 (천천히 3시간)
▷ 2010. 4. 27 (화)
상무대 동문 직전에서 우측 산길을 타고 오르면 나타나는 봉정사
절 입구에 선 안내도
A코스로 올라야 한다. 절대로 B코스 등산로는 없다.
어거지로 뚫고 오르겠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봉정사 전경
오른쪽 종각 뒤(B코스)로 올랐다가
꽉 쩔어있는 시누대를 뚫느라 경을 쳤다는 말씀.
봉정사의 봄
절 뒷편의 계곡
능선에 당도하니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물치 넘어 왼편이 월랑산(448m),이고
오른편은 고성산(546.3m) 그 너머는 고산(528m)이다.
영광군 대마면 일대
가운데가 태청산 정상이고 오른쪽 너머는 장암산(481.5m)이다
태청산을 기어오르던 거북이 지쳐 쉬고 있음인가...
정상 아래 헬리포트
위에서 내려다본 헬리포트
호남정맥을 향해 북으로 달리는 영산북기맥
오랫만에 찾은 태청산,
장성 삼계면 일원을 감상하시라고 데크까지 설치 해 놓았다
오른쪽 아래는 호국간성을 길러내는 상무대.
태청봉에서 바라본 장암산(중앙)과 왼편 멀리 불갑산
봉정사에서 A 코스로 올라 능선과 만나는 지점
하산시에 바라본 (구) 봉정사
텅빈 (구) 봉정사
(구) 봉정사를 나서면 (신) 봉정사가 보인다
봉정사(鳳停寺)
장성군 삼계면 신기리
봉정사는 전해진 문헌이나 사적기가 없어 정확한 사찰연혁은 알길이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6(영광군 불우조) 또는 「범우고」에 사찰 이름인 봉정사만 전해질 따름이다.
장성군사」(1982년)에는 1402년 창건하였는데 임진왜란때 소각되었다.
그 후 복원되었으나 6·25 전란때 완전소실되었으며, 현재 목조 법당 1동과 석불상만 남아 있다는 간략한 내
용이다, 이 지역은 원래 영광군 삼북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장성에 편입되었다
현재 봉정사 석조여래입상은 대웅전 좌측에 위치해 있다.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1643년 봉정사에서 개간한
금강경 목판본이 전해진 것을 보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50여년이 지난 후 한때 목판불사를 시행할 만큼
상당한 재력을 가진 사찰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봉정사는 1402년 창건된 것이 아니라 이 석불이 제작된
고려시대 초반기에 이미 사찰이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영광군 불정조에 ?재마호사?라 기록되어 있다. 주민들말에 의하면 송광사, 백양사, 불갑사 보다도 큰 절로써 12암자가 있었고 왕이 하사한 청기와가 있었으며 이곳에서 공부해 정승 판서가 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는 석불 2기와 옛우물등이 있으며 주변에 봉정사절과 관련된 명지가 많이 남아 있다.
봉정사 석조여래입상
(아래 3장의 사진은 2007. 9월에 찍어둔 것이다)
봉정사 석조여래입상(鳳停寺石造如來立像) 총고 220cm, 두고 42cm, 안고 36cm, 안폭 27cm, 어깨폭 80cm 고려시대 문화재자료 제208호 (1999. 11. 20) |
석불의 양식과 조성연대
이 석불은 대좌를 별석으로 하였고 불신 전체를 한돌로하여 새긴 것이다. 얼굴 부분과 목, 가슴부위에서
완전히 파손된 상태이긴 하나 전면에 나타난 법의자락과 상호의 분위기, 그리고 군의자락에서 나타난
시대적 특징 등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런운 일이라 하겠다.
우선 상호부분부터 살펴보면 정상은 소발이긴 하나 인위적으로 손상을 가한 흔적이 었어 나불인지
소발인지, 또 육계가 솟은 상태를 호가인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이마 밑으로 커다란 백호
모습이 깊게 파여져 이것은 9세기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코와 입 등은 형식화되었으며 양쪽
귀 역시 파손상태가 심하여 그 세부적인 기법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목으로 내려와서 삼도가 분명하며 법의는 통견으로 옷주름이 U자형으로 발전해 내려오다 가슴밑에서
띠매듭으로 연결되면서 다시 U자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군의자락 역시 일관되게 U자형인 파상문으로
연결되는데 발목부분에서 그 끝이 멈추고 있다. 발목은 대좌위에 별개의 석재에서 묘사되어 있다.
수인은 아미타구품인을 하고 있는데, 중품하생인을 결하고 있는 듯 한다.
석불 뒷면은 광배 유무를 확인할 수 없이 평평하게 처리하였다. 조성연대는 고려시대 중기(12~12세기)
로 추정된다
여래입상 앞에 스님과 보살 두 사람이 삼매에 들었는지 미동도 않는다.
(보호각 내부가 보이도록 투명 아크릴판을 붙여 놓았다)
봉정사의 금낭화
잠시 남는 시간을 이용, 간만에 태청산을 찾았다.
한 번도 올라본 일이 없는 B 코스...
결론 부터 말 하자면, 길 비슷한 것도 없는 순 생짜 코스.
안내판을 세운 주체가 다름 아닌 '육군보병학교'...(?)
그렇다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군인, 그것도 보병 앞에 무슨 잘 닦인 도로가 있을쏜가?
그저 만들어 가면 길이요, 도로인 것을...
암튼, 꽉 쩔어있는 시누대밭과 한동안 씨름하고 능선에 서니
그제서야 연분홍 진달래가 배시시 웃으며 마중을 나온다.
푹신한 등로를 따라 수월하게 다다른 정상.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대더니만 온도가 뚝 떨어지기 시작 한다.
오월이 낼 모렌데 무슨넘의 날씨가 이 모양이란 말인가...?
방금 전, 배시시 웃던 두견화가 갑자기 황망한 표정을 짓는다.
능선을 되짚어 A 코스를 따라 봉정사로 내려온 다음
차로 달려가 두툼한 옷 부터 껴 입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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