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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검은등뻐꾸기가 안내한 조봉산, 도명산

                    @ 충북 괴산군 소재  조봉산(鳥峰山) 687m ,  도명산(道明山) 643m

                    @ 상신리 - 조봉산 - 코뿔소바위 - 공림사 안부 - 도명산 - 화양구곡 - 주차장

                    @ 약 6시간 30분 소요

                    @ 2008, 5, 25 일요일, 전주 대건산악회와 함께

 

 

 깔끔함이 인상적인 전주 풍남문을 출발

 

 

들머리로 삼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상신리 도착

 

 

무꽃이 활짝 피어난 길을 따라 저 앞에 우뚝 솟은 조봉산을 목표로...

 

 

안내판에는 조봉산까지 분명 80 분이 소요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만.

 

 

어찌나들 성미 급하게 올라왔는지

 

 

1 시간이 채 걸리지 않더군요

 

 

낙영산을 지나  가령산으로 이어지는 라인

 

 

그리도 빨리 내 달리던 산객 들,  암릉 릿지  코스에 다다르니 벌벌벌~~~

 

 

"속리산 국립공원"지역의 산들은 이런 저런 다양한 메뉴의 코스가 많아서 좋습니다

 

 

모두들 철각들 이어서인지 도무지 표지판에 적힌  시간 표시는 무용지물...

 

 

코뿔소 바위를 배경으로,  山공부 기십년 실력의 해박함이 유감없이 펼쳐집니다.

과거,  지금의 이 코스도 위의 찌깐 선녀님께서 각종 산악회에 많이 추천했었다고

 

 

  사적  제401호  괴산미륵산성(槐山彌勒山城)

 

 청천 미륵산성은 낙영산과 도명산의 정상을 각각 남북으로하고 천연의 암벽을 이용하여

축조한  전체둘레 5.1km, 외성을 합한 석축만도 3.7km에 달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 이다.

 

서쪽으로 난 계곡에 수문과 서문을 내고, 서문의 바깥 좌우의 기슭에 외성을 축조하여 계곡방면을

공제하고 있으며  성의 동문은 화양동계곡 쪽에, 남문은 사담계곡 쪽에 시설 되었다.

 

성벽의 축조는 자연할석으로 쐐기돌을 많이 사용하여 쌓고, 내면으로는 2-3단의 계단모양으로

쌓아  려후기에서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축조기술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벽의 요소마다 네모꼴의 망대를 만들고 있으며, 자연암반을 둥글게 파내어 기둥을 세 운 흔적이 많다.

                                                             동남쪽의 성벽 일부는 커다란 석재를 열지어 놓은 특이한 축성법을 보 이고 있다.

                                                           

                                                      성 내에는 여러개의 건물터가 있고 중앙부인 수정골에는 수정의 원석이 발견 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성벽의 잔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고려시기 대규모의 입보 농성용 산성으로 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 자료 인용 -

 

 

공림사 안부에서 일부는 낙영산을 찍고 오겠다고 산성을 따라 진행하고

나머지 일행은 곧장 도명산을 향해 계곡으로 내려 서게 됩니다.

 

 

때마침 흐드러지게 피어난 쪽동백을 만났는데 도무지 꽃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입 속을 뱅뱅 돌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 꽃 이름...?

마침내  도명산 마애불 앞에 이르러서야 해답을 얻게 됩니다.

그것도  앞서가시던  장 차장님께서 나무에 걸려있는 이름을 보고  외쳐 주셔서 겨우.....ㅋ

 

 

오찬 그리고 휴식

 

 

 

오찬장 옆에 피어난 함박꽃

 

 

갑자기 나타난 빽빽한 송림지재

 

 

훠이 훠이 안부를 치고 올라와 도명산 쪽으로 커브를 트니 상당한규모의 슬랩이 앞을 가로막아섭니다.

 

 

슬랩을 올라와 돌아보니 암릉들이 모조리  화양계곡을 향해 줄달음 쳐 내려갑니다.

 

 

오른편의 낙영산과 왼편의 가령산을 잇는 안부 사이로

멀리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곳은 월악산.....?

 

 

저 앞 봉우리를  넘어서면  도명산 정상

 

 

오랜 세월 암벽에 붙어 살았는데,그만  모진 바람의 심술로 바위와 분리되어  누워버린 소나무의 주검

 

 

도명산에서 지나온  조봉산 조망

 

 

저기 보인다 ~~~

 

 

시야를 가로막던 개스가 약간 걷히고나니,저 멀리 속리산 서북능선라인이 조망됩니다

 

 

기기묘묘한 소나무 틈새로 드디어 도명산 정상이 모습을 보이고

 

 

요상시런(?) 바위 틈새를 비집고 올라야 정상에 다다릅니다.

 

 

 

 

전주대건산악회원 여러분

 

 

저기가 거기이고....

