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4 00:41
* 배리 삼존석불입상 (보물 제63호) 보호각을 씌워놓아 예전의 느낌을 찾기 어려웠다. 차라리 뒤쪽으로 돌아가 뒷모습 감상에 열을 올리는 편이 훨씬 나았다고나 할까? |
삼존불 각각의 뒷모습
보호각 속에 들어있는 모습이 웬지 답답해 보인다. |
햇볕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미소로 유명했었는데 이제는 틀렸고...
해서 앞 모습 보담 차라리 뒷태를 담아보기로 했다.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경북 유형문화재 제19호)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화사한 웃음의 관음보살은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입술 주위에 붉은색은 자연 암질을 그대로 응용한 것이라 한다. |
* 삼릉계곡 목 없는 석조여래좌상 비록 불두가 없고 무릎 부분의 파손이 심하나 무척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
옷을 여민 매듭의 기교가 여간 멋스러운 게 아니다. 조성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본다고. |
* 삼릉계곡 마애삼존육각불 (경북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 |
들쑥날쑥한 바위면에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음각되어있는 모습에서
조성자의 원숙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약 8세기 후반부의 작품으로 추정한다고.
삼릉골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경북 유형문화재 제158호) |
좌상에서 왼편으로 시선을 주면 이런 풍경이.... |
상사암을 돌아 삼불사로 하산하면서 경주 시내를 조망 |
천년의 미소가 발견된 문제의 열암곡 들머리 근처
* 1,3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최근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 불상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460cm, 발 아래 연화대좌가 100cm로, 전체 높이 560cm에 이른다. 육계(부처 정수리에 불룩 솟아오른 부분)가 높고 민머리(소발.素髮)이며, 타원형 얼굴에는 오뚝하게 솟은 코와 아래로 내리뜬 길고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도톰하고 부드럽게 처리된 입술 등이 잘 표현됐다. 특히 귀는 발제선(髮際線.머리털이 난 끝선)에서 어깨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고, 평면적으로 처리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양식으로 주목된다. 목에는 삼도(三道)를 입체적으로 표현했으며 어깨는 넓고 가슴을 편 당당한 모습이다. 불상 수인(手印.손 모양)은 왼쪽 손등을 바깥으로 하고 손가락은 가지런히 펴서 가슴 위에 얹었으며, 오른손 역시 손등이 밖을 향한 채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감싸고 네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복부에 대고 있는 형태다. 법의(法衣)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발목까지 길게 내려오는 우견편단(右肩偏袒) 형식이며, 아래로 내려올수록 간격이 넓어지는 옷 주름은 9개를 표현했다. 두 발은 발끝을 밖으로 향해 벌렸으며, 연화대좌는 5장 꽃잎을 낮게 조각했다. 연구소는 이 마애불이 약 4등신(等身)으로 몸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게 표현돼 예불하는 사람이 마애불을 우러러 볼 때의 비례감을 고려해 시각적인 효과를 잘 나타내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불교조각사에서 볼 때, 이 마애불은 볼륨 있는 상호와 날카로운 눈매에서 느껴지는 엄숙함은 통일신라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불상의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8-9세기로 추정하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정은우 동아대 교수는 "5월 불상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 옷주름과 발 모양만을 근거로 9세기 불상으로 추정했으나 측면 얼굴의 양감이 매우 뛰어난 점에서 8세기까지 제작연대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 역시 "얼굴 측면의 양감은 매우 훌륭해 8세기께 통일 신라 불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옷주름이나 발의 새김이 단순하고 형식화된 감이 있다"며 "현재로서는 8-9세기 정도로 제작연대를 폭넓게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임남수 영남대 교수는 열암곡 불상이 일반적인 수인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드문 경우이기는 하나 열암곡 불상과 같은 수인을 취한 불상은 주로 산지에서 발견된다"며 "특별한 영력을 갖춘 서상(瑞像)으로 조성됐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상은 옮긴 글 |
약 70 톤의 바위에 마애불이 조성되어 앞으로 넘어진 채 땅에 묻혀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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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바로 위쪽의 산 능선에 올라계신 울산의 류제원 선생님
바쁘신 와중에도 금번 경주 남산 답사에 앞장서 주셔서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할지....
