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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그저 환상적이었노라는 말 밖엔...

              ▶ 전남 영암군 군서면 녹암마을 ~ 사리봉 ~ 노적봉 ~ 상견성암 ~ 도갑사 (9 시간)

              ▶ 2009. 7. 4 (토)

 

 

 다시, 사리봉 능선을 향하여...

 

 

어떤이가 걸어두었을까...?

 

사리(舍利)의 의미를 중얼대며 사리봉 비탈을 오르고 있었는데

불쑥,  나무에 걸린 염주가 눈 앞에 모습을 보인다.

 

 

들머리 녹암마을 하경

 

 

"느긋" 산행의 교과서

 

 

로프구간

 

 

 부부 금슬을 좋게 한다는 합환목(자귀나무)의 꽃과 향기가 발길을 붙잡고...

 

 

 사리봉에서 바라본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라

 

 

 노적봉 오름길에 도열한 기암괴석

 

 

 

 

 발바닥 형태의 바위

 

 

저 멀리 우뚝 솟은 천황봉과, 바로 앞 구정봉 불꽃 라인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

 

 

호동계곡 옆, 범바위 능선을 타고오르면, 

사리봉에서 노적봉으로 이어가는 능선상의 위 물개바위(?)에 이르게된다.

이 바위에 이름을 지어준답시고 넋을 놓고 덤벙대는 바람에,

바로 아랫쪽 어딘가에 있다는 "몽영암지 마애여래좌상" 을  놓치는 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 월곡리 마애여래좌상 -


 

전체 높이 490㎝, 좌상 높이 430㎝.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9호.

월곡리마애여래좌상은 호동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약 3km 정도 올라간 위치에 있다.

 

≪동국여지지 東國輿地志)≫ 영암조에 ‘몽영암구재월출산(夢靈庵俱在月出山)’이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암자가 몽영암(夢靈庵)으로 추정된다.

이 마애불은 용암사지(龍巖寺址)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과

직선거리로 약 2.5km 가량 떨어져 있다.

이 마애불이 있는 산정 밑으로 암벽을 뚫어 파 놓은 길이 9m, 높이 1.8m, 입구 너비 2m되는 동굴이 있다.

 이 동굴 앞에 기와 편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 앞에 전각 형태의 수행 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에 삼도가 선명하며 법의는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가 드러냈으며,

왼쪽 어깨에서 한 번 겹쳐서 넘어갔다.

옷자락 은 평행 사선으로 지극히 형식화하였고 배가 앞으로 나와 조형감각을 잃고 있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데, 오른손을 수직에 가깝게 늘어뜨려 생동감을 주지 못한다.

 

양 어깨선은 거의 직각이며 왼 팔꿈치의 꺾어진 선도 직각에 가까워 어깨와 팔의 구도는 사각형을 이룬다.

이러한 형식은 같은 전라남도 담양궁산리마애불, 광주극락암마애불 등에서도 보인다.

대좌는 7엽의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으로 연화좌를 이루고 있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

(身光 :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1조선으로 표시하고

그 안에 각각 당초문(唐草文 : 덩굴무늬)을 시문하였다.

조성 연대는 상호와 신체 표현 등을 볼 때 용암사지 마애불보다는 훨씬 늦은 고려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月出山의 佛敎文化(成春慶, 月出山-바위 文化 調査, 全羅南道, 1988)

≪참고문헌≫ 月出山의 佛敎文化(崔仁善, 靈巖 月出山 祭祀遺蹟, 木浦大學校博物館·靈巖郡, 1996)

 

 

 

  월곡리마애여래좌상의 위치에서 약 20m 우측으로 떨어진

바위암벽에 안면만 새겨진 불두. 

연대는 위의 마애불보다 떨어진 고려하대로 추정.

 

※ 위 두 장의 사진은 "목포대학교 역사학 심포지움" 카페에서 옮겨왔다.

 

 

 

 

 

 

 

 지나온 라인

 

 

월곡리 방면 하경

 

 

 

 

또 하나의 발바닥 바위

 

 

노적봉의 석문 풍경

 

 

 세우고, 눕혀놓고...

 

 

슬아슬아...

 

 

천황봉과 구정봉 위에 올라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시야가 맑아졌다.

 

 

 도갑사 계곡, 그 너머로는 주지봉 라인

 

 

 

- 1722년 담헌 이하곤은 호남 지방을 여행하고 "남유록"이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 

"용암사로부터 갔던 길을 되돌아서 아래로 율령에 이르렀다.

북쪽으로 꺾어 몇 리를 걸어가서 백 길이나 될 듯한 절벽에 나 있는

실 같은 길로 빙 돌아가는데, 지극히 위험스러워 무서웠다.

무성하게 난 대나무가 촘촘히 우거져 제멋대로 이리 가로 막고 저리 뚫려 더 갈 수가 없었다.

 

상견성암에 이르니 뒤편에 석봉이 있는데 식규암과 같다.

서쪽에 큰 돌이 깎아세운 듯 대를 이루고 있으며 노목 몇 그루의 그림자가 어른어른 돌 위에 퍼져있다.

돌 위에 신보가 먼저 올라갔다. 노승 3~4인이 차례로 앉아 있는 모습이

나무뿌리에서 올려다보니 거의 인간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방이 또한 지극히 밝고 정갈하며, 햇빛이 기름종이로 바른 창에 비쳐

사방 벽으로 돌아가니 흰 눈으로 이루어진 마을 안과 같다.

 부들로 만든 자리, 선탑(禪榻), 향로, 경권 등 여러 가지 놓여 있어 그윽하고 맑다.

 내가 남쪽으로 와서 이름난 암자를 관람하며 들려본 곳이 수 십 곳이나 이곳이 당연 제일이다.

 

 비록 금강산 가운데에 갖다놓는다 해도

결코 영원암(금강산 명경대 근처에 있는 암자)의 진불(眞佛)만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혜정스님은 사람됨이 조용하며 맑고 조심하며 주의함이 있는 것 같다.

나이는 80인데, 용모는 60세 쯤 돼 보인다.

향산(香山)으로부터 바야흐로 여러 스님들과 참선하는 중이다.

 

시 한수를 남기고 돌아오다가

대적(大寂), 죽전(竹田), 두 암자에 들렸다가 도갑사에돌아 오니 한낮이 되었다."


 

 

 수행자의 허락도 없이

"출입금지" 팻말이 내 걸린 뒷 문과 앞 문을 고양이 걸음으로 통과

 

 

찐살보살님과 산골소녀님께서 펼치는

이름하여  *월출 암릉 블르스* 

 

 

오르지 말랍시는수행자의 울타리를 송구한 마음으로 우회하니

 

 

 오늘 산행의 끝자락 '도선국사 수미비각'이다

 

 

도갑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귀부

 

 

폐사지 공간에 다시 들어선 대웅전

 

 

점안식을 앞 둔 대웅전의 삼존불 

 

 

 

 밤 새도록 추적추적 비가내리고 있었다.

새벽 3시. 오늘 산행을 이대로 접어야 한단 말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영암경찰서 호출.

 

" 저, 혹시 영암에도 지금 비가 내리고 있나 해서 전활 드렸습니다"

 

의경으로 짐작되는 젊은 친구의 씩씩하고도 해맑은(?) 답변.

 

" 영암엔 전혀 비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로 자그만치 삼수(?)째 사리봉, 노적봉 라인 도전인데,

어찌 또 물러설 수 있단 말인가...!

 

영암 경찰 만만세요, 월출 신령 아일러뷰다.

 

일전, 비에 쫒겨 내려온 사리봉 능선,

불가의 "사리"에 대한 애길 해가며,  익숙한 걸음으로 산을 오르다 잠시 쉬려는데

불쑥, 키 작은 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염주"가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흘리고 간게 아니라, 

일부러 나무에 걸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사리봉의 염주.

 

무슨 뜻이며,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한단 말인가...?

 

아전인수란 이럴 때 필요한 법.

불법(佛法)을 사랑하는 우리 일행을 위해,

불법(不法)을 눈 감아주시겠다는 붓다의 "메시지" !!!!!

 

 나무사리봉타불, 관세음보살

 

사리봉을 넘어서 아침상을 펼친 후, 잠시 눈을 감는다.

잠시, 그저 잠시에 불과했는데도

 2중창으로 드높이 코를 골아대더라는 산소님의  모닝 시에스타(?) 감상평.

 

간간히 멧돼지가 배설물로 영역표시를 해 놓은 길을따라 노적봉에 이르렀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     

 

아차차차~~~~ "몽영암지 마애불"

 

지도를 펼치니 한 참을 지나쳐 버렸다.

 

자그만치 삼수 끝에 오른 사리봉 능선인데 이럴수는 없다,

부지런히 오던길을 되돌아가 예상 지점에 당도,

지도정치를 해보니 아직도 저 멀리다.

 

암자의 이름이 몽영암(夢靈庵)이어서 였을까?

마치 꿈 속의 미로를 헤메는 느낌.

상의 끝에 다음으로 기회를 미루고 다시 노적봉으로 귀환하기로 한다.

 

제법 날씨가 맑아지는 가운데

천황봉과 구정봉을 서성이는 산객들의 실루엣도 눈에 들어오고

애당초 목표로 했던 건너편 "용암사지" 석탑의 모습도 또렷하게 알아 보겠다.

 

'느긋탐방'과 '지렁스타일'을 산행철학으로로 떠 받드는 4 인조.

 

시간 계산을 해 보니, 발봉을 지나 구정봉을 거쳐

용암사지와 큰골로 내려오는 원점회귀를 노린다는건  턱도 없게 생겼는지라,

상견성암을 거쳐 도갑사로 하산하기로 결정.

 

발봉으로 이어지는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확 꺾어

산자락을 가로지르는 상견성암으로 통하는 기분 좋은 길을 가게되는데...

 

아름다운 길 이었다,!

 

그저 그런 아름다움이 아니라,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슴 절절한 감동을 안겨주는 산길.

이런 감동적인 산길을, 내 어찌 이제야 알게되었을꼬...!

 

장탄식과 환호성이  절로

교차하게 만드는 사색과 정서 만점의 산길이었다.

 

사리봉과 노적봉을 잇는 라인이

기암의 열병과 시원한 눈 맛으로 호사를 누리며 걷는  

안복(眼福)의 길" 이었다고 한다면

 

상견성암에 이르는 소로는,

성찰과 사색이 주제가 되어야 함을 자연적으로 깨닫게 해 주는  

"심안(心眼)의 길" 이라는 느낌.

 

과거  이 길은, 도갑사를 출발,

하, 중, 상견성암을 지나, 저 건너 구정봉 아래 위치한

"용암사"까지 산자락으로 이어졌음이 분명.

 

내 언젠간 꼭 그 길을 한 번 뚫어보리라.

 

이 길을 잘(?) 걷는것 만으로도

그야말로 견성쯤은 식은죽 먹기....!!

 

"수행자 포행 전용로"임이 분명한 길을 따라가며  

상견성암에서 처절한 수행을 하셨다는

"청화선사"를 떠 올리고 있던차,

 

나뭇잎새 사이로  암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일행 모두 진즉에 물이 떨어져 갈증에 허덕대고 있던 터라,

들어오지 말라는 수행자의 공간에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 설 수 밖에 없었다.

 

해우소를 지나 마당에 올라서니,

방금 전 까지의 인기척은 순식간에 내부로 사라지고

  날 선 칼날 처럼 수행자의 공간은 다시 시퍼런 정적에 휩싸여 간다.

 

품새를 헤아려보자니,

"물 마신 다음 속 차리고 빨리 사라져 달라"는 뜻.!

 

산을 내려와 시원한 계곡물에 얼굴을 씻고서 행색을 살펴보니,

어찌나 가시에 쥐어 뜯겼는지, 

차림새가  어느덧 각설이 행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지나온 산길의 상태와 형편이 읽혀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