 

 

거기는 저기랍니다.....

 

 

"호지탐"의 양 대장님, 낙영산에 이어 이번엔 갈미봉으로 행차하십니다.

 

 

도명산 가장 높은 바위에 올라서

 

 

맨 오른쪽이 조봉산(684m)  다음이 금단산(766.8m) , 그 앞이 코뿔소바위, 그 뒤로 덕가산(691m)

그  옆으로는  속리산의 상학봉(861m),  앞 쪽 작게 솟은 산은 남산(502m) 그 뒤로는 묘봉.

 

 

 

도명산 정상에서 화양계곡  쪽 으로 조금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군이 도열 해 있고

그 바위 사면에 마애불 3 기가 새겨져 있다.

 

 

맨 중앙에 자리잡은 불상으로 바위면에 선각(線刻)으로 처리되어있으며,

가운데 불상은 길이 14m 전신상인데 하반신까지 선각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좌측에 따로 떨어진 바위에 조성된 불상으로 5.4m 이고 다소간의

양각 기법이 가미되어 곡선미의 처리가 세련되었다는 평.

 

 

충북 유형 문화재 제 140호 

괴산 도명산 마애삼존불상   (槐山  道明山 磨崖三尊佛象)

 

 

맨 오른쪽의 불상으로 높이 9.1m 얼굴 길이만 2m 인데 세 불상 중 가장 세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어깨까지는 상당히 뚜렷한 선의 모습이 보이는데 수인(手印)은 흐릿하다.

 

 

석등 좌대...?

 

 

 

커다란 쪽동백나무 그늘 아래서 삼존불 쪽을 바라보니...

 

 

학소대 옆  화양계곡을 가로지른 다리에 당도

 

 

학소대 전경

 

 

건너편 바위면에 새겨진 "학소대"

 

 

화양계곡 비경 중 제 8 경으로 쳐 준다는 학소대에 관한 해설을 잠시 빌려보자

 

낙낙장송이 오랜 성상의 옛일을 간직한채 여기저기 서 있는데, 옛날에는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며 살았다 하여 학소대라 한다고, 재 해석을 내리자면 이곳이 바로 선계라는 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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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의 비경 중 제 7 곡 이라는 와룡암

아닌게 아니라 용이 몸부림을 쳐 댄 형국이다.

 

 

 

제 5 곡  첨성대

예의 그 해설을 한번더 차용해보자면

 

도명산 기슭에 층암이 얽혀 대를 이루었으니 제 5 곡이라.

경치도 삼삼할 뿐더러 치솟은 높이가 수십미터라.

대 아래엔 "비례부동"이라는 명나라 의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으니 이름하여 첨성대이고

또한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쳐있어 그 위에 올라 성진을 관측할 수 있다하여 첨성대라 한다고

 

 

학소대의 학이 치솟는 유류비를 감당 못해 요즘은  날개를 접은채  걸어도 다닌답니다

 

 

송우암의 암서재

중수 공사 관계로 어수선 한 모습 인지라   오른편 약간은 잘라버렸다

 

 

금사당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의 풍광

 

 

금사담과 암서재

 

파란만장한 삶이란 송우암의 경우가 대표적일 것이다.

숙종 15년 경종을 왕세자로 책봉하자 시기상조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자그만치 여든 셋이라는 고령에 제주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잠시 보길도에 들른 송우암, 울적한 심사를 바위에새겨 놓았는데...

 

                                                                         팔삼세옹(八十三歲翁) : 팔십 삼세 늙은 몸이

                                                                         창파만리중(蒼波萬里中) : 거친 만리 길을 가노라

                                                                         일언호대죄(一言胡大罪) : 한마디 말이 어찌 그렇게 큰 죄가 되어

                                                                         점적운궁(三點赤云窮) : 세 번이나 쫓겨나니 신세만궁하구나

                                                                         북극공담월(北極空膽月) : 북녘하늘 달을 바라보며 끝없이 넓은

                                                                         남명저신풍(南溟但信風) :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초구만사재(貂舊萬思在) : 초구(임금이 하사한 옷)에는 옛 은혜 서려있어

                                                                         감격읍고애(感激泣孤哀) : 감격하여 외로이 눈물 흘리네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의 배 이상을 살다간,  그것도 억지로 숨이 끊긴 송우암

말년에 이곳에 은거해서도 천하를 호령하는 기개는 여전 했었다.

그의 초상화를 보노라면 문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보인다.

마치 무인의 기개가 철철 넘치는 모습이란  표현이 적절하리라.

일세를 풍미하던 그 였지만 국문을 받으려 상경하던 도중 눈엣가시로 여기던

남인들의 모사로, 결국엔사약을 받고  파란만장 했던삶의 끈을  잘리우게 되었다는데....