남산의 여러곳은 물론이고 특히나" 열암곡 마애불" 답사에는 결정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의열정에 그저 깊게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릴뿐 입니다
칠불암 마애석불 (보물 제200호)
남산에 산재한 여러 불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조성 솜씨 또한 대단하다고 해야겠는데 석불 앞쪽에 차일을 쳐 놓아 뒤쪽 절벽 전체의 모습까지 한꺼번에 담을 수 없음이 아쉽다. |
절벽에는 삼존불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앞쪽 바위 덩어리 사면에도 불상이 조각되어있는데 문제는 앞쪽 따로 떨어진 바위에 조성된 불상 중, 뒷면의 불상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올라가면 볼 수가 있겠지만 관세음보살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비구니 앞에서 저 성스러운 곳에 어떻게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
한창 찍어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귓전에 낮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달콤한 여자 목소리...
“처사니~~이임, 저 위로 올라가서 찍으세요 @#$%^&****@” |
목탁이 깨져라 내리치면서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칠불암의 생불 비구니께
부디 하느님과 천주님과 예수님과 공자, 노자 기타 등등 모든 끝빨(?) 있는 자들의 은총이
가득 내리셔서 부디 원하옵는 불사가 왕성하게 이루어지시길 부처님 전에 기원합니다.
칠불암 일광삼존불 하나의 광배에 삼존이 나타난 불상을 일광삼존이라 한다고 |
보생여래상 |
칠불암 일광삼존불 우협시보살 연화대좌에 서서 정병을 들었다. 물병은 괴로운 사람들을 구하겠노라는 의미라고.. |
칠불암 일광삼존불 좌협시보살 연화대에서서 연꽃을 들었는데, 깨끗함으로 세상을 제도하리라는 약속이라고.. |
북면여래상
삼존불 바로 정면 네모난 바위에 새겨짐
일광삼존불 본존여래 위엄있는 표정,눈꼬리가 치켜오르고 꽉 다문 입은 당당함의 극치가 아닐까? 자세히 살피니 코가 시멘트로 성형 수술 받은 흔적이.... |
종일토록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목탁을 두드리는 칠불암의 비구니 스님
칠불암의 불사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내는 와중에서도
내게 삼존불로 올라가 사진을 끽으라는 배려까지....
칠불암의 미녀스님 만만세~~~~
너무 고마웠습니다. 나무관세음~~~~~
남산 ----- (작자 ?) 남산 소나무옆 두리뭉실한 바위가 갑자기 부처가되고 흐르던 시간이 소리없이 멎어서 신라로 돌아간다. 천년! 부처는 그렇게 앉아 계시고 천년! 부처는 그렇게 서 계실 것이다. 부처는 바위, 바위는 부처 우러러보는 사람도 부처 모두 피가 통하는 한마음 한 몸이다. 푸른하늘, 힌구름 구름그대로, 바위 그대로 그저 그대로다. 천년이 왔다 가는 그저 그대로다. |
*남산 미륵곡 보리사 석불좌상 (보물 제136호) |
자비로움이 가득한 얼굴과 수려한 외모, 화려한 옷자락의 늘어짐에서 고대 패션의 진수가 읽혀진다.
어찌나 친근감이 오던지 한번 올라가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뒷면에 약사여래좌상이 낮은 돋을새김으로 조성되어있다. |
너무나도 자애로운 표정 |
* 남산 불곡 석불좌상 (보물 제198호) |
시누대가 무성한 길을 따라 오르면 작은 바위 속에 소박하게 좌정한 부처를 만날 수 있다. 고개는 약간 숙인 모습이고 잔잔한 미소와 두 손을 다소곳이 옷자락 안에 넣고 있는 모습은 옆에 마냥 같이 앉아있고 싶을 만큼 한없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
부처를 새긴게 아니라 돌 속의 부처를 끄집어 내었다는 표현이 적합하다는 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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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헌 정성에 가득찬 사진과 글을 올려 주셨군요.
열암곡의 비사는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쾌거로군요. 부처님 얼굴을 그렇게 가득 찍어 오셔서 요즘... 김선생 용안(?)이 부처를 닮았군요... 보기만 해도 마음이 자비로와지는 그림과 글이로다... |
2007-11-14 18:3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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