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 용담호 전망대
괜찮은 사진을 기대하며 찾아갔는데 그만 올 들어 최악의 황사가.....
말 그대로 용담이 되고만, 龍潭에서 부르는 망향가
어쩌면 우리의 선인 들은 훗날을 저렇게도 쪽집게 처럼 예감하여 지명으로 삼을 수 있었단 말인가.....?
수몰되어버린 마을 하나 하나를 추억하며.....
망향의 노래
- 우리 고장 "용담"을 가슴에 묻고서 -
윗 신작로 아랫 신작로를 감아 돌며
유유히 흐르는 주자천 파아란 냇물은
용연의 전설을 가슴에 묻고 천년을 이어왔네.
숲거리 징검다리를 건너 천 변 벼랑에 오르면
육중한 도리 기둥에 받혀 서 있는 태고정과
그윽한 역사의 향기를 지닌 향교가
선사 때로 부터 이어온 용담현의 내력을 고즈넉히 새기며
용강산, 매봉산, 그리고 천태산, 연봉으로 이어진
우리 고장의 따스한 정기를 다소곳이 품어 왔네
이백년 세월,
의연함을 잃지 않고 서 있는 옥거리 상거 노송은
찬 서리 모진 비바람 속에 괴로움도, 서러움도, 그 깊고 아픈 상처도
꽃 가루로 날리며 넓은 가슴을 폈고
멀리 타향으로 떠난 동이와 순이가
환희의 금의를 입어도, 슬픔의 상복을 입어도
언제나 찾아드는 고장, 용담은 바로 따스한 우리 어머니의 품.
벼이삭 한줌 줍고 하늘을 보고, 콩이삭 두줌 줍고 영마루를 보며
떡갈나무 잎을 밟고 찾아간 서낭당 고개
돌 무덤에 쌓인 정성은 영험한 천신, 지신이 우리의 영혼을 달래 주었지.
용강추월 태고청풍 응봉낙조
송림수학 소요낙안 옥천모종
삼천서원 성남규범의 용담팔경은
이제 추억의 이야기가 되어 우리의 가슴에 묻었지만
그 혼은 완산벌의 새 물이 되고 영원한 생명의 젖줄 되어 억겁을 흘러갈 ....
고향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일까....?
태고정 (太古亭) 전북 문화재자료 제 102호
조선 영조 28년(1752)에 관리 홍석이 처음 세운 것으로
수 많은 풍류객을 불러 모았다는 태고정.
1911년 조선총독부가 국가에 헌납, 공매 처분하려 할 때,
수천리의 임순환이 매수하여 용담현에 기증했다는 내력.
수몰로 인해 1998년 망향의 동산으로 옮겨세웠다고.
송준길(宋浚吉:1606~1672)이 쓴 太古亭 현판이 결려있다.
우암 송시열의 친필 "용담태고정기"
여의곡에서 발굴했던 지석묘도 옮겨놓았는데 상당히 귀중한 사료라고....
황사가 점점 짙어지는 가운데 용담호 하경에서 그만 눈을 떼고 발길을 재촉
진안군 주천면의 서낭당 고갯길
차를 세우고, 저 당산목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내 증조부의 산소에 이르게됩니다.
선친의 고향이자 선대의 고혼이 깃든 주천, 내마음 속 본향임이 분명합니다.
진안 주천을 지나 들어 선 곳은 충남 금산 보석사
부연 황사를 뚫고 보석사가 자리한 진악산 자락에 들어섭니다
보석사에 이르는 울창한 전나무 길
문화재자료 제 23호 "의병승장비"
의병 승장으로 금산 전투에서 중봉 조현과 함께 순절한 기허당 영규대사의 순절사적비로서
1840년(헌종6년)에 보석사 입구에 건립
비문을 지은이는 우의정 조인영이며 글씨는 당시의 금산군수 조취영이 썼다는데 필력이 매우
힘차게 느껴진다.
자획이 심하게 훼손된 내력에는 분노를 금치 못 한다.
1940년 일본 경찰이 비각을 허물고 비에 손상을 가하여 땅에 묻어버렸는데
광복 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고.
짙은 전나무 향기가 내내 코 끝을 스치는 길을 따라
보석사에 다다릅니다
進樂山 寶石寺
절의 앞 산에서 금을 캐내어 불상을 조성한데서 보석사라 이름했다고
비교적 근자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누각의 아랫쪽을 지나 절에 들어섭니다
축대 아래 자리한 자그만 연못
대웅전의 삼존불
너무나도 유명한, 천연기념물 제36호 보석사 은행나무
수고 40m , 흉고 10.4m, 수령 1,000년 이상으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조구대사가 보석사 창건(886년) 무렵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해오며
나라에 변고가 있거나 마을에 재앙이 닥칠 때, 울음소리를 내어 재난을
알려주는 신목이라 해서 매년 경칩에는 나무 앞에서 다신제를 지낸다고.
모두들 얼마나 막걸리를 부어대며 소원을 빌었는지
나무에 다가서니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영천암과 진악산(732.3m)을 오르는 초입
샘물바위
조신한 표정의 지하여장군과
응큼한 표정(?)의 천하대장군이 길섶을 지키는 길을 따라 올라서
영천암에 다다릅니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암자의 정적을 깨뜨리는 마당을 가로질러
건물 뒷쪽 암벽에 올라 바위 틈에서 솟는 영천을 들여다 봅니다
영천암 하경
저 앞에 보이는 산 너머에 진악산 정상이 있을텐데.
황사와 건강을 핑계 삼아 산행의 유혹에서 탈출, 다시 산을 내려갑니다.
황사를 마셔대며 산에 오르면 만수무강에 지장을 초래 할 수 있다는 협박(?)에 넘어가
아쉽지만 정상에 오르는 건 포기하고 다시 보석사로......
보석사 고승부도열전
보석사의 부처님,
진악산의 산신령님,
여타의 모든 끝발있는 신이시여....
부디 "이천 산오름 산악회"의 정성을 받아 주시길 간절히 비나이다.
주차장 앞의 명자나무에 매달아놓은 화사한(?) 공갈꽃에서 쥔장의 해학이 읽혀집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가엔 이런 시가 걸려있었습니다.
제비꽃에 대하여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하여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 할 수 있는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주빛이지
자주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은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 포기는 피워두고 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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