 

 금사담 푸른 물 위에 떠오르는 송우암의 환영에 침잠하여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으나

어이하리, 저 아래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산우님들의 원성이 귓전에 맴도는 것을.

 

 

화양서원 묘정비

서원의 건립취지와 우암 선생을 추앙하는 내용으로

윤봉구가 비문을 지었고  안진경의 서체를 집자하여 새겼다고 한다.

고종 때 서원이 헐려 없어질 때 이 비도 땅에 묻히게 되었는데 광복 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고.

 

 

조선조 최고의 위세를 자랑하던 화양서원

 

숙종 42년 (1696년) 송시열의 영정을 배향하기위해 세우고 사액되었으며 숙종 42년(1716년)

어필 편액까지 올리게되었으나 저 유명한 소위 "화양묵폐(華陽墨牌)"라 일컬어지는 유생들의

폐단으로 철폐 당하고 헐리게 된 사연을 간직한 화양서원, 옛날엔 터 만 남아있더니

요번에 가 보니, 말끔한 모습으로 단장한 새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모습이었다.

 

우리 모두 잘 아는 "화양묵폐(華陽墨牌)"에 관한 백과사전 식 내용을  잠시 차용하자면. 

 

노론집권기에 국가로부터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는 등 송시열을 제향한 전국 44개 서원 가운데

위세가 가장 큰 서원이었다. 화양서원은 권세가 막강하여 백성들의 폐해가 심했다.

 

즉 제수전(祭需錢)의 명목으로 각 군·현에 화양묵패(華陽墨牌)를 발송해 강제로 돈을 걷거나,

춘추제향(春秋祭享)을 지낸 뒤 원임(院任)들에게 치번(致膰)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복주촌(福酒村)과 복주호(福酒戶)를 운영,

요역을 피하려는 부민(富民)으로부터 돈을 받고 피역(避役)시켜 부민이 지던 역을

가난한 백성들이 대신 떠맡게 하는 폐단을 일으켰다.

 

이러한 횡포가 거듭되자 1858년(철종 9) 영의정 김좌근(金左根)의 주청으로 복주촌을 없애고,

재화 징수도 금지시켰다.


 

 

대원군의 서슬 퍼런 서원 철폐령에 의해 사라지게된지 150 여년,

시대를 건너 뛰어 우리 앞에 다시 세게 되었다는데......

 

화양서원 뒷족의 만동묘는 우암의 유언에 따라 그의 제자들과 노론 세력의 유림들이

건립한 것으로 명나라 마지막 두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었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당도 다시 복원 해 놓은 모양인데 들어가 내부를 보진 못했다

 

 

옛 시절 서원의 석부재 들 모아놓은 모습

 

 

 부디 "화양묵폐"로 대변되던 옛 시절의 악몽일랑 떨쳐버리고

새로운 페러다임으로 무장한 유생들의 낭낭한 글 읽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 화양구곡에 울려퍼지길 기대하며  길을 재촉.

 

 

평상을 펼치고 닭다리를 뜯으며 술잔을 비우는 행락객들의 따거운 시선이 뒤통수에

꽂히는 가운데서도 '운영담'의  절경 감상으로 또 한차례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화양구곡  제 2 곡  운영담

 

경천에서약 400m 북쪽 계곡에 청류가 감아돌아 소를 이루고 있는데

마치 그 모습이 구름의 그림자가 소에 맑게 비친다 하여 운영담이라 한다고.

 

 

이런 비경을 앞에 놓고 시간에 �겨 내려가야만 하다니

참으로 불쌍하고도 짠한  삼류 산꾼이 아닐 수 없구나..

 

 

마치, 도명산 마애삼존불이 물가로 내려와 탁족이라도 즐기는 모양새는 아닐까...?

 

 

들고 가시기엔 쬐끔 무겁고 버거우시리라는 생각...?

 

 

화양구곡의 막바지와  도명산 원경

 

 

타는 갈증과 소방음료 그 환상의 궁합

 

*  *  *

 

이제 산에 오르려면 옆구리에 야생화 도감 한 질 쯤은 끼고 다녀야 할 터.

도대체 일 년만 지나면 뇌리에서 모조리 지워지고 마는 꽃 이름들.

 

담배는 진즉에 끊었는데....

 

그렇다면 이젠 아르꼬르 꺼정.... ?

 

애공~~~ !@#$%&*^^**

 

산행 내내 "성불하시고~~~" "호올딱벗고"~~~ 

노래를 불러주며 일행을 안내한 새의 정체는 "검은등뻐꾸기"라는 새다.

 

그냥 뻐꾸기의 노래 소리도 간간히 섞여 들리는 아름다운 오월의 산행길

허나..

한참 동안이나 쪽동백의 이름을 떠 올리지 못해서 여간 서러운(?) 산